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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폭언'의 시대

by 수레바퀴 2006. 2. 23.

진보파들은 "(참여정부에 대해)신자유주의 하에서의 퇴행적 민주주의"로, 보수파들은 "좌파의 대중 선동 속에서 형성된 신독재주의"로 규정하고 있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 지지층은 "'노무현'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반응한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새 시대의 첫차이기 보다는 구시대의 막차가 되겠다"는 결연함을 되뇌인다.

구시대는 노 대통령의 표현을 빌면 '특권과 반칙의 시대'다. 폭압적 권력과 부조리가 만연한 시대다. 3공화국, 5공화국처럼 생각과 의견이 다른 세력을 총으로 고문으로 쓸어내는 폭정의 시대였다.

 

그때는 지성이 없었고, 참스승이 없었으며, 소통이 차단됐다. 그대신 극단주의와 무정부주의, 반합법적 투쟁과 데모가 지식계를 풍미했다. 이른바 운동권의 그러한 행태는 주류에 의해 냉대와 박해를 받았지만 그들의 정의(正義)는 배양됐다.

여기엔 '살아있는 자'의 부끄러움도 거들었다. 운동권의 폭력조차 이해와 관용으로 껴안아야 했던 한국적 고통이기도 했다. 또 그것은 누구나 자유롭게 견해를 밝히고 사회적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건설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열정으로 오늘날 언론자유의 환경은 폭넓게 정착됐다. 이는 한국민주주의의 분명한 신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한국 정치는 더 이상 군부와 연결되지 않으며, 의회와 같은 합법공간은 가장 최우선으로 보장되고 있다.

하지만 '철학(미래지향적 가치 또는 경향)'의 존중과 파트너십이 없는 전통없는 정치가 한국민주주의를 모멸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노무현 정부의 역할도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민주화와 역사청산의 현장을 비껴선 구시대의 세력들에게 더 많은 책임이 있다. 그들은 오늘도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격렬한 적의를 양산하고 있다. 수준낮은 콘텐츠를 연호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유이지만 '폭언'의 책임은 져야 한다.

'폭언'은 민주주의의 무대를 '합리적'으로 설정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재편한다. 지역주의와 냉전주의 따위의 일차원적 대립을 조장한다. 그 대립으로 당장의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득을 취한 어떤 세력도 '폭언'의 시대를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의 독설을 들어야 하는 시대에 서서 다시 한번 "역사는 무엇인가"란 고색창연한 질문을 던져 본다.

덧글. 인터넷신문 브레이크뉴스의 보도에 대해 전여옥 의원 측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면서, '강경대응'할 것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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