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첫째, 독자들과의 스킨십(소통) 둘째, 독자들을 위한 뉴스 서비스(타깃화, 시각화...) 셋째, 독자들을 향한 조직(입체적인 컨버전스)을 주문했다. 적재적소로 디지털 기술이 필요하고 이를 응용하는 전문가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저널리즘에 대한 신뢰가 아닐까 한다. 품격 있는 저널리즘을 보여주는 매체가 진정한 혁신도 할 수 있고 독자들과 협력의 패러다임을 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난 5월 버즈피드에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공개(?)된 이후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의 비평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비평들은 대체로 전면적인 디지털 전환을 지지하면서 조직, 기자, 콘텐츠, 독자관계의 진보를 주문한다.
비판적 시각도 있다. 한국시장과는 다른 경쟁환경을 가진 혁신보고서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좀 더 시장조건을 감안해 차분히 짚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뉴욕타임스가 이런 혁신을 했다고 한국언론도 반드시 이런 혁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사실 국내 전통매체는 지난 10여년 이상 (뉴스)콘텐츠-(뉴스룸) 컨버전스-(독자와의)커뮤니케이션 등 3C 혁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콘텐츠의 형식을 바꾸기는 했어도 수준은 확장하지 못했다. 뉴스룸의 통합은 물리적으로 전개되는데 그쳤다. 소통은 일과적이었고 기계적이었다.
이런 가운데 등장한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는 한국 언론 내부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발행부수 기준 5대 신문사(경제지 포함)들은 대부분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냈지만 내용적으로는 의례적인 검토 뿐이었다. 또 경영진도 구체적이기보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 어느 때보다 국내 연구자들과 비평가들이 열띤 비평을 쏟아낸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차분할 정도라고 할만하다. A 신문 뉴미디어 담당 부서의 한 기자는 "뉴욕타임스가 이 만큼 노력한 것에 비하면 우리는 유아적인 단계"라면서 "그러나 고민의 지점은 같다는 것이 위안은 된다"고 말했다.
E 신문 사회부 한 기자는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존재 자체를 모르는 기자들이 많다. 심지어 중앙일보 10일자 기사를 보고 알게 된 동료들을 여럿 봤다"고 밝혔다.
또 D 신문의 한 편집기자는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이후 마치 선구자처럼 나서는 선배들이 많지만 구체적인 미션은 하나도 없었다"면서 "모든 구성원이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의 또 다른 기자는 "신문시장의 현실을 고려할 때 좀 더 지켜보자는 것 정도가 현실적인 선택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는 현재까지 '내부 보고용'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B 신문 한 기자는 "통상적인 보고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면서 "그 외 더 다른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 것이 지금의 경영진과 간부들"이라고 말했다.
이 보고서를 수집해 직접 번역과 정리를 한 기자들은 첫째, 그동안 이야기되던 것들로 새로운 것이 없다 둘째, 신성불가침의 뉴스룸-오프라인 기반의 매출구조의 중심축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다. 셋째, 뉴욕타임스가 상대하는 시장(독자)은 다르다 등의 이유를 들어 냉소적으로 평가했다.
물론 일부 신문사 오너들은 이 보고서에 대해 "국내 종이신문 시장은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 "온라인 마인드가 앞서가야 한다" 등 적극적인 의견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뉴스룸(편집국)이 디지털 혁신을 주도할 때라는 언급도 했지만 구체적인 진행방법에선 시장현실을 들어 입을 다물었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에 대해 국내 5대 종이신문 기획실(경영기획실, 전략기획실, 뉴미디어실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관계자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너무 다른 시장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팽개치고 있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뉴스룸의 젊은 기자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한국에서 언론의 자기성찰과 혁신은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A 신문사 닷컴의 한 관계자는 "혁신을 막는 두터운 벽은 깼으나 혁신적 경쟁자, 파괴자 역할은 못했다는 뉴욕타임스의 신랄한 자기고백이었다"면서 "오너나 간부들로부터 구체적 지시가 나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매체도 이 정도밖에 안 됐는데 디지털 혁신에 매달릴 이유가 있겠느냐는 뜻이다.
D 신문 기자는 "조직차원에서 그리고 지면에서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자체가 화두가 된 것은 맞다"면서도 "구체적 방향이 나올 수 없는 것은 방송에 큰 투자를 한 이상 우선 순위를 온라인에 맞추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 신문 관계자는 "한국언론이 디지털 혁신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지만 그동안 현실에 맞는 대응을 해 왔다"면서 "연구자나 비평가들이 보기에는 미흡하겠지만 시장현실에 직접 대응하면서 경영하는 것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미디어 경영 관점에서는 오프라인 미디어의 영향력, 매출은 여전히 온라인 매체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단지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온라인 미디어에 모든 길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혁신보고서를 소극적으로 다룬다고 국내 언론이 '디지털 전환' 자체를 팽개쳤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E 신문의 한 기자는 "주니어 기자들을 중심으로 모바일 청사진을 그렸다"면서 "의견 수렴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내부 불신은 있지만 결국 미디어의 방향에 대해 깊은 고민이 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B 신문의 기자도 "멀티미디어 뉴스를 하면서 조금씩은 자극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서히 바뀌는 조짐은 있다는 말이다. 특히 일부 언론사 닷컴에선 '혁신'에 승부를 걸고 있다. C신문사 닷컴의 한 기획자는 "전통 뉴스룸은 건드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있다"면서 "큰 투자 없이 IT파트에서 다룰 수 있는 독자DB 구축, 과거자산 활용을 통한 맞춤 콘텐츠 제공은 계속 추진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와 관련 A 신문사 닷컴의 관계자는 "기자들도 의식이 바뀌고 있고 모바일에 대한 투자 필요성도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면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뉴스룸이 더디지만 반응은 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비관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국내 5대 신문의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읽기'는 한국 시장의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다. 독자에게 찾아가는 뉴스, 소통을 통한 과정으로서의 뉴스, 데이터의 시각화 등 재정의되는 뉴스를 껴안는 오픈 뉴스룸, 정교한 타깃 마케팅과 비즈니스를 창조하는 소셜화된 미디어는 요원한 셈이다.
결국 사람의 문제다. 디지털 전환은 인터넷, 모바일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문명을 이해하는 사람들에 의해 달성될 수밖에 없다. 경영진과 간부들이 기득권과 편견을 버리고 디지털에 대한 신념을 담금질할 때 비로소 혁신은 궤도에 오를 수 있다.
저널리즘을 독점하고 독주하는 시대에서 저널리즘을 공유하고 협업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관건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처럼 그 반성문을 공개해야 한다. 독자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이 보고서는 언론사 뉴스룸에서 금과옥조가 될 것이다.
덧글. 5대 신문사 경영기획실 간부와 기자, 편집국 기자들과는 전화 인터뷰를 했다. 5대 신문사 닷컴 조직의 구성원들과도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런데 신문사와 닷컴 간, 간부들과 평기자들 간에는 냉혹하리만치 견해 차이가 있었다. 이 차이가 심각했다. 10여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한국언론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 긍정적 재료로 쓰일지는 회의적이다.
외부의 연구자, 비평가 그리고 독자들이 뉴스룸 내부의 혁신을 끌어내는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참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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