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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_journalism

"현명한 독자발굴이 저널리즘 혁신이다"

by 수레바퀴 2016. 4. 8.

아래 내용은 "올해 창립 51주년을 맞는 한국기자협회가 준비한 저널리즘 복원을 위한 연속 토론회’ 그 첫 번째 시간 저널리즘과 혁신:성찰적 진단 및 과제’에서 발표한 강연자료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진지한 뉴스는 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많은 것을 오해시켜왔습니다. 디지털로 넘어오고 디지털이 전부인 시대에도, 디지털 문명의 열정적인 독자들이 바라는 것은 진지한 저널리즘입니다. 이 목표를 잡을 때 우리는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널리즘과 혁신:성찰적 진단 및 과제의 발제를 맡은 한국경제신문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 최진순입니다. 여러분들을 모시고 저널리즘의 진로를 모색하는 자리에 서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오늘 저널리즘 혁신의 과제-성찰로부터 혁신해야 한다. 현명한 독자로부터 혁신해야 한다"를 주제로 이야기합니다.

 

지난 세기에 우리는 풍부하고 더 나은 지식 정보에 탐색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에 살았습니다. 기자와 전문직 종사자들이 전해주는 지식과 뉴스에 의존했습니다. 70%대의 높은 시청률과 수백만부의 발행부수처럼 정보독점시대의 언론사는 놀라운 기록을 양산했습니다.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언론에게는 해가 지지 않는 나날들이었고, 질주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디지털은 언론의 질주를 멈추게 하고 있습니다. 분초 단위로 생산되는 콘텐츠와 소셜네트워크의 타임라인에 떠오르는 뉴스는 생명주기가 너무도 짧습니다. 기자와 언론 브랜드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독자와 기자의 구분도 불확실해졌습니다. 독자는 뉴스 소비로 끝나지 않고 스스로 만들거나 원하는 것을 만들어줄 것을 생산자에게 제안하고 직접 투자하는 시대입니다. 이 과정에서 패션매체는 온라인 쇼핑 사이트로 진화하거나, 디자인 전문지는 그 제품을 직접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등 매체의 역할이 전면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절 언론이 자부심으로 내세우던 조직규모나 역사, 윤전기와 송신탑은 더 이상 중요한 자산이 아닌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더 강력한 개방, 더 끈끈한 연결, 더 거대한 공유의 경제의 시대입니다. 십여년 전 웹 2.0은 언론에도 중요한 자극이었습니다. 이 자극과 에너지는 한국 언론을 디지털 혁신의 길 위로 이끌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혁신보고서에서, 제프 베조스의 워싱턴포스트 인수까지 전통매체의 탐색은 디지털의 잠재력을 향했습니다. 방송사는 텍스트 기사를 따로 쓰기 시작했고, 주간지와 월간지도 모바일로 하루하루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진정 경계가 없는 시대입니다.

 

ICT 기업과 언론의 합작은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JTBC는 페이스북과 공동으로 선거보도를 합니다.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은 자신의 소셜계정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사업자와 언론사의 협력이) 당연히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일이며, 이미 예견된 흐름 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디지털에서는 지난날의 언론의 독주는 멈추고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제 언론을 둘러싼 혁신의 분위기를 다시 살펴야 합니다.

 

