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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미디어의 미래

한국 언론의 지속가능성, 해외 사례 쳐다보지 말고 리더 바꾸면 열린다

by 수레바퀴 2025. 11. 28.

한국 언론이 위기라는 말은 오래됐다. 이 위기는 종이신문 판매 감소, 뉴스 회피, 포털-유튜브 같은 플랫폼 의존 현상으로서만이 아니라, 아날로그 마인드에 고착된 리더십이 디지털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조직 전체를 붙들어 매고 있는 심중한 위기다. 

이 리더십이 교체되지 않는 한, 뉴스산업의 지속가능성은 없다. 첫째, 지금 한국 언론 경영·편집 리더십의 뿌리는 여전히 '광고주 먼저, 독자 나중'에 머물러 있다. 수익 구조의 80~90%를 대기업·공기업 광고와 협찬에 의존해온 관성은, 언론을 시민이 아니라 광고주를 응시하는 조직으로 만들었다.

이 리더들은 오늘도 '광고주와 정치권 인맥', '협찬 따오는 영업력'을 핵심 역량으로 평가하며, 독자 데이터를 읽는 능력, 이용자 여정을 설계하는 역량,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감각에는 실질적 권한도, 투자도 주지 않는다. 그 결과, 독자는 플랫폼으로 떠났고, 언론사는 플랫폼 뒤에 줄 서서 낙전을 기다리는 사업자로 전락했다.

독자를 숫자로만 보는 언론의 오만이 낳은 위기

둘째, 이 리더들의 다수는 디지털 기술과 생태계를 ‘언젠가 배워야 할 부수적 기술’ 정도로 바라보고 있다.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 데이터 분석, A/B 테스트, 리텐션, LTV 같은 개념은 경영 현안이 아니라 보고서용 유행어로 소비된다. 기술과 편집은 ‘별개 부서’로 놓여 있고, 데이터는 전략이 아니라 '좋은 표현'을 위해 슬라이드에만 등장한다.

오늘날 뉴스산업의 경쟁 현실은 종이신문·방송국끼리 싸우는 게임이 아니다. 넷플릭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티켓 예매, 모바일 게임, 전자상거래까지 모든 앱이 ‘내 하루의 24시간’을 두고 경쟁하는 시간산업(time industry)의 게임이다. 이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리더십이 “우리도 유료 구독 한 번 해보자”라고 하는 건 순진무구한 쇼맨십이다.

셋째, 무엇보다 이같은 리더십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독자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다. 독자를 '클릭 수치의 단위', '여론조사 응답자', 정파적 팬덤 정도로 보는 관성이 깊다. 기사 형식은 여전히 “우리가 정리해준 것을 받아 보라”는 일방적 전달 구조에 머물러 있고, 뉴스 이용자의 피드백은 고칠 점이 아니라 악플, 좌·우 진영의 공격으로만 인식한다. 이런 태도 위에서 어떤 구독 모델을 얹든, 그것은 독보적인 서비스도, 공손한 봉사도 아니다.

넷째, 저널리즘 가치 대신 정파성과 상업성이 편집의 최종 기준으로 작동하는 현실도 심각하다. 현대 미디어의 상업적 속성을 바탕으로 하는 환경에서 어느 정도는 용인되고 경쟁력의 포인트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기사로 정권에 유리하냐, 불리하냐”, “이 헤드라인이면 커뮤니티에서 얼마나 불탈까”, “이걸 1면에 올리면 광고주 눈치는 안 보일까”가 최종 판단의 기준이 되는 한 한국언론의 신뢰 회복은 요원하다.

한국 언론 위기의 4중 구조. 한국 언론의 위기는 올드 미디어의 위기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위기 곧 리더십의 위기 다. 저널리즘 산업은 본질적으로 영향력 기반 비즈니스다. 영향력은 신뢰 기반의 여론형성에서 형성된다. 광고 · 디지털 이해 · 독자 존중 · 저널리즘 가치 네 축이 동시에 무너진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해외 사례를 아무리 찾아오라고 지시해도 ‘지속가능한 공론장’은 열리지 않는다.

