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 유료구독률 4%.
숫자만 보면 한 산업의 내리막이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한 시대 저널리즘 모델의 사망선고에 가깝다. 이 몰락의 원인을 레거시 미디어가 디지털 전환에 뒤처졌기 때문으로 한정하면 안 된다.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의 충격이 위기를 낳았지만, 결정적인 것은 그 변화 앞에서 한국 언론이 어떤 태도와 구조를 유지했는에서 찾아야 한다.
포털 대응 문제와 뉴스 유료화 과제는 결국 같은 지점으로 수렴한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 관계, 제품, 리더십·거버넌스에 걸쳐 있다. 신문산업 침체의 가속화는 어느 한두 가지를 잘 해결한다고 몇몇 언론사가 생존과 번영을 회복할 사안은 아니다.
이건 쓰나미처럼 모든 낡은 것들이 꺼지고 사라지는 상황이다. 산업사회형 신문은 '희소한 정보를 가진 소수 생산자'라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 이 전제가 깨진 시기는 20년도 더 흘렀다. 언론은 스스로에게 “종이를 어떻게 지킬까?”가 아니라,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사회에 필요해질 것인가?”를 질문해야 했다.
뉴스를 대중과 연결한 포털의 양면성
그러나 한국 언론은 제대로 된 질문도, 답변도 없었다. 그 결과 "신뢰를 잃었다. 독자와의 관계를 설계하지 않았다. 제품(뉴스)을 혁신하지 않았다. 편집·경영·기술이 통합되지 않은 거버넌스로, 실험을 조직 중심에 올려놓지 못했다."
이러는 사이 한국 언론사에 뉴스의 대중화를 이끈 '두 번째 인쇄기' 포털 뉴스 서비스가 자리를 꿰찮다. 포털은 검색, 이메일, 쇼핑, 커뮤니티, 동영상을 한 화면에 묶어, 시민의 하루를 통째로 안에 가두는 시간 플랫폼으로 작동하였다.
지난 20여년 포털 뉴스 서비스 성장은 ‘편리함 + 비용 절감 + 종합성'의 결합 즉, 이용자 편익을 개선한 설계에서 기인한다. 여러 언론사의 헤드라인을 한 번에 비교할 수 있고, 관심 이슈만 골라볼 수 있고, 무료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로그인 상태에서는 나의 일상 생활 기능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언론사 입장에서 포털은 일단 산소호흡기였다. 자체 사이트 트래픽이 거의 없던 매체도, 포털 제휴로 일정한 방문과 광고 수익을 얻었다. 종이 광고·구독이 줄어드는 동안, 포털발 수익은 디지털 전환의 시간을 벌어준 연명 장치였다. 이 점만 놓고 보면, 포털은 언론을 한 번 더 대중에게 연결해준 장이었다.

저널리즘 망치며 포털내 구독자 경쟁에 몰두
문제는 그 인프라 위에서 언론이 선택한 것들이 형편없었다는 점이다. '어뷰징 기사'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더 깊은 층위에서 권력과 동기의 구조가 뒤틀어져 버렸다.
그동안 공론장의 문지기 역할은 원래 언론이 갖고 있던 권력이었다. 어떤 이슈를 전면에 올리고, 어떤 이슈를 뒤로 미루고, 어떤 흐름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지 결정하는 힘이다. 이 권력은 포털의 메인 편집 정책, 실시간 랭킹 시스템 그리고 지금의 알고리즘으로 이동했다. 언론은 여전히 기사를 썼지만, 기사의 운명은 포털의 문 앞에서 결정됐다.
포털에서는 기사가 검색 결과, 랭킹, 추천 리스트에 떠다니는 개별 상품으로 등장했다. 이 구조는 제목 장사·쪼개기·베껴쓰기를 언론사에 유도했다. 언론사는 독자와 직접 관계를 맺는 주체도 아니었고, 포털 안에서 서로 대체 가능한 공급업체 코드처럼 전락했다.
한 언론사 강연을 갔더니 대표가 네이버 내 자사 채널을 구독하는 이용자가 100만 명을 넘었다며 자랑(?)했다. 한 지역신문 복도에는 관련 플랭카드가 내걸렸다. 하지만 현실은 '포털에서 본 기사'일뿐, 어느 언론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접점을 맺은 이용자와 어떤 관계 증진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는 데도 '수치'만으로 포장되는 현실에서 실소를 머금었다.
무엇이 중한지는 알면서 포털 랭킹만 쳐다본다
사실 포털은 수치를 너무 잘 보여준다. 조회수, 클릭률, ‘많이 본 뉴스’ 등등. 원래 참고 지표였어야 할 숫자가 언론 내부에서 목표 그 자체가 됐다. “무엇이 공적으로 중요한가”보다 “이번 주 랭킹에서 밀리지 않는가”가 우선되면서, 저널리즘의 내적 동기는 좌충우돌했다.
