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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미디어의 미래

끝나지 않을 위기, 지역신문의 대전환 절실하다

by 수레바퀴 2025. 10. 28.

한국의 지역신문은 ‘산업’으로서의 존속과 ‘공론장’으로서의 기능, 두 축 모두에서 한계에 봉착한지 오래다. 지역성을 잃어버린 중앙집중형 사회 구조 속에서, 지역 정보와 뉴스가 더 이상 ‘업(業)’으로서 자생하는 것은 무망한 목표에 가깝다.

이 위기의 전모는 언론산업의 ‘수도권 집중’과 ‘지역 공론장의 해체’로 드러난지 오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24 신문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신문사업체의 65.9%가 서울·경기권에 몰려 있으며, 지역 일간지는 전국 매출의 9.8%만을 점유한다.

중앙 집중과 지역 해체...존재 가치 없어진다

'2024 여론집중도조사 보고서'는 한국 사회의 뉴스 소비가 여전히 중앙언론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음을 잘 드러낸다. 2024년 기준 전체 매체군 중 종편군의 여론영향력 점유율은 28.3%, 지상파군은 25.0%인 반면 종이신문만 발행하는 신문군은 12.3%에 불과하다. 

더구나 중앙 언론은 지역의 뉴스 시장까지 장악했고, 이제는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기업, 대학 등 지역 조직들조차 자체 채널을 통해 직접 정보를 발신하는 미디어화된 행위자가 된지 오래다.

광주광역시는 2024년 9월 기준 인구 약 139만 명으로 21년 만에 130만 명대로 떨어졌다. 세대수는 66만 정도다. '2024 신문산업 실태조사'에서 광주광역시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은 19개사에 달했다.

단순하게 가정하면 지역신문 1개사가 도달할 수 있는 평균 세대 규모는 3만 정도다. 하지만 광주 지역신문 대다수는 이 수치도 못 미치는 발행부수를 찍고 있다.

유료부수 붕괴...‘홍보 언론' 또는 '생떼 언론'

한국ABC협회 인증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주요 지역일간지의 유료부수는 대부분 1만 부 미만이다. 광주광역시 소재 몇몇 일간지를 살펴보면 A신문 16,451부, B신문 3,870부, C신문 3,160부 수준이다. 2020년과 비교하면 4년 만에 평균 유료부수가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한국사회 인구구조의 3대 리스크로 보통 저출산, 고령화, 지역소멸이 꼽힌다. 지역은 청년세대의 타지역 유출까지 겹쳐 지역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디지털 유료 구독모델이 없는 지역신문에서 일반 가구 독자 비즈니스도 아예 존재할 수 없는 모양새다.

현재 지역신문의 매출 구조는 광고(66%) 및 기타(20%) 수입이 절대적이고 구독 비즈니스 비중은 고작 14%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지역신문은 ‘독자 중심 비즈니스’라기보다 정치·행정적 목적, 광고성 보도, 혹은 다른 이해관계에 근거한 운영 구조에 매몰되어 있다.

지역신문은 ‘뉴스 생산업체’가 아니라 ‘홍보 대행업체’로 전락하고 있다. 게다가 지역에서는 일간신문보다 인터넷신문의 수가 기본적으로 10배 이상은 많아, 뉴스 공급량이 지나치게 많은 상황이다. 

쇠락하는 지역과 멈춘 편집국, 사라지는 연결

표면적으로는 매체가 많다는 사실이 시장의 활력이나 산업적 잠재력으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대부분의 지역 도시가 쇠락하고 있다. 대규모 제조업단지가 밀집한 부울경을 제외하면 지역활력지수는 형편없다.

