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민주주의는 한 사회의 존엄과 가치를 압축적으로 규정하는 제도와 역사로써 존재한다.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으로 '민주화', 즉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끌어낸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폭압적이고 부정적인 권력(행사)는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만큼 개방적이며 성숙해 있다.

군부 쿠데타의 가능성이 사라졌으며 정례적인 선거제도가 뿌리내리고 있다. 정치적 불신과 의회무용론이 범람하고 있고, 불안정한 정치현실이 계속되고 있지만, 거대 보수정당에 의해 뒷받침되는 한국의 의회는 여전히 중요한 민주주의의 무대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공고화라는 측면에서 허술한 면이 적지 않다. 시민단체의 정치력이 미흡하고 국가주의적 통제, 구(舊)기득권의 능란한 영향력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또 민중의 이해를 합리적으로 확보하는 절차와 권력이 두드러지고 있지 못하다.

특히 기득권과 민중의 갈등국면에서 국가가 상호 타협보다는 기득권 보호에 나서고 있는 반면, 이를 견제할 시민사회는 국가를 견제할만큼 충분한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이 결과 1987년 민주화 이후 18년간의 민주주의가 기득권의 수중에서 대부분 결정되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화의 희생자들이 민주주의의 결실을 누리지 못한 채 공허한 권력다툼의 '암초'들로 비쳐지는 것은 혐오스러운 대목이다. 과거사 청산에 대한 정치권의 '흥정'은 역사를 재단하는 소수-비록 그들은 의회의 다수파이지만-의 민주주의에 실망감을 더한다.

'그들만의 민주주의'가 심화할수록 한국민주주의는 좌표를 잃고 있다. 민주주의를 폄훼한 정권이 부활하고, 그들에게 부역한 지식인과 정치인, 언론이 그들만의 역사적 재생을 꿈꾼다.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시대정신은 '북핵'과 '당권경쟁'의 구도 속에 휘청거린다.

아직 한국민주주의를 보편적 민주주의로 진입시키지 못하는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그것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유린했던 이들에 의해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체제의 준거로 강력한 위상을 얻는다.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민주주의는 아직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보수화는 예상보다 심각히 진행되고 있다. 진보적 의제가 상당한 분야에서 차단되고, 방해받고 있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한국민주주의의 드라마는 수년 내 종식될 것이다. 그들이 손쉬운 싸움에 진력하면서 무익한 '상징'만 늘고, 기득권의 질서는 더욱 강해져서이다.

서강대 손호철 교수가 최근 민주노동당의 간담회에서 언급한대로, 국가보안법, 과거사청산 같은 개혁의제는 이미 그 결론-"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 난 싸움이지만, 위기의 본령은 현재와 미래를 짓누르는 거대한 '신자유주의'에 있기 때문이다.

의회가 개혁의제로 공방을 벌이며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한국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에 의해 근본부터 부식되고 있다. 보안법 등 개혁의제를 수면 위로 올리고 한국민주주의를 지킨 지지층의 대부분은 경제적 빈곤으로 비정치화하고 있다.

반면 구기득권은 뉴라이트로 전환하며 세를 확산시키고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민주주의는 '권력'을 향한 전체 기득권의 정치로 격렬한 자리매김을 하느냐, 아니면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사를 다시 쓰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이제라도 개혁세력은 효용 가능한 자원과 네트워크를 결집시켜 살아있는 '개혁의제'를 선점해야 한다. 진정한 '연대'가 제창돼야 하고 희망의 깃발이 올려져야 한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민주주의에 집중하는가?

노무현 이후의 아무개 집권을 위해서인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서인가?

'개혁'의 지평과 합류자를 넓혀야 한다.

 

출처 : 데일리서프 www.dailyseop.com

         200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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