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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냉전' 문화, 기자가 조장해서야

by 수레바퀴 2006. 4. 4.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은 정치영역에서 남북간 화해 무드를 조성하는 전환의 이벤트였다. 그러나 남북 냉전의 시대가 반세기 지속된만큼 사회문화적으로 완전한 대북관의 변화가 이뤄지진 못했다.

여전히 '색깔론'이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인용됐으며, '좌파=친북'노선을 제기하는 보수언론의 공세가 거듭됐다. 현안에 따라서는 보수단체들의 반정부 시위도 격화했다.

메인스트림이 냉전세대에서 386 민주화세대로 불완전하게나마 이전된 이래 '이념 양극화'는 또다른 사회테제가 됐다. 기자사회는 '냉전'이데올로기가 사주(社主)와 매체의 정체성에 따라 강화하면서 7:3 또는 8:2의 '언론지형'이 고착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물론 인터넷신문 등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냉전' 콘텐츠가 새로운 시장에서는 주변부로 쏠리는 일도 빈번해졌다. 신진 저널리스트들은 진보와 개혁, 열린 사고를 강조하면서 쌍“‡향으로 지식대중과 조우했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교체가 사회권력, 언론권력의 개혁으로 깊숙이 전개되지 못한 상황에서 '냉전'은 아직도 인식을 지배하는 틀이 되고 있다. 기자들 역시 '냉전'의 시각이 갖는 위험성, 낙후성 보다는 현재의 시장 키워드를 외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즉, 기자들의 '냉전적' 시각은 '보수언론' 시장이 확고히 자리매김한 상황에서는 '선택'이 아닌 '세습'의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 기자들이 객관적 관점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그러나 한국언론에서 기자의 객관화를 선행하는 것이 조직의 '보수적' 전통이다. 

중앙일보 4일자 "납북자를 자진 월북자라니…"는 기사의 경우 지난 1일 KBS '미디어포커스'에 출연한 정일용 기자협회장의 단어선택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 기사를 쓴 이 아무개 기자는 방송 녹취록에 따르면 정 회장이 '납북자'를 '자진월북자'라고 표현, 물의를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기자협회보 4일자 온라인판은 "중앙일보 기사는 인터넷에 올라온 대본만 보고 쓴 것"이며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기자협회보는 또 "악의적 왜곡에 대해 법적 대응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 논란이 상징하는 것은 '냉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뉴스조직에서 다루는 콘텐츠가 얼마나 '냉혹'할 수 있는가이다. "엄중한 분단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분단의 상처 치유를 위해 북한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비평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냉전' 콘텐츠가 소모적인 남남 갈등을 부추기면서 언론시장을 비지성적으로 유지하는데 악용된 것 아니냐는 자성이 필요한 때다. 냉전 콘텐츠에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와 '오늘'에 머무른 '감정의 앙금'만을 부상한다.

왜 한국의 기자들은 "남북언론이 서로 공감하는 보도제작 준칙을 마련해야 한다"는 본질을 비껴서 불필요한 진흙탕 싸움을 유발하는가. 냉전 콘텐츠가 아직도 시장에서 유효하기 때문인가.

뉴스조직의 '냉전'문화 극복 없이는 생산적인 담론 소통보다 이러한 '갈등'의 콘텐츠가 신문을 뒤덮을 것이다. 그것은 격변하는 환경에 처한 신문기업 스스로 내부 통합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으면서 후진적인 미디어 기업으로 전락하는 암초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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