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의 깊이는 얕아졌고, 팩트 대신 ‘분노’와 ‘감정’이 범람한다. 클릭 수가 보도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뉴스룸은 조직문화의 경직성과 책임 회피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론사 리더십은 위기를 통찰하거나 조직을 혁신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했다. 저널리즘 투자(R&D) 예산을 책정하고 있는 곳이 없다."
"간부급 기자들에게 출입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수주하라고 요구하는 뉴스조직이 있나?" "현장에는 주니어 기자들뿐인 취재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곳은 한국언론이다" "한 언론단체가 정기적으로 배포하는 국내외 미디어동향 리포트 내용은 죄다 해외 언론사 사례 뿐이다"
한국언론에 대한 이같은 내부 비판과 고발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사실은 누구나 위기의 지점도, 해결책도 알고 있다. 일단 고양이 목(혁신)에 방울을 달려면(엔진) 문제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책임 주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지금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지목이 필요하다.
- 기사에 기준을 세우는 기자는 누구인지
- 뉴스 생산 환경을 척박하게 방치하는 기자는 누구인지
- 숫자만 강조하는 경영진은 왜 시대착오적인 판단을 내리는지
- 불합리한 시스템에 침묵하는 구성원들은 어떤 선택만 하는지
이렇게 뉴스조직의 모두가 책임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포털사업자, 정부지원 부족 등 남탓으로 돌리며 세월을 보냈다. "책임성을 갖고 일관되게 헤쳐가는 사람이 없고, 그 결과 독자가 신뢰하고 붙잡을 만한 언론이 없다"는 점이 한국언론의 최대 위기다.
“독자가 없는 언론, 언론 없는 독자”
언론 혁신가들은 이 참담한 국면에서 기술이나 플랫폼, 인공지능(AI) 이슈로 돌려 의제화 한다. 이건 사상누각의 '장사'다. 생성형 AI, 개인화 큐레이션, 자동화 시스템 등 신기술에 기대거나, 해외 유력 언론의 디지털 전환 사례를 반복적으로 소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콘텐츠의 본질이 무너진 채 기술을 덧씌우면 더 망가진다. 언론이 진짜 마주해야 할 것은 한국 언론의 리더십, 조직 문화, 그리고 저널리즘 역량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언론 내부의 리더십, 콘텐츠의 품질, 조직문화의 유연성과 자율성을 점검해야 한다.
저널리즘의 미성숙, 콘텐츠 품질의 하락, 리더십과 조직 문화의 정체가 붕괴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책임 있는 보도, 깊이 있는 해석, 공감 가능한 언어를 생산하는 것이 임무다. 물론 이때 언론은 더 이상 ‘빠르게 알리는 정보 공급자’가 아니라, 맥락을 제공하고 해석을 돕는 공동체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이 지점에서 다시 돌아봐야 할 부분이 있다. 언론은 독자로부터 선택받는 시간을 무려 20년 넘게 허송세월로 보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독자 없이도 생존한다'는 오만을 빈번하게 목격하는 곳이 뉴스조직이다.
고객이며 파트너인 독자에 대한 질문의 공백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어떤 독자가 필요한가? 언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있는가? 누구와 함께 살아남고자 하는가?" 언론의 존재 이유 자체를 묻는 물음이다.
구체적인 독자 정의: 누구와 관계를 맺을 것인가
지금 언론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언제든 웹사이트, 앱 등 언론의 제품을 향해 찾아 들어오는 독자다.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충성 독자'다.
언론이 회복하고 발굴해야 할 독자 관계는 세 가지 유형이다. 첫째, 콘텐츠에 가치를 부여하는 의식적 독자다. 정보를 소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정보를 자신의 판단과 행동의 기반으로 삼는 독자다. 이들은 고품질 저널리즘을 알아보고, 때론 비용을 지불하고, 콘텐츠에 피드백을 주며 언론과 ‘관계’를 형성하려 한다.
둘째, 언론을 비판하고 저널리즘 개선에 기여하려는 시민으로 참여형 독자다. 기사의 정확성, 프레임, 누락된 목소리에 민감하며, 언론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비판적 독자들이다. 특히 공론장에 참여하려는 의지와 역량이 있는 시민들이다. 뉴스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와 언론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이다.
셋째, 관심사 중심의 밀도 높은 관계를 형성하는 커뮤니티 기반 독자다. 자신의 정체성, 관심사, 가치에 따라 언론과 밀접하게 연결된 집단이다. 기후 위기, 노동, 젠더, 지역 문제 등 자신의 삶과 연결된 구체적 주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이다. 이들에게 언론은 ‘지식’보다 ‘공감’과 ‘해결’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진짜 독자들에게 필요한 건 인공지능(알고리즘)의 선물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언론과의 신뢰, 가치, 공감이라는 ‘관계’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그 관계의 중심에는 콘텐츠가 있다. 삶의 맥락을 읽어주고 성찰을 유도하며,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콘텐츠 말이다.
언론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기술을 도입하고, 포맷을 바꾸는 것은 부족한대로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으로 바뀌었는가? 기자의 저널리즘 감수성, 편집국의 판단력, 경영진의 공공성에 대한 책임감, 조직 문화의 유연성과 창의성이 진척되지 않는 한 그 어떤 변화도 껍데기다.
철저한 자기 점검과 성찰만이 열쇠다. 더구나 좋은 독자는 대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론이 먼저 신뢰를 회복할 때, 콘텐츠로 진심을 전할 때, 관계를 맺으려 할 때 비로소 실체를 알려준다. 언론은 그 독자에게 제대로 선택받아야 하고 그것이 혁신이고 전환이다.
