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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스타'로 뜨고, '망신살'로 지고

by 수레바퀴 2004. 10. 21.

국정 감사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스타’로 발돋움한 국회의원이 있는가 하면, 망신살이 뻗친 ‘낙엽줄’ 의원들도 속출하고 있다.

17대 국회 첫 국정 감사인 만큼 철저한 준비를 하고 나온 초선 국회의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의외의 돌출 발언이나 한건주의로 이목이 집중된 의원들도 적지 않다. 특히 이번 국감을 상당히 벼르고 나온 의원들의 ‘튀기’는 중진급 정치인 이상의 무게감을 주기도 하고,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도 해 관계자들의 가슴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육군 중령(법무관) 출신의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10월 12일 해군본부 국감에서 “ 원균은 임란시 무리한 출정으로 화를 자초한 반면, 이순신은 조정의 명령까지 불복하며 출정을 거부해 사직을 박탈당했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며 “ 한국 해군은 지역 해군(Yellow Water Navy)인만큼 무리한 해군력 확장은 주변국과의 마찰이 우려된다”고 지적해 ‘튀는’ 비유라는 평을 들었다.

보건의료직능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은 그 동안 모자보건법(개정), 고령사회기본법(제정) 등 7개 제ㆍ개정 법안을 발의해 법안 발의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선 여성 의원이다. 환경노동위인 장 의원은 보건의료에 해박한 지식을 같은 당 의원들인 김영춘(정무위)ㆍ유시민(보건복지위)에게 제안해 국감 자료집을 발간하는 등 소속 상임위가 따로 없는 활동을 선보였다.

- 의원 공동자료집·정책보고서 발간

독특한 실험과 의원 공동 자료집이나 정책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튀는’ 국감도 두드러졌다. 10월 4일 열린 국방위 국감에서 송영선 한나라당 의원은 화학 무기에 사용되는 물질을 직접 보여주며 정부의 화학전 대응책을 질타했는가 하면,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은 경찰청 국감에서 방탄복과 방탄조끼가 너무 무거워 경찰들이 착용을 꺼리고 있다며 방탄복과 조끼를 직접 들고 나와 무게를 실증해 보이기도 했다.

8일 부산에서 있었던 한국 수력 원자력 국정감사에서는 박순자 한나라당 의원은 강원도 도암댐의 오염된 물을 들고 나와 수질 오염의 심각성을 역설했는데, 박 의원 옆 자리에 있던 같은 당 김용갑 의원이 녹차인줄 알고 오염된 물을 다 마셔 버린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당의 초ㆍ재선 의원들은 특히 정쟁 국감 속에서 자료집이나 정책 보고서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열린우리당 이광철(문광위)ㆍ전병헌(정무위)ㆍ김영주(환노위)의 ‘ 한국 영화 발전 방안’ 공동보고서는 서로 다른 소속위 의원들이 함께 펴내, 달라진 국감 풍속도로 인정받고 있다. 무려 10여개의 정책보고서를 낸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농림해양수산위)의 ‘ 다작’은 팀플레이 못지 않게 눈에 띤다.

또 행자위 소속 열린우리당 양형일 의원과 원혜영 의원은 지난 12일 ‘ 참여정부 국정 과제 추진위 평가와 개선 방안’이라는 굵직한 주제의 정책 자료집을 냈고, 이인영ㆍ백원우ㆍ최재성ㆍ복기왕 등 젊은 386 출신 의원들과 조배숙ㆍ지병문ㆍ구논회ㆍ유기홍ㆍ정봉주 의원 등 교육위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 전원(9명)은 사립학교법 개정안과 관련된 정책 자료집도 준비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일에는 우원식ㆍ조정식ㆍ김형주 의원 등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 7명이 ‘효율적인 환경 행정을 위한 7가지 제언’이라는 공동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색적인 제안도 쏟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위 소속인 한나라당 서상기 의원은 연구원들의 연구 실적을 마일리지로 전환해 누적 포인트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연구 성과 실적 마일리지 제도’를, 문화관광위의 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 세계 20개국 주요 박물관에 흩어진 7만4,000여점의 한국 문화재는 환수보다는 오히려 그 자리에 두고, 한국 문화를 홍보할 수 있는 문화 사절로 활용하자”며 아슬아슬한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 여야 뒤바뀐 피감기관 질타