첫째, 디지털 문명은 독자가 의존해왔던 전통매체가 더 이상 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열독률, 시청률, 페이스북 좋아요수 같은 양적 경쟁시대의 성과지표의 의미에 대해서 냉정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20% 뉴스 시청률에 자만하거나 30만명의 좋아요수에 흥분해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독자가 언론을 향해 품는 태도-신뢰나 애착에 의문부호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통매체는 이 시대에 독자가 알아야 할 것과, 독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고 제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기존의 방식과 새로운 방식 사이에서 안팎의 조력자들과 함께 꾸려가야 하는 등 업무의 질과 방향에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떤 가치를 보여줄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둘째, 특히 이 환경에서는 분명히 점점 더 다양한 지식과 의견이 필요로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잔디깎는 일이나 정원 가꾸기가 어떤 소식보다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동성애에 대해서, 또 누군가는 환경을 지키는 문제가, 또 누군가는 절차적 민주주의, 내용적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이슈가 누구보다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영역을 다루는 것은 한계가 있고, 대응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어떤 규모와 어떤 기능, 어떤 협력으로 감당이 가능할지 집중과 선택, 우선순위에 대한 혁신의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나 언론의 노력과는 별개로 이러한 콘텐츠는 앞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서 생산되고 많은 독자들은 전통매체를 떠나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뿐만 아니라 저널리즘은 우리가 인식하건 그렇지 않건 냉혹한 평가의 시험대에 올라와 있습니다. 언론의 책임과 사명은 더욱 더 공동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참여지향적이고 열정적인 독자들은 전통매체의 민낯에 침을 뱉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자와 언론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와 품격을 사회에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한국의 전통매체도 대변화 속에서 혁신을 전개했습니다. 크게 콘텐츠-(조직의) 컨버전스-(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입니다.

 

우선 콘텐츠입니다. 대체로 콘텐츠 형식 변화로 혁신이 이뤄졌습니다. 인터랙티브와 멀티미디어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또 신속한 생산대응이 자리잡았습니다.

 

콘텐츠의 혁신을 위해 뉴스조직의 컨버전스-융합에도 나섰습니다. 지난 10여년 사이 언론사 닷컴, 편집국-보도국의 기능적, 물리적 변화가 이뤄졌습니다. 뉴스룸 통합처럼 새로운 디지털 업무와 기술인력이 보강됐습니다.

 

독자와의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 과정도 다양해졌습니다. 더 많은 독자와 교류하기 위해 댓글, 기자 블로그,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직접 소통에 나섰습니다. 모바일 생태계의 확산 속에서 커뮤니티 구축, 이용자 트래킹을 통한 타깃 서비스-개인화 서비스는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직 미완의 상태입니다. 카드뉴스, 짧은 영상 등 큐레이션 콘텐츠가 범람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차별성이 없어졌습니다. 스낵 콘텐츠는 만들면서 정작 보도의 수준을 놓고 안팎의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언론이 만드는 콘텐츠의 혁신이 정말 제대로 된 것인지 묻는 장면들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언론사 페이스북 페이지는 말장난 실력을 뽐내기만 합니다.

 

이를 두고 젊은 세대의 관심과 기호를 충족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면과 영상을 떠나는 젊은 세대는 정작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직의 융합 과정도 탄탄하지 못합니다. 많은 언론이 디지털 인력을 보강하고 디지털 조직을 늘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의사결정권을 가지지 못한 채 뉴스조직의 가장자리에서, 수동적이고 권태로운 일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낮은 처우와 인색한 투자, 차별과 방치가 뉴스조직에 맴돌고 있습니다. 무엇이 디지털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일인지 뉴스룸의 모든 구성원들이 숙의하는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 결과 지난 10여년간 언론의 성적표는 초라합니다. 열독률, 시청률 하향세는 이제 당연한 말이 됐고, 온라인 시장에서의 영향력도 '도토리 키 쟤기'에 다름아닐 정도로 숫자가 무의미합니다.

 

언론의 신뢰도는 추락했고 이를 언론인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4년마다 공표되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인 의식조사>에 따르면 2009년 결과와 비교해 대부문 항목의 점수가 하락했습니다. 언론활동 수행의 자유도는 다른 항목에 대비해 가장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 보고서에 언급된 한 12년차 기자는 일주일 평균 31.3건의 기사를 썼습니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13.8, 기획/해설기사는 고작 3.7건에 그쳤습니다. 취재환경이 기사의 질과는 따로 놀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입니다.

