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미디어의 미래

뉴스를 넘어 `지혜의 저널리즘`으로 가는 길은 없나?

by 수레바퀴 2016. 1. 15.


"뉴스룸의 혁신은 저널리즘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진 = 이치열 미디어오늘 기자

이 포스트는 14일 <미디어오늘>과 커뮤니케이션북스가 공동주최한 “혁신 저널리즘 컨퍼런스 : 뉴스를 넘어 저널리즘의 미래를 묻다" 컨퍼런스를 위해 '사회자'로서 미리 준비한 대본 성격의 내용입니다. 컨퍼런스 현장의 진행상황에 따라 토론시간이 줄어들면서 대부분 소화하지 못했지만 기록 차원에서 남깁니다.


1. 발제자 주요 발언 내용


1)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언론사들이 시장생존을 위한 노력이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역설의 상황이다. 문닫은 신문사가 없고 (매출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음에도) 내용을 보면 콘텐츠 가치를 올렸다기보다는 결국 ‘광고끼워팔기’라는 낡은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기자 100명 이상이면 매출 100억 이상 회사를 만들 수 있다. 트래픽 10만 건에 100만원이 오간다. 하루 10건만 10만뷰를 올리면 월 3억원의 매출이 가능한 시장이다. 


모바일 퍼스트라지만 모바일은 더 위기다. 뉴스를 체계적으로 읽지도 않는다. 브랜드에 아무 충성도도 없다. 파편화된 뉴스소비가 일상화한지 오래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모바일에서 뉴스를 버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가 만드는 뉴스는 유통기한도 짧고 구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만드는 즉시 뉴스는 버려진다. 독자들에게 좋은 뉴스를 전달한 통로가 없다. 페이스북이 유일한 곳으로 대두되고 있지만 과연 낙관할 수 있는가? 


뉴스생산방식과 유통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콘텐츠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1면 중심 사고를 버려야 한다. 맥락이 있는 저널리즘을 퍼뜨려야 한다. 뜨내기에 맞는 쉬운 콘텐츠도 만들어야 하지만 에버그린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뉴스를 읽게 만드는 방법의 고안이 필요하다.“


2) 김익현 지디넷 미디어연구소장

“지적이며 흥미롭고 통찰력 있고 분석적인 저널리즘-지혜의 저널리즘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 수익을 대체할만한 방안을 찾지 못했다. 또 익숙한 (관행) 것과의 결별에 실패했다. 혁신이 곧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기자들 스스로가 스페셜리스트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혜의 저널리즘을 원하는 시장과 수용자에게 다가서야 한다. 그들과 토론하는 수준 높은 소통을 해야 한다.“


3) 조영신 SK경제경영연구소 연구위원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은 ‘뉴스통제’를 위해-뉴스피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ICT기업에 대한 짝사랑을 버려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과 언론사가 원하는 것이 다르다. 더 이상 ‘착한 캐릭터’가 되면 안 된다.”


4) 심석태 SBS뉴미디어부 부장

“언론사의 기존 몸부림은 ‘변신’과 ‘응용’에 불과할 뿐 혁신은 아니었다. 디지털 혁신을 고민하는 만큼 저널리즘 혁신을 고민하고 있지 못하다. 저널리즘의 본질적 문제는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않는 실정이다.”


2. 토론회(2시간을 예상한 원래 대본. 발제시간이 길어지면서 실제 토론시간은 50분도 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이 주최하는 “혁신 저널리즘 컨퍼런스 : 뉴스를 넘어 저널리즘의 미래를 묻다.“ 사회를 맡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최진순입니다. 오늘 컨퍼런스는 지난해 ‘혁신과 대안’을 주제로 한 저널리즘 컨퍼런스에 이은 <미디어오늘>이 기획한 두 번째 자리입니다. 


관계망 기반의 소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글로벌ICT기업의 뉴스시장 진출 등 대변동의 생태계, 테크놀로지와 미디어 결합의 확산 등 혁신과 생존을 고민하는 미디어기업의 대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구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에너지와 문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디지털 퍼스트를 넘어 모바일 퍼스트 그리고 독자 퍼스트까지 연결되고 있습니다. 위기와 기회인지에 대한 논의도 쏟아집니다. 실패와 성공의 풍경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저널리즘의 미래를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저널리즘의 신뢰와 품격이 혁신의 전부라는 지적까지 있습니다. 단순히 콘텐츠의 양과 속도, 형식과 성격을 넘어선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저널리즘의 본질은 무엇인가. 오늘 이 컨퍼런스를 주최한 커뮤니케이션북스가 펴낸 ‘지혜의 저널리즘’에 따르면 우리의 견해에 도전하라고 합니다. 내가 에너지난을 극복하려면 핵발전소도 괜찮다고 보는 사람인데, 그것이 명백히 내 삶을 위협하는 것임을 입증해보이라는 것이죠. 생각이 깊은 저널리즘을 보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뉴스를 넘어 저널리즘의 미래를 묻다’ 컨퍼런스는, 명백히 중요하지만 간절하지 않았던, 거대하지만 다루기 어려웠던 주제로 향할까 합니다.