이 여파는 지역신문사가 자리하고 있는 지리적 공간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나는 지난 20여년 간 전국의 지역신문사에서 강연해 왔는데 대부분의 지역도시는 쇠락하고 있었다. 어떤 뉴스조직은 1970년대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사무실 집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공간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생각할 때 지역신문의 편집국은 열악했다. 언론사 구성원의 복지후생도 마찬가지였다. 강원도의 한 지역신문사 사장은 "이 임금을 받고는 젊은이들이 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광주광역시를 비롯한 주요 지방 도시 평균 연령은 45세 안팎이다. 부산광역시의 미디어관련 학과 한 대학 교수는 "대학교를 졸업하면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고 했다. 후속 세대와 접점이 희미해지는데 매체 수만 늘어나는 것은 비정상적 성장의 단면이다. 

지역신문의 새로운 생태계 패러다임이다. 공공성은 공동체 문제 해결의 장을 만드는 ‘목적’이며, 신뢰성은 시민의 신뢰를 얻는 ‘동력’이다. 관계성은 시민·기관·언론 간 상호작용을 엮는 ‘구조’다. 책임성은 신뢰를 유지하고 오류를 복원하는 ‘윤리적 메커니즘’이다. 참여와 데이터는 지역신문이 작동하는 통로와 근거다.

알고리즘에 빠질수록 지역언론 정체성 붕괴

특히 이런 인구학적 조건 속에서 지역신문이 구독 매출이나 독자 관계에서 지속 가능한 기반을 확보하기란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일본 고베시는 인구 150만명 정도의 지역도시로 지역 일간지는 고베신문 정도 외에는 없다. 교토시, 오사카시, 고베시를 아우르는 간사이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사도 일본신문협회 회원사 기준 6곳 정도다.  

포털 중심의 알고리즘 뉴스 소비 구조 역시 문제를 심화시킨다. 네이버·카카오가 여전히 뉴스 유통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2024 여론집중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뉴스 이용점유율 상위 20개 매체의 포털 내 노출 비중이 10년간 지속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털 중심 뉴스 소비를 비롯 AI 추천 알고리즘, 소셜미디어 기반 정보 확산 흐름은 지역 언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휘젓고 있다. 지역언론이 생산한 정보는 플랫폼을 통해 중앙언론의 하위 콘텐츠로 재가공되고, 지역의 목소리는 중앙 프레임에 종속되고 있다.

신문에서 커뮤니케이터로...매체 통합 필요

그런데도 한 수도권 지역신문사 사장실 앞에는 네이버 뉴스 채널에 입점한 구독자 숫자를 포털 뉴스 생태계 진입 등을 플래카드로 붙여놓고 있었다. 지역신문의 매출은 답보상태고 지역 독자와의 접점은 사라졌는 데도 '자기최면'을 걸어둔 것이다. 또다른 역설이다. 

이같은 지역신문의 위기는 지역 정보 생태계가 기능을 잃어가는 구조적 징후이며, 지역민이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해하고 참여할 통로가 점점 닫히고 있다는 경고다. 지역신문에 필요한 것은 지역성과 신뢰를 재정의하는 일이다. 

지역신문의 새로운 존재방식은 전통적인 신문에서 '공공 커뮤니케이터'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신문은 더 이상 ‘인쇄물 생산자’가 아니라, 지역 정보 순환의 플랫폼 운영자로 재정의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비슷한 뉴스 생산을 넘어, 공공데이터·지역통계·생활정보·주민 의제를 함께 연결하는 '정보 코디네이터'의 역할이다. 지역의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공공저널리즘과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일 미디어 플랫폼으로의 시장 재편과 언론의 재정의도 필요하다. 

‘네트워크 저널리즘’으로 협업 모델 불밝혀야

기자나 언론사 브랜드가 정보를 독점하던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지역신문은 지역 내 신뢰자본을 가진 시민, 전문가, 활동가, 교사, 청년 세대를 공동 메신저로 참여시켜야 한다.

