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중립적 통로가 아니라,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인물을 서사화하며, 감정과 시선을 조직하는 사회적 장치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괴물도 영웅도 만든다. 왜냐하면 언론은 현실을 ‘보도’하는 동시에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첫째, 서사화(narrativization)다. 언론은 인물을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 구원자와 파괴자 같은 도덕적 이분법 속에 배치한다. 복잡한 현실은 제거되고, 극적인 드라마 구조 속 캐릭터로 가공된다. 괴물은 공포를, 영웅은 희망을 상징한다.
둘째, 감정의 조직(framing)이다. 언론은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분노, 연민, 환호, 혐오 같은 감정을 호출한다. 괴물은 두려움과 분노의 대상으로, 영웅은 감탄과 신뢰의 대상으로 설계된다. 감정은 사실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대중을 움직인다.
셋째, 집중과 반복이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이 계속 조명될 때, 그는 사회적으로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진다’. 영웅은 반복되는 찬사로 신화가 되고, 괴물은 끊임없는 폭로와 규탄으로 공포의 기호가 된다. 의혹제기도 그 궤도에 있다. 이 반복은 사회적 인식을 고착시키며, 대중의 사고를 구조화한다.
넷째, 정치적·경제적 동기다. 영웅과 괴물은 모두 ‘팔린다’. 영웅은 희망의 서사를, 괴물은 스캔들과 분노를 자극해 클릭과 시청률을 끌어올린다. 언론은 때때로 진실보다 주의(attention)를 관리하는 기술에 더 충실하다. 언론은 행간과 축약 등 ’어떻게‘로 사회가 그 인물을 이해하게 만들 수 있다.
언론의 윤리는 사실보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어떤 존재로 의미화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에도 있다. 그 책임을 망각할 때 언론은 괴물을 만드는 손, 혹은 허구의 영웅을 세우는 무대가 된다. 선거보도에서도 언론은 후보자의 정책•자질 검증보다 논란 중심으로 대결 구도에 몰입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후보는 민심의 ‘구원자’로 과장되고, 다른 후보는 악마의 ‘상징’으로 낙인찍힌다. 언론이 만드는 영웅과 괴물은 유권자의 냉정한 판단을 흐리고, 민주주의의 핵심인 숙고와 선택의 과정을 감정적 반사작용으로 대체한다. 시민들은 점점 후보의 언어보다 언론의 서사로 정치를 인식하게 된다.
언론은 투표의 조건을 ‘진실’이 아니라 ‘이야기’로 설정하고, 선거는 그 이야기의 결말을 소비하는 정치 드라마로 전락한다. 언론의 위선은 자신들의 보도가 어느 편을 위한 것인지를 숨기는 데 있다. 선거 보도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파제이다.
그것이 무너지는 조짐은 언론이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 그리고 무엇을 반복적으로 말하는가에서 드러난다. 첫째, 후보자의 정책과 공적 역량에 대한 검증이 사라진다. 누가 어떤 정책을 제시했는지보다 누가 말실수를 했고, 누가 ‘더 밉상’인지에 집중한다. 그때 시민은 정보가 아니라 이미지로 반응하게 된다.
둘째, 보도의 형식이 감정적 갈등과 이분법에 기초한다. 언론이 후보를 ‘국가를 구할 인물’ 혹은 ‘절대 안 될 사람’으로 나누고, 유권자마저 팬덤화하거나 적대 집단으로 구획지을 때, 정치는 이성적 선택이 아닌 심리적 소속의 문제가 된다. 한물 간 정치인의 지지로 구도를 짜는 것도 마찬가지다.
셋째, 중립을 가장하며 실질적으로 한쪽 담론만을 확대 재생산한다. 이는 편향과 왜곡이지 정론이 아니다. 공개적으로 지지후보를 밝히거나 ‘우리는 공정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어떤 후보의 말은 확대 재생산하고, 다른 후보의 맥락은 삭제하거나 끄트머리에 배치하는 건 모의작당에 가깝다.
시민이 정책이 아닌 구도에 투표하고, 후보가 아닌 이야기 속 인물에 기대하게 될 때 결국 진실이 아닌 감정과 오해로 채워진 투표함이 개봉된다. 이 결말은 정의의 둑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진실한 유권자의 희망을 꺾는다. 언론은 자신들이 만든 영웅을 반기겠지만 스스로가 괴물이 된 건 알 리 없다.
알아도 외면할 것이다. 언론은 그 영웅이 자신들이 만든 이야기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알지만, 동시에 그 이야기에 자신들도 포획되어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 괴물은 종종 거울을 보지 않는다. 자신이 괴물일 리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실을 버리고 감정을 팔기 시작한 순간 언론은 더 이상 시민의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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