더 본질적으로는 언론의 신뢰도가 추락한 부분이다. 어뷰징·선정적 제목·쓸어담기식 정치 기사·쏠림 보도가 포털 화면에 한꺼번에 노출되면서, 시민은 개별 언론이 아니라 '포털 뉴스 전체'에 피로와 환멸을 누적했다. 그 인상이 곧 한국 언론의 이미지 자체가 되었다.
포털은 언론의 문제를 만든 주범이라기보다, 언론이 선택한 행태를 압축·증폭하는 거울이었다. 그러나 시민 입장에서 거울과 실체는 구분되지 않는다. 결국 포털은 언론을 형식적으로는 살려놓았으되, 동시에 언론을 변질시켰다. 노출과 돈으로 저널리즘의 동기와 권력 구조, 그리고 신뢰를 말아먹었다.
최근 포털 뉴스 이용률도 점점 감소하는 등 뉴스 생태계에 일정한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조사들을 보면 포털 이용률은 아직까지는 높은 편이지만, 포털 내 뉴스 이용은 줄고,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 등에서 뉴스·시사 콘텐츠를 접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언론사 웹·앱 찾지 않는 이유부터 해결해야
그러나 포털 뉴스의 강세는 꺾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사 웹사이트·앱 직접 접속은 늘지 않는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5 한국>에 따르면 한국은 48개 조사국 중 웹·앱 직접 접속이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한다.
언론사 웹·앱은 네이버 같은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에 비해 제공하는 콘텐츠도 적다. 아카이브 접근성도 떨어진다. 개인화·커뮤니티 기능도 빈약하다. 언론사간 동질한 수준의 인터페이와 콘텐츠, 서비스는 차별성도 없다. 상대적으로 포털보다 ‘불편한 경험’에 그친다.
유튜브·소셜미디어에는 이미 충분한 뉴스·해설·메신저들이 넘친다. 더 근원적인 지점은 “이 매체를 믿는다, 이 매체와 함께 시간을 쓰고 싶다”는 이용자의 신용과 공감이 없다.
포털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는 한국언론의 대응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조선멤버십C(조선일보), 더중앙플러스(중앙일보), 프리미엄(한국일보) 등의 유료화 실험은 대표적이다. 형식적으로는 프리미엄 기사, 독점 콘텐츠, 멤버십 혜택을 내세우고 있다. '탈포털·D2C(Direct to Consumer)'의 추세로 볼 수 있다.
프리미엄 콘텐츠 띄우지만 결론은 예정돼 있다
문제는 현실의 구조다. 첫째, 신뢰 저하와 독자관계의 단절이 오래도록 작동하고 있다. 언론은 독자와 분리된지 오래다. 나는 그동안 전통매체를 향해 "이제 교양과 독자를 다시 배워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시장과 독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자기과시적인 시도로는 어림도 없다. 누가 핵심 독자인지도 자세히 모른다. 그렇다고 잔인할 정도로 타깃을 정리하는 것도 아니다.
제품성도 빈곤하다. 대부분의 유료 콘텐츠는 여전히 취재기자의 능력, 성실함에 기반하고 있다. 단적으로는 '무료 뉴스의 유료 버전화'에 그치기 때문에 지불 의사를 이끌기 어렵다.
물론 생태계·수요 측면의 구조적 걸림돌도 복잡하다. 포털에 이어 유튜브 중심 영상 뉴스 소비 구조, 무료 대체재의 과잉, 비슷비슷한 뉴스 포맷과 관점 등의 흐름에서는 '지불할 만큼 특별한 뉴스'의 문턱이 점점 높아진다.
이론적으로 주요 언론사의 유료 전환율은 1%를 넘기기 어렵다. 한국의 뉴스독자 규모는 상대적으로 영어권 이용자에 비하면 아주 적다. 뉴스의 품질, 형식, 독자 관계,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로그인과 결제창을 달아놓은 방식으로는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신뢰·관계·제품·조직의 리셋을 선언적으로, 체계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기술 따지기보다 '독자 관계' 재정의가 첫 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 관계의 재설계다. 독자를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이해하고 공동 펀딩, 기획 참여, 독자 패널 등 참여형 구조를 늘려야 한다. 독자의 삶과 맥락을 듣고(listen), 이해하고(understand), 그 위에서 콘텐츠를 함께 기획(collaborate)하는 프로세스는 하나의 예다. 독자에 대한 재정의는 필수적이다.
