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상층계급이 아닌 피지배계급에서 사법부 진출을 보장한 한국에서 사법부의 진보화가 늦은 것은 역설적인 현상이다. 탈권위와 수평적 네트워크 시대에 사법부는 오히려 지나치게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으로 운신하고 있다.

이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하며, 그 임명을 국회의 동의와 대통령 또는 대법원장의 임명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법과정에 근본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법은 대통령과 국회를 통해 제도화될 뿐 유권자-민중이 직접 그 선출이나 조직 또는 사법과정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처럼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을 필요조차 없는 권력기관이 되고 있다. 감시기능도 사법부 자체에 한정됨으로써 국회나 대통령에 의해서도 기본적인 견제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최근 논의되는 사법개혁 역시 법률전문가만의 수중에서 회람되고, 재판 당사자인 유권자-민중의 이해와는 거리가 멀게 진행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양상들은 공개 재판과 국가기구내 독립성 정도만을 허용하는 한국 사법이 시대인식과는 동떨어진 판결을 빈번하게 내놓는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사법 제도는 상아탑, 연수원, 대법원, 헌법재판소에 이르기까지 다른 국가 기구나 조직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폐쇄적이며 엘리트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아성을 쌓음으로써 스스로의 오류나 부조리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지난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권력을 탄생시키고 도덕적, 합법적으로 그 기능을 부여하는 힘을 가진 유권자-민중은 헌법재판관들의 판결문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결정 오류를 명백히 예상하고 우려하는 가운데에서도 사법에 깊숙이 참여하지 못한 채 육중한 재판소의 사무실 안, 10명도 채 되지 않는 재판관에게 유권자-민중은 도대체 언제, 무엇을 위임한 적이 있었던가?

지난날 헌법을 통해 모든 사법의 권한과 제도, 조직이 인정됐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국민참여적 시대, 주권재민의 가치와는 현격한 격차가 있던 권력에 의해서였지 결코 유권자의 다수 이해는 반영되지 않았다.

시중에 참여정부의 최고 권력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다"라는 조소를 나누는 이들이 적지 않다. 헌재 재판관은 신행정수도 이전도, 대통령 자리도, 호주제도, 그리고 심지어는 영화 필름을 재단하는 등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타 등등들을 심리해 그간의 정설을 뒤집거나 아니면 더욱 고정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유권자는 다시 한번 명백히 국가사회 내에 존재하는 이런 만능의 재판관-사법(제도)을 어떤 형태로도 직접적으로 감시, 감독할 수 없다. 오늘날 이같은 무소불위의 3권이 있는가? 그들은 그들 안에서만 통용되는 서열을 가지고 있고 관료주의에 찌든 인사를 적용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위계와 형식이 파괴되는 수평적 네트워크 소통의 시대에 한국의 사법은 베일 안에 있다. 솔직히 오늘날 우리의 시대가치와 체계, 행위를 규정하는 법제도와 법해석, 판결을 좌지우지하는 모든 재판관, 그리고 검사들을-그들은 국가기구에 종사하는 공복이다-한번도 제대로 규명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오로지 법정 안에서만 공개되지만, 그러나 그들은 법정 바깥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유권자들의 직접참여를 가능한한 보장하는 현대 민주주의를 정면에서 거스르는 위험한 기구이며 절차이다. 이 기제 안에서 재판관이 스스로의 위상을 역사적 맥락 안에서 찾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해질수록 사법부의 시대 부조응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또다른 독재이며 합법을 가장한 폭거로 양심과 지성에 입각한 고찰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특히 본능적인 자기 방어와 헌법의 허울 속에 더욱 엄숙한 똬리를 튼 채 사회개혁을 추진하는 민중-유권자를 옥죈다.

사법이 정치권력(진출)을 향한 방편으로 악용되거나 사적인 정치이념으로 농단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데도 이 문제의 근본적인 개혁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파쇼권력, 또는 그 아류권력의 사법지배라는 '전통'에 기인한다.

특히 한국 사법은 독재권력이 휘두른 야만의 정치를 '합법적'으로 지탱해준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한번도 제대로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

이제 민중-유권자에 의한 법의 지배, 다시 말해 배심원제나 재판관의 민중(에서의) 선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때가 됐다고 본다. 사법의 문제는 더 이상 사각지대가 아니라 공개적인 유권자-민중의 참여 기제 안에 놓여 있어야 한다. 민주 공화국의 사법이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할 때이다.

2005.2.12.

최진순 기자


출처 : 데일리서프 www.dailyse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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