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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당권경쟁에 밀린 '개혁'

Politics 2005.02.22 15:56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2월 14일 대정부 질문을 시작으로 다음달 2일까지 열리는 임시 국회는 개원 전후 여야간 ‘무파행’을 다짐하는 등 상생 기류가 형성됐지만, 개혁 관련 쟁점 법안 및 경제 입법 처리를 두고 만만치 않은 갈등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어 가파른 대립을 예상케 한다.

이번 임시 국회에서 다루는 법안은 모두 92개. 여기에는 증권 관련 집단 소송법 개정안, 국민연금법, 채무자 회생 및 파산법, 비정규 관련법 처리 등 민생 현안을 비롯한 경제 입법과 국가보안법, 과거사청산법, 사립학교법 개정안 등 이른바 개혁 법안 처리가 쟁점이다. 또 열린우리당이 최근 발의한 행정 도시 특별법도 뜨거운 논란을 재연할 것으로 보인다. 각 정당의 계파간 노선 경쟁이 당권·대권 경쟁과 맞물리면서 첨예하게 치닫고 있고, 북핵 사태 등 돌발 변수까지 터져 순탄한 법안 처리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당, 실용주의 노선 놓고 팽팽한 논의

열린우리당의 경우, 2월 4일 의원 워크숍에서 새 지도부의 ‘실용주의’ 노선이 대체로 수용되면서, 개혁 행보보다는 경제 회복에 주안점을 둔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에 따라 출자 총액 제한 제도 완화 검토 등 경제 입법 처리에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국가보안법 처리 요구가 제기되는 등 입지가 위축된 개혁파에게는 이중고가 이어 지고 있다.

일단 386 학생 운동권과 재야 출신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당의 ‘개혁파’는 개혁 법안 처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강경 처신을 괜히 고집했다간 당권이 날아간다”는 이심전심의 교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4월 전대(全大)로 초점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또 이미 국보법 폐지에 대한 속도 조절 불가피론이 지펴지고 있다. 최근 전대협 출신의 임종석 대변인도 “국보법을 2월 국회에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진행중인 의제로서) 다루자는 것”이라며 이 같은 분위기를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개혁당 출신의 유시민 의원은 대기업 분식 회계 면탈 방안 등 일련의 개혁 후퇴 움직임이 “당의 핵심 기반인 당원과 열성 지지자들의 이반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강경 입장을 밝혔다. 임종인 의원도 “대통령은 실용을 할 수 있지만, 당은 그러면 안 된다”며 “개혁 법안 처리로 개혁 세력 결집에 따른 당권 도전으로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지도부는 과거사법은 처리를 시도하되, 보안법과 사립학교법은 여야 합의가 없으면 무리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행위를 제한하는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개정안, 채무자 회생 및 파산법 등 민생 법안은 처리될 전망이다. 또 경제·노동 입법 등 친기업적 정책들도 여야간 큰 이견이 없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리당은 연기금을 동원한 대규모 건설 사업 등에 무게를 두고 있고, 한나라당은 연기금의 사회 간접 자본 투자보다는 법인세 인하 등 감세 정책, 공기업 어음 발행 금지 등 각론에 치중하고 있다. 또 여기에 비정규직 보호법 통과 저지 등을 내건 민주노동당의 기세와 증권 관련 집단 소송법, 기업활동 규제 완화법 등을 비판해 온 우리당 개혁파의 대응이 관심거리다.

한나라당, 강·온파 의견조율이 관건

한편 한나라당은 강온파간 의견 차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달초 연찬회에서 당 노선과 진로, 쟁점 법안 처리 등 현안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뚜렷한 결론은 내지 못했다. 특히 박근혜 대표의 아킬레스건인 과거사 문제는 새정치수요모임과 국가발전연구회 등 비주류측이 박대표의 적극적 자세 전환을 요청한 반면, 영남 출신의 ‘자유 포럼’ 소속 의원들은 박 대표 중심의 단합을 강조해 반박(反朴) 대 친박(親朴) 대립이라는 진통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박 대표가 처리 불가 입장을 보였던 국보법 등 쟁점법안 처리를 놓고 중도 개혁 성향의 의원들과 한 차례 홍역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주축인 수요 모임의 정병국·남경필 의원 등은 “과거사에 대한 수세적 입장을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사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며 “국보법도 대체 입법 합의안 관철을 전제로 상정, 상임위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용갑 정형근 등 강경 보수파 의원들은 “여타 쟁점 법안 처리는 미뤄야 한다”는 유보론을 설파하며 “국보법을 지키는게 한나라당의 역사적 책무”라는 정체성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보유 선언’과 관련 자유포럼 소속 의원들은 정부에 대북 지원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 반면, 수요모임은 인도적 지원은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엇갈리는 등 사안에 따라 세 대결로 비화하는 형국이다.

한편 2월 5일 우리당이 단독으로 제출한 행정도시특별법안에 대해 한나라당은 국민투표 실시 주장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의 충청권 의원을 중심으로 당 지도부에 대한 반발 조짐이 계속돼 당내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민노당 진보행보에 관심

이처럼 각 당이 계파간 주도권 경쟁과 체질 개선을 둘러싼 파고가 높아, 이미 당론으로 정해진 법안이라도 여야 협상과 당내 의견 조율 과정에서 내용이 뒤집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특히 당권 경쟁을 앞두고 잠행에 들어간 우리당 내의 개혁파와 “이대로는 안 된다”는 한나라당 내의 소장파가 의기 투합 하면서 의외의 결론을 이끌어낼 여지도 있다. 이와 함께 이번 임시 국회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소수 정당으로서의 한계를 뼈저리게 경험한 민주노동당의 진보 행보가 택할 향방이다.

서울신문 최진순 기자 soon69@paran.com

 

출처 : 주간한국 200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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