조직을 바꾸는 다섯 가지 접근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혁신(투자)과 전환(관행과 문화)은 선언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은 독자와의 관계 증진을 위해 조직의 방향, 콘텐츠의 구조, 관계의 방식을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① 독자 관계 전담 조직 신설 또는 강화
이제 '구독자 관리팀'이 아니라 ‘독자 관계 조직(Reader Engagement Team)’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 신문사 내부에는 (종이신문을 중심으로 하는) 규모가 제법 있는 독자개발부서가 있다. 이 조직을 독자의 요구와 반응을 분석하고 콘텐츠 생산부서(편집국)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내부 커뮤니케이션 허브로 격상해야 한다. 마케팅 부서의 차원을 넘어 저널리즘을 지키는 최고의 조직이어야 한다.
② 참여형 뉴스룸 설계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실질적으로 열어야 한다. 댓글이 아닌 의견 청취 플랫폼, 독자가 주제를 제안하고 함께 취재 과정을 공유하는 ‘열린 보도회의’,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독자와 기자가 지속적 교류를 이어가는 이슈 커뮤니티 운영 등이다. 일과적 이벤트가 아니라 정례화 일상화 최적화 해야 한다. 독자와 함께 콘텐츠를 만드는 구조적 전환을 위해서다.
③ ‘후원 모델’로의 전환
콘텐츠의 가치를 인정하고 후원하는 ‘가치 기반 독자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 특정 기획의 시민 펀딩, 주제별 후원 전용 플랫폼, 독자의 피드백이 제작 방향에 실질적 영향을 주는 ‘프로슈머형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뉴스 소비자에서 ‘관계 맺는 시민’, 뉴스조직과 공존하는 영향력자가 된다. 뉴스 유료화는 그 이후 고려해도 된다.
④ 기자 교육과 평가 기준의 변화
기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새로운 CMS나 AI 툴 학습보다는 독자 감수성을 이해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누가 이 기사를 읽는가, 어떤 언어를 쓰는가, 어떤 방식으로 맥락을 전달하고, 공감을 유도하는가 등이다. 이러한 저널리즘 감수성은 실적 지표에 담을 수 있어야 하며, 인사 평가와 연계해야 한다. 디지털 정보 생태계와 오디언스를 이해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⑤ 리더십 교체
데이터와 성찰에 주목하는 리더십이 관건이다. 독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저널리즘 가치를 조율하고, 콘텐츠의 방향을 기민하게 재설정할 수 있는 전략적 의사결정 구조가 핵심이다.
언론은 교양과 독자를 배워야 한다
그동안 언론은 자신들이 ‘대중을 위한 목소리’라고 자임해왔지만, 정작 독자의 감각과 욕구, 삶의 리듬에 귀 기울인 적은 사실상 없었다. 그러는 사이 독자의 기대는 훨씬 더 정교해졌다. 이들은 콘텐츠의 품질을 평가하고, 정치적·사회적 감수성을 따지며, 언론의 프레임과 의도를 분석할 줄 안다. 때로는 언론보다 더 빠르게 사실을 검증하고, 기사에 피드백을 주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론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론은 여전히 독자를 통제하거나 끌어오려는 대상으로 본다. 포털의 알고리즘을 활용해 독자를 현혹하는 것에는 능숙해졌지만, 왜 그들이 돌아서는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한때 언론은 공공의 신뢰 자산이었지만 지금 독자는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애정이 없다. 독자에게 피로와 환멸을 안기면서 관계는 사실상 끊어졌다.
언론은 이제, 교양과 독자를 다시 배워야 한다. 언론은 오래도록 독자를 무시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독자도 언론을 무시한다. 이 끊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언론 혁신의 진정한 장면이다.
언론이 먼저 다가가야 한다. 독자가 언론을 무시하게 된 것은 더는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언론이 독자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목소리에 응답하며, 지속 가능한 관계를 제안할 때, 비로소 그들은 다시 돌아온다.
이 관계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복원될 수 있다.
-듣기(Listening): 뉴스 댓글 이상으로 실제 독자의 생활 맥락과 언론에 대한 기대, 불만, 제안 등을 듣는 구조가 필요하다. 리서치 기반의 독자 인터뷰, 독자 패널 운영, 보도 전후의 청취 메커니즘을 체계화해야 한다.
-이해(Understanding): 독자의 연령대나 지역 같은 정량 정보가 아닌, 뉴스 소비 목적, 콘텐츠 선호도, 주제 민감도, 정보 활용 방식 등 깊은 사용자 프로파일을 바탕으로 한 이해가 요구된다.
-협력(Collaboration): 독자는 서비스를 받는 고객이 아니라 저널리즘 공동체의 동반자다. 의견 제안, 기획 참여, 공동 펀딩, 공동 검증 등 협업 기반의 활동이 관계를 만든다.
-신뢰(Trust): 독자와의 신뢰는 투명한 의사결정, 오보에 대한 책임, 일관된 윤리 기준, 열린 보도 관행을 통해 축적된다. 언론은 그것을 꾸준히 공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언론의 미래는 다시 저널리즘을 믿게 만드는 사람들, 그 신뢰의 언론을 선택하는 독자에게 있다. 콘텐츠가 품고 있는 진정성과 기자의 감수성, 언론 조직의 철학이 독자의 지성과 교양을 자극할 때 합당한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다.
"언론은 ‘정보를 전하는 조직’인가? 아니면 ‘함께 살아갈 공동체의 지성을 책임지는 존재’인가?" "어떤 독자를 원하고,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가?" 이 질문에 현명한 답변을 할 수 있는 언론만이 독자의 시대를 주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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