3. 미첼 스티븐스의 ‘지혜의 저널리즘’에 대해서  

우리는 이 컨퍼런스가 시작될 때 미첼 스티븐스 뉴욕대학교 교수가 박상현 리틀베이클라우드 이사와 나눈 대담 동영상을 봤습니다.


미첼 스티븐스 교수는 객관주의 저널리즘이 언론을 망치고 있다는 도발적이고 확정적인 주장을 담은 '비욘드 뉴스:지혜의 저널리즘'을 내놨습니다. 그는 1993년 '뉴스의 역사'를 통해 대중저널리즘과 전문저널리즘을 구분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소셜네트워크와 기술의 범람에서 전통매체가 택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선정주의와 상업주의에 휘말렸습니다. 이 황폐한 공간을 채운 곳은 새로운 스타일이었습니다. 실질적이고 유익하며 솔루션적인-문제해결형의 뉴스를 만드는 신생미디어였습니다. 스낵콘텐츠라는 이름으로 범람하는 뉴스시장은 경계없는 뉴스시대를 상징합니다. 몰입도를 높이고 창의적이며 분석적이며 오락적이기까지 한 이런 콘텐츠의 명암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과제를 던지는 것일까요?


디지털 기술 활용이 저널리즘 혁신의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술은 저널리즘의 가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 또 수용자와 언론의 연결과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4. 토론회에서 할 (예상) 질문들


가. 시장의 현실

-독자가 뉴스를 열심히 보지 않는다 아니다, 언론이 저널리즘을 방치하고 있다는 대립적인 그러나 서로 연결된 의문이 여전합니다. 독자가 뉴스를 제대로 보지 않는 것은 사실일까요? 뉴스를 제대로 읽고 사유하며 참여하는 독자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 상업주의, 선정주의는 소셜네트워크에서도 범람합니다. 한 메이저신문은 B5폭격기 출격 사진을 올려 놓고 희극화합니다. 뉴스룸은 왜 제동을 걸지 않는 걸까요?


-종이신문은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과 수익을 거둡니다. 일부 중소 신문들의 흑자는 국정화 교과서 파동에 따른 정부광고 최대 집행에 따른 것이라고 해석하는데요. 오해와 과장이 일부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용자 미디어 소비시간과 인지도, 신뢰도에서 해마다 추락하고 있는 종이신문의 생존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저널리즘을 정말 무참하게 만든 성과입니까?

-모바일 퍼스트라고 하는데 모바일에서는 더 희망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금이라도 더 읽히려면 가치는 없어도 읽힐 만한 가십거리를 거는 것이 더 낫다고 합니다. 단기적인 성과주의가 지배하는 뉴스룸의 선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저널리즘의 가치를 제고하고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노력은 이 시장에서 어떻게 진행되어야 합니까?

-뉴스 유료화, 좋은 저널리즘은 팔릴 수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유효한가요?


나. 콘텐츠 

-카드뉴스 범람에 대해 한 시장조사기관은 ‘피로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차별화되지 않은 비슷한 형식의 뉴스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공유되는 뉴스는 무엇인지, 그것은 기존 뉴스와 무엇이 다른가요? 그것은 저널리즘의 위기와 관련이 있는가요?

-단순한 사실보도, 인용보도, 평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지혜를 더 해 생각을 일으키는 정보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는 저널리즘인데요. 일단 그것이 가능하려면 뉴스룸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미첼 스티븐스 교수는 “독자들도 노력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쉽게 떠먹여 주는 뉴스에서 사유하고 탐색하는 노력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독자의 수준을 높게 설정한 지혜의 저널리즘은 한국사회에서 가능할까요? 이를 위해서는 뉴스룸을 넘어 어떻게 노력해야 하나요? 


다. 플랫폼 

-콘텐츠기업의 콘텐츠 전략, 플랫폼기업의 콘텐츠 전략이 다릅니다. 한국언론의 콘텐츠 전략은 무엇이 문제입니까?

-ICT기업이 목표로 하는 뉴스서비스는 서 있는 방향에 따라 다릅니다. 가장 화두로 부상하는 것이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입니다. 그 본질은 뉴스피드 공간의 통제라고 했는데 그 의미를 더 풀어달라. 그리고 한국언론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이 시대 포털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네이버, 카카오가 지난 십여년을 좌지우지했다. 뉴스사업자가 휘둘렸다. ‘밀당’도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평행선이다.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얻어내야 하는가?

