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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_journalism

고독한 `프레시안`의 도전..."믿을 건 독자뿐"

by 수레바퀴 2013. 5. 7.

독립형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한다. 조합원들에게 프레시안의 재정과 진로를 맡기는 것이다. 한국의 인터넷 뉴스 생태계를 고려할 때 `프레시안`의 마지막 도전이 주는 울림은 크다.


분석과 논평, 전문가 네트워크로 오피니언 리더층 사이에 평판이 좋았던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이 6일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을 선언했다.


<프레시안>은 ‘주식회사 프레시안이 문을 닫습니다-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납니다’라는 제목의 결의문을 통해 지난 3일 “프레시안의 주주와 임직원은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결의문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프레시안이 존재 이유가 있다면 거기에 걸맞은 생존방식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봤다”면서 “현재의 언론 생태계에서 <프레시안>이 주식회사 체제로 살아남기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프레시안>은 협동조합을 통해 생명, 평화, 평등, 협동 등 기존의 관점을 확대하는 등 대안언론으로서의 기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강조했다.


협동조합 프레시안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최소 3구좌 3만원(1구좌 1만원) 이상을 출자하면 된다. 다만 특정 개인이나 법인이 총 출자금의 3분의 1이 넘게 출자할 수는 없다. 

 

직원 조합원의 경우 300만원을 출자하고 매월 1만원의 조합비를 낸다. <프레시안> 기자들에게는 거금이지만 지금까지 1억원이 넘는 출자금을 마련했다.(관련 보도 <미디어오늘>)


현재 자발적 유료독자인 ‘프레시앙’이 3000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협동조합’ 체제로 안정적인 틀을 갖추는 셈이다.


2003년부터 경영을 맡은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는 6일 오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에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뉴스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면서 “조합원들이 연대하는 협동조합의 생태계에 마지막 기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선언은 <프레시안>의 매체 지명도나 영향력을 감안할 때 상당히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2001년 9월 ‘관점이 있는 뉴스’를 표방하며 창간한 <프레시안>은 2000년 2월 창간한 <오마이뉴스>와 함께 대표적인 독립형 인터넷신문으로 평가받아왔다. 


인터넷신문은 주류매체의 인터넷 서비스 강화와 SNS 및 모바일 확산 등 최근 매체환경 변화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했다. <프레시안>의 주식회사 체제 포기도 ‘품위있는 생존모델’을 만들지 못했음을 자인한 것이다.  


오는 25일 협동조합 창립총회를 거쳐 조합원 확보에 나설 예정이지만 <프레시안>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프레시안> 기자들도 우려와 기대가 엇갈렸다. 출자금을 내거나 경영문제를 직접 조율해야 하는 부담감도 작용했지만 더 큰 문제는 편집권 침해 우려였다.


이와 관련 이대희 기자는 “<프레시안>의 기존 성격과는 다른 의견을 갖는 조합원들이 편집방향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협동조합 형태로 뉴스 구독 모델을 갖지 않고서는 인터넷신문이 생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에 대해 언급을 사양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는 “외부 환경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매체를 진심으로 찾고 싶은 독자를 꾸준히 만들어나가는 게 한국 인터넷신문의 숙명”이라면서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면 진지한 소비자는 늘게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체제 전환은 지난 10여년 이상의 한국 인터넷신문의 역사를 볼 때 제2기의 실험에 해당한다. 제1기가 느슨한 필자 네트워크에 기반한 참여저널리즘이었다면 협동조합은 보다 강력한 후원 시스템을 의미한다. 


뉴스스탠드 체제 이후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는 인터넷신문업계의 현실에서 <프레시안>의 상상력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한국에서 참언론이 살 길은 독자 뿐이다”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

박인규 대표를 서교동 <프레시안>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신문기자 출신인 박 대표는 2001년 인터넷신문 창간에 뛰어들었다. ‘경영’에 ‘경’자도 모르던 글쟁이가 인터넷신문을 맡은 지난 10여년은 ‘고행’이었다. 박 대표의 얼굴은 최근의 고뇌 탓인지 수척했다. 


<프레시안>은 두 어 차례 좋은 ‘매각’ 기회를 놓쳤다. 한번은 케이블 방송업계였고 또 다른 한번은 대기업이었다. 박 대표는 후회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언론이 ‘기업으로’ 출발하는 것이 타당한지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늘 질문을 던지며 ‘면역’된 덕분이다. 


박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Q. ‘협동조합’은 2007년말 도입한 ‘프레시앙’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논의 과정이 지난했을 것 같다.


A. 인터넷신문을 운영하며 항상 경영위기와 만나야 했다. 기업으로 매각할 기회도 있었지만 결국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매체를 일궈가자는 초심을 버리지 않았다. 


최소 월 3000원씩 내는 자발적 구독료 모델인 ‘프레시앙’도 그렇게 탄생했다. 2011년말 2000명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3000명이 넘는다.


이 과정에서 2009년 네이버가 시행한 뉴스캐스트에 안주했다. 때로는 제목 장사에 빠졌다. 기업경영에는 도움이 됐을지 모르지만 <프레시안>이 추구해온 이상과는 맞지 않았다.


뉴스스탠드가 거론되던 지난해 하반기부터 고민이 깊어졌다. 그 무렵 두번째 매각 기회가 찾아 왔다.


그러다 지난해 말 협동조합법이 통과되면서 <프레시안>의 미래 경영구조를 놓고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다. 대기업과 합작해 매체를 운영하자는 쪽과 그래도 독자적 생존모델을 찾자는 의견이 부딪힌 것이다.


