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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감동적인 아르빌 드라마

by 수레바퀴 2004. 12. 8.


노무현 대통령이 열기와 모래바람, 미패권주의의 칼날이 스민 이라크 사막에 주둔한 우리 군대를 전격 방문했다. 국민들은 잠시나마 이 드라마에 매료되고 있다. 조선-중앙-동아 등 이 나라의 주류언론이 모두 환한 노대통령의 사진을 톱으로 게재하며 전에 없는 동의를 표한다.


이 때아닌 노대통령 재인식의 짧은 국면은 다시 처절한 헤게모니 싸움으로 전환될 것이지만, 우리는 충분히 이 '감동'과 벅찬 '눈물'에 젖을 필요는 있다. 정치는 모종의 연출된 각본인 동시에 일정한 교양을 갖춘 훌륭한 관객-국민의 조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깐의 휴전이 끝나고 다시 격전의 국내 정치-리얼리티로 돌아오게 되면, 의회는 다수가 됐지만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형에서는 여전히 무력한 소수인 한계를 절감하는 노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을 만나게 된다.


사실 노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의 이념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단지 지역주의에 저항하고 노동자에 온정적이며 사회개혁을 보다 적극적으로 촉구하는 노대통령의 행동과 발언들은 종전의 정치 지도자와는 현격한 격차가 있었다. 그것은 그의 정치적 장점이었으며, 마침내 집권에 이른 강력한 조건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노대통령이 현실주의자로서 대북송금 특별법을 수용하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상황에 직면해서는 '혼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주장한다. 반칙과 특권이 군림한 구시대를 떠나 보내겠다는 메시지는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는 아젠다가 된다.


노대통령의 정치행위를 '포퓰리즘'이라고 맹공하는 구기득권도 이제는 유사한 방식에 본격 접근하고 있다. 인터넷을 강화하며, 제스쳐를 연구하며, 사택을 공개하며, 신세대와 데이트를 하는 따위의 지도자 메이킹에 의지하는 것이다.


구기득권의 이데올로기를 좇는 정치집단은 결과적으로 노대통령의 '장점'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적어도 유효한 유권자의 절반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양자는 한국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해소하는 방식에 있어 유사한 점을 갖고 있다.


그들은 단계적이며, 제한적이고, 설득적이며, 보다 덜 개방적인 장치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은 의회라는 좁은 공간에서, 그리고 각각의 지지자들의 연호 속에서, '국민'을 내세우며 이 논란의 본질보다는 표면적인 정의를 들어 공공연히 타협한다.


노대통령 지지자들은 우리의 대통령은 "그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적어도 한국정치에서 '노무현'은 구주류의 철벽과도 같은 언론권력과는 정면에서 싸웠으며, 지역주의 정치세력과도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이 불굴의 비타협성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까지 그를 '대통령'으로 지탱하고 있는 중핵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연고주의라는 특권, 편법-탈법-위법과 같은 반칙으로 주무른 기득권력이라곤 하나도 확보한 것이 없었던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주류와의 비타협을 통한 쾌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을 집권한 노무현 대통령은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사회의 기득권, 냉전이데올로기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알고리즘을 목격했을 것이다. 유나이티드 어브 어메리카. 분단 이후 한국 내부에 깊숙이 뿌리내린 그것.


노대통령이 집권 후 온전히 타협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미국' 하나 뿐이다. 그가 미국이 부숴놓은 이슬람의 고요, 이라크에서 우리 군대의 의기를 고양시키고 온 것은 그 온전한 타협마저 거역하려 한 것일 수 있다.


노대통령은 이 시대의 유일무이한 비타협적 정치 지도자로서, 아르빌에서 "당신들이 있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열렬한 지지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를 여전히 믿으려는 사람들에게도 해당하는 말들이다.


이제 구시대의 막차가 될 것이라는 노대통령의 자조는 현실에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노대통령 스스로 비타협만이 구시대의 주류와 벌이는 전장의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르빌行은 집권 마지막까지 (그들과는) 비타협으로 나아갈 것임을 고변한 드라마로 보여진다.


관객들-지지자들이 이 감동으로 의회의 소동을 보며 상처받은 데 대해 위문을 받고 의욕을 다지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200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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