제품성 강화와 차별화를 위한 조직 거버넌스의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왜 이 기사를 유료로 봐야 하는가?”라는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을 바탕으로 심화 취재, 인사이트,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구체적 변화를 설계할 수 있는 역량과 동력을 갖춰야 한다. 형식·플랫폼·인터페이스·UX까지 포함해 뉴스 경험 전체를 재설계로 뒷받침해야 한다.
조직과 역량의 전환은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이뤄져야 한다. 편집·경영·기술·데이터가 분절된 구조를 버리고, 독자 경험과 구독·멤버십 전략을 중심에 둔 통합 거버넌스를 지향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리더십 교체는 필수적이다.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나왔을 때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회장 겸 발행인은 30대였다. 그는 2018년 발행인이 된 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언론을 이끌고 있다. 나이의 문제이기 전에 기술·데이터·독자를 이해하고, 저널리즘의 공적 책임을 비용이 아니라 핵심 자산으로 보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답변 엔진' 시대 저널리즘의 형식과 내용 바꿔라
지금처럼 플랫폼이 선점하고 기업 광고주에 휘둘리는 산업적 환경에서는 언론의 어떤 유료 실험도 늘 2순위로 밀린다. 유료화는 ‘전략’이 아니라 ‘결과’다. 즉, 신뢰·관계·제품·조직이 바뀐 뒤에 따라오는 현상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는 그 거꾸로가 돼 있다.
오늘날 인공지능(AI)은 이미 속보, 요약, 번역, 데이터 기반 기사 작성을 인간보다 빠르게 해내고 있다. 답변 엔진(Answer Engine)이 검색엔진과 포털의 자리를 상당 부분 대체해갈 것이다. 이용자는 링크가 아니라 ‘답변’을 소비하고, 언론 기사는 사람보다 AI가 더 자주 읽는 텍스트가 될 것이다.
이 구조에서는 언론은 정보 생산 만으로는 AI를 이길 수 없다. AI가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떠맡게 될수록, 저널리즘은 의미·관점·관계·출처를 담당하는 영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뉴스는 문장 덩어리가 아니라 사건·인물·시간·인용·데이터가 연결된 지식 그래프(graph)로 관리돼야 한다. 그래야 AI도 이해하고, 사람도 맥락을 추적할 수 있다.
AI가 쓸 수 없는 신뢰·통찰·책임에 올인하는 게 전략
팩트 자체는 AI가 더 빨리 모은다. 무엇이 중요한지 고르고, 어떻게 해석할지 제안하는 능력이 기자의 핵심이 된다. 이를 위해 빠른 속보 생산 조직에서 해석 중심 스튜디오로 진화해야 한다.
특히 관점·철학·세계관이 없는 매체는 AI가 만든 요약과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이 시대를 읽을 것인가?”에 답하는 곳만 남는다. 더 나아가 가짜 영상·합성 음성이 넘치는 시대에는 “이건 진짜다, 이건 검증했다”고 보증하는 기능 자체가 상품이 된다.
앞으로는 클릭·트래픽보다 커뮤니티·멤버십·로열티는 핵심 지표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내가 이 매체와 맺고 있는 관계”는 대신 만들어줄 수 없다. 관계 기반 산업에 대처해야 한다.
포털이 공론장의 입구를 재편했던 것처럼, 오늘날 AI는 정보 소비의 방식을 다시 뒤집을 것이다. AI는 기사를 쓸 수 있다. 그러나 신뢰와 관계, 책임과 세계관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교양의 독자와 지혜의 언론이 서로를 발견해야
지금 포털에게 공정한 기사 대가를 요구하거나 AI 기업에 저작권 분쟁을 으름장 놓는 것은 하나의 의제는 될 수 있지만 지속가능성의 진로를 열기는 어렵다.
살아남는 언론은 하나다. 신뢰를 회복했고, 독자와의 관계를 다시 설계했고, 제품으로서의 뉴스 경험을 혁신했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리더십과 거버넌스를 갖춘 언론.
결국 진영화와 상업화에 중독된 한국 언론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성찰과 혁신, 전환을 일궈내야 한다. 교양의 독자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신뢰를 회복하려는 언론을 알아보고 계약-구독, 후원을 맺는 것이다. 스타벅스 한 잔 값이면 튼튼한 정보 공동체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AI 시대에 견딜 수 있는 신뢰와 관계의 구조를 지금부터 만들 의지가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솔직해지는 순간, 포털도, 유료화도, AI도 풀 수 있는 명징한 저널리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주: 이 글은 11월 17일 이태희 <고대 신문> 편집장과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해당 기사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인용 부분이 있어 포스팅합니다. 포털 뉴스 서비스의 영향력이 점점 감퇴하는 시기 한국언론이 선보이는 프리미엄 서비스 즉 유료모델에 대한 진단, 전망을 주제로 한 것으로 사전 질문지에 대한 답변서는 별도로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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