 

특히 저널리즘을 선도하고 미디어의 혁신성을 제시해야 할 공영방송은 거버넌스 이슈로 조직내홍을 거듭하며 해직기자를 양산했습니다. 성역과 금기를 스스로 쳐 놓고 용기와 비판은 실종된 채 사건사고 뉴스를 앞세우고, 카드뉴스와 짤방 등 소셜전용 스낵콘텐츠를 굽는 데 시간과 비용을 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기레기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기레기를 언론계 전반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의 역할이 강력해진 시대에 이런 논란이 생긴 것 자체를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저널리즘을 선도하는 언론의 부재, 촉망받는 기자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최근 2~3년간 한국 전통매체에서도 혁신의 분위기는 고조되었습니다. 한겨레신문의 혁신보고서에 이어 중앙일보도 지난해 뉴스는 흐름이다라는 내용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혁신보고서를 냈습니다. 전통매체 내부에 디지털 기구와 담당자가 대폭 늘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이끌었고 투자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언론의 혁신의 한계는,

 

첫째, 언론사가 생산하는 뉴스, 콘텐츠의 양은 증가했습니다. 큐레이션을 포함 디지털스토리텔링에 대응하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시간 때우기용-킬링타임 콘텐츠를 중심으로 늘었습니다. 수익성이라는 목표 때문에 광고성 기사 논란도 여전합니다.

 

둘째, 직업기자들은 독자들과 직접 소통에 나서고 있습니다. 기획자, 개발자 등 다양한 직무를 맡는 사람들이 증가했고 이들과 협업하는 장면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과 협력이 뉴스 생산과정에 수렴되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 ‘기술의 효용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소셜 인게이지먼트, 이용자 트래킹, 알고리즘, 로봇저널리즘, VR, 빅데이터 등 뉴스와 기술의 결합이 장려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수렴일뿐 목표도 의미도 상실한 실험을 위한 실험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는 모습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과정으로서의 뉴스가 아닌 결과물로서의 뉴스에만 치중한 것입니다. 문법은 파격적으로 탈바꿈했지만 복제나 어뷰징같은 부작용이 만연하고 큐레이션처럼 디지털의 옷을 입히는 데 한정됐습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클릭을 붙잡기 위해서, 그리고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들과는 소통의 절차는 닫은채, 일방적인 결과물을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독자들과 만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십년 넘게 언론사 뉴스 댓글은 방치되었습니다. 소셜네트워크 운영은 좋아요수 늘리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구축, 독자와의 신뢰형성, 팬덤-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아직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조직의 한계는 여전합니다. 전통매체는 과거의 관행과 업무태도, 관성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부문은 합쳐지거나 부상했지만 경험이 일천한 활자매체 종사자들의 통제 아래에 놓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창의성과 독자성을 제고하는 방향이 아니라 속도와 지표 놀음에 갇혔습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디지털 혁신 세력으로 언론사 내부에 권력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과 반응을 토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이 업의 본질, 디지털 시장의 이해가 낮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독자, 우리가 붙들고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공감해야 하는 그들이 왜 중요한가를 논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술만 강조됐을 뿐 그 기술이 왜, 어디에,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본질적인 질문들을 생략했기 때문입니다.

 

기자로 일하다가 최근 그만 둔, 그래서 뉴스의 시대를 지켜보는 관찰자가 된 한 사람은 자신의 소셜계정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일적으로 그동안 뉴스를 챙겨봤는데) 이젠 뉴스를 보지 않더라도, 검색이나 취향과 사회적 연결로 얽힌 관계망 서비스에만 주력하더로 불안감이 없다“ ”불편하지 않고 평화롭다

 

텍스트를 기피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꼭 필요한 뉴스를 스스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만들어 퍼뜨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창업한 미디어 스타트업 <퍼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계발에 적극적이고 지적 갈증이 있는 교양인을 상대로 크라우드 펀딩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매체와는 다른 무대에서 그들만의 뉴스 레시피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38명의 후원자를 두고 4년째 건재한 <슬로우뉴스>처럼 새로운 문명을 사유하는 독자들을 발굴했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개인은 물론 기업에서도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콘텐츠는 전통매체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더 강한 공감을 불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통매체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언론환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매체는 신생미디어와 같은 방식으로, 그들이 만드는 콘텐츠의 양식을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 마음 아픈 사건이 있습니다. 한 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25세때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 4개를 잃었습니다. 이후 산업재해를 막는 일에 동료들과 힘을 합쳤습니다. 5년 전 44세때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 3, 5살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월말 공장에서 불의의 재해로 숨졌습니다. ‘존영을 향한 뉴스는 쏟아졌지만 그의 죽음에 할애한 지면과 영상은 없었습니다. <뉴스의 시대>에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뉴스를 점점 만나기 어려워졌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혁신은 무엇입니까?