진영과 광고주 부흥에서 시민의 공론장 지지해야

뉴스룸의 회의 테이블에서 공익성, 검증, 다원성, 약자 보호 같은 저널리즘의 기본 가치를 ‘있으면 좋은 말’ 정도로 취급하면 안 된된다. ‘진영을 자극하는 소비재’로 쓰임새가 있는 한 언론사는 스스로 정치 유튜버와 같은 전장에 세우는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 기반' '통찰력' '합리적인 판단 기준' 대신 '자기 진영의 언어적 무기'를 공급하는 구조는 독자의 확장성도,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도 나오기 어렵다. 

데이터와 독자를 동시에 이해하고 실제 경영의 근간으로 삼는 리더, 기술과 저널리즘을 하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리더, 언론사 뉴스조직 및 기자와 시민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설계하는 리더여야만 난국을 타개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기자 출신이라 기술은 잘 모른다”거나, “엔지니어라 기사 내용은 잘 모른다”는 식의 구분은 이미 사치다. 알고리즘이 편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 추천 시스템이 공론장 구조 자체를 바꾼다는 점을 이해하고, 기술 설계 단계에 저널리즘 원칙을 녹여 넣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독자를 구독자, 커뮤니티 멤버, 공동 의제 설정자로 인식하고, 취재–보도–토론–피드백–후속 보도가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서비스 차원에서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는다”는 태도를 버리고, 시민을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는 동료로 대우해야 한다.

해외 사례, 기술 중심 혁신가들에 포위당하면 안 된다

십수년간 한국 언론계의 혁신 담론을 살펴보면, 참 해괴한 장면들이 반복된다. 신문과 방송의 신뢰도는 바닥인데, 회의장과 세미나, 각종 보고서들은 해외 혁신 사례들을 되뇌이고 있다. 심지어 한국신문협회가 회원들에게 보내는 매주, 매월 국내외 미디어 동향 자료는 한국 언론의 사례를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언론사가 공개하는 자료도 드물고, 실제 혁신과 전환이 계속 일어나지도 않는 점도 거든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디지털 유료화를 성공시켰다."
“워싱턴포스트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독자 경험을 혁신했다.”
“BBC, 가디언은 공공성을 지키면서도 플랫폼 전략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틀린 방향은 아니다. 문제는 오늘의 한국 언론 현실에 거의 맞지 않는 ‘순서’와 ‘전제’로 나온다는 점이다. 기술·유통·UX 혁신 담론의 가장 큰 맹점이다. 디지털 기술로 유통을 혁신하고, 콘텐츠 생산 방식을 바꾸고,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자는 말은 그 자체로 옳다.

기초 체력 부실한데 유니폼만 바꾸자는 전문가들

하지만 지금 한국 언론이 처한 현실에서 그것은 핵심 문제가 아니라 2차·3차적 과제에 가깝다. 리더는 아날로그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조직문화는 위계와 관성으로 굳어 있으며, 비즈니스 모델은 여전히 광고·협찬 중심이고, 저널리즘의 신뢰는 바닥이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해외 사례를 가져와 '우리도 디지털 구독, 우리도 데이터 기반, 우리도 UX 혁신'을 외치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 '기초 체력은 무너진 팀에 유니폼 디자인만 바꿔주자는 발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기술과 서비스 혁신은 누가, 어떤 가치관으로, 어떤 거버넌스 아래에서 추진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는다. 신뢰도 바닥, 리더십 불신, 조직문화 고착 상태에서 디지털 기술을 들이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제목 낚시 자동화, 트래픽 극대화 알고리즘, 클릭 장사 플랫폼 최적화의 민낯을 보여준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한국언론에서 기술은 저널리즘을 살리는 게 아니라, 저널리즘의 피를 더 빨리 빼내는 도구가 된지 오래다.

