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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_journalism

파워 블로거들, 기성언론과 전쟁중

by 수레바퀴 2007. 9. 4.

한 유명 기업의 노트북 배터리 폭발현상을 처음으로 알린 곳은 테크놀러지 관련 블로그에서다. 이 때문에 이 기업은 대규모 배터리 리콜을 실시했다. 주류 미디어의 진입로로 자리매김한 미디어 블로그의 영향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블로그가 생산, 유통하는 콘텐츠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기업과 전통매체의 관심과 투자도 집중되고 있다.

과거에 단순한 일상을 기록하거나 타인의 정보를 갖고 오는 ‘펌질(스크랩)’에 머물던 블로거들도 창조적인 콘텐츠 생산과 활발한 소통에 나선 것도 주목된다. 일부 블로그들은 팀 형태로 그룹화해서 전문적인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 UCC 채널에서 인기 콘텐츠를 쏟아내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종의 파워 블로거들이 관련 분야에서 유무형의 영향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일종의 ‘나비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블로거 영입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는 점은 흥미롭다. 방문자수가 일정한 블로그를 상대로 포털사이트에 '입주'시키는 형식인데, 계약금을 주는 형태를 띠거나 광고 수익 쉐어를 제시하고 있다.

네이버는 이미 지명도가 확보된 유명인사를 블로그에 앉혀 미디어화하고 있다. 최근 소설가 박범신 씨의 연재 소설 블로그를 개설한 것은 대표적이다. 일부 신문에서도 유명 블로거를 스카우트하거나 칼럼공간을 내주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바야흐로 전업 미디어 블로그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내 블로고스피어(Bloggosphere)에서 미디어를 지향하는 전업 블로거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전업 블로거란 전문성을 중심으로 한 블로깅 활동을 통해 안정된 수입원을 확보한 블로거를 의미한다. 그런데 포털에 CP(Contents Provider)로 계약한 기자출신 블로그나 전통매체에 고료를 받는 일부 전문직 출신 블로그를 빼고는 전업 블로그의 수가 극히 미미하다.

또 구글 애드센스, 다음 애드클릭스 등 블로그의 트래픽과 온라인 광고모델 접목도 아직은 효과가 낮은 편이다. 들어오는 수익이 일정하지 않고 노고에 비해 턱없는 대우를 한다는 불만도 크다. 하지만 월 7,700 달러를 버는 해외 블로그 사례가 이어지면서 전업 블로그에 대한 열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일단 국내 전문가들은 “전업 블로그 활성화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쪽이다. 국내 블로고스피어가 네트워크 경제를 형성할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지 않아서이다. 블로거가 생산한 콘텐츠를 다양한 유통채널로 흐를 수 있게 하는 신디케이션 모델이 주목받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블로거가 포털이나 전통매체 등으로 콘텐츠를 제공해 원고료 등의 직접적인 수익을 챙기거나 문맥광고 등의 형태로 광고수익을 얻는 경우가 전부이다. 이때 단지 수익 공유 차원이 아니라 이슈 메이커로 미디어 특성이 짙은 블로그를 껴안아 매체 신뢰도나 영향력을 제고하려는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부 신문에서 정례적으로 파워 블로거들의 글을 지면으로 소개하는 것이나 TV 프로그램에서 블로거들의 영상 콘텐츠를 다루는 일도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블로거가 생산하는 콘텐츠는 일반적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성은 물론이고 생생한 현장감을 확인할 수 있어 인기도 높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기자 직종은 탁월한 정보 수집력과 사회적 위상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개방, 공유의 웹 2.0 미디어 패러다임은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분석, 재가공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고 언론시장 질서를 역전시켰다. 기성언론과 기자들이 갖던 권위와 입지가 추락한 것이다.

포털사이트에 기사를 무분별하게 공급하거나 저작권 보호 및 콘텐츠 비즈니스를 등한히하면서 시장내 주도권도 잃었다. 일부 기자들이 프리랜서를 선언, 독립적인 블로거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도 뉴미디어 시장과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전통매체의 한계를 절감,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이러한 탈언론 러시는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시장과 소비자들은 점점 수준 높고 개인화 콘텐츠를 원하는데 언론 내부는 실효성 있는 실천을 하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전통매체는 인적, 조직적 혁신은 물론이고 업무 환경을 능동적으로 재편하는 등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혁신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다면 미디어 블로그들 앞에 손을 놓을지 모른다.  

이미 국내에서도 1~2년 전부터 미국 메이저 리그, 영국 프리미어 리그 등 해외 스포츠 분야 전문가이 뜨고 있다. 이들은 풍부한 데이터와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콘텐츠 생산을 하는 등 미디어를 지향하는 전업 블로그 군을 자임하고 있다. 

전통매체나 미디어 기업에 소속돼 활동하는 것보다 폭발적인 시장반응을 이끌면서 전통매체 기자들과 경쟁하는 주요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블로고스피어 내 IT, 스포츠, 국제 등 일부 분야는 기성언론이 대응하는 콘텐츠 생산 속도, 규모, 질을 앞서고 있다는 평이다.

다급해진 기성언론도 고전적인 업무 패턴을 재설계하는 등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적극 대응하기 시작했다. 블로그 활동 등 창의적인 콘텐츠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과감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거나 기자들의 이직을 예방하기 위해서 재교육 프로그램도 강화하고 있다. 블로고스피어의 위상이 권위적인 전통매체의 전략을 바꾸는 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 플랫폼사업자 등 기업과 전통매체의 역할 찾기가 더 진행돼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국형 블로고스피어 수익모델 형성에 적극 개입하고 있지 않는 데다가 1인 미디어 블로그를 탐탁치 않게 보는 시각도 해소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류 미디어가 유망한 블로거들을 찾는데 앞장 서고 있다. 지면이나 웹 사이트 기사에 정치 전문 블로그의 콘텐츠를 인용하는 빈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단적인 사례다. 정치, 경제, 철학(서평) 분야는 기성언론이 도맡다시피 한 쪽인데 블로그에게 그 영역도 아낌없이 할애할만큼 미디어 블로그의 약진을 수렴하고 있다.

전업 미디어 블로거를 위한 좋은 조건이 형성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업 블로거들은 부정 클릭 이슈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장래를 낙관하기엔 이르다. 불법 펌질과 같은 저작권 침해를 일삼는 블로거들로 산업적, 사회적 파장도 계속되고 있다.

야후코리아 센트럴서비스팀 명승은 차장은 “적어도 전업 블로거는 콘텐츠 수준이나 논쟁을 감당할 수 있는 경쟁력과 도덕성, 성실함을 갖춰야 할 것”이라면서 “전통매체 등이 플랫폼을 활용해 우수 블로거에게 트래픽을 몰아주고 다양한 온라인 광고 집행을 지원해준다면 1인 미디어 시대는 개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맥 광고 등 보다 정교해지는 온라인 광고 비즈니스의 한 축을 전업 미디어 블로거가 챙기면서 기존 언론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등극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기성언론과 지식인이 권위적인 잣대를 버리고 이들과 공생하는 길을 선택한다면 그만큼 가능성은 높다고 할 것이다.

덧글. 이 포스트는 주간지 '뉴스메이커' 9월11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고는 8월말 작성됐습니다. 주간지에 게재된 기사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포스트는 무단으로 퍼가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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