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nline_journalism

[펌] 건빵 도시락에서 신생아 학대까지…뉴스 흐름 변화시키는 인터넷

by 수레바퀴 2005. 7. 4.

각종 혐의로 도피행각을 벌이던 전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씨가 지난달 5년 8개월 만에 돌아왔다.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는 얘기는 있었으나 그가 ‘한국인’임을 의심치 않던 언론이었다.

 

그런데 귀국 이튿날 “김우중씨는 프랑스인”이라는 내용의 이데일리 보도(<김우중, 한국국적 ‘당연상실’됐다>)가 인터넷을 타고 전달됐다. 이 기사는 다른 매체들의 눈길을 끌었고 연이어 보도됐다. 통신, 신문, 방송할 것 없이 법적으로 한국국적을 ‘당연상실’한 ‘프랑스인’ 김씨를 다루면서 김씨에 대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그렇지 않아도 국적법 문제 등으로 민감하던 국민들에게 김씨의 자발적인 국적 포기는 동정론이나 공적 재평가 여론을 희석시키는 역할을 했다.

 

인터넷, ‘세상’을 흔들다


진앙지는 인터넷이었다. 신문, 방송, 통신 등의 수많은 다른 매체들이 김씨에게 매달려 있었지만 인터넷 매체 이데일리의 가장 앞선 보도가 여론을 흔든 기폭제가 됐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는 달라진 매체 환경을 보여주는 한 풍경이다.

 

제임스 딘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에서 “10년 뒤엔 알게 될 거다”란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당장 대답이 필요해요”라고 반항한다.

 

어느덧 신문 방송 등 기성 매체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 인터넷은 반항하는 아들의 요구에 맞춰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종이신문이 이를 먼저 취재했다면 “하루 뒤면 알게 될 거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당장 알고 싶다”고 소리칠지도 모른다. 고압적인 아버지의 전달방식에 반항하는 아들이고픈 독자들은 인터넷을 선택한다.


인터넷 언론의 사례를 처음 들었지만 인터넷 자체가 지니는 파괴력이 현대사회를 흔들고 있다. 미디어계의 재편은 물론 뉴스 메이킹부터 확산까지 인터넷은 강력한 전염력을 무기로 여론 형성에 절대적인 기여하고 있다. 매스미디어시대의 의제설정이나 사회적 여론 형성의 기능을 담당했던 신문?방송의 역할을 순식간에 낚아챈 것이다. 인터넷이 지닌 ‘접근권의 개방’과 ‘선택권의 확대’가 불러온 결과다.

 

인터넷은 정보의 생산, 전달, 소비의 프로세스의 혁신을 이뤘다. 누구나 뉴스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이자 자신을 알리거나 노출할 수 있는 루트를 인터넷은 제공했다. 바야흐로 이용자는 ‘자발성’을 기초로 왕성한 생산력을 과시하고 있다. 미디어의 수용자에 불과했던 이들이 미디어의 주체로 거듭나는 순간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실체를 잡기 힘든 ‘보이지 않는 위협’이다.

 

기성매체도 깜짝 놀란 인터넷의 ‘포스’

 

국내에서 인터넷의 ‘포스’가 폭발한 시기는 지난 2002년 대선을 전후해서다. 이에 앞서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사가 나타났다. 지난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현장의 생생한 상황을 외부에 알리며 새로운 미디어의 전형을 보여준 인터넷은 이듬해 피지의 쿠데타 때도 빛을 발했다. ‘피지라이브닷컴(fijilive.com)’은 언론보도가 통제된 상황에서 15분 단위로 현지 소식을 타전했으며 CNN과 BBC 등의 언론들이 이를 받아 확산시켰다.

 

국내에서도 2000년 인터넷 언론이 속속 등장, 리얼타임의 매력과 인터넷 저널리즘의 장을 열면서 인터넷 포스의 서막을 알렸다. 아이뉴스24가 출범직후인 2000년 3월,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컨셉으로 돌풍을 일으킨 골드뱅크의 경영권 분쟁을 다룬 주총 현장을 내보내 파격을 보여줬다. 이데일리도 출범 사흘 만에 <제일제당, 삼구쇼핑 인수>라는 특종을 터뜨리며 곧바로 증시를 뒤흔들었다.