이런 구조를 못본 척 하며 해외 언론 혁신 사례를 '복붙'하듯 매일 소개하면서, 마치 그 길만 가면 한국 언론도 살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대체로 “콘텐츠 생산 방식을 디지털에 맞게 바꿔야 한다“ "데이터와 기술로 독자 경험을 혁신해야 한다" “뉴스룸과 IT팀 협업, 애자일 조직, 제품 중심 사고가 필요하다" 등을 역설한다.

거버넌스·신뢰는 빼고 ‘NYT式 혁신’만 되뇌여

여기에는 결정적인 전제가 빠져 있다. 해외에서 성공한 언론들은 저널리즘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신뢰, 정치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거버넌스, 리더 교체와 실패를 감내하는 조직문화를 어느 정도 점검, 확보한 뒤에 디지털 혁신과 전환을 본격화 했다.

반면 한국 언론은 어떠한가. 정권이 공영방송 사장을 좌지우지하고, 광고주·협찬에 의존하는 매출 구조가 편집 방향을 뒤흔들며, 조직 내부는 기수·파벌·관행으로 굳어져 있고, 취재현장은 출입처에 얽혀 있다. 상당수의 수용자 조사는 기성언론을 싸잡아 불신하고 있다. 오죽하면 현장을 떠난지 오래된 인사가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은 "그러려니..." 하면서 “우리도 NYT처럼 하면 된다” “가디언처럼 데이터 저널리즘을 하면 된다"는 식의 화두는 그야말로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쪽'의 주장에 불과하다. 이들의 주장은 구태한 리더와 조직문화, 폐쇄적인 매출 구조를 수박 겉핥기로 지나가고, 겉으로 보이는 ‘혁신 이미지’를 덧칠하는 데 동원되기 쉽다. “리더와 권력은 그대로 두고, 아래에서 기술과 서비스만 열심히 하라”는 알리바이 역할을 해버리는 것이다.

그 혁신 담론은 부차적일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작위적이다. 한국언론에서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리더와 문화다. 정치권력의 입맛에 따라 임명된 공영방송 사장, 광고·협찬만을 언론 비즈니스라 여기는 경영진, 디지털 전환을 말로만 지지하며 실제로는 관행을 방어하는 편집국·보도국 책임자들을 독자·저널리즘·미래를 중심에 두는 리더로 교체해야 한다.

독자 관계 증진 전면화 체계화 할 때 진정성

조직문화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와 눈치만 보는 문화에서, 독자와 취재 현장의 문제의식을 위로 밀어 올리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허울뿐인 내부 저널리즘 관련 자율기구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실험과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조직에서, 실험하지 않으면 실패하는 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비즈니스 모델 전환도 전면적이고, 체계적이며, 과학적으로-데이터 기반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광고·협찬에 종속된 구조에서 벗어나, 독자 구독·멤버십·커뮤니티·지식 서비스 등 독자와의 직접 관계를 기반으로 한 모델로 이동하는 행보다. 이때 “우리는 누구를 위해-우리의 핵심 독자는 누구이며, 무엇을 어떻게 봉사할(service)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할 수 있다. 리더와 조직문화, 비즈니스 중심 축을 바꾸지 못하면 디지털 기술, UX, 데이터, 플랫폼 전략도 일과적인 이벤트로 전락할 뿐이다.

미디어 수용자 특히 지성·교양의 독자들의 책임도 중요하다. “언론은 다 썩었다. 믿을 데가 없다"는 진단과 비평 정도로 끝내선 안 된다. 냉소와 방관으로 끝나는 순간,  우리는 한국언론을 '어차피 안 믿는 존재'로 확정짓고, 그 자리를 유튜브·소셜미디어의 선동과 소문에 떠넘기게 된다.