 

첫째,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는 헌신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아직은 전통매체만이 가능한 비범한 밑천입니다. 디지털의 옷을 입히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합리적이고 일관된 지혜와 비판을 담금질한 뉴스로 나타나야 합니다.

 

제프 베조스의 워싱턴포스트. 마티 바론 편집국장은 2015WAN 총회에서 디지털 시대 워싱턴포스트만의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워싱턴포스트 디지털 혁신의 중심에 있는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 같은 권력형 부정이 있다면 주저없이 보도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언론 혁신의 출발점이며 최적의 열쇠임을 단호하게 시사한 것입니다. 디지털 문명의 독자들이 언론에 바라는, 변함없는 요청은 디지털로의 전환이 아니라 디지털에서 저널리즘의 원칙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독자들의 제언을 언론은 새로운 형식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뉴스는 사회의 악행을 폭로하고 그 고통을 직시함으로써 사회를 돕는 한편, 선함과 용서와 분별력을 충분히 갖춘, 구성원들이 기여하기를 원하는 가상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중요한 임무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에서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있습니까? 참여지향적이고 열정적인 독자, 교양의 시민들을 독자로 발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독자와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뉴스를 찾는 합리적인 소통은 이뤄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독자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습니까?

  

제프 자비스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2020년 저널리즘은 가치를 나누는 사람들의 거대한 네트워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공동체의 미래를 사유하는 정열적인 교양의 시민들과 우리의 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허상의 트래픽 숫자로부터 더 이상 고립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독자들을 찾는 위대한 여정이 시작돼야 합니다. 양의 시대에서 질의 시대로 우리는 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셋째, 우리는 뉴스조직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어떤 기능과 부문을 떼어서 붙이는 생산조직의 재편으로 국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양의 시민들로부터, 언론계 동료와 다른 경쟁 언론사로부터 지지와 영예를 얻을 수 있는 생산문화를 갖춰야 합니다.

 

일방적 여론 주도자가 아니라 협력자, 동반자로서의 사회적 역할 확보, 짧은 생명주기의 뉴스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공동체의 미래를 탐색하는 콘텐츠를 위한 사회적 연대(solidarity)-시민,기업,커뮤니티 등 협력의 네트워크 추진, 성찰의 기반 위에서 디지털 문명을 현명하게 수렴하는 프로그램 신설을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뉴스룸이 필요합니다.

 

가령 더 많은 독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창구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가? 우리가 붙들고 있는 가치와 세상의 더 나은 가치 사이에서 공약수를 찾기 위해 독자의 역할을 부여하는가? 우리의 취재와 보도에 독자들은 효과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가? 기자 선발부터 재교육, 인사 행정 부문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각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우대할 수 있는 변화는 폭넓게 모색되고 있는가? 이런 의문들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뉴스룸의 혁신이 이뤄져야 합니다.

 

혁신의 혁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최근 일부 초안이 공개된 독일 <슈피겔>의 보고서를 재인용합니다.

 

첫째, (과거의 영광에 취해 너무 자만했다. 이미 일부분을, 더 나아가 상당한 영역을 잃어버렸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을 인정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함을 놓쳤다.) 더구나 우리는 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특종-권력과 자본을 향한 비판정신- , 숨겨진 배경을 찾는 분석들을 이미 잃었다.

 

둘째, 우리가 단지 많이 안다고 해서-제한된 정보원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해서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구할지, 그들의 지식과 지혜를 어떻게 수렴할지 생각해야 한다

셋째, 물론 아직 전통매체는 가장 많이 언급되고, 인용되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에 이해 읽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위로만을 줄 뿐 특별한 의미가 없다.(- 트래픽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난날의 시청률과 발행부수는 무의미하다)

 

넷째, 우리는 잘못된 우선 순위를 설정했다. 디지털부문과의 협업도 불분명하다. 참여지향적이고 교양적인 시민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들과 어떤 연결과 관계를 맺을지가 관건이다