 

오마이뉴스도 같은 해 10월 고려대에서 벌어진 ‘김영상 전 대통령과 김병관 동아일보 사장의 추태’를 17시간동안 현장 중계,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인터넷 언론들은 이처럼 같은 시간대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뉴스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뉴스 생산의 즉자성을 보여줬다.


최현석 이데일리 기자는 “초단위로 빠르게 움직이는 금융시장 특성상 인터넷 경제 매체는 출범직후부터 빠르게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며 “무엇보다 뉴스 이용자들의 욕구를 파악해 이를 반영한 것이 인터넷 매체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2002년은 다양한 사건과 이벤트로 인터넷의 위력을 배가시킨 해였다. 월드컵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의 활성화를 꾀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 등은 인터넷을 통한 사회적 의제 설정과 이슈 선점에서 인터넷이 주도권을 잡도록 했다.

 

그리고 대선. 노사모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가 위력을 발휘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이끌었다.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언론들도 과잉의 열기를 제한 없이 담아낼 수 있는 그릇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 주류 언론의 상실감을 크게 만들었다. 

 

인터넷 대중의 습격, 세상을 바꿔놓다

 

이 같은 과정에서 인터넷은 뉴스 생산 주체의 폭을 적극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포털사이트는 콘텐츠 이용자와의 성공적인 조우로 새 미디어의 전형을 보여줬다. 커뮤니티를 비롯, 개인형 미디어의 창출도 이뤄졌다.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거나 도드라지지 않았을 많은 일들이 속속 공개됐고 변화를 이끌어냈다.

 

인터넷을 통한 일반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언론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 구석구석을 길어 올렸다. 지난해 지나가는 걸인에게 빵을 나눠준 빵집 아가씨의 훈훈한 미담은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됐으며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에서도 인터넷 대중들은 언론의 신중치 못한 태도를 질타한 것을 비롯, 경찰의 폭언에 항의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언론 경찰 정부 등의 현실을 움직였다.

 

또 △정부의 급식단가 인상을 이끌어낸 부실 도시락건(1월) △가수 김상혁 뺑소니 사건의 재수사를 이끌어낸 미니홈피 추적(4월) △간호조무사의 직업윤리에 경종을 울린 신생아 수난 사진(5월) 등이 있었다. 


최진순 서울신문 기자는 “온라인 저널리즘의 확산은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과정, 게이트 키퍼 등 뉴스 관행과 형식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며 “특히 수용자의 위상 변화가 두드러져 종전에는 수동적인 소비자였지만, 현재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매체와 만나 정보의 확인, 선택, 해석 등을 사실상 수용자들이 일부 맡게 되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또 “이에 따라 뉴스 유통 과정에서 수용자들은 적극적인 행위자가 되고, 정보수집이나 전달, 배포 역시 수용자 조직들로 넘어가고 있다”며 “그러나 뉴스를 소비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갈등 요소들, 또 뉴스를 유통시키면서 발생하는 저널리즘의 훼손 등에 대해 새로운 관점의 개입과 참여, 정리가 요구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은 유희의 공간


그런 한편으로 인터넷은 유희의 공간이다. 갖가지 테마로 이름을 갖다 붙인 ‘화제녀’들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 ‘웃긴대학(www.humoruniv.com)’ ‘도깨비뉴스(www.dknews.co.kr)’ 등의 사이트를 중심으로 발굴(?)됐다. 그 시발은 ‘딸녀’였다. 딸기를 양 손에 든 한 여성이 독특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서 유래된 ‘딸녀’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주인공의 정체를 놓고 설왕설래하는 풍경도 연출했다.