분별 있는 비판과 선택을 할 수 있는 지성·교양층에게 필요한 태도는 두 가지다. 언론 전체를 싸잡아 혐오하는 대신,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려 애쓰는 언론·기자·프로젝트를 가려서 지지하고 비판하되, 버리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신뢰할 만한 시도를 하는 곳에는 과감히 구독과 후원, 공유와 피드백으로 응답해야 한다. 스타벅스 한 잔 값이면 된다.

기술 투자보다 앞서는 건 시민의 참여와 선택

언론의 리더십·거버넌스에 대한 관심과 압력도 더 필요하다. 공영방송 이사·사장 선출 과정, 언론사 지배 구조와 리더 교체 문제에 대해 '정치뉴스의 한 장면'이 아니라 '나'의 민주주의·정보권과 직결된 문제로 보고 참여해야 한다. 지금보더 더 많은 시민이 언론사의 리더들을 대상으로 검증하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저널리즘은 “언론사가 알아서 잘 하겠지”라고 방치한다고 해서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 좋은 저널리즘을 요구하고, 그것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쓰고, 거버넌스를 감시하는 시민의 태도가 있어야 비로소 자라난다. 인터넷, 스마트폰 이후 인공지능까지(AI) 디지털 기술이 초래하는 문명의 변화, 정보 생태계의 진보는 미래를 살피는 데 중요하다. 콘텐츠 생산 방식과 유통 구조를 바꾸는 일도 필요하다. 

어떤 리더가 그 기술 도구를 쥐고 있는지, 어떤 가치와 문화를 위해 사용하는지, 어떤 시민이 그것을 감시하고 지지하는지가 결국 언론의 미래를 결정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해외 사례를 복사해오는 혁신 담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를 바꿔야 한다고,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비즈니스의 중심을 독자로 옮겨야 한다고 말하는 지혜와 용기이다. 

그리고 언론을 가려서 응원하고 후원하겠다는 교양의 독자들이 중요하다. 언론운동 관련 시민단체들도 학자, 활동가 등의 소수 전문가 그룹에서 더 넓은 공간과 개방적인 소통의 장을 제시해야 한다. 기술은 이 모든 것의 다음에서 가려져야 할 문제이다. 순서를 뒤집거나 방점을 무조건 찍으려는 한, 어떤 화려한 혁신도 '신뢰 없는 언론'의 중증을 가리는 화장에 그칠 뿐이다.

한국언론의 리더는 한 번도 제대로 바뀌지 않았다

선언적이고 수사적인 ‘리더 교체’가 아니라, 어떤 리더십을 버리고 어떤 리더십을 선택할 것인지 기준이 필요하다.

전통 언론은 리더의 자질·관점·미래지향성보다 ‘간판·관성·인맥’이 더 중요하게 작동해온 산업이고, 그 배경에는 고전적인 광고 비즈니스 모델, 정치·권력과의 특수 관계, 폐쇄적인 인사·조직문화가 얽혀 있다. 반대로 다른 산업군은 디지털 전환·글로벌 경쟁·투자자 압력 때문에 “사람이 안 바뀌면 회사가 죽는” 구조로 밀려왔고, 그래서 리더 교체가 비교적 빠르게 일어난다. 

한국의 전통 언론은 오랫동안 B2C(독자)가 아니라 B2B(광고주·권력)을 상대하는 산업이었다. 매출의 압도적 비중이 대형 광고·협찬·정부/공공기관 광고에서 나왔고-지금도 실질적으로 80~90%이며 “얼마나 독자가 행복한가”보다 “얼마나 광고주·권력과 관계를 유지했는가”가 경영 지표를 채웠다.

심지어 오늘날 신문의 리더들 가운데는 기자와 구성원들의 애사심을 출입처 등에서 얼마나 신문 구독자를 확보하느냐로 평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말이 '구독자'이지 누가 보는지는 알 길 없는 단체(기관) 부수이고, 목표치를 직급으로 구분해 할당했다. 이런 구독자 확장부수는 추후에 '수당'으로 지급했다. 독자 관계나 독자 서비스와는 무관했다.

