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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과거청산'으로 확실해지는 것

by 수레바퀴 2004. 8. 24.

최근 정치권이 '과거 청산'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이고 있다. 여야는 '색깔 논쟁'까지 곁들이고 있다. 이 진부한 이념공방은 한 마디로 우리 정치에 공감대를 얻는 사상적 좌표가 없음을 반증하고 있다.

일찍이 백범 선생은 '우리'의 이념이 없음을 지적했다. 반면 유럽은 지난 세기에 맑스-레닌주의가, 구미대륙은 자유민주주의가 나름대로의 역사발전법칙을 따라 전개돼 왔지만, 우리의 경우는 근대화 초기에 단지 그같은 이념들의 충돌만 있었다.

결국 제대로 정리도 되지 않은 채 마침내는 동족간 전쟁으로 비화했다. 또 분단 이후 남북의 기득권들은 각각 이념 편식을 심화하면서 반 세기가 넘게 극렬하게 갈라섰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반공주의(anti-communism)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 반공은 단순히 '김일성주의' 반대를 넘어서서 일체의 반기득권 행위를 걸어 잠구는 등 일상을 완전히 장악했다. '사회주의' 관련 서적은 금서가 됐고, 반공에 대립된 가치와 질서들이 맹목적으로 부정됐다. 이 결과 '빨간색'조차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레드 컴플렉스'도 조성됐다.

이러한 지난 시대의 폐쇄성, 경직성은 창의와 상상의 영역까지 폭력적으로 거세했다. 이 '과거'의 중심에 '유신'이 있었고, '박정희'가 있었다. 박정희 '독재'는 1990년대초 이른바 '문민정부' 출범 전까지 사실상 대한민국의 '전부'를 '반공'으로 시스템화했다.

'정보'가 일방적으로 독점되고 유포, 가공되던 시절의 '반공' 콘텐츠는 지금 살아있는 '화석'이 됐다. 나아가 맹목적인 반공주의, 냉전, 독재가 우리의 삶을 지금도 조정해도 된다고 믿는 지성적 혼돈이 역력하다.

YS-DJ 집권기에 청문회와 법정에서 부정한 과거의 극복이 시도됐지만 제대로 정돈되지는 못했다. 물론 미흡한 구석은 있지만 일부는 법의 차원에서 단죄, 정정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단계 더 높고 깊은 정신 사상의 영역에는 이르지 못했다. 사회적, 역사적으로 내재되진 못한 것이다.

이 결과 대한민국은 낡은 시대의 '콘텐츠'가 여전히 창궐하고 있다. 한 예로 '반공'을 극진히 대접하는 신문사도 있고, '독재'를 그리워하는 자들도 나서고 있다. 당대(當代)가 '무지'와 '무능'의 권력이라면서 '유신'-'독재'-'박정희' 콘텐츠에 매료된 식자들도 늘고 있다. 심지어는 '12.12'와 '5.18'을 주도한 軍을 그리워하는 지식인도 활보하고 있다.

물론 시민사회는 '문민'의 정부를 안착시키는 등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 안팎에서 이념의 짜임새는 조잡하고 공허한 수준이다. 이 원인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미래를 불밝힐 사상의 좌표을 설계하기는커녕 낡은 법제도와 이념을 고수하면서, 정치적 반대세력을 몰아내는 손쉬운 퍼포먼스만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합리적인 논쟁과 여론 형성도 무망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난 4.15 총선으로 한국 정치는 진보정당의 의회진출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또 엄혹한 시절 북한을 자주 드나들었던 경계인 송두율 씨도 대한민국 법정이 그 '죄'를 사실상 면해 줌으로써 냉전적 사유에 하나의 전기가 마련됐다.

주지하다시피 국가보안법은 대표적인 구시대 법률이다. 친일청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뿌리내린 제도와 기구들, 심지어는 구시대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교체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단순히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과거의 정신사유를 현대에 지속시키고 있는 것이 문제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과거 청산의 과정에는 반동反動세력이 준동한다. 또 그들에 의해서 과거의 정치유형과 철학에 대한 보호가 본능적으로 이뤄진다. 또 이들이 제기하려는 정치 이념이 '개혁적'인가 아닌가, 또 '반공주의'와 '독재'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수구적 본질을 덮으면서 개혁을 빙자하는 기만은 없는지 일련의 난삽한 문제도 두드러지게 나온다.

당연히 정치사회적 긴장과 갈등은 폭발적으로 표출된다. 경제가 어려운데 "웬 과거 청산 '타령'인가?"라며 볼멘 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에 현혹되서는 안된다. 과거 우리 시대의 친일-군사 쿠데타-독재는 우리 경제의 분배구조를 왜곡하고, 사회적 그물망(복지)의 조기정착을 가로막은 원죄이다.

과거 청산 없이는 미래는 물론이고, 현실도 없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기회만 있으면 과거 청산과 관련 시종 '떳떳하다'는 입장이고, 열린우리당은 이번 기회에 '역사바로세우기'를 하겠다는 것인만큼 이젠 '제대로 하는' 일을 차근히 진척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정국은 '역사적 성찰'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양심세력과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소인배들의 '극단적'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일으키는 '정쟁'의 본령은 과거의 정쟁과는 다른, 깊숙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한국 정치는 더욱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백가쟁명의 말잔치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과거청산에 돌입할수록 확실해지는 것은 역사 앞에 비겁한 세력과 개인을 만나는 일이다. 그것으로 이 논란의 사회적 得은 분명해진다.

2004.8.6.

http://www.seoul.co.kr/board/board.php?bid=journalist&no=660&cate=1&job=view&user=soon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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