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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_journalism

"요즘 언론사 편집국 주인은 '다음 아고라'"

by 수레바퀴 2008.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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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987년 6월 항쟁과 2008년 5~6월의 촛불집회를 비교할 때 미디어 지형은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합니까?

A. 20세기는 주류 언론이 정보를 독점, 선별하는 시대였습니다. 당연히 시민과 미디어가 소통의 창구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는 인터넷과 같은 쌍방향 미디어들이 정보를 다양히 편재함으로써 시민 스스로가 미디어가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민이 전통 매체를 조정하는 상황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물론 일반론적이지만 매체 수도 양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인터넷신문 등 새로운 매체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민 기자도 출현했습니다.

또 내용적인 변화도 있습니다. 뉴스 콘텐츠(정보)가 게이트 키핑이라는 종래의 전통 저널리즘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특히 텍스트 위주의 뉴스도 비디오, 이미지 등의 포맷으로 생산, 재가공되고 있습니다. 정보 생산 및 반응 속도도 실시간에 가깝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또 정보를 소비하는 대상, 정보를 유통하는 영역도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로 전이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미디어가 정보를 좌우하는 시대에서 소비자가 정보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당연히 다양한 현안에 대해서 전통매체의 여론 선제권이 실종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Q. 요즘 언론사 뉴스룸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A. 최근 신문 편집국 분위기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 신문사 편집국 간부는 요즘 편집국 주인은 '다음 아고라'라는 자조섞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네티즌들이 광고주를 대상으로 활발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어서 곤혹스럽다는 것입니다.

촛불집회 참여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한 신문사는 노동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최근 촛불집회 관련 보도 평가를 진행했는데 자사 논조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절반 가까이 나왔다고 합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뉴스룸이 뉴스 소비자들에 의해 유린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그러나 전통 매체 내부는 여전히 20세기적 관행과 시각이 지배하고 있어서, 새로운 조류와 관점으로 뉴스룸을 디자인하려는 신진 기자들과 부조화하는 양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뉴스룸이 시장과 소비자들로부터 충돌하고, 내부의 신진 기자들과도 불화하는 양상이 지속되는 등 불편한 풍경들이 계속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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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협회보 6월11일자 7면


Q.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일부 언론들이 독자들을 계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아닐까요?

A. 그렇습니다. 전통 매체도 정치권처럼 소비자들과 소통을 잘 하고 있지 못합니다. 과거의 뉴스 생산 패러다임이 여전히 유효하고 절대적이기 때문에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며 그를 통해 생성되는 영향력 역시 자신들의 전유물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포털뉴스의 독주처럼 이미 새로운 시장과 소비자들은 언론의 독주를 용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언론사의 유통전략 실패로 보는 산업적 해석은 가능하겠지만, 분명히 뉴스를 선택적으로 소비하고 재유통하는 권력은 소비자에게 넘어 왔습니다.

때문에 전통매체가 시장과 소비자들을 어떻게 바라 보는가, 특히 대등한 파트너로 대우하는가에 의해 미디어 지형이 급격히 재편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정치적 측면과 결부된 한국 언론 시장의 특수성이 있지만, 뉴스 소비자의 파워가 커지고, 지식대중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과정은 점점 뉴스룸이 일방적으로 뉴스를 생산하는 전통적 체계를 조롱하게 될 것입니다.
 
Q. 20세기와 21세기는 과연 어떤 차이점이 있기에 뉴스룸이 그러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까?

A. 정보(뉴스 콘텐츠) 생산의 독점권입니다. 또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매체에서 뉴스 소비자인 집단지성, 이른바 지식대중의 수중으로 들어왔습니다. 특히 오늘날은 정보가 더 많이 유통될수록 힘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 권리 역시 소비자가 핸들링하고 있습니다.

이런한 21세기 정보 패러다임이 전통 매체가 더 이상 촛불집회를 좌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가 생산, 해석, 유통되는 그 패러다임에 대해 아직도 전통 매체는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대한 경멸에 가까운 태도들, 이를테면 네티즌은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사람들쯤으로 치부하는 생각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인터넷은 스스로 좋은 정보, 합리적인 평가, 결속력있는 규합들을 통해 자정될 수 있다는 점도 외면합니다.

하지만 촛불집회는 전통매체의 판단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습니다. 8~10만명 단위의 사이버 클럽들이 십시일반으로 광고비를 모았고, 광고주를 설득해 광고집행을 철회시키는 놀라운 '소통의 결과물'들을 속속 내놓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의 주인공은 전통매체가 아니라 뉴스 소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시각, 그들의 이해를 맞추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에도-사실만 제대로 전하라는 것이었기에- 전통매체는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한 신문사 간부는 이것은 영업 방해 행위가 아닌가, 광고 탄압이라면서 격분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신문들은 자가발전하면서 되뇌인 신문산업의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10%나 광고매출이 격감하는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광고주들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론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기업들이 정상적이고 투명한 비즈니스를 한다면 두려워할 것은 언론이 아니라 소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뉴스 소비자들이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광고주 콜(call)' 캠페인은 한국 신문에게 심중한 위협요인이 되는 것은 자명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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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6월11일자 3면


Q. 현장 취재에 나선 전통 매체 기자들 상당수가 봉변을 당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A. 기자들을 향한 뉴스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크게 세 가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첫째, 기자들의 직업 윤리성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고 둘째, 전통 언론 산업 전반에 대해 불신하고 있으며 셋째, 이를 통해 전통매체와 뉴스 소비자간 소통관계가 치유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로서의 정체성, 자존심이 훼손된 것이지요. 사실 이러한 부분은 이미 인터넷-뉴스 댓글, 포털 강세 등에서 드러난 바 있지만 현장에서 많은 기자들이 함께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스 소비자들이 한국 언론의 신뢰도를 근본적으로 의문하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에 대해 어떤 반론도 내놓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자성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Q. 그렇다면 촛불집회가 앞으로 한국 언론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A.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뉴스 소비자들의 격렬한 대언론 반감에도 불구하고 전통 매체와 기자들이 빠르게 변화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상당수 뉴스룸이 혁신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뉴스룸이 혁신되면서 나타나는 세 가지 일반적 특징은 첫째, 독자들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비중과 지위를 갖는다는 점 둘째, 온라인과 같은 쌍방향 매체에 대한 투자가 지속된다는 점, 셋째, 기자들과 스태프들이 뉴스룸 바깥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관행이 정착된다는 점 등입니다.

하지만 독자 소통 부서조차 없는 뉴스룸이 대부분이며 주요 역량이 신문(프린트)매체에 집중돼 있고 기존의 뉴스룸의 가치를 고수하는 등 혁신에 장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통 매체의 업무, 조직 패러다임이 계속 관철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촛불집회를 통해 나타난 전통매체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고 메시지가 뉴스룸의 변화로 이어지기에는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뉴스룸 변화를 희망하는 새로운 소통패턴을 경험한 젊은 기자들의 노력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직접 네티즌들과 소통하기 시작한 많은 기자들이 기존 뉴스룸의 관행에 의문을 품고 문제제기를 한다면 의외로 빠른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뉴스 소비자들 역시 일과적으로 그치지 않고 언론에 대한 비판과 격려를 지속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전통매체가 두려움을 갖게 됐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이니까 말입니다.

덧글. 이 포스트는 9일 저녁 한 미디어 비평지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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