이 내부 논의는 5월 3일 주주총회로 일단락됐다. <프레시안>은 협동조합을 선택했다. 서너 가지 협동조합 모델 중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인 소비자와 기자인 생산자 그리고 우호적인 투자자인 엔젤들이 결합하기로 했다.


Q. <프레시안> 협동조합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A. 2007년 시행한 ‘프레시앙’이 전체 매출에서 10% 정도의 비중이다. 기자를 비롯 직원들의 인건비에 턱없이 모자랐다. 


2012년 매출이 25억원 정도다. 현재 기자 20여명 등 30명 남짓의 <프레시안>은 3만명 정도가 월 만원씩만 내준다면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조합원 1만명을 확보하는 게 당장에 목표다.


업계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전망하더라. 반면 협동조합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한살림’ 등 국내 소비자협동조합의 전체 규모가 60만명 정도 된다. 그중 적어도 10% 정도는 소중한 조합원들이 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다. 특히 ‘협동조합’ 경제라고 불릴 정도로 협동조합 간 ‘협력’이 살아 있다. 즉, 협동조합 생태계 속에서 서로 돕고 격려하는 분위기 같은 것이다.


Q. <프레시안>은 그동안 온라인저널리즘에서 혁혁한 공헌을 해온 매체로 분류된다. 


A. <프레시안>은 첫째, 권력 집단에 좌우되지 않았다. 자본권력, 정치권력과 타협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도 FTA 비판했다. 대기업도 준엄하게 비판했다. 기존 사회적 강자에 동조한 적이 없다. 이를 위해 기자들에게 월급은 많이 주지 못했지만 소신과 자율성을 보장했다.


둘째, 공익을 생각하는 전문가들을 발굴했다. 이들은 현재 진보매체의 훌륭한 필자로 성장했다.


셋째, 깊이 있는 저널리즘을 선보였다. 남북문제를 다루는 섹션만 7~8년째 특화했다. 생태, 노동, 교육 부문 역시 어떤 주류 매체보다 전문성을 강화했다.


단점이라면 인터넷신문이면서 기자들이 SNS나 새로운 트렌드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달라진 매체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깊이 있게 고민하지 못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갖게 된다.


또 이 과정에서 <프레시안> 창립멤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시니어급 기자와 주니어 간의 조화를 끌어내지 못했다. 인터넷신문의 특징에 대한 공감대가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 크게 자리잡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Q. 협동조합 전환 후 <프레시안>의 관점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A. 그간 <프레시안>은 설득보다는 주장이 많은 보도를 했다. 아직 기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변화도 예상할 수 있다. 가령 이념적이기보다는 실용적인 스토리를 더 생산할 수도 있다. 


조합원이 원한다면 생활밀착형 기사를 써야 하지 않겠는가. ‘딱딱한’ 매체를 벗어나야 할 지도 모른다.


Q. <프레시안>이 바라보는 네이버는 어떤가?


A. 최근 몇 년 사이 네이버로 덕을 본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안주했다. 


특히 한국 인터넷 생태계는 저널리즘의 수준과 생존력이 비례하지 않아서 힘들었다. 시장에서 부각되지 않는다. 


네이버는 저널리즘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는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것을 더 원하는 유통 사업자임을 절감했다.


물론 <프레시안>도 네이버 같은 포털만 쳐다 보면 안된다. 그렇게 하면 죽는다. 협동조합을 제시한 것도 네이버가 독점하는 뉴스 유통시장에서 매체 정체성을 지키며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기 위한 유일한 카드라고 봤다.


Q. 기성 저널리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A. MB정부 이후 저널리즘은 실종됐다고 생각한다. KBS, MBC 등 공영방송은 미디어법 통과 이후 지금까지도 존재의미를 망각하고 있다. 정의감이 없는 현상유지적 언론들만 득세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철저하고 공평하게 전달하는 매체가 거의 없다.


<프레시안>은 공공현안에 관심 있고 정의감 있는 시민들, 활동가들, 지식인들과 함께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목소리를 내는 매체로 살아남겠다. 협동조합 그리고 수많은 독자들과 함께 존재의 의미를 찾아갈 것이다.


Q.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프레시안>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A. 진보언론 즉,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내는 매체가 살아남기 힘든 이유는 기업사회가 압도적으로 보수적이라는 데 있다.


경제계가 보수적인 이념지향을 가지면서 <프레시안> 같은 매체는 외톨이가 되고 있다. 대기업 광고를 따기 위해 친기업적 기사를 쓸 수 있지만 하지 않았다. 


분명한 점은 정직하고 공정한 저널리즘을 지켜줄 곳은 기업도, 정부도 아니라는 것이다. 의지할 데는 독자들 뿐이다. <프레시안>의 이 믿음을 껴안아 주시길 부탁드린다. 협동조합을 통해 이 사회의 2~3만명의 의인(義人)을 꼭 만나고 싶다.

 

<프레시안> 히스토리


2001년 9월 창간

2005년 황우석 보도로 앰네스티 언론상 등 수여

2005년 12월 영화섹션+이야기옥션 오픈

2006년 신문발전기금 지원 언론사 선정

2007년 ‘프레시앙’ 자발적 유료화 모델 도입

2009년 키워드 가이드 제공(특정한 키워드에 전문지식 제공하는 지식생산자)

2010년 다큐멘터리 사진 서비스 ‘이미지 프레시안’ 제공

2010년 8월 북 섹션 오픈

2012년 3월 광고없는 페이지 플젝트 시행

2012년 기준 일 순방문자수 60~70만명. 광고매출은 약 70%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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