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브랜드'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6.12.06 '조선일보' 브랜드의 재정의
  2. 2006.08.03 '멍청한' 신문과 '영리한' 독자

'조선일보' 브랜드의 재정의

Online_journalism 2006. 12. 6. 13:24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선닷컴 개편과 관련 ‘개인화 서비스’, ‘웹 2.0’이란 수식어와 함께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 이번 개편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RSS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마이홈’이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이용자들의 뉴스 소비 패턴을 고려할 때 조선닷컴 '마이홈'이 별로 효용가치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여기에는 그간 조선일보에 대한 남다른 인식도 자리한다. 지금까지 조선일보 브랜드는 일반적으로 권위, 권력, 냉전성을 상징하는데, (일부이기는 하지만) 콘텐츠가 수구적이며 기득권적이라는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비판 속에서 오프라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조선일보지만 인터넷에서는 주춤거려온게 사실이다. 오마이뉴스에 밀렸고 포털 뉴스에 휘청거리고 있다. 조선일보(의 콘텐츠)가 확립한 브랜드의 명성이 인터넷에선 죽을 쑨 것이다. ‘조선닷컴’은 전열을 정비하고 서비스를 확대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조선일보는 올해 초 (주)씨디네트웍스와 함께 합작회사를 만들어 동영상 포털 ‘엠군’을 맡았고, 신문사 내부에 TV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영상미디어부도 신설했다. 통합아카이브 구축에 이은 ‘뉴스뱅크’-신디케이션 사업도 착수했다.

 

과감한 투자로 전환한 지난 1년여는 ‘조선닷컴’을 새로운 변화의 길로 진입시키기에 충분했다. 조선닷컴 관계자는 “개방과 공유의 정신을 실현할 것”이라면서 의욕을 다지고 있다.

 

이번 조선닷컴 개편은 그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올드미디어 뉴스조직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과정을 거쳐 주목된다.

 

첫째,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등 논조가 다른 매체의 기사를 수용한 것은 전향적인 조치이며,

 

둘째, 여기에 외부 파워 블로거의 콘텐츠도 함께 배치한 것은 UCC에 대한 철학의 변화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며,

 

셋째, 이러한 조치들이 조선일보 경영진 및 스태프(Staff)들에 의해 추인됐으며,

 

넷째, 서비스 담당자들이 ‘개방과 공유’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의 미덕을 존중하고 있고

 

다섯째, 이러한 변화가 일과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만약 다양한 독자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논쟁하는 그릇으로서 조선닷컴이 자리잡게된다면, ‘조선일보’라는 브랜드를 새롭게 정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실 오프라인에서 수립된 ‘조선일보’ 브랜드 파워는 온라인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충성도(royalty) 높은 독자들을 보유하는 것은 모든 신문업계의 고민이다. 그런데 오늘날 독자들은 매체보다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독자들이 매체를 선택하고 규정하고 있다. 부정하고 싶고 깎아 내리고 싶지만 이제 저널리즘은 독자들의 수중으로 넘어왔다.

 

조선일보는 이러한 미디어 환경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갈등적인 담론들, 냉전의 언어들, 기득권 수호의 선동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로 성공하지 않고서는 절름발이 언론이 될 수밖에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식대중으로 성장한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접점을 형성해야 한다. 조선일보 복제판인 ‘조선닷컴’이 아니라 다양한 소통의 근거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은 중요한 키워드이다.

 

이번 개편이 그러한 과정의 시작이 되길 기대한다. 완숙하고 훌륭한 콘텐츠와 저널리즘을 기대하는 파워 블로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1등 신문의 브랜드가 되길 기대한다.

 

조선닷컴의 변신이 만약 그러한 길 위에 있다면, 그러한 창조적 혁신의 기치 위에 있다면 충분히 평가받을만 하다.

