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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실용주의'와 노무현號의 딜레머

by 수레바퀴 2005. 1. 13.

한국사회는 지난 세기 내내 '분단'의 질곡과 '민주화'의 질풍노도를 견뎌낸 끝에 오늘날 비주류세력 집권을 경험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시민참여 환경에서 '권위주의' 해체와 함께 꾸준히 신장됐다.

이러한 민주화의 진척은 결국 DJ와 노무현 대통령을 정치적 실세로 등장시키면서 비합법적 투쟁시대의 종지부를 찍게 했다. 또 계급적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개조를 시도하는 정치노선 보다는 다양한 층위에서의 연대의 관점이 부상하게 됐다.

한국정치에 있어 이같은 연대는 DJ-JP간 연합노선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집권'의 교두보로써 보수정파와 기계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범개혁진영이 사실상 추인하는 과정에서 수정주의라는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號도 막판 정몽준 세력과 연대를 도모했고 결과적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이 대목은 과거에는 지역정서라는 토착적 전통적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정치행위가 두드러졌다면, 21세기는 자본세력과 실용주의 노선을 통한 협력행위가 우선임을 시사한다.

전자가 일방적이며 관행적인 정치 커뮤니케이션이었다면 후자는 상호적이며 계약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끈다. 이때문에 최근 집권세력 일각에서 '실용주의가 개혁의 한 방법론'이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예컨대 더 이상 지역정서에 의존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고, 지역을 '계약관계' 즉, 국가발전전략의 테제로 설득시키고 포함시킨다는 이데올로기이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이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반대한 것도 그 같은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엄청난 '실착'을 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나라당은 집권세력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지역주의 시각(집표력)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에 스스로 낡은 관점을 드러냈다. 이같은 태도는 참여정부가 지금까지 권력의 핵심인 사법-행정-입법을 상대한 형식(stlye)을 간과한 것에서 비롯된다.

노대통령은 집권 직후부터 그간의 공식적이면서도 일방향적인 3權과의 관계를 파격적이고 대중적인 '도전장'으로 변경하려고 했다. 때문에 노대통령은 집권 2기까지는 권력 내부를 향해서는 부단히 충격요법을 실시하고 경쟁적 권력집단인 정당과 의회에는 비타협적인 전술을 취했다.

이같은 전무후무의 '담판' 정치와는 별개로 대중을 향한 메시지는 '반칙과 특권을 없애겠다'는 논쟁적 화두만 제시해 반대파들과 끝없는 갈등을 벌였다. '정쟁적' 개혁은 요란하고, 실제적 개혁은 사라진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그런데 노대통령이 탄핵 이후 보여준 행보는 기존과는 다르게 집권 반환점 이후를 생각하는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지나치다 못해 기득권에 대한 구애가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 이기준 부총리 인사 파문을 둘러싼 청와대 책임인사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해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개혁세력이 사회적 소수로 고립돼 있어서 보수세력의 반발을 중화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보수 인사를 쓰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개혁을 버리기 위한, 우경화된 전략이라면 매우 잘못이다"라고 지적한다.

이 문제는 노무현號의 '신자유주의 프로그램' 고수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가 계속된다는 점에서 중대한 과제를 던진다. 양극화는 집권세력의 지지층인 서민층을 고달프게 하고 결국 노무현式 개혁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중도적이고 실용적인 노선으로 지지도가 회복된다고 해서 다 끝나는 사안이 아닌 것이다. 총체적 개혁 요구가 광범위한 영역에서 제기·누적되고 있는 데도 이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은 보이지 않고 개혁후퇴 조짐만 나오고 있는 점은 더욱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또 집권당의 개혁프로그램도 전략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구체적인 제도개혁 협상과정에서 지루한 내부 갈등까지 터졌다. 참여정부 집권초기의 비타협적 개혁 노선은 대부분의 언론과 기득권에게 찬사를 받지 못했지만,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협력적이고 관용적인 노선으로 전환하자 가장 먼저 내부에서 그리고 지지층에서 분란과 이탈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참연 등 당 외곽의 지지자들이 우리당을 '접수'하겠다는 비장한 일성은 최근 노무현式 개혁의 성적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노대통령 스스로도 '개혁'에 완급을 가하고, 집권당도 노선경쟁에 여념이 없는 상황에서 참여정부는 갈 길을 잃고 있다고 해도 다름없다.

신자유주의에 '메스'를 댈 수 없다면 범개혁진영은 결코 합해지고 협력할 수 없다. 가장 먼저 대립한다. 그것은 권력의 속성상 곧 또다른 연대의 비상구를 찾게 한다. 결국 그 주소지는 '자본' 이외엔 없다. 거대 자본에 예속되는 권력은 우리당의 지지층을 점점 세밀하게 분열시킨다.

노무현號와 지지자들은 현존하는 ‘권력’(질서)을 격정적인 비평의 무대 위에서 해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실천되는 ‘개혁’이 보다 근본적인 수위에서 일어나야 함을 한 목소리로 대변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당과 민노당의 협력모델이 17대 국회에서 나와줘야 한다. 그것은 범개혁진영의 역사적 과제이며, 시대가 부여한 진정성에 입각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믿는다.

 

최진순 기자

출처 : 데일리 서프라이즈 www.dailyseopri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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