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한국 언론은 기로에 서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이후 '제로 클릭'의 가시화로 포털 트래픽은 격감세다. 반면 세대를 막론하고 뉴스 소비는 유튜브로 이동했다. 종이신문 가구 구독률과 방송뉴스 시청률도 구조적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자직의 인기도 한참 전 식었다. 그 사이 뉴스는 허위조작정보의 먹잇감이 되고, 정치적 대립과 극단주의는 생활세계로 침투했다. 12·3 내란 이후 민주주의의 진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극우적 사고의 내면화’를 넘어 ‘조직화와 폭력’의 단계로까지 나아간 단적인 사례다.
언론의 공적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공적 역할은 말 그대로 민주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돕는 공공재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핵심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권력이 책임지게 만들며, 공동체가 사실 위에서 토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실 이후의 공론장, 진보언론의 실종
특히 진보언론이 제몫을 해야 한다. 진보언론의 공적 역할은 권력 감시와 사실 보도를 기본으로 하되, 불평등과 차별, 배제의 구조를 드러내고, 시민의 권리와 공공성이 확장되는 방향으로 공론장을 조직해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돕는 것이다. 극우화를 막는 지식과 지혜의 연대도 중요하다.
뉴스 생산을 넘어 지식(검증된 사실·맥락)과 지혜(갈등을 다루는 규범·태도·제도적 해법)를 제시해야 한다. 선동과 가짜뉴스를 일일이 반박하는 수준이 아니라, 극우화의 토양(불안·고립·불신·알고리즘·조직화)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때 균형성 있는 감시와 책임 추궁(Watchdog), ‘설명’과 ‘맥락’ 제공, 공론장 형성, 권리 보호와 약자 대변, 진실성·투명성 보장, 사회 통합과 갈등 완화(극단주의 억제), 장기 의제 설정(미래 어젠다) 등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국내 매체지형에서 진보언론은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고 그 영향력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독재에 항거했던 시민의 손으로 창간한 한겨레는 특히 제몫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하위문화를 증식하는 커뮤니티와 팬덤이 집결한 유튜브에 뒤처진지 오래다.
갈등 재연에도 혁신은 공약으로 대신한다
게다가 한겨레는 내부의 안정성 문제를 다독여야 할 정도로 구성원 간 갈등이 폭발하는 양상이다. 최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장남의 음주운전 관련 기사를 뒤늦게 수정/삭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편집국장은 물론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보직사퇴했다. 이에 앞서 일선 기자들은 "광고주 눈치는 보면서 독자의 신뢰를 저버렸다"며 반발했다.
이번 사태는 백번천번 취재보도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다. 제목도, 기사도 판단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문제는 절차도, 투명성도 확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돌이켜 보면 한겨레를 지켜보는 독자들을 당황스럽게 한 일이 이번만은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이러한 잡음과 갈등을 어떻게 쇄신하느냐이다. 현대차 이슈로 불거진 내홍은 일단 2월초 새 대표이사로 선출로 조직을 재정비하는 수순이다.
"어쩌다가 또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질문 이전에 사장 후보자들의 주요 공약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미디어 환경과도 거리가 멀고 내부 혁신의 재료가 되기에도 헐거워 보이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내세운 공약은 보도전문채널·경제매체·월간지 창간, AI 인프라 구축 등이다.
포맷 이전에 브랜드, 유통 이전에 관계
먼저 채널(매체) 신설에 따르는 도전과 한계는 너무도 명확하다. 허핑턴포스트 매각 논란으로 그렇게 시끄러웠던 것이 지난해다. 무엇보다 고정비와 운영상의 문제가 크다. 또 신규 채널은 영향력 확대보다는 추가적인 플랫폼 종속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채널 확장’보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정체성의 재정의다. 즉, 신뢰(브랜드 자산)와 관계(멤버십)에 달려있다. 제품(포맷)과 유통(채널)은 그 다음 문제다. 제로 클릭과 유튜브 지배의 환경에서 새로운 창구를 하나 더 만드는 일이 곧바로 신뢰와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더 강화해야 할 디지털 역량은 따로 있다. 데이터 저널리즘 팀 구축, 검증 가능한 아카이브 시스템, API 기반 팩트체크 협업망 등 구체적 인프라다. 특히 유튜브로 이동한 뉴스 소비를 고려할 때, 텍스트 중심 사고를 벗어나 비주얼 스토리텔링 역량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쟁점이다.
