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살해’를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아들 박지만씨가 “선친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박 전 대통령을 친일적이고 사생활이 복잡한 인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지만씨는 실수한 거다. 괜히 언론에 기삿거리만 제공해서 '그때 그 사람들'을 무료로 광고해 주는 효과만 거두지 않았나. 까놓고 말해서 박 전 대통령의 ‘일본 장교 경력’과 ‘마지막 술자리의 여인들’이라는 ‘팩트’만으로도 이 문제에서 박지만씨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만큼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은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는 극악한 독재자로, 그의 시대는 고문과 조작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인권탄압으로 얼룩졌다는 것이 한쪽의 평가라면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민족중흥의 영웅이라는 것이 다른 쪽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평가의 차이 자체가 우리 시대의 거대한 정치적 시빗거리들 중 하나인 것이다. 박정희는 죽어서도 이런 방식으로 현실에 개입하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가 ‘지금, 여기’의 현실에 미치고 있는 가장 큰 해악은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인한 사회혼란’에 대한 면죄부를 정부·여당과 주변 언론 및 시민단체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1970∼1980년대에 형성된 민주화운동세력 중 일부 지식인 집단에 뿌리박고 있는 정부·여당의 면죄부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래도… 박정희처럼 지배하지는 않잖아. 박정희와 반대로 가고 있는데 뭐가 잘못 되었나.”

박정희는 정치적 독재자였을 뿐 아니라 경제적 독재자이기도 했다. 그는 야당의 반대를 억누르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가 하면, 후진국으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포항제철 같은 거대 프로젝트를 감히 밀어붙였다. 시장이란 것을 우습게 봤던 것이다. 재벌이라는 집단이 형성된 것도 박정희 시대였다. 재벌 가문이 한 줌도 안 되는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도록 허용한 것은 다수 주주들의 ‘사적 소유권’을 박탈하는, 그야말로 ‘빨갱이’ 같은 짓이었다. 이른바 관치 금융으로 정부가 의도한 성장산업에 시중의 돈을 몰아주는 ‘계획’경제를 ‘자행’한 것도 그였다.

박정희의 경제정책을 돌이켜보면 ‘그가 한때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박정희가 경제를 시장에 맡겨두는 스타일의 지도자였다면 한국이 철강 왕국이나 자동차 강국, 세계 11, 12위의 무역대국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범민주화운동세력은 이런 박정희에게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면서도 꿋꿋이 한국자본주의 초기 발전의 희생자들(노동자, 농민)과 고락을 함께 해왔다. 그래서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슬로건이 ‘반독재’와 ‘반재벌’이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중 ‘반재벌’은 결국 박정희 경제정책에 대한 전면적 반대를 의미했는데 그 목표는 재벌해체를 비롯한 자유주의 시장질서로 남한 경제를 재편하는 것으로 흘렀다. 박정희에게 질겁한 민주화운동세력은 ‘시장 자유주의’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몰랐던 것이 분명하다.(물론 재벌그룹의 국유화를 진지하게 주장한 집단도 있었지만 이들은 현 집권세력과 관계가 멀어도 한참 먼 세력이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한 뒤 수행했던 IMF의 ‘한국 경제개혁 프로젝트’는 민주화운동세력들에겐 낯선 것이 아니었다. 김대중 정권은 은행-기업 간 관계(관치금융)를 단절시키고 재벌 가문의 부당한 계열사 지배권을 제한, 한국 기업의 경영관행을 종래의 투자 중심에서 수익성 중심으로 바꿨는데 이는 한국 경제의 체질이 저투자, 고실업률, 국내 자산의 해외매각으로 갈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세력 중 상당수 지식인들은 IMF와 김대중 정부에게 갈채를 보냈다. 왜냐고? 이 같은 개혁이 ‘박정희식 경제’의 잔재를 청산하리라는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시장과 (주주들의) 사적소유권’을 절대시하는 자유주의의 시대가 한국에서도 활짝 열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전임자의 노선을 충실히 계승·발전시키며 ‘시장 자유주의’라는 박정희와의 차별점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말 노동부는 이른바 ‘비정규직보호법’을 통과시켜 비정규직의 대폭 확대를 기도했는데 이는 기업이 ‘시장’ 수요에 따라 노동력을 마음대로 고용하고 해고시킬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검토 중인 ‘요양기관 의무지정제 폐지’는 병원이 자율적으로 의료보험 적용을 결정토록 하는 것으로 결국 의료 서비스의 공급과 가격을 시장에 넘기자는 이야기다. 국민의 건강권마저 시장에 종속시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집권한 민주화운동세력 출신들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정체다. 그래서 ‘군사독재 시절에 꾸준한 경제성장과 비교적 공평한 분배를 누렸던 한국이 민주화운동세력이 집권한 뒤 오히려 저성장과 빈익빈 부익부의 자살왕국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50여 년에 걸친 눈물겨운 민주화운동은 절대로 사유재산권과 시장만을 절대시하고 빈부격차가 날로 확대되며 신분까지 대물림되는, 지금 같은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독재자 박정희가 반(비)시장 정책을 펼쳤다고 해서 민주주의 정권이 반드시 ‘시장 자유주의’를 채택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여당의 ‘역사적 맞수’는 급진적 시장주의자인 그들을 좌익이라고 우겨대는 황당하고 무지한 수구세력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민중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박정희다. 이미 ‘독재는 경제성장으로 민주주의의 기반을 만들었는데, 민주화세력은 도리어 그 기반을 허물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명심해야 한다.

 

출처 : 월간 말 2월호 데스크 칼럼, 이종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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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 편집장은 나와는 막역한 사이로 10여년 전부터 인연이 시작됐다. 학구적이며 진지한 이 편집장을 나는 '종태형'이라고 부르고, 종태형도 나를 '진순이형'으로 부른다. 형과 소주를 마시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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