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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119

'통합'-'연정(聯政)' 속의 盧지지자들 최근 여권 핵심의 민주당 '구애'가 직간접적으로 확인되면서 '공작정치' 공방이 불을 뿜었다. '의원 빼내가기'로 비쳐질 수 있는 비공식적 '입각 제의'는 사실상 정계개편 시도라는 분석까지 잇따랐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3기를 맞아 경제 '올인'에 나섰고, 열린우리당도 4월 전당대회까지는 이변이 없는 한 '실용주의' 노선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같은 여권의 행보가 연말까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다. 여권이 민주당과 재결합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는 관측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당 일각에서는 '과거회귀'라며 반발하는 조짐도 나타난다. 민주당을 과거지향적 정당으로 규정하고 뛰쳐 나온 마당에 다시 합치자는 것이 영 마뜩치 않기 때문이다. 또 여기에는 충.. 2005. 1. 31.
청와대, 연·고대 파워게임 청와대는 지난 16일 천호선(43) 의전비서관을 국정상황실장으로 기용하고, 비어 있던 인사제도비서관에는 박남춘(48) 국정상황실장을, 의전비서관에는 권찬호(49) 제도개선비서관을 임명했다. 이 인사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비서진간 ‘단순한 자리 바꾸기’라는 혹평에서부터, 핵심 요직을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위주로 채운 ‘친정체제’강화라는 적극적 해석까지 평가가 엇갈렸다. 국정상황실장으로 임명된 천 비서관은 노 대통령을 13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좌관으로 곁에서 보좌해온 ‘386 실세’중 한 사람이다. 천 비서관은 ‘좌 희정, 우 광재, 중 호철’로 불렀던 측근 그룹, 즉 ‘대선 3인방’이 주춤하는 동안 부상한 비서관이다. 연대인맥 정점에 김우식 비서실장 특히 연세대 출신의 천 비서관(사회 80)이 국.. 2005. 1. 27.
[펌] 박정희라는 알리바이 ‘박정희 살해’를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아들 박지만씨가 “선친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박 전 대통령을 친일적이고 사생활이 복잡한 인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지만씨는 실수한 거다. 괜히 언론에 기삿거리만 제공해서 '그때 그 사람들'을 무료로 광고해 주는 효과만 거두지 않았나. 까놓고 말해서 박 전 대통령의 ‘일본 장교 경력’과 ‘마지막 술자리의 여인들’이라는 ‘팩트’만으로도 이 문제에서 박지만씨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만큼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은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는 극악한 독재자로, 그의 시대는 고문과 조작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인권탄압으로.. 2005. 1. 25.
과반 붕괴 이후의 열린우리당 현재 열린우리당은 국회 과반에 1석 더 많은 150석이지만, 언제 과반이 붕괴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해 말 우리당 이상락 의원이 대법원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이후 추가로 총 11명의 우리당 의원이 '재판공포'에 직면해 있다. 현재 재판상황의 추이로 볼 때 오는 4월 적어도 최소 7곳 이상의 재보선이 치러질 전망이다. 문제는 우리당이 처한 '선거공포'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우리당의 재보선 승부는 모두 참담했다. 재보선이 치러지는 지역도 문제이지만 지지도를 감안할 때 당선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당 내부에서는 지난 해 까지만 해도 사실상 선거 포기 상태였지만 '경제 올인'과 지지도 반등에 힘입어 '선거 올인'을 해야 한다는 안팎의 요청에 고무돼 있다. 지명도.. 2005. 1. 21.
매혹의 카리스마, 강금실 복귀하나? 지난해 7월 노무현 대통령이 강금실 법무장관을 전격적으로 경질한 이유는 아직까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은 강 장관의 경질과 관련해 어떤 배경 설명도 하지 않았다. 강 장관도 “인사 대상자가 인사 배경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만 언급했을 뿐이다. 참여정부를 상징하는 각료로 꼽히던 강 장관의 전격적인 경질과 관련된 의문은 현재도 호사가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가에서는 각종 게이트 등으로 검찰과 권력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하면서, 여권 핵심과 불편한 환경을 조성한 강 전 장관의 독주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대선 자금’수사를 진두지휘하는 검찰을 통제 불능 상태에까지 빠뜨린 법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까지 거론했고, 인사 등 검찰.. 2005. 1. 20.
'실용주의'와 노무현號의 딜레머 한국사회는 지난 세기 내내 '분단'의 질곡과 '민주화'의 질풍노도를 견뎌낸 끝에 오늘날 비주류세력 집권을 경험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시민참여 환경에서 '권위주의' 해체와 함께 꾸준히 신장됐다. 이러한 민주화의 진척은 결국 DJ와 노무현 대통령을 정치적 실세로 등장시키면서 비합법적 투쟁시대의 종지부를 찍게 했다. 또 계급적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개조를 시도하는 정치노선 보다는 다양한 층위에서의 연대의 관점이 부상하게 됐다. 한국정치에 있어 이같은 연대는 DJ-JP간 연합노선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집권'의 교두보로써 보수정파와 기계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범개혁진영이 사실상 추인하는 과정에서 수정주의라는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號도 막판 정몽준 세력과 .. 2005.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