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처럼 밀려 온 여론 앞에 책임의 소재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장수를 떠내려 보내는 것은 인사권자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노무현 대통령은 3월 8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휘말린 재정경제부 이헌재 부총리의 사의를 수리한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노 대통령이 두 차례나 김종민 대변인을 통해 ‘재신임’뜻을 밝히고, 재정경제부 업무 보고에서는 이 부총리를 격려하며 힘을 실어준 지 불과 닷새만의 일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언론이 제기한 이 부총리 관련 의혹들에 대해 국세청 등에서 조사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번 경우는 의혹이 사실인지도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인사 조치를 해야 될 상황이었는데, 그런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기본적인 판단”이라고 말해 청와대의 비장한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전달했다. 노 대통령이 퇴임 공직자를 상대로 한 이례적인 진상 조사 지시를 내린 것과 비슷한 시기에 청와대 안팎에서 이 부총리 후임자를 둘러 싼 하마평이 오르내리는 형국이다.

상식·기대에 못 미치는 인사

집권 3기에 들어 선 참여정부의 ‘인사 시스템’에 대한 비판 여론은 정점에 이른 상태이다. 사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0년 12월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파격적인 인사 행보를 보여 주목을 받아 왔다. 당시 인사는 ‘자체 검증’과 ‘시장 경쟁 원리’를 철저히 반영한 것으로 “기본적으로 철저히 검증한 뒤 일을 맡기면 100% 권한을 주는 식”이었다.

그러나 지난 번 이기준 교육부총리 임명 파문 때는 의혹 제기를 방어하는 데만 급급해 국민의 일반적인 상식, 기대 수준과는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많았다. 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의 장점은 사라지고 구김살만 늘어난 꼴이 된 것이다. 지난 1월 4일 개각으로 새롭게 각료로 임명된 행정자치부 오영교 장관, 해양수산부 오거돈 장관, 농림부 박흥수 장관의 경우에는, 실무 역량보다는 정치적이고 ‘논공행상’의 의미가 짙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또 공석에 있던 차기 교육부총리로 민주당 김효석 의원에 입각 제의를 해 불필요한 정계 개편설을 불지핀 것도 인사 난맥상을 보여 준 해프닝으로 기록됐다. 교육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 김진표 의원을 교육부총리로 앉힌 것 역시 조정보다는 밀어 붙이기 식의 인사라는 비난 목소리가 컸다. 특히 추가 의혹이 계속 드러나는 데도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 미흡해 근본적으로 인사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타도 잇따랐다. 결국 이 교육부총리 인사 때에는 청와대 인사 라인 교체라는 진통까지 겪었다.

최근에는 국방부 유효일 차관의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 대대장 전력과 관련된 청와대 측의 석연치 않은 해명도 인사 사고, 즉 ‘인재(人災)’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청와대 인사는 코드 인사와 정실 인사라는 비판에 이어, 정부 고위직 전력조차 챙기지 못 하는 허점 인사의 표본이라는 독설까지도 나오고 있다.

현재의 인사 시스템이 광범위한 인재 풀에서 걸러 뽑는 방식이 아니라, 일부 측근들로부터만 추천을 받은 후 검증 절차를 진행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큰 하자가 없다면 일단 임명하고 보는 식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이헌재 부총리 사의 과정도 불과 2개월 전의 이기준 교육부총리 임명 파문을 고스란히 답습했기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은 과거 권력 실세가 좌지우지하던 공직 인사를 혁신, 시스템화한다는 취지에서 노 대통령이 도입한 ‘인사 추천 회의제’로 대표된다. 이 제도는 인사 수석 비서관이 인사 데이터 베이스를 토대로 후보자를 일정 수로 압축해 평가 내용을 곁들여 인사 추천 회의에 상정하는 절차로 시작된다. 이어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토의 과정에서 3배수를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비서실장과 인사수석비서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해서 최종 재가를 받는 형식이다.

거치는 단계는 불과 몇 개다. 그러나 인사추천회의 참가 대상이 비서실장을 비롯, 인사수석,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홍보수석, 정책실장, 총무비서관으로 구성돼 있다. 또 다른 수석비서관이 추천하는 사람은 서로 인정해 주는, 나눠먹기식 인사로 변질될 문제점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고위급 공직자나 거물급 정치인 등과 빈번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청와대 비서진이 노 대통령의 최측근들로 채워진 것은 객관적인 인사를 방해할 여지가 높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정수석실에서 인사 검증을 거치지만 당사자들의 프라이버시, 친소 관계에 따라 약식 검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청와대의 ‘여론 수렴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당ㆍ정ㆍ청 여권 핵심 8인이 참석하는 토요 정례 회의는 참여자의 면면 때문에 주목되고 있다. 정부에선 이해찬 국무총리를 비롯해 정동영 통일ㆍ김근태 복지ㆍㆍ정동채 문화부 장관 등이, 청와대에서는 문재인 민정ㆍ이강철 시민사회수석이, 당에서는 임채정 당의장ㆍ정세균 원내대표가 나온다.

작년 여름 처음 시작된 이 회의에서는 정책, 정무, 인사 등 정권의 핵심 내용들이 다뤄진다. 지난 번 회의에서 정찬용 당시 인사수석이 ‘호남 소외론’을 들고 나온 뒤 인사수석 후임에 김완기, 검찰총장 내정자에 김종빈 씨 등 모두 호남 출신 인물로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진다. 때문에 ‘8인 회의’가 참여정부의 인사 흐름을 잡는 창구가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도 받고 있다.

소수에 의한 결정 비난의 목소리

정치권 일각에서는 참여정부의 인사 시스템이 소수에 의해 결정되고 있지 않느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노 대통령의 스타일상 함께 활동을 하면서 내린 평가, 인연 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면서 “공직 혁신과 시스템을 강조하는 참여정부의 원칙은 몇몇 인사 잡음으로 재단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노 대통령은 지난 1월 ‘이기준 파문’ 이후 이런 저런 문제가 드러나 표류하고 있는 인사 검증 기능을 부패방지위원회 같은 청와대 바깥의 기관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현재 실무 작업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하는 쪽으로 큰 가닥이 잡혀 추진하고 있다.

결과에 따라 인사 진용을 포함 시스템의 큰 변화도 예상된다. 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참여정부의 인사는 지지도와 직결된다. 또 다시 인사 문제가 생겨서는 곤란하다”면서 “장관급은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고, 차관 이하 급만 인사추천회의에서 논의되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민정수석실도 측근을 배제하고 객관적 검증이 가능한 관료 집단을 중심으로 하는 방안을 고려해 봄직하다는 것.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견제 장치로 국회의 인사청문회 대상을 대폭 확대, 정무직 인사의 검증을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처럼 공개 토론을 거쳐 여과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내 놓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대통령 집권 3기, 인사 시스템이 한 바탕 굴절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최진순 서울신문 기자 soon69@paran.com

출처 : 주간한국 200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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