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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미디어뉴스/국내

한국언론의 디지털 구독 모델에서 생각할 것들...데이터, 문화, 신뢰

by 수레바퀴 2022. 8. 31.

지금까지 언론계에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제품 정의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제품군이 결정되면 확정되지 못한 요금이나 시행 시기도 결론날 전망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인프라와 인력 리소스를 확보한 <중앙일보>는 서두를 게 없는 상황이다.

<중앙일보>는 '프리미엄(가입자 전용) 모델'로 뉴스 유료화를 시행한다. <조선일보>가 2013년 11월 '프리미엄 조선'으로 유료화 실험을 한 이후 10년 만이다. '프리미엄 모델'은 매체가 지정한 스페셜 콘텐츠를 열람하려면 회원 가입 후 결제를 해야 한다. 지난해 8월 <중앙일보>는 ‘팩플’(IT), ‘헬로패어런츠’(육아), ‘쿠킹’(푸드), ‘앤츠랩’(주식) 등 일부 콘텐츠에 로그인월을 적용해 가입 회원의 반응을 점검했다. 

<중앙일보>는 지명도나 전문성 등을 종합해 기존에 테스트를 거친 분야를 포함 13개 영역의 유료 콘텐츠와 전담 기자(팀)들을 가동할 계획이다. 일단 업계에 알려진 내용은 시행 시기 9월말~10월초, 독립적인 프리미엄 채널, 이용 요금 월 5000원~2만원(월간/연간), 5천개 판매목표(미디어오늘은 과거 중앙일보 보고서를 인용해 3천개로 보도) 등이다.

프리미엄 모델 시행 시기와 이용 요금은 콘텐츠 준비에 따라 유동적이다. 편집국이 유료 콘텐츠의 대상과 범위를 결정하는 만큼 막판까지 진통도 예상된다. 특히 조직의 판매목표(KPI)는 <중앙일보> 온라인 회원의 1% 정도로 낮춰 잡았다. 8월 말 현재 가입회원 규모는 80만명에 육박한 만큼 목표 달성은 무난할 전망이다. 

<한국경제>는 지난해 '유료화 로드맵'과 관련 '디지털 전환TF'를 구성해 대강의 얼개를 짰다. 스페셜 콘텐츠를 이용하려면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 회원가입을 늘리기 위한 캠페인도 전개한다 등이다. 경제 부문에 특화한 서브 채널이 많아 상대적으로 콘텐츠 라인은 풍부한 편이다. 개인화 솔루션, 빌링 시스템 등 인프라 보강으로 속도를 내 구독모델을 안정화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5월 로그인월을 도입하며 구독모델에 시동을 걸었던 <조선일보>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지면제작에 힘을 싣고 있는 편집국의 참여를 끌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프리미엄 조선'의 좌초는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가 되고 있다. 최근 만난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회원가입 캠페인 확대도 머뭇거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내부 사정을 전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이벤트를 꾸준하게 전개한 <중앙일보>와 대비된다.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온 <중앙일보>는 인프라나 리소스 측면에서 여유(?)가 있어 향후 과정에 이목이 쏠린다. 콘텐츠관리시스템(CMS)을 꾸준히 고도화 해서 유료화에 안정적인 서비스 환경을 만들었다. 또 한국 디지털 뉴스시장에 최적화한 대시보드와 자체 지표 확립으로 생산만이 아니라 성과에 주목하는 환경을 갖췄다. 이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개발, 주도하면서 기술 내재화를 이뤘다.

그러나 시장 안팎서 '구독모델'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탕에 가깝다. 아쉬운 지점과 해결할 문제도 적지 않다.

사실상 편집국 전체가 디지털 구독모델로 뛰어든 모양새인 <중앙일보>는 기대와 부담을 잘 조정해야 하는 이슈가 있다. 2015년 12월 디지털기획실장(조인스공동대표 겸임)으로 <중앙일보>에 다시 합류한 '이석우 총괄체제' 이후 조직문화는 '디지털 DNA'로 출렁거렸다. 전문인력도 계속 영입했고 일하는 방식과 목표도 '디지털 퍼스트'로 이동했다. 시장과 독자, 기술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 끌어올렸다.

