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노무현 대통령이 강금실 법무장관을 전격적으로 경질한 이유는 아직까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은 강 장관의 경질과 관련해 어떤 배경 설명도 하지 않았다. 강 장관도 “인사 대상자가 인사 배경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만 언급했을 뿐이다.

참여정부를 상징하는 각료로 꼽히던 강 장관의 전격적인 경질과 관련된 의문은 현재도 호사가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가에서는 각종 게이트 등으로 검찰과 권력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하면서, 여권 핵심과 불편한 환경을 조성한 강 전 장관의 독주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대선 자금’수사를 진두지휘하는 검찰을 통제 불능 상태에까지 빠뜨린 법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까지 거론했고, 인사 등 검찰 개혁 문제로 청와대 일부 참모진과 갈등도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나라종금 로비 사건’과 ‘장수천’등으로 잡음에 휘말렸던 386 참모 그룹의 핵인 ‘좌 희정ㆍ우 광재’와도 불편했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잇따랐다.

한 386 그룹 인사는 “당시 일이 꼬여 버렸다. 강 전 장관도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되뇌이는 바람에, 안희정 등의 주장이 진실임을 밝혀도 제대로 받아 들여질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을 원망하는 기류가 일부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최근 열린우리당의 핵심 당직자는 “표면적인 이유는 검찰 장악을 원만히 하지 못했고 인간적인 마찰이 있었지만, 그 후 정치 구도 변화 속에서 강 전 장관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는 게 사실”이라고도 했다.

정부의 대외활동에 적극적 행보

최근 강 전 장관은 민간인 신분으로 정부의 대외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특히 2004년 12월 28일 국무회의에서 대외직명대사인 여성인권대사로 임명되고, 1월 26일에 열리는 다보스포럼에서 통일부 정동영 장관과 함께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참석하게 된 것도 이례적인 행보로 풀이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대외직명대사는 대통령이 임명해야 하므로 주무부처인 외교부와 청와대가 수시로 협의, 국가의 주요 인적 자원인 강 전 장관을 발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국무회의 의결에 앞서 청와대와 외교통상부가 강 전 장관 발탁 문제를 놓고 협의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노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는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라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 고영구 국정원장, 문재인 시민사회수석 등은 노 대통령의 핵심 보좌진들로 강 전 장관과 의식을 공유하는 민변통이다. 민변 사람들은 참여정부의 새로운 실세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들 사이에서 “강 전 장관의 사퇴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다”는 말들까지 나왔다.

사임 직후, 강 전 장관은 “당분간 쉬고, 원래 있던 법무법인으로 복귀할 것”이라면서 현실 정치와는 거리를 두려는 발언들을 했다. 그러나 측근들 사이에서는 “이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만큼 본업인 변호사 이외의 새로운 영역에서 활동을 재개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해 지고 있다.

현재 강 전 장관은 자신의 사무실(법무법인 지평)로 출근하면서 직접 법정에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본격적인 변호사 업무를 재개할 경우, 민변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시기는 이르면 다보스 포럼 참석 이후부터 우리당의 전당대회 이전 사이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경우 강 전 장관이 노대통령 탄핵 당시 법리적 조력을 구한 것으로 알려진 민변은 복귀 지지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386 그룹 모임에서 강 전 장관의 당 영입설을 주도하고 있다는 관측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해 왔던 이들은 강 전 장관과 여러 모로 코드가 맞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다. 강 전 장관이 활동했던 법원내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도 국보법에 관한 한 즉각적인 전면 폐지나 개정 입장 쪽이었기 때문이다.

정치 전면에 나서기 위한 정지작업

우리당의 서울 출신 한 의원은 “청와대가 최근 강 전 장관을 위해 공 들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던 과거와 달리 강 전 장관의 현재 행보가 유연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심전심’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상호 난타전이 계속되고 있는 대권 주자군과 다르게 강 전 장관의 신선도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면서, “그의 매력은 우리당의 지지 기반이 취약한 곳에서 더욱 발휘되고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4ㆍ15 총선 이후엔 서먹서먹했던 노대통령 직계 그룹과도 교감이 있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이광재 의원이나 안희정 씨 등 여권 전략통과 관계가 밀접해 지기는 어려운 면이 있겠지만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커진 상태”라면서 “우리당의 일부 중진 그룹조차도 강 전 장관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있어 긍정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여기에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주미대사 내정은 강 전 장관의 재등장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관가에서는 통일부 정 정관과 친화성덕에 친노 그룹이 홍 회장을 낙점하게 된 것이라는 소문이 흘러 나왔다. 홍 회장의 동생인 홍석조 인천지검장은 강 전 장관의 입각 초기 시절, 상당한 의견 교환을 나눴던 검찰 내 측근으로 지목된 인사.

특히 청와대가 여권 일각의 흐름과 맞물려 강 전 장관의 대외 업무를 위해 상당히 배려하고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강 전 장관도 신상 발언은 거의 하지 않은 채 해외 행사 등에만 치중하고 있는 터라, 그의 신중한 행보는 복귀를 위한 ‘정지 작업’으로 해석되고 있다. 우리당의 당권 경쟁과 대권 예비 후보군 간의 치열한 각축전 속에서 사실상 카운트에 들어 갔다는 것이다.

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강 전 장관은 절대로 버려진 카드가 아니었다”라면서 “대권 예비 후보들의 견제도 있겠지만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강 전 장관은 김영일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후임자로 가장 높은 호감을 받는 인물로 선정되는 등 그는 식지 않는 대중적 인기를 확인시켰다.

그러나 강 전 장관은 현재까지 현실 정치에 대한 어떤 발언도 삼가고 있다. ‘매혹의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평가받는 강 전 장관의 사이버 팬 카페에는 “정치가 싫은, 그러나 타고난 정치적 센스의 소유자”라는 한 지지자의 글이 올라와 있다. 화려한 복귀를 위한 ‘침묵’일까?

정치권은 태풍 전야인 양,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조용히 지켜 보고 있다.

최진순 서울신문 기자 soon69@paran.com

출처 : 주간한국 200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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