저널리즘 신뢰보다 매출-충성-연고 더 중요하다

이 구조에서는 리더의 자질은 독자 이해, 디지털 전략, 제품 감각이 아니라 “정부, 기업 고위층과 잘 아는가, 핫라인이 있는가, 큰 사고 안 치고 버티는가”에 수렴한다. 그래서 CEO·사장·국장은 관리형·인맥형 리더면 충분했고, 새로운 비전을 내거나 판을 뒤집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 "부담되는 사람" 정도로 분류됐다.

즉, 고전적인 광고 모델이 리더십을 시장 경쟁에서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해왔고, 그 관성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언론은 다른 산업과 달리, 정치권력이 직접 이사·사장 인선에 개입하거나 소수 오너 일가가 비상장 구조로 절대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리더는 성과를 내는 사람이라기보다, '권력과 오너의 이해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 된다.

그 결과 공영방송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 편 사람으로 갈아끼우기'에 집중되며, 아예 리더십을 전문성·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전리품으로 취급한다. 민영, 상업 신문과 방송은 오너 일가와 가까운 사람, 충성도 높은 ‘사내 정치 승자’들이 사장·국장 등 윗선으로 올라간다. 심지어 권력층과 가까운 연고가 작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언론의 미래·디지털 전략·독자 신뢰 회복은 리더 선발 때 부차적인 항목으로 밀려난다. “정권에 괜히 문제 안 일으키는 사람”, “오너와 오래 같이 일한 사람”이 우선 선정된다.

‘기자만이 기자를 다스린다’는 신화에 막힌 전환

폐쇄적인 인사 시스템이 그 기저에 있다. ‘기자만이 기자를 다스린다’는 신화는 그 중심 테마다. 많은 언론사는 여전히 “기자 출신이 아니면 언론을 모른다”는 전제를 깔고 사장·국장·보도 책임자를 내부 승진, 그것도 연차·기수 중심으로 뽑는다.

문제는 그 내부 승진 시스템 자체가 지면 중심·오프라인 중심·정치취재 중심 커리어를 쌓은 사람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데이터·프로덕트·커뮤니티에 강한 사람은 아예 리더 후보군에 오르지 못하거나, '변방의 실험 인력'으로 남는다. 결국 리더십 논의는 “누가 새로 필요한가?”가 아니라 “이제 어느 기수가 국장/사장 차례인가?” 수준의 문제로 축소된다.

“망해도 천천히 망한다”는 착각도 리더 교체를 가로막는 편견이다. 다른 산업분야는 잘못된 리더십이 곧바로 실적·주가·투자 회수 실패로 돌아온다. 하지만 언론사는 정부 광고·공공기관 광고·지자체 협찬, 각종 지원금·기금, 관성적인 구독·포털 유입이 오랜 시간 “완만한 하강곡선” "큰 변곡점 없는 정체"를 만들어줬다.

그래서 위기 체감 속도가 느렸고, “그래도 버티면 된다”는 학습이 쌓였고, "2등 전략이면 된다"는 자위적인 관행이 공고해졌고, “사람을 바꾸기보다 구조조정·비용절감으로 견뎌보자”는 경영 패턴이 반복됐다. 이게 지금 “리더는 그대로인데, 젊은 기자·비정규직만 갈려 나가는” 현실과 연결된다.

‘혁신형 리더’ 찾는 시대와 동떨어진 조직 문화

다른 산업군의 리더상은 혁신성, 전문성 등이 좌우한다. 디지털·플랫폼 산업은 성장을 못 하면 바로 교체되기 일쑤다. 투자자, 이사회, 시장이 “성장 스토리가 끊기면 곧바로 CEO 교체”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제품과 서비스 관점, 데이터 리터러시, 고객 이해, 조직 민첩성은 리더에게 필수다. '옛날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인물보다는 '실험하고 피봇하며 실패에서 빠르게 배우는 사람'이 호감을 산다.