산자위 가스공사국감에서 한나라당의 박순자 의원이 고압가스통을 갖다놓고 위험성을 이야기하며 질의하고 있다.
/ 이종철 기자

그런가 하면 열린우리당의 유일한 강남출신 지역구 의원인 이근식 의원(행자위)은 피감 기관의 미담 사례를 찾아 소개하고, 포상 신청까지 하는 ‘칭찬 국감’을 해 파문(?)을 던졌다. 한편 여당, 야당이 뒤바뀐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받은 여당 의원들도 적지 않았다.

4일 농해수위의 농림부 국감에서는 피감 기관을 호령하는 의원이 야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간사인 조일현 의원이었다. 7일 정통부 국감에선 자료제출이 미흡하다며 진대제 장관을 윽박지른 의원도 열린우리당 강성종 의원이었다. 이런 여야 역진 현상은 모두 초선들에게서 나왔다.

재선인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인터넷 활용의 고수답게 홈페이지에서 ‘국정 감사 편지’를 현장감을 곁들여 전달해 화제다. 유 의원은 7일 “ 마포구 국민건강 보험공단 감사장에 와 있습니다. 이제 막 오후 감사가 시작되었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통해 방송 중계차가 와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는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행자위의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은 지난 5일 중앙선관위에 대한 국감에서 투표율 제고 방안으로 제시한 대안이 “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아 우쭐해졌다. 선거인 명부를 전국적으로 공유하게 해 유권자가 자신의 거주지 투표소가 아닌 등산로 같은 유원지나 백화점, 극장 앞에서도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 것. 재선의 유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 선관위’에 맹공을 가할 법도 했지만, 대체로 점잖게 했다는 평이다.

그러나 11일 인천시청 국감에선 안상수 시장이 행정수도 이전 찬반 의견을 제대로 밝히지 않자,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공격을 당했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이 “다른 수도권 지자체장과 달리 안 시장의 실용 노선이 돋보인다”며 엄호 사격에 나섰다. 청와대 정무수석 당시 ‘엽기 수석' 또는 ‘잠의 신’이라고 불린 유 의원은 송곳 질문도 퍼부어 뚝심의 정치력이 나오는 것이라는 평도 이어진다.

중진 반열에 올라선 우리당 문희상 의원은 여야 대립의 국감에 훈수를 두면서 여권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있다. 문 의원은 “ 한나라당이 국감의 기본 테마를 좌파와 무능 정권으로 잡고 총공세를 펴는 것 같다”면서 국감 초반부터 일찌감치 반격의 선봉에 나섰다. 14대부터 내리 당선된 4선 의원인 장영달 의원은 다선 중진 의원으로 외교통위 국감 현장 안팎에서 기자 인터뷰 요청도 적극적으로 응해 ‘축구광’다운 혈기를 보여 주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 중진은 국가보안법, 행정 수도 이전 문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국감을 통한 대여 공격은 초ㆍ재선에 위임, 과거 ‘저격수’로 불린 정형근(보건복지위)ㆍ홍준표ㆍ김문수(통외통위) 의원들도 국감에 전력하고 있는 양상이다.

국감 기간 동안 초선 의원은 물론이고 중진 의원들이 보여주는 튀는 발언과 행동은 연일 언론을 통해 이모저모 보도되고 있다. ‘튀는’ 것에 방점이 있다 보니 ‘정책’이나 ‘대안’과는 거리가 먼 쇼맨십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하지만 선량들의 ‘튀는 …’의 뒤엔 각고의 노력이 숨어 있다. 17대 첫 국감의 ‘튀는 의원’들이 시민 단체의 베스트 의원 대상에 대부분 든 것을 보면, 이젠 튀는 것이 최선의 콘텐츠를 증빙하는 단초인 듯 싶다.

최진순 서울신문 기자 soon69@paran.com

출처 주간한국 10월28일자

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200410/wk200410211537473704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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