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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창과 방패의 사이버 전쟁

by 수레바퀴 2004. 8. 24.

‘박근혜 패러디’ 사진이 정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사건의 발단은 7월 13일 한 네티즌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선정적으로 묘사한 패러디 사진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리고, 이를 청와대 홈페이지 운영자가 초기 화면에 등록한 데서 시작됐다. 이 패러디에 대해서는 네티즌들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청와대 운영자가 의도적으로 키운 것은 중대한 실책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직접 사과”까지 요구하며 반발하고 나섰고, 이해찬 국무총리도 취임 후 처음으로 ‘낮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공방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문화인 패러디 콘텐츠에 숨어 있는 치열한 인터넷 전선(戰線)은 그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노무현 캠프는 이광재 기획팀장, 안희정 정무팀장, 천호선 민주당 인터넷선거 특별본부 기획행정실장 등을 중심으로 이미 인터넷을 선점하고 있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을 효과적으로 견인하면서, 희망돼지 저금통을 통한 모금운동, 젊은 세대에 공감하는 다양한 이슈 제기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선거전략으로 막판 대역전극을 펼칠 수 있었다.

대선 직후 한 인터넷 언론사가 주최한 좌담회에서 천호선 실장은 “노 당선자의 ‘눈물 CF’를 만들었던 문성근씨의 동영상은 약 70~80만의 네티즌이 본 것으로 집계됐고, 민주당 홈페이지는 선거 당일 88만명이 방문, 5만여건의 게시판 글이 올라왔다. 이는 선거 초반에 비해 20배 이상 증가한 것이고, 방문자들이 글을 퍼나르는 것을 감안할 때 사이트 방문자의 10배 이상이 이 정보를 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웬만한 오프라인 신문에 못지 않은 영향력”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노 캠프 진영에는 자발적인 인터넷 지지 사이트와 논객들의 합류가 늘었는데 이들은 패러디, 정론, 독설 등으로 언론사, 정당, 이익단체, 지역커뮤니티 등을 가리지 않고 노 후보 지지를 유도하는 ‘선거 운동원’을 자처했다. 상대적으로 인터넷을 먼저 시작하고 노하우가 축적돼 있던 노 캠프 진영의 네티즌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젊은 유권자들을 묶는 원동력이 됐다.


- 여론조작·악성 패러디 등으로 혼탁

한나라당 선거 캠프는 대선 직후 연이은 대선 패인에 대해 “당에 우호적인 네티즌 논객들을 많이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미리 인터넷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대선 패배를 자초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당시 한나라당 인터넷 선거전에 참여했던 안동헌 부대변인의 경우 “10만 논객 양병설, 정치와 오락이 결합하는 콘텐츠 개발 등으로 인터넷 여론을 역전시킬 수 있다”고 제창했었다.

그후 한나라당 원희룡, 남경필 의원 등 미래연대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취약한 당의 인터넷 전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2003년 3월 ‘돼지껍데기’ 사이트가 개설됐고, 총선을 앞두고는 좋은나라닷컴 사이트를 오픈했다. 현재 좋은나라닷컴 사이트엔 노무현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패러디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당시 사이트 오픈을 주도했던 안 부대변인은 “16대 대선 직후 언론인 J씨와 만났는데 그는 특정 인터넷 신문 사이트를 거론하면서 힘을 합쳐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또 J씨는 당시 보수적인 성향의 네티즌들과 만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렇게 지난 대선이 끝난 직후 네티즌 논객들은 자천타천으로 정치권에 직간접적으로 본격 참여하게 됐고, 각 정당은 네티즌 논객들을 중심으로 인터넷 여론을 잡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정치가 확산될수록 여론 조작을 위해 네티즌을 고용한다거나 정상적인 게시판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등 그 부작용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열린우리당 전자정당위원회 한 관계자는 “다른 정당의 네티즌 알바(아르바이트) 존재 여부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다”면서도, “조직적인 글 게재나 갑자기 혼탁해지는 게시판을 볼 때마다 그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당은 알바를 동원해서 사이버 여론조작을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는다”면서, “그 이유는 주요 패러디사이트가 노 대통령과 우리엔옜餌@岵?관점을 보여주고 있고, 유명 사이트에도 논객들이 이미 많이 포진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청탁’ 물의로 한바탕 홍역을 겪은 서프라이즈나 오마이뉴스, 탄핵정국을 돌파하는 데 일조한 라이브이즈, 디시인사이드 등은 대표적인 친노(親盧) 사이트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안 부대변인은 “두 차례 대선과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이제 진보 일색의 인터넷 여론도 많이 바뀌었다”면서 “한나라당 등 보수 진영에서 인터넷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결과로 좋은나라닷컴은 자생력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서프라이즈, 오마이뉴스 등과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안 부대변인은 “5년만 지나면 지금의 서프라이즈와 오마이뉴스 등은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반공교육과 군사문화, 정치투쟁, IMF 등 우리 시대의 아픈 상처를 가진 30대 이상 세대들과는 다르게 20대는 이념투쟁엔 관심이 없다. 안전을 지향하고 엔터테인먼트를 즐긴다. 엄숙주의와 이념적인 글과는 거리가 멀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젊은 세대의 특성을 파악하고 젊은 세대에 맞는 정치문화를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정치논리에 휘말려 정체성 상실"

이처럼 각 정당이 인터넷 여론몰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희사이버대 민경배 NGO학과 교수는 “인터넷 정치문화의 밀알이 되는 네티즌 논객들은 과거엔 사회적 아젠다를 제시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이젠 정치현안을 좇기만 하는 수동적 역할에 머물고 있다”면서, “정치논리에 휘말려 논객들이 독자적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돌출된 ‘박근혜 패러디’는 청와대, 여야 정당 홈페이지 등의 운영자들이 정치논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드러난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음모론’과 ‘여성 비하’로 몰아붙이는 한나라당이나, “노무현 대통령을 모욕하는 패러디는 어쩔 것이냐”는 우리당이나 사실은 서로 할 말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패러디 책임 공방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인터넷 여론 무대에서 후발 주자에 머물렀던 한나라당이 도덕적 문제로 쟁점화하면서 반전을 꾀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당은 최근 박근혜 전 대표의 미니홈피나 보수 진영 사이트의 확대 등 주춤거리고 있는 인터넷 전략에서 밀릴 수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민 교수는 또 “한국 정당들도 인터넷을 정권 쟁취의 도구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면서, “인터넷 정치의 궁극적 완성은 정당운영의 시스템을 혁신시켜 총체적인 정치개혁의 기반이 되는 것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공적 영역 사이트에선 정책을 찾는 커뮤니케이션을, 사적 영역에선 패러디 같은 네티즌 문화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4.7.22.

주간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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