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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여름 '초짜' 기자이던 나는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던 노무현을 인터뷰했다. 일본과 독도문제로 갈등이 크게 일던 때였다. 그때 노 장관은 무척 감성적이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20세기에 한국사회의 시민그룹이 일궈낸 민주주의는 경이롭고 격정적인 것이었다. 때로는 군홧발을 앞세운 총검에 피를 흘려야 했지만 마침내 정권교체를 이룬 험난하지만 숭고한 길이었다. 분노와 응집, 좌절과 치욕이 교차한 지점에 민주주의가 있었던 것이다. 

적지 않은 논란에도 지난 10년간 한국사회에 나타난 일은 그 이전의 30여년과 비교할 때 표현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 시민권이 확립됐다는 것이다. 물론 특정한 정치 지도자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시민들이 현실정치와 부단히 조우한 덕분임을 잊어서도 안될 것이다.

어렵지 않게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권이 축조한 철학과 가치를 바꿔 놓기에 충분한 합법적 힘과 의지를 아낌없이 동원했다. 이 결과 부수적으로 냉전 이데올로기도 회생했으며 도처에 약육강식과 개발의 논리가 떠 올랐다.

퇴행하는 정부의 소통 방식을 겨냥했던 2008년 5월의 시민 ‘촛불’이 한때 한국 민주주의가 가르켜야 할 시침(時針)을 재확인시켜줬을 뿐 그 이후로는 속속 냉정한 사법의 감시와 경계가 밀고 들어왔다. 그때문인지 용산참사도 짧은 추억이 됐다.

오히려 만연한 사회적 보수화-정치냉소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중했다. 언론인은 정부정책과 태도에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시민은 거리에서 집회의 권리를 잃게 됐다. 조악한 경제정책을 비평한 ‘미네르바’는 국가기구의 검열에 영어(囹圄)의 신세가 됐다.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소란한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현 정부의 관장 아래 놓인 방침과 대응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들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적어도 당연한 권력이동의 결과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지난 10년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위기 속에서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배경으로 정권교체의 기대감을 잃지 않은 점도 그러한 이해 아래 놓여 있다. 유권자의 표로 선출될 권력을 향한 경쟁은 언제나 새로운 정부를 상정할 수 있을 정도로 확고부동한 질서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정치적 경쟁이라면 항상 새로운 정치문화는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던 시민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은 비극 그 자체였을 것이다. ‘친노’와 ‘반노’ 진영의 희비와 이해득실은 접어두더라도 노 전 대통령 개인이 입은 데미지도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실망은 이르다. 큰 낙담은 불우함을 자초하는 일이다. 더구나 궁지에 몰린 노무현을 매정하게 린치하는 국면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쏟아지는 정리되지 않은 반론들도 마뜩치 않다.

예컨대 친노진영의 정치기반을 와해하려는 정치적 음모라는 시각, 전두환-노태우 비자금의 규모에 비길 바가 아니라는 일각의 반격, 차떼기 정당의 발뺌보다는 솔직한 인정과 사과가 좋다, 얼마나 청렴하면...식의 감성적 진단도 선뜻 받아들일 게재는 아니다.

으로 상당한 기간 노무현을 중심으로 사유하고 움직였던 그룹들은 노무현으로 인한 불편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노무현’이 한국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친노 진영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쥐고 있는 것도 아니란 점을 유의해야 한다. 가혹하지만 노무현은 버려져야 한다.

반칙과 특권의 종식을 선언했던 노무현의 시대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거기서 승부사 ‘노무현’이라는 인물도 극복돼야 한다. 봉하마을과 그의 홈페이지를 응시하는데 머물러서도 안된다.

가파른 시대의 변주곡을 지휘하는 새 전망이 필요하다. 장엄한 정치적 열망을 추스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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