슈피겔만 엄숙한 반성을 한 것은 아닙니다. 뉴욕타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지털(기술)만으로는 저널리즘은 구원되지 않는다. 단지 안심시킬 뿐이다. 뉴욕타임스는 오직 하나만 안다. '진지한 저널리즘'. 독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진지한 뉴스는 보지 않는다는 목소리들은 강력합니다. 이것이 많은 것을 오해시켜왔습니다. 디지털로 넘어오고 디지털이 전부인 시대에도, 디지털 문명의 독자들도 언론에게 바라는 것은 진지한 저널리즘이란 목표를 잡을 때 우리는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현명한 독자가 저널리즘을 살리고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발굴해야 하는 독자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길을 찾으며 ’, ‘우리를 끌어안는 지혜의 독자입니다. 진지한 저널리즘에 호응하는 독자입니다.

 

독자가 원한다고, 독자가 더 많이 반응한다고 카드뉴스나 영상을 매만지는 것으로 업무가 끝나선 안 됩니다. 그런 독자들은 우리가 찾는 독자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할 때만 비로소 저널리즘의 혁신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혁신, 혁신의 혁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첫째, 성찰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에 대한 냉엄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성찰의 효과를 위해 양식과 품격을 갖춘 독자, 시민사회에게 최소한 물어보고 혁신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둘째, 독자와의 느슨한 관계를 애착관계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독자와의 소통, 교감, 협력을 뉴스조직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야 합니다. 독자커뮤니티, 멤버십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독자가 저널리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자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신설해야 합니다. (제프 베조스가 사들인 <워싱턴포스트>는 매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독자가 주도하는 개방적인 위원회, 독자와 피드백하는 시스템에 투자해야 합니다. 동업자들과도 저널리즘의 미래를 숙의하고 저널리즘의 가치를 확산하는 공동의 프로그램 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셋째, 저널리즘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더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시민단체, 대학 등과 함께 각 부문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저널리즘이 공동체에 중요한 것임을 일깨울 수 있도록 경제, 교육, 문화 등 각 영역의 커뮤니티와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고 후원해야 합니다.

 

독자 참여 기반의 미디어와 이해 관계자들과 호응하고 가능성을 공유하는 연대도 필요합니다. 특히 독자는 파트너로 예우해야 합니다. 참여지향적이고 열정적인 독자가 없으면 더 이상 생존도 어렵습니다.

 

포털사업자, 소셜네트워크사업자, 하드웨어 제조사, 광고주 등 기존의 파트너와 협력할 때에도 저널리즘의 원칙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현재의 시장환경에서는 좋은 뉴스가 오래 소비되거나 확산되기 어렵습니다. 눈요깃거리만이 살아남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저널리즘의 독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 의제를 가지고 파트너와 논의해야 합니다. 더 나은 상생은 독자를 디벨로핑-발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브랜드의 명예를 공유할 수 있는 독자를 더 늦기 전에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일반적인 정보와 더욱 전문적인 정보의 경쟁가치중립적인 뉴스와 합리적인 편향의 뉴스의 경쟁속도흥미의 서비스와 탐색사유의 서비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이러는 사이 수많은 뉴스의 폭주에 독자들이 지치고 있습니다. 최소한 독자가 알아야 할 것과 우리가 알리려고 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줄이는 토론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뉴스의 시대> 저자 알랭 드 보통이 전하는 영상 메시지가 있습니다.

 

"저널리즘은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제안하려는 목적으로 국가적 삶의 모든 사안을 다루는 망명정부다.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이 공동체에서는 누구나 인정할만한 '좋은 언론 브랜드'가 빈곤합니다. 영국 주간지 인디펜던트의 인쇄 중단에 대해 경쟁지들은 한결같이 '훌륭한 매체가 보여준 사회를 향한 노고'에 갈채를 보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언론은 존재합니까?

 

언론과 공동체의 애착관계, 저널리즘의 사회적 가치가 확산되지 않고는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언론의 혁신은 현명한 독자를 발굴하고 그들을 공감시키는 것이 전부이며 핵심입니다. 디지털 문명에서도 변하지 않는 당위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이 성찰하고 진지해져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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