십수년 전 워싱턴포스트는 지역 활동가와 시민들과 함께 지역을 흐르는 포토맥강 환경 문제를 다뤘다. 방법은 간단하다. 담당 기자와 환경 전문가가 세미나를 개최하고 관심사를 공유한다. 그리고 이들이 감시자나 목격자로서 정보를 제공하는 능력을 형성할 수 있도록 '기자'로 교육했다.

‘취재원’이 아니라 공동 제작자(co-producer)로서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과정이다. ‘네트워크형 저널리즘’은 협업 모델로 작동하기보다는 지역 지식정보의 재설계로 볼 수 있다.

경기도 고양시 한 지역신문에서 강연한 적이 있다. 전국에서 이 지역은 시민들의 스포츠 클럽 참여율이 높다. 그러나 이 신문사는 다른 지역신문과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 취재에 주력하고 있다. 거기서 돈이 나온다고 믿고 있고 실제 그렇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신문이 방학시즌에 운영하는 '독서클럽' 같은 커뮤니티를 육성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지역신문의 위기는 중앙언론과는 그 성격과 양상이 다르다. 기본적인 업의 재정의 그리고 접근 방식의 탈바꿈이 요구된다. 대전환이 아니면 지역신문 그 누구도 제대로 살아남기 어렵다.



똑같은 생존법 아닌 독창적 전환 실행해야 

포털 뉴스 생태계의 안개 속에서 지역신문이 살아남으려면 ‘클릭’ 중심의 경쟁을 버리고 독자 커뮤니티·로컬 데이터 허브·직접 구독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이 시기 진짜 필요한 혁신은 속보나 멀티미디어가 아니라 공동체적 통찰이다. 

지역민이 자신이 사는 곳의 문제를 데이터·스토리·토론으로 함께 풀 수 있는 참여형 플랫폼을 설계해야 한다. 즉, 지역신문은 ‘뉴스 판매’가 아니라 공공서비스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 데이터 리포트·공공정책 브리핑 판매, 지역대학·시민단체와의 연구형 콘텐츠 협업 등이다. 더 나아가서 지역민을 대상으로 하는 후원 저널리즘 등도 모색해야 한다. 이는 ‘공공계약 언론’으로 지역민과의 사회적 계약에 기반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지역신문 1.0이 소수 생산자가 지역 뉴스를 주름잡던 일방통행의 시기였다면 지역신문 2.0은 인터넷(포털)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디지털 혁신을 수용하는 시기를 의미한다. 지역신문 3.0은 지역신문의 위기를 기술의 문제에서 '관계의 단절'로서 해석하는 프레임이다.

공공서비스와 관계 기반의 ‘지역신문 3.0’

최근 지역신문 디지털 부문 관계자들과 인터뷰하면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은 자본 취약, 전문 인력 부족이다. 20년 넘게 똑같은 내용의 고백만 들었다. 투자도 없이 이 시기를 건넌다는 건 무모하기 짝이 없다. 달라진 점은 지역신문도 영상 콘텐츠 제작에 뛰어든 점이다. 영남의 한 지역신문 간부는 "정치 이슈를 다루는 유튜브 영상으로 쏠쏠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레드오션이 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너도나도 비슷한 콘셉트로 정치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지역신문 2.0의 디지털 혁신이 속도와 멀티미디어에 치중한 형태의 모델이었다면 이제는 정보를 생산하는 자와 이용하는 자, 행정과 시민, 청년과 노년 사이의 소통 고리를 복원하는 '관계모델'로서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이것은 오랜 신문을 지키는 일이 아니다. 신문을 버리는 일이다. 버려야 지역의 독자를 제대로 볼 수 있다. 기존의 지역신문과 구조로는 오늘은 버틸 수 있지만 미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역사회의 기억과 토론, 감시와 연대의 시스템을 독자와 함께 이르켜 세워야 한다. 

현재의 조직 역량과 시장 경쟁환경을 유지하면 실현할 수 없다. 지역신문은 더 이상 ‘남은 것을 소진하는 산업’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공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때 비로소 지역신문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의미와 가치도 커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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