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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개혁세력의 장기집권을 위하여

by 수레바퀴 2004. 12. 17.

한국의 정치지상주의는 이념과잉을 낳고, 사회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민감한 사회적 의제에 대해 합리적인 의사소통 기제 대신 이전투구가 몰려들고 있다. 이 같은 이기적·감정적 갈등은 이해 당사자들을 문제의 본질보다는 싸움 그 자체에 매몰시킨다.

예를 들면 ‘신행정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처리 문제도 결국 이해관계에 놓인 일면적인 지역-이념의 가치로 인해, 대승적인 결론으로 향하는 것을 방해했다. 냉전과 분단이 작동하던 시대에는 반공주의 같은 하나의 가치와 전망을 향한 불굴의 의지가 중요한 기제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이 시기는 권력이 정보를 독점했기 때문에 그것의 부정의함을 오롯이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가 신장되고 냉전질서가 사실상 와해되면서, 반공 같은 고정불변의 진리가 존재할 공간은 없어진다. 한국사회는 이제 하나의 조건-분단국 등으로 규정될 수 없는 문화적·정서적 현상이 계속 분출하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레드’, 2003년과 2004년의 ‘촛불’은 놀랄만한 시민적 에너지에 해당한다. 이것은 모두 과거의 ‘강제동원’과 ‘억압’이라는 상호소통의 양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성’과 ‘자유주의’에 기반을 한 것이다.

개인의 창안을 존중하는 가운데 최근 5년 사이에 한국의 문화예술 콘텐츠가 다룬 정치는 과거의 권위적인 권력과 문화를 희화화하고 비판하는 데 초점이 모아져 있다. 이러한 흐름들은 그동안 정치적 비주류에 있던 호남출신의 정치지도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영남권의 노무현 현 대통령이 등장하는 등 정치세력의 교체가 그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DJ가 ‘민족통합’이라는 이상(idea)을 한국의 비전으로 제안했고, 노대통령은 ‘권위의 해체-특권과 반칙의 철폐’라는 현실(real)개조를 부상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는 지난 세기를 옹호할만한 근거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반동의 흐름도 관찰된다. 그것은 과거의 냉전이념의 회생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거의 매일 서울 도심에서 ‘反北反金’ 시위를 벌이고 있고, 그 수위를 점점 고양시키고 있다. 사실상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도구들이 그들의 호소를 위해 쓰여진다.

수구이면서도 수구가 아니라고 하는 생떼와 정치적 변절을 이미지 메이킹으로 덮어버린 ‘뉴라이트’ 운동도 그칠줄 모르고 전개되고 있다. 이 결과 구기득권이 아직 정비되지 못한 독재시대의 용어와 제도로 ‘자유민주주의자’를 ‘친북주의자’로 매도하는 기현상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수구냉전’의 20세기 양식을 수호하려는 시도가 그나마 먹혀 들고 있는 것은, 열린우리당의 무능과 부조리함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보다 본질적인 착오가 있다. 이것은 노대통령을 위시한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와 ‘친미’로 무장한 채 자본의 논리를 한국사회에 그대로 이식하면서도, ‘개혁’-사회개조를 부르짖는 이중적인 경향에 근거한다.

주로 이러한 양태는 분배문제 등에서 부정직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장기 불황에 놓인 현재의 상황에서 대부분의 참여정부 지지자들이 경제적 내핍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상당수 지지자들은 이미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정치개혁에 대해 절망하고, 정치냉소에 빠졌다.

이 절망과 단절은 현재의 한국정치를 더욱 무질서하게 끌어가서 마침내는 회향(懷鄕)-과거 시대의 가치와 환경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을 유도하는 불씨로 이어지고 있다. 엄중한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정권과 全개혁세력이 참여하는 라운드가 펼쳐져야 한다.

이 라운드에서 집권당과 참여정부는 스스로 겪고 있는 시행착오를 과감 없이 공개하고,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진보진영은 전략과 전술을 공유하면서 안정적 개혁플랜을 확정시켜야 한다. 그래야 개혁세력의 장기집권이 제대로 시동 걸릴 수 있다.

 

출처 : 데일리서프 2004.12.17.

         http://www.dailyseop.com/data/article/12000/000001148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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