반면 디지털 이행이 가속화하고 개편이 잦은 조직환경에서 이탈과 마찰도 이어졌다. 디지털 콘텐츠를 매만지는 부서와 기자들이 타깃이 됐다. 개발자 등 전문인력들이 빠져나가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 <중앙일보> 디지털 부문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는 "아직은 의사결정구조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조직에 디지털 중심의 일이 생기는 것과 디지털 조직으로 정체성이 바뀌는 것은 천양지차"라고 지적했다.

기자 중심으로 업무가 이뤄지는 방식에서 독자와 데이터 관점으로 바뀌려면 디지털 조직이 편집국(기사 생산조직)과 대등하거나 주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앙일보>는 디지털과 신문조직을 대등하게 꾸리는 대표적인 매체이지만 기수 중심 문화나 관행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뉴스 유료화 전개 과정에서 기자들의 부담감 못지않게 기자들의 지시를 주로 받는 디지털 부문 구성원들의 피로감이 심해지고 있어 조직 후유증도 우려된다. 

제품은 생산조직만의 이슈는 아니다. 제품 탄생의 전후 과정에서 조직 내 다양한 부서와 협업이 이뤄졌는지, 가치를 높이는 소통과 독자관계 증진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 : 퍼블리시뉴스와기술연구소


<중앙일보> 디지털 사업 부문의 한 관계자는 "무엇을 성과로 간주할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면서 "현재의 경쟁환경에서 이 정도면 가능성이 있다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일방적인 목표에 매달릴 것인지 구독모델 도입 이후가 중요하다"고 봤다. 디지털 관여도가 높은 <중앙일보> 기자들조차도 디지털 거부감은 여전한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디지털 전담조직과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때 '데이터' 기반 정책결정은 훌륭한 좌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앙일보> 데이터 부문의 주도권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뉴스 유료화 추진 과정에서 프리미엄 기사 또는 무료 기사 등 콘텐츠를 정리하는 것, 전략적으로 요금을 설계하는 것 등에 권한이 없거나 약한 상황이다. 

지난 1~2년 사이 충분한 이용 데이터를 확보하고 유의미한 분석에 기초했는 지도 의문이다. 익명의 이용자가 로그인 이용자로 활동할 때 기사 읽기 패턴, 주제별 선호도 등이 구체적으로 어떤지, 그것은 비중있게 적용됐는지 등이다.  

특히 국내매체에서 활동적인 로그인 독자 규모를 보고한 사례는 없다. 이벤트로 가입한 이용자는 이탈율도 높다. 가입정보를 남겼을 뿐 뜨내기나 다름없다. 구독모델에 투명성이 없다면 B2B 등 비정상적인 목표도달로 메꿔질 수 있다. 대형 신문사의 가입 이용자 가운데 50대 이상 등 고연령대가 많은 것도 이후 부담이 될 전망이다. 캠페인으로 모은 온라인 독자의 가치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콘텐츠에 결제하는 이용자의 충성도는 결국 '신뢰'에서 나온다. 콘텐츠 생산조직의 제품에만 의존하는 구독모델은 성공을 확약하지 않는다. 구독모델에 계속 가치를 불어넣는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의 매체는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중요하게 두고 있는지 독자에게 설명하고 피드백을 수렴해야 한다. 신뢰는 독자와의 관계증진으로 형성된다. 

구독모델은 제품과 신뢰의 결합이다. 구독모델을 시작하면 제품을 만드는 조직 이외에도 마케팅, 기술, 데이터 조직의 역할이 크다. 얼마나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디지털 구독모델은 종이신문 시대를 마감하는 전환의 신호다. 단순한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니다. 탈포털 등 국내 디지털 뉴스 시장의 해묵은 과제도 있지만 언론산업 전반의 전환점으로 다뤄야 한다. 일관성, 지속가능성, 투명성을 확립하는 조직과 리더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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