제조·유통·리테일 부문은 디지털 전환 실패시 CEO 교체가 일반적인 주제다. 자동차, 가전, 유통, 의류 같은 전통 제조·리테일도 전기차·모빌리티, D2C(직접 판매), 온라인 커머스, 구독 서비스로 급속히 재편되는 중이다. 오프라인 중심, 영업망 중심 리더십으로 버티다가 플랫폼 대응을 실패하고 매출 저조로 이어지면 이사회·주주들이 '전환형 리더'를 인선한다.

전통 제조업 출신이 아닌 디지털-IT-리테일 전문가를 영입하고, CDO, CMO, CXO 같은 고객·데이터·경험 중심의 C레벨 확대 등의 조정으로 나타났다. '과거의 성공'보다 '미래 전략 역량'을 리더 선발의 기준으로 삼는 흐름이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접점이 훌륭한 인사도 거론된다.

금융·통신업계는 규제와 혁신 사이에서 ‘이중 리더십’을 요청받는다. 은행, 보험, 통신도 핀테크·빅테크·OTT·메신저·간편결제에 치이고 있다. 동시에 규제 준수를 관리할 수 있고, 디지털 서비스·플랫폼 경쟁에 올라탈 수 있는 역량의 리더를 찾는다. 그래서 '전통 관료형 리더'에서 '규제 이해 + 디지털 비즈니스 이해'를 겸비한 CEO로 교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루 생산 기사, 조회수 세는 언론...멈춘 시계와 같다

이렇게 다른 산업군은 '시장과 투자자가 리더를 갈아치우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반면, 언론사는 그 메커니즘이 약하거나 비틀려 있다. 외부 감시자(투자자·주주·소비자)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사가 비상장, 가족·소수 지분 지배, 정부·재단 지배 구조라 주주총회, 시장, 기관투자가의 압력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공영방송은 시청자·국민이 최종 소유자지만, 실제 인선권은 정치권·이사회의 손에 있다. 시민의 불신이 곧바로 '리더 교체'로 연결되지 않는다.

리더 평가 지표도 모호하고 왜곡돼 있다. 언론 리더는 자신의 성과를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 “시청률, 발행부수, 페이지뷰가 나쁘지 않다” "정권, 기업관계가 양호하다" 정도로 포장할 수 있다. '신뢰도', '저널리즘 품질', '공론장 기여도'는 계량화도 어렵고 우선 순위도 아니다. 외부 평가가 있어도 내부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탓만은 아니다”로 빠져나간다.

언론계 리더교체가 어려운 이유 가운데는 조직 내부 권력이 리더 교체에 비협조적인 점도 있다. 노조는 주로 고용안정, 편집권 독립, 정치권 낙하산 반대에 집중하고, 디지털 전환 등 새로운 관점의 리더 교체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거나 우선 순위는 아니다. 국장급, 부장급 등 중간관리자 카르텔은 새 리더가 오면 자신들의 기득권·동료 라인이 흔들릴 것을 두려워해 변화에 소극적이거나 은근히 저항한다.

언론 리더십 교체를 위한 사회적 행동이 필요하다. 언론은 사적 기업이 아니라 ‘민주주의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언론사는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지만, 기능적으로는 선거, 정책 결정, 전쟁과 평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좌우하는 정보 인프라다. 