 

덧글. 정호님의 트랙백에 답을 대신하는 포스팅입니다. 트랙백을 원하지 않아 부득이 제 블로그에만 걸어두었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멍청한' 신문과 '영리한' 독자

Online_journalism 2006. 8. 3. 16:33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굴뚝산업 시대를 대변하는 신문은 산업 패러다임이 IT로 급변하면서 두 자릿수 성장을 완전히 멈췄다. 스포츠신문이긴 하지만 대도시에서 발행되는 신문이 마이너스 성장을 견디지 못하고 윤전기가 멈추는 유례없는 일까지 겪어야 했다. 신문산업 전반에 구조조정이 되풀이 됐고, 임금은 쪼그라들었다.

신문산업이 재편되는 진통이라고 하기엔 참담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다. 비관적인 신문시장의 현실은 통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경제활동인구 2300만명. 2005년 11월말 현재 총가구수는 1600만. 이중 신문구독가구는 긍정적으로 잡아도 50%가 되지 않는 데다가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다.

여기에 종합일간지 3개사의 시장 점유율이 과반을 넘겨 최대 70%를 훌쩍 넘기고 있다. 신문기업간 빈익빈부익부가 고착화하면서 뉴미디어 시장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A신문은 수십억대의 TV스튜디오를 구축했지만, B신문은 지난 3년간 인터넷을 포함 뉴미디어 분야에 0원이 투자됐다.

C와 D신문은 통합뉴스룸을 구축했지만 뒷받침되는 투자재원이 없는 데다가 효과적인 전략이 부재, 핵심 인력들만 떠나 보내야 했다. E신문은 수년간 홈페이지 개편도 하지 못했다. F와 G, H 신문 등은 이렇다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지 못한 채 사진, 기사 등이 아날로그로 쌓여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신문산업 전반이 활력을 잃는 것은 조직내부의 노령화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기자협회보는 편집국내 차장급 이상 간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50%를 넘으면서 ‘역피라미드형’ 구조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검증되지 않고 딱딱한 조직의 노령화는 천편일률적인 콘텐츠를 반복하는 것으로 이행된다.

지난 2주간 만난 몇개 신문사의 경영기획실 관계자들은 미래에 대해 낙관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 영화와 TV의 관계처럼 뉴미디어를 보완하는 신문의 역할이 분명히 있고 둘째, 신문산업을 민주주의라는 큰 틀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였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 준비하는 것은 진부했다.

신문사 간부들의 낙천적인 관점은 ‘콘텐츠’라는 주제에서도 드러났다. A신문의 한 관계자는 “독자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고, 우리가 생산하는 콘텐츠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콘텐츠와 독자가 과연 유의미한 것인지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신문산업의 지난 시절은 정보와 유통의 독점시대였다. 발행부수와 유가부수를 적당히 포장하면 됐다. 그러나 이제는 신문발행을 늘린다고 광고주들이 동감하는 시대는 아니다. 모든 것이 계량화하고 투명해지는 디지털 경제에서는 얼마나 수준 높은 시장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콘텐츠라는 ‘끈’에서 확보된다. 따라서 콘텐츠에 대한 남다른 기획과 투자는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지점이다. 몇 년전만 하더라도 콘텐츠 품질이 판매 부수의 많고 적음으로 직결되지 않았지만, 인터넷을 포함 다양한 플랫폼들은 이용자들에 의해 선택될 때만 유효하게 대접받고 있다.

CBS의 노컷뉴스, 머니투데이의 스타뉴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 현재까지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다른 관점의 창조에 의해서 콘텐츠를 생산, 유통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문기업들은 아직도 낡은 환경에 안주하고 있다. 일반적인 신문기자들은 여전히 신문기사로 모든 업무를 마치고 있다.

신문 편집국은 정치-경제-사회-스포츠라는 부서와 출입처에 의존하고 있다. 수직적인 위계질서는 창의와 도전을 단념케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독자와 소통하지 않는 기자들이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정치인들과는 골프를 치러 다니고 있다. 권력을 흠집내는 것이 독보적인 콘텐츠라고 착각하는 오만함도 그치지 않고 있다.

