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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드라마 '제5공화국'에 정치권 촉각

by 수레바퀴 2005. 5. 4.


정치 다큐 드라마에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첫 방송된 MBC 특별기획 드라마 ‘제5 공화국’이 시작부터 이해 당사자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10ㆍ26부터 6월 항쟁에 이르는 현대 정치사를 다루는 ‘제5 공화국’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MBC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방송 직후 수천 개의 글이 올라오는 등 벌써부터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역사 재해석을 둘러싸고 5공 출신 현역 정치인들의 눈초리가 매섭다. 사실과 허구가 조합된 드라마 한 편이 현실 정치 지형을 흩어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강재섭ㆍ김용갑ㆍ박희태ㆍ정형근 의원 등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5공 출신 현역 의원은 10명 정도로, 3선 이상의 중진급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정치 드라마’가 뜰수록 불편하다. 5공 시절 민정계에 뿌리를 둔 의원들이 중요한 당직을 맡고 있는 등 여전히 비중이 큰 것도 아킬레스건이다.

 

TV, 영화와 같은 대중 매체의 ‘과거사 들추기’는 박근혜 대표에게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친다. 4ㆍ30 재·보궐선거 지원유세에 나섰던 박 대표는 아직 ‘제5 공화국’에 대한 언급을 유보하고 있다. “바빠서 보지 못했다”는 것인데, 영화 ‘그때 그 시절’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현 집권층과 대립세력을 다루고 있는 데다 차기 대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묘사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부드러운 ‘관심’을 내비쳤다. 아직까지 드라마가 본격적인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다소 느긋한 편이다. 상대적으로 홀가분하다는 자신감도 있다. 그러나 경북 영천 등 4ㆍ30 재보선에서 ‘5공 출신’ 후보 공천에 따른 당 정체성 회의감 증폭 등 당 안팎에서 본질적인 화두를 놓고 공방이 확산될 조짐도 있어 ‘남의 일’은 아니다.

 

연희동 측은 폭풍전야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들의 움직임은 부산한 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 이양우 변호사는 일단 “드라마에서 신군부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지켜본 뒤 입장을 밝히겠다”는 정도로 언급했지만 속내는 ‘폭풍전야’일 것이라는 전언이다.

 

‘제5 공화국’은 앞으로 12ㆍ12 군사 쿠데타에 이어 이철희·장영자 부부 사건, KAL기 피격사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6ㆍ29선언 등 노태우 정권으로 이양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굴곡의 역사적 사건들을 짚을 예정이다.

 

이 때문에 장세동씨 등 5공 핵심 인사들은 “사법적 판단과 진실과는 차이가 있다”면서 드라마 제작이 예고되던 때부터 소송 불사 등 구체적인 반발 움직임을 보여 왔다. 한 현역 의원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아직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들이 많은 데 무슨 권한으로 평가하겠다는 것인가. 정권을 누가 잡고 있

느냐에 따라 정치적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면서 드라마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또 전직 국회의원인 한 5공 인사는 “과거는 들추어 낼수록 쓸데없는 문제가 생긴다. 역사를 재구성하면 당사자와 상대 집단, 그리고 그것과 이해관계를 함께 한 관련자들이 서로 얽혀 있어 역사 평가와 해석은 50년 이후에나 타당하다는 것이 일반론”이라고 주장했다.

 

이 드라마의 유정수 작가와 임태우 PD 등 ‘386 세대’ 제작진들은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겠지만, ‘태동해선 안됐던 정권’이라는 평가는 그대로 드러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철저히 법원 판결과 청문회 기록 등 공인된 자료를 근거로 역사 해석을 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하고 있다. 즉, ‘12ㆍ12가 성공한 쿠데타’라는 대법원 판결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소송불사 반발"…정치개혁 기여 기대도


그러나 5공 인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5공 출신 한 현역 의원의 보좌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것만 보더라도 정치인과 역사에 대해 함부로 재단,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불확정적인 것인가를 알 수 있다. 5공의 탄생도 당시 여건상 불가피한 부분이 있는데 일방적으로 드라마를 통해 재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불과 25년 전의 역사를 조망하는 것 자체가 ‘시한폭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현역 국회의원들과 일부 예비 대권 후보까지 걸려 있는 문제인 데다가 ‘지역주의’‘색깔론’‘공작정치’ 등 퇴행적인 과거 정치를 보여주는 데 따른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MBC 고석만 제작본부장은 “시비에 휘말리는 게 정치 드라마의 묘미이자 고통”이라며 5공 인사들의 ‘소송 불사’ 등 외압 논란을 우회적으로 비껴 갔다. 또 첨예한 이해 관계가 얽혀 있지만 나레이션, 독백, 실제 인물의 증언 등 드라마적 장치들로 표현의 자유를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을 ‘영웅적’이거나 ‘인간적’으로 묘사하는 드라마의 속성상 또 다른 해석의 오류 가능성은 여전하다. 우리당의 한 386 의원은 “잘못된 역사의 청산이라는 대의는 지지하지만 역사적 주인공에는 관대한 극적인 요소는 TV 시청률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나친 상업주의를 경계했다.

 

그럼에도 여권 일각에서는 5공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의 뿌리가 남아 있는 한나라당과는 사뭇 다른 시각을 숨기지 않는다. 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TV 드라마가 과거의 그릇된 역사를 제대로만 풍자해낸다면 정치개혁에도 일정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감을 피력했다.

 

외압, 조기 종영 등 정치 드라마를 둘러 싼 갖가지 음모론과 억측을 뒤로 하고 10년 만에 본격적인 정치 드라마 재개를 선언한 ‘제5 공화국’이 이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방송 관계자들은 ‘시청자’들의 힘만으로 정치 드라마의 진로를 좌우할 수 있는 조건이 성숙돼 있다고 전한다.

 

‘제5 공화국’을 본 시청자들은 이미 수천건의 ‘비평문’을 올려 즉각적으로 화답했다. 극중 전두환 대통령이 ‘미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쏟아내는가 하면, 당시 시대상에 대한 고증에는 미흡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스타급 출연진들의 번득이는 연기력이 ‘역사 읽기’를 난처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편에서는 현재의 집권세력과 그 논리를 두둔하는 쪽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경고음도 울렸다.

 

정치 드라마가 진실의 역사와 반드시 일치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라고 해서 역사를 왜곡해도 괜찮다는 점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드라마 한 편에 정치권, 유권자 모두가 눈과 귀를 모으는 이색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현실정치가 왜소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울신문 최진순 기자 soon69@paran.com

출처 : 주간한국 20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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