공적 자원 들어가는 언론...리더 인선에 시민의 몫 있다

이 인프라의 리더가 정파적 이해에만 충성하거나 광고주·권력의 눈치만 보고 디지털 환경과 시민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채 조직을 이끌면, 피해는 특정 독자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에 돌아간다. 도로·전기·수도 공공 인프라에 문제가 생기면 사회가 나서듯, '정보 인프라의 관리자'인 언론 리더 교체 역시 시민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또한 언론 내부 힘만으로는 기득권 리더를 바꾸기 어려운 점도 있다. 내부 구성원이 문제를 알아도, 인사권·평가권을 쥔 리더에 맞서기 어렵고 젊은 기자·디지털 인력은 “떠나거나 침묵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노조 역시 고용·임금·편집권 방어에는 강하지만, “새로운 유형의 리더를 세우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공적 자원이 들어가는 만큼, 언론사 리더 인선에 시민이 관여할 정당성이 있다. 언론은 ‘사기업’이 아니다.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공적 자원이 투입된다. 공영방송의 수신료처럼 국민혈세를 근간으로 하는 재원 지원은 물론 정부·공공기관 광고, 지자체 홍보 예산도 들어간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각종 기금 등도 투여된다.

“누가 그 돈을 쓰는 리더인가” “어떤 철학을 가진 사람이 공적 인프라를 관리하는가”에 대해 시민이 요구하고 개입할 권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리더십 교체를 위한 사회적 행동은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는 방식이다.

언론사 리더 바꾸지 않으면 신뢰도, 비즈니스도 없다

특히 언론의 신뢰 회복과 비즈니스 전환은 리더 교체 없이는 불가능하다. 광고·협찬 중심 구조를 유지하려는 리더, 클릭 장사·정파적 동원에 익숙한 리더, 독자 경험보다 권력·광고주를 먼저 보는 리더 아래서는 어떤 디지털 혁신과 전환도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독자 기반 비즈니스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언론을 '지속가능한 공론장의 사업'으로 만들려면, 콘텐츠·기술·마케팅의 쇄신 이전에 리더를 바꾸는 사회적 압력이 선행돼야 한다.

나쁜 리더십 아래의 언론은 ‘정보’가 아니라 ‘위험’이 된다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언론은 혐오와 거짓, 음모론과 선동, 진영 동원을 증폭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검증된 정보, 다양한 관점, 합리적 논의를 받쳐줄 수도 있다.

리더가 단기 트래픽과 정파적 이익에만 집착할 경우, 언론은 사회적 갈등 증폭 장치가 된다. 공익성과 책임성을 중시할 경우, 언론은 갈등 조정과 문제 해결의 플랫폼이 된다. 같은 기술, 같은 플랫폼 환경에서도 어떤 리더가 언론을 운영하느냐에 따라 사회 구성원의 '사고 위험도'가 달라진다.

사고 위험도란 '사회 전체가 겪게 되는 ‘집단적인 사고·참사·파탄이 일어날 가능성과 그 파급력’으로 같은 사건이 벌어져도, 정보·언론 구조에 따라 그 사회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크게 사고를 치는지’의 위험 정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언론 리더십을 방치하는 것은 “맘에 안 드는 신문” 하나를 참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정보 환경에서 살아갈 것인가를 포기하는 선택이다.

신뢰·독자·다양성을 리더 평가의 중심으로 세울 때

리더 교체는 언론사 내부의 인사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공론장, 시민의 정보권, 장기적인 사회 안정과 직결된 문제다. 공영방송·언론사 리더 선임 과정에 대한 감시·비판·정보 공개 요구,  편파·부실 보도뿐 아니라 리더십과 거버넌스에 대한 공개 평가와 캠페인, 저널리즘 가치를 지키려는 매체·기자·프로젝트에 대한 선택적 구독·후원, 언론 관련 법·제도(이사 선임 구조, 정부 광고 기준 등)에 대한 정책 요구와 공론화 등의 행동들이 모여야 비로소 리더 교체의 동력이 생기고, 그 위에서야 기술 혁신·콘텐츠 혁신·비즈니스 혁신도 의미를 갖게 된다.

