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소수정파로서, 또 주류의 대척에서 갈등을 점화시키며 집권하기까지는, 그 전임 대통령인 DJ처럼 '드라마'였다. 노대통령은 민주-반민주 구도 속에서 성장한 대중적 정치인으로 좌절과 파란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사회의 변화를 암시하는 숱한 징후들을 투과하면서 승부사적 투혼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때문에 노대통령의 집권은 이른바 '시대정신'을 떼어 놓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정황이 있다. 그는 민주화운동을 체험했으며, 통일과 화합의 역사적 명제를 간직한 개혁세력의 리더로서 유권자들의 과반수에게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의회는 여전히 보수세력에 의해 장악됐으며, 사사건건 충돌했다.
여기에는 주류 기득권이 '노무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이 있었다. 이들의 오만은 도저히 집권이 불가능한 조건들을 다 가지고 있었던 노무현이 상황을 역전시켰기 때문이다. 그것도 통제되지 않는 모래알같은 '네티즌'들이란 새로운 개념의 '세력'이었다.
노대통령은 이 후원세력에 힘입어 특유의 갈등적 리더십, 펠로우십(fellowship leadership)으로 무장했지만, 결국 보수파가 다수를 점한 16대 의회에선 탄핵에 직면했다. 급변을 원치 않는 헌법재판소는 노대통령을 지켰다. 그리고 그 여세는 노대통령과 집권당을 의회의 다수파로 만들었다.
이제 한국 민주주의는 특정 정파의 독점 무대는 깨지고 있다. 그 대신 양당제, 나아가 다당제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은 시사하는 바 크다. 그러나 이 징후가 '변화' 즉 '개혁'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보수파는 '실체없는 개혁' 논쟁을 확산시키면서 노대통령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현재 의회의 다수를 점한 열린우리당이 '개혁'의 다수로서 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는 지지자들은 별로 없다. 우리당이 보수파의 견제를 끊임없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사법-관료-경제 등 한국사회의 전 영역에서 '노무현'은 공격당하고 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 위헌 결정은 한국사회의 '개혁'이 '노무현'이라는 소수세력에 의해 추진되고 있지만, 거대한 보수파인 주류 즉, 기득권에 의해 봉쇄될 수밖에 없는 삭막한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헌재는 '급변'-대통령의 有故도, '시스템'-인식체계의 변화도 용인않는 '이기주의'를 보여줬다.
이 이기주의는 한국 사회 주류의 전형이다. 그들은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변화하는 사회개혁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온건하며 시스템적인 개혁은 급진적인 시도보다 더 폭발적인 상황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파는 사력을 다해 그것을 막고 있다.
역사-교과서의 불온성을 논하는 의회의 치기어린 보수파들을 보라. 미디어-온라인과 대안매체의 폭발적 신장을 염려하는 조중동과 연합정파들을 보라. 기득권이 자원을 집중적으로 소유한 '서울'을 결코 잃을 수 없다며 배수진을 친 서울공화국의 무리들을 보라. 그들에게 21세기는 만고불변의 무대일 뿐이다.
여기에 맞서는 노무현을 위시한 개혁진영은 이미 지난 대선과 총선의 '다수'를 잃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지나면서 한국사회는 20~30대의 보수화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지성의 산실인 상아탑의 만연한 개인주의는 비정치화를 추동하고 있다. 특히 영-호남 지역갈등으로서가 아니라 계층-지역-나이를 불문한 갈등구도가 솟구치고 있다. 여기에 유연한 타협과 화해, 전향적인 조치들의 공간은 없다.
개혁의 '씨'가 마르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보수파에 의해 포위당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개혁진영의 10년 집권의 종착지가 눈앞에 보이려 한다. 역사의 진실은 하나이다. 그 진실은 통합(united)의 미래와 타협하는 것이다.
저 휴전선의 뚫어진 철조망이 아니라, 헌재 재판관들의 '관습'이 아니라 개혁이 점점 몰가치해지는 것에 분개해야 한다. 개혁은 일어서야 한다. 극단과 중도를 넘어 모든 개혁진영은 연대해야 한다. '씨'가 사라지기 전에 노무현과 같은 '드라마', 그 드라마의 콘텐츠를 민들레처럼 뿌려야 한다.
2004.10.27.
'Politic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권 '강남왕따'는 재집권 전략? (0) | 2004.10.28 |
---|---|
노무현 정부는 왜 '조중동'과 싸우는가? (0) | 2004.10.22 |
이제 '국민의 위헌'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0) | 2004.10.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