 

이어 ‘핥녀’ ‘광녀’ ‘만질녀’ ‘떨녀’ ‘덮녀’ 등 숱한 ‘~녀’ 시리즈가 인터넷에서 인기를 모았다. 일부 인터넷 대중들은 이 사진들을 활용한 합성작품을 내놓으며 유희를 즐겼다. 포털사이트 엠파스(www.empas.com)의 ‘아네모네’라는 아이디를 가진 인터넷 대중은 이 같은 인터넷 화제녀를 총정리했으며 쿠키뉴스가 이를 인용해 기사화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떨녀’와 같이 언론사간에 기획사 개입여부를 놓고 공방을 펼친 사례도 있다. 여기서 대부분의 경우 인터넷은 그저 별다른 의미 없이 재미를 공유하는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발굴과 전파의 과정은 순식간이다.

 

또 이른바 기사 댓글에 등수를 매기는 ‘등수놀이’나 특정 기사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견을 쓰는 ‘성지순례’도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주로 이뤄지는 이 ‘놀이’ 역시 기사 내용과는 큰 상관없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다소 의도가 가미된 댓글들도 있다. 이른바 ‘피싱’이나 ‘낚시글’이라 불리는 이 댓글은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내용을 적고 이를 보기 위해 특정 URL을 미끼로 걸어놓고 방문을 유혹(?)하는 케이스다. 

 

인터넷의 다크포스

 

반면 인터넷의 다크포스도 분명 있다. 제다이(아나킨 스카이워커)와 다스베이더가 애초 동일 인물이듯 인터넷에도 분명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최근 지하철 차량에 자신의 애완견이 배설한 분비물을 치우지 않은 여성에게 ‘개똥녀’라는 오명을 붙었다.

 

‘~녀’ 돌림의 연장선상이긴 하지만 성격은 다르다. 해당 여성의 얼굴이 드러난 사진이 유포돼 많은 사람들이 이 여성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무리하게 나섰다. 무조건적인 질타와 처단을 주장하면서 인권을 침해한 일종의 ‘마녀사냥’식 사이버 테러가 이뤄진 것. 이 여성이 다니는 것으로 오해된 한 대학의 사이트는 접속자 폭주로 일시적인 마비가 되기도 했다.

 

또 애인에게 버림받고 자살한 30대 여성의 사연이 인터넷에 소개된 뒤 상대 남자는 신상과 신원이 알려져 항의전화 등을 견디다 못해 직장을 그만두고 잠적했다고 한다. 신생아 잔혹사 주체인 간호조무사들에게 씌워진 ‘주홍글씨’와 서울대 도서관 폭행사건의 가해학생이나 전후 맥락 없이 장애아 폭행죄를 덮어 쓴 대학생의 신상공개 및 명예훼손 등은 인터넷의 ‘쏠림’이 낳은 부작용이다. 특히 ‘카더라’식의 근거 없는 소문을 담은 이른바 ‘연예인 X파일’의 유포는 정신적 살인에도 비유될 만큼 파장이 컸다.

 

지난달 15일 열린 ‘정보통신 윤리와 성숙한 사회’ 토론회에서는 인터넷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례들이 열거됐다. 왕년의 엔터테이너 트위스트 김(본명 김한섭)씨가 포르노사이트 운영자라는 누명을 쓰고 전 가족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을 호소했고 사이버테러에 견디다 못해 가출한 딸을 찾아 나온 어머니도 있었다.

 

이 같은 부작용의 잇단 제기로 정부는 인터넷 실명제(실명제)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4대 폭력 근절 관계장관 회의에서 부분 실명제 도입의 검토가 논의됐으며 정보통신부는 10월까지 ‘사이버 폭력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반론을 꼬리처럼 달고 있다. 사이버 인권침해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실명제의 대안 여부는 의문부호가 붙어 있다. 실명 파악은 개인을 감시하고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할 여지가 있으며 개인정보보호와도 상충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상식선에서 유희와 명예훼손을 구분해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들의 의식 전환을 이끄는 것이 최선이라는 견해도 있다.  

 

출처 : 신문과 방송 2005.7. / 미디어오늘 이김준수 기자

덧글 : 본 포스트는 해당매체의 허락을 받고 게재한 것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