이를 위해 거버넌스부터 갈아엎어야 한다. 집권여당의 관련 법제도 논의에도 등장하지만 공영방송은 이사 선임 구조에 시청자 대표, 시민사회, 직능 단체, 지역 대표를 포함하고, 사장·이사장 선출시 정치권 지분을 줄이고, 공개 검증·청문·토론 절차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일정 주기마다 시민평가·신뢰도 조사·디지털 전략 평가를 연동한 연임, 교체 기준을 설정하는 게 필요하다.

민영 언론도 정부 광고·지원금·공적 기금 배분에 거버넌스·리더십 평가 항목을 포함시켜 '리더 교체·디지털 전략·독자 중심 혁신'을 한 패키지로 도입하는 건 어떨까 싶다. 리더 평가의 지표 설계는 매출·시청률·트래픽 같은 외형적인 수치가 아니라 신뢰도 조사, 정정보도·오보율, 팩트체크 수행 실적 등 저널리즘의 가치를 제고하고, 유료 구독자 수, 재방문율, 커뮤니티 참여도 같은 독자 연결과 관계증진의 목표에 초점을 맞춰 재원을 분배하는 것이다.  

보도의 관점과 의제 설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성(성별·세대·지역·계층·소수자) 보장 지표를 리더십 KPI에 포함하는 것도 고안해봄직 하다. 조직 구성의 다양성, 의사결정 구조의 다양성, 콘텐츠·출연·취재원·독자의 다양성으로 나타난다. 이 지표는 이사회, 공영방송의 경우 시청자위원회·국회 보고 등과 연동하되 일정 수치 이하일 경우 사장·국장 교체 트리거로 작동하도록 설계한다.

리더를 바꿔야 길이 열린다. 콘텐츠·기술인프라를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리더를 어떻게 뽑고, 어떤 지표로 평가하며, 어떤 거버넌스와 시민 참여로 견제할 것인지까지 포함해 ‘리더십 시스템 전체’를 바꿀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공론장과 뉴스 비즈니스의 길이 열린다.

‘이번 기수는 누구냐’에서 ‘어떤 리더를 키우고 뽑을 건가’로

더 나아가 리더 선발 풀(pool) 자체를 넓혀야 한다. '기자 경력 30년'만 기준으로 삼지 않고, 디지털 저널리즘, 데이터·프로덕트, 커뮤니티 운영, 혁신 사업 경험 등을 가진 인물을 C레벨, 편집 책임자 후보군, 제품담당 최고책임자 등에 포함하는 접근이다. 특히 외부 영입을 터부시하지 않고 타 산업에서 독자-고객 중심, 디지털 전환을 이끈 리더를 COO, CDO, CXO 등으로 데려와 실권을 주는 구조도 짜야 한다.

내부 세대교체과 리더십 교육을 병행하는 것이 조직의 미래를 위해 강구돼야 한다. 예를 들어 중견·고참 관리자에 대해 시간만 보내면 직급 승진이 아니라 리더십 역량·디지털 이해도·조직 변화 경험을 기준으로 재배치하는 HR을 적용한다. 젊은 기자·디지털 인력을 대상으로는 향후 5~10년 내 리더를 목표로 하는 리더십·비즈니스·조직 운영 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한다.

언론사 리더를 대상으로 하는 외부 감시와 압력의 제도화도 고려해야 한다. 언론시민단체, 학계, 기자협회, 독자 위원회 등이 '언론 리더십 평가 보고서' 같은 형식으로 정기적으로 사장·국장·경영진을 이름·지표와 함께 평가·공개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평가가 공영방송 대표를 비롯 좀 더 개방적이고 투명한 언론사 조직의 의사결정권자 인선에 반영되고, 지원금 배분, 포상·인증 등에 적용되도록 제도·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콘텐츠를 바꾸자” “유료화를 잘해보자”가 아니라 리더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거버넌스로 교체할 수 있게 만들며,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들로 풀을 재구성할 것인가를 같이 묶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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