-정말로 좋은 뉴스에 대한 이해는 엇갈릴 수도 있지만 우리 시장은 좋은 뉴스를 보호해주고 키워주고 있는지? 카카오와 네이버는 저널리즘의 우군인가? 아니면 스스로 지켜야 하는가?


라. 뉴스룸과 기자 

-저널리즘을 보호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뉴스의 유통기한을 늘리는 맥락적 저널리즘, 구조화된 저널리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지나치게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누구나 만드는 뉴스, 카드뉴스, 누구나 도달하는 저널리즘으의 시대입니다. 언론과 기자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스페셜리스트가,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지요? 이를테면 연결과 관계를 위해 기자가 해야 할 일이 더 필요한 것은 없을까요?


-이 시대 기자는 더 현명해지고 더 분석적이며 과학적이고 더 기술과 예술에 근접해야 합니다. 이런 기자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선발해야 합니까? 재교육, 자기계발 즉, 뉴스룸의 R&D가 활발히 다뤄져야 할 텐데요. 인식이 부족합니다. 필요성이 낮습니다. 

-전통매체의 뉴스룸으로 인재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비전이 없어서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원인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독자들과 대화하는 기자는 댓글로부터, 소셜네트워크에서, 그리고 현장에서 많이 등장해야 합니다. 이를 가능케하고 활발하고, 성과를 그려내기 위해서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를 통해 “지적편향을 통해 사실의 타당성을 가려내는 기술”이 명예로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시민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라는 거죠. 그럴려면 그 편향이 합리적이어야 하고 과학적이어야 합니다. 압도적인 교양을 갖추고 전문성을 띠는 기자를 길러내려면 어떤 사회적 접근이 필요합니까?



마. 수용자

- 언론사나 기자가 아니라 셀럽이나 친구들이 전하는 뉴스를 더 많이 찾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좋은 뉴스를 지속해서 만들기 위한 사회적인 관심과 후원모델은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가? 뉴스타파 이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는 저널리즘으로 이동할 수 있는가?

- 뉴스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리터러시, 교육은 누가 어떻게 담보해야 하는가?


= 뉴스는 사회의 악행을 폭로하고 그 고통을 직시함으로써 사회를 돕는 한편, 선함과 용서와 분별력을 갖춘, 구성원들이 기여하기를 원하는 가상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중요한 임무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알랭 드 보퉁은 ‘뉴스의 시대’에서 말합니다. 그러고보니 아리아나 허핑턴도 열정과 참여의지를 가진 독자를 믿습니다. 선함과 용서와 분별력을 갖춘 교양의 시민들을 길러내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 기타

-5인 미만 언론사를 퇴출하는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 지나친 규정으로 저널리즘 영역과 생존기반을 위협하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제재규정은 저널리즘의 질적 도약을 위해 긍정적인 기여할 수 잇을까요?


3. 토론자 주요 발언

-이성규 블로터미디어 랩장 “저널리즘은 민주주의에 기여해야 한다”

-윤지영 오가닉미디어랩 소장 “좋은 저널리즘은 독자의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다”

-김성해 대구대 신방과 교수(정리되는대로 추가하겠습니다)


4. 참조 : 빌 코바치, 톰 로젠스틸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다시 떠올립니다.

-저널리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저널리즘의) 진실: 첫 번째 그리고 가장 혼란스러운 원칙 

-기자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독립된, 고립된?

-사실 확인의 저널리즘 : 객관성과 주장, 사실확인의 기법들, 진실의 다원적 뿌리들

-정파로부터의 독립 : 계급, 경제적 지위, 인종, 종교, 민족

-권력을 감시하고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제공하라 

-공공 포럼으로서의 저널리즘 : 최초의 소셜 미디어 

-기사의 흡인력과 독자 관련성 : 정보, 선정주의

-뉴스를 포괄적이면서도 비중에 맞게 만들어라 : 표적 인구 집단의 오류. 과장하라는 압력, 방문자 통계의 분석학(오류), 새로운 뉴스소비자 발굴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을 따라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 개인의 양심에 대한 압력 속에 진정한 목표는 ‘지적 다양성’이다

-시민의 권리와 책임 : 또 여기서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지


5. 참조: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 중에서

“정작 문제는 우리가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접한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 이런 것들이 진정 의미하는 바가 뭐란 말인가? 이 사실들은 정치적 삶의 핵심적 질문들과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이 뉴스들은 우리가 뭘 이해하도록 돕는 걸까?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지금 이러한 공감 능력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그건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들이 우리 깊은 자아가 소화할 수 없는 데이터 혹은 추상적인 사실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중략)


뉴스가 더이상 우리에게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그때 우리는 타자와 상상 속에서만 연결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타자를 정복하고 망가뜨리고 만들거나 없애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할당된 짧은 시간 속에서 견지해야 할 자신만의 목적이 있음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