미디어 패러다임이 근본부터 바뀌고 있는 데도 기자와 콘텐츠는 진화하지 못하는 것은 신문의 한계다. 신문 그 이상의 신문을 원하는 현대 지식대중의 눈높이는 방대한 지식커뮤니티를 연출하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다.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시키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에서 신문과 신문의 콘텐츠는 더 이상 새롭고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지천으로 널린 그저 그런 콘텐츠일 뿐이다. 날마다 ‘색깔론’을 들이대는 A신문은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우겨도 이미 그 신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잘 알고(Know) 있다.

영리한 독자들은 신문 브랜드에 대해서 아예 낙인을 찍으며 동조의 세력을 넓히고있다. 블로그 커뮤니티에 가보면 한국의 권위지라고 알려진 신문들은 액티브 유저(Active User)들에 의해 난도질 당하고 있다. 지식대중에게 더 이상 어떤 신문은 선호되지 않는다.

신문이 ‘가’라고 쓰면 독자들은 막연히 받아들이지 않고 수십 갈래로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한번 신문과 콘텐츠를 부정(不正)한다. 그런데도 신문은 똑같은 태도와 관점으로 지면과 인터넷을 낭비한다.

다매체 다채널. 공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다양성의 요구는 증대하는데 똑같은 콘텐츠들이 넘실댄다. 가령 웰빙 섹션을 만들면 모든 신문이 잘 먹고 잘 노는 것에 집중한다. 자동차 섹션이 붐을 타면 너도나도 자동차 이야기를 한다. 연예인 누드 사진조차 다른 것이 없는 똑같은 것의 재배포다.

이러한 신문 콘텐츠의 한계는 신문을 만드는 저널리스트의 창조력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신문이 브랜드의 관행과 관점, 관성을 벗어나지 않는한 뉴미디어는 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영리한 독자들은 서서히 신문과의 관계를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

반대로 신문은 더 멍청해지면서 마치 투견장에서 얻은 경험을 되풀이해 잃어버린 권력과 권위를 찾으려 안달이다. 그러나 그것은 콘텐츠를 모독하는 일이고, 브랜드를 파탄내는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뉴미디어의 콘텐츠는 얼마나 다양한 통로를 열어 두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된다. 경쟁매체의 기사도 링크하고, 다른 시각도 공정히 다루는 일 따위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 전략이 요구된다. 여기에는 뉴스조직, 콘텐츠, 독자에 대한 전략의 재조정이 수반된다.

한국시장에서 대단히 영리해진 독자들을 이끄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한번 연결된 영리한 독자는 브랜드의 전령이 된다. 오마이뉴스처럼, BBC처럼, 변모하고 창조적이며 수평적인 브랜드는 시장의 든든한 백그라운드다.

혁신과 자기희생의 길로 가는 신문기업의 오너십만이 굴뚝산업과 냉전시대의 향수와 권위를 좇는 멍청한 신문을 막고, 영리한 독자와 악수하는 길을 연다.

덧글. 기자협회보 인터넷판 2006.8.3.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최진순 기자의 온라인저널리즘의 산실
역사, 사랑, 생애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by 수레바퀴

카테고리

전체 (1150)
Online_journalism (480)
뉴스스토리텔링 (8)
포털사이트 (126)
온라인미디어뉴스 (153)
뉴스미디어의 미래 (70)
뉴미디어 (44)
Politics (119)
TV (96)
자유게시판 (45)
독자의 질문에 답합니다 (8)

달력

«   2021/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2,473,745
  • 173211
구글광고부분.
textcubeget rss

최진순 기자의 온라인저널리즘의 산실

수레바퀴'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수레바퀴 [ http://www.onlinejournalism.co.kr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 DesignMy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