유튜브 채널을 오히려 본격적인 방송 플랫폼으로 육성하는 것도 방안일 수 있다. 플랫폼 종속이 아니라 콘텐츠 경로, 방송 역량 확보 차원에서 적극 다루는 게 더 현실에 부합할 수 있다. 유튜브 채널인 한겨레TV를 확대 개편하여 정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라이브 스트리밍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방송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IP 기반 방송 시대, 신문사의 선택
다만 현재의 인프라를 감안할 때 방송사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핵심은 IP 기반 방송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최근 공개된 BBC와 유튜브의 파트너십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TV 산업은 스스로의 미래를 시험하고 있다. 기존의 정의보다는 시청자의 요구를 따를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신문사도 마찬가지다. '방송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방송 역량을 갖춘 멀티미디어 언론사'로 진화하는 전략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당장에 해법은 아니다. 기존 방송사의 규모와 수준, 경쟁력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겨레가 전달하려는 ‘진보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 가치를 어떤 형식과 절차로 생산·검증·수정·공개할 것인지까지가 경쟁력이 될 것이다. 매체 스스로를 독자가 체감 가능한 공공재로 규정하는 활동이다.
첫째, 진보 언론으로서 할 일을 정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젊은 세대의 극우화, 그리고 그 연원의 문제를 어젠다로 삼고 돌파해야 한다. 포스트성장 시대에서 "빨리 취업하고 결혼하는 사회"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불평등 완화, 돌봄 경제, 공동체 유대감 강화 같은 장기적 비전이 청년의 현실적 불안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또 '한반도 재정의'를 비롯 한겨레의 전통적 관심사를 재생해야 한다.
독자 오피니언의 복원, 지속가능성의 출발
둘째, '오피니언'의 재건이다. 한때 지면을 차지했던 '국민기자석'도 복원할 필요가 있다. 시민과 독자의 목소리를 확대, 수렴하는 활동이다. 한겨레가 그동안 오피니언면에서 보인 일관성 없는, 난해하고, 또 하나마나한 이야기보다는 더 명료할 것이다.
오피니언 섹션을 편집국 지휘에 둘지, 논설위원실에 둘지 논쟁보다는 독립적으로 구성하는 것도 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오피니언 담당자는 시민(독자)과의 소통 가교로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최고 책임자로 자리매김하는 편이 타당하다. 시민의 목소리를 한겨레의 좌표로 삼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셋째, '지속가능성위원회' 설치다. 지속가능성은 결국 독자관계에서 나온다. 독자위원회가 저널리즘의 고준담론이라면 지속가능성위원회는 독자관계와 사업다각화의 창구다.
지속가능성위원회의 1단계는 시민, 특히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심층 서베이와 좌담회로 의제를 도출한다. 2단계는 ‘국민기자석’의 현대적 복원이다. 구조화된 참여(프로젝트 단위)와 시민 숙의 패널(월 1회 온라인 라운드테이블)로 독자를 의제 생산 과정에 가담시켜야 한다.
지식과 지혜의 연대로 미래 생존 밝혀야
넷째, 후원모델의 복원이다. 지난번 시도했던 한겨레식 후원모델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진행됐다. 새로운 후원모델은 독자를 감동시키며 다가서야 한다. 가디언은 ‘공공재를 지키는 참여’를 팔았다. 콘텐츠 자체보다 독립성·투명성·참여를 상품화했다는 대목이다.
한겨레도 오늘날 필요한 '진보의 가치'를 내걸어야 한다.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신뢰 회복이 먼저다. 동시에 허위정보가 번성하는 구조와 정서를 함께 다루는 ‘지식과 지혜의 연대’의 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혐오와 폭력이 이익이 되지 않도록 공론장의 규칙을 세우며, 고립된 개인이 극단적 소속으로 흡수되지 않도록 시민적 연결과 숙의의 장을 설계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한겨레 내부도 혁신해야 한다. 지금은 세대 경험, 고용 안정성, 성과지표, 플랫폼 환경이 모두 달라졌다. 기자를 넘어 '공공 지식 생산자'로 역할을 재정의하는 인사체계도 필요하다. 5년차만 되면 전문분야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성과 지혜의 공론장에 필요한 인재를 한겨레답게 확보, 육성하는 전환이다. 더 나아가 가디언의 독립적 지배구조(Scott Trust)를 비롯 국민주 모델의 업그레이드를 고민해야 한다.
사실 그동안 한겨레 안팎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갈등 양상은 진짜 위기는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위기는 한겨레가 한국사회의 진보적 공간에서 위상이 오그라들었다는 점이다. 한겨레의 지속가능성은 이를 회복하는 방향에서 오롯이 나타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한겨레는 어떤 식으로든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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