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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미디어의 미래

사설(私設) 방송 <나는 꼼수다>가 묻는다

by 수레바퀴 2011. 8. 26.

인터넷 라디오 방송 <나는 꼼수다>의 인기가 파죽지세다. 다루는 주제부터 형식까지 파격 그 자체인 <나는 꼼수다>가 CNN과 ABC 등 내로라하는 미국 뉴스 미디어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나는 꼼수다> 콘텐츠는 팟캐스트(Podcast)에 등록된다. 팟캐스트란 아이폰으로 아이튠즈에 접속해서 음악이나 음성 등 오디오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두었다가 언제든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애플의 아이팟(Ipod)과 방송(Boradcasting)을 결합해 만든 신조어로 지난 2005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라디오 방송을 디지털로 녹음해 인터넷에서 개인 오디오 플레이어로 다운받는 것'이란 뜻으로 수록된 바 있다. <나는 꼼수다>를 비롯 음성 파일들은 다른 모바일 기기에서도 들을 수 있고 PC에서도 마찬가지다.

객관적인 청취율 조사는 어렵지만 현재 국내 아이폰 가입자수가 약 350만명이고 안드로이드폰을 포함해 연내 스마트폰이 2,000만대 가량 보급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상당한 이용자가 <나는 꼼수다>와 접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에 <나는 꼼수다>를 둘러싼 팽팽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전통매체를 대신해 금기와 성역을 향하는 비평", "정치 현실이 빚은 난감한 사설(私設) 방송" 등 의견도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나는 꼼수다>는 우리가 알고 있던 '방송'은 아니다. 방송법에서는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 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에게 전기통신설비로 송신하는 것을 '방송'이라고 한다.

불특정 다수인 공중에게 배포하는 행위가 아닌 특정 디바이스에 특정 가입자를 대상으로 선택적 다운로드가 이뤄지는 제한적 서비스인 <나는 꼼수다>는 일단 현행 법에서 자리할 곳이 없다.

일요신문 2011년 10월 16일자.


기존 방송과 다르게 이용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아무 때나 들을 수 있어 맞춤형 개인 미디어를 대표하며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는 <나는 꼼수다>는 2000년대 초반에 등장했던 인터넷개인방송, 블로그 같은 1인 미디어를 경험한 이용자에게는 사실 낯선 것은 아니다.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콘텐츠'를 퍼뜨리고 의견을 교환해 본 이용자 역시 <나는 꼼수다>를 '진보한' 서비스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또 신문, TV 등 전통적인 콘텐츠 생산자 역시 웹캐스트나 팟캐스트로 이미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어 색다른 시도도 아니다.

대부분의 전통매체 기자들은 `나는 꼼수다`를 불편하게만 들을지 모른다. `나는 꼼수다`의 치명적 매력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뉴스룸 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채널을 선택, 수렴하는 독자와 시청자에게 알아내기 전까지는 아마도 계속 그럴 것이다. 전통매체가 저널리즘의 신뢰를 다시 꽃 피워 청명한 울림으로 `나는 꼼수다` 같은 사설 방송을 덮는 시원섭섭한 그날이 어서 왔으면 싶다.





그럼에도 <나는 꼼수다>가 각광을 받는 것은 첫째, 시기가 좋았다. 인기를 끄는 미디어 서비스는 동시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짚고 제때에 맞춰 제공해야 하는데 <나는 꼼수다>가 그랬다.

개인용 디바이스인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보급 시기와 동선을 같이 하는 것도 거들었다. 하지만 전통매체는 콘텐츠 생산과정이 아직 아날로그적인 부분이 많아 대체로 속도가 더디다.

둘째, 새로운 콘텐츠 유통 방식으로 파급 효과가 월등히 높다.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은 전파나 케이블망에 의존한다. 신문은 각 지국에서 보급한다. 전통매체도 인터넷이나 모바일 서비스는 하지만 포털 같은 재매개 플랫폼에 맡기거나 오랜 관행에 따라 서비스하기 일쑤다.

반면 <나는 꼼수다>는 이용자가 스스로 찾고 공유하는 모델이다. 따라서 '자가발전'이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하는 데도 <나는 꼼수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는 꼼수다>를 들어 본 사람들끼리 도와서다. 그들은 콘텐츠 수신자-소비자가 아니라 송신자-(메시지)발화자다.

셋째, 사람들이 원하는 내용을 전달한다. 전통매체는 콘텐츠 이용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공급자 관점에서 결론 내리는 경우가 더 많다. 독자와 시청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된 '조사'를 해 온 언론사는 거의 없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 왕성하고 상호적인 평판은 저널리즘의 신뢰도에 금이 가게 했다. <나는 꼼수다>는 전통매체의 그 균열 지점을 파고 들었다. <나는 꼼수다> 탄생과 인기는 분명한 사회적 동기가 있다지만 출연자들끼리 마구 떠 들어도 이용자가 공감할 콘텐츠가 그득하다.

이에 대해 <나는 꼼수다>의 리더격인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방송"이라고 정의한다. 시청률에 목을 매단 채 일희일비하고 광고주에 얽매인 전통매체와는 기본적으로 '애티튜드(atitude,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또 김 총수는 "<나는 꼼수다>로 덕을 볼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악전고투하며 뉴스나 드라마,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전통매체 종사자에겐 억울한 노릇이지만 해바라기성 언론인을 향한 일침에 해당한다.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만큼 냉랭한 반응도 적지 않다. <나는 꼼수다>는 선술집에서나 나눌 법한 이야기들을 방송이라는 형식으로 둔갑한 사이비 방송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복잡한 정치 현실 탓에 어부지리 성과를 거둔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나는 꼼수다>는 현재진행형이다. 매회 아슬아슬한 정치(인) 이야기를 쏟아내며 신문, TV의 시사 분야 콘텐츠와 경쟁 아닌 경쟁을 즐기고 있다. 물론 뉴스의 문법, 뉴스룸의 지향점, 권력과 광고주와의 커뮤니케이션 등 전통매체가 유지해 온 것과 <나는 꼼수다>는 현격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이 차이를 그저 인정하고 외면하면 그 뿐일까? <나는 꼼수다>가 오롯이 묻고 있는 시절이다.

덧글. 이 포스트는 한국기자협회보 온앤오프(62)에 게재된 글입니다.

미디어오늘 기자가 26일 오전 <나는 꼼수다> 인기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이날 마침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 <나는 꼼수다>에 대해 '놀라움'을 표했다고 한다. 전통매체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중 최고의 시사 프로그램이 어두운 지하세계의 방송 <나는 꼼수다>를 다룬 셈이다.

최근 의도와는 다르게 블로그나 기고글을 통해 <나는 꼼수다>를 자주 알려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이 방송이 조금 어색하고 불편하다. 아주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루는 형식 때문이다.

물론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미디어 수용자의 태도이다. 지난 10여년간 사람들은 '나'와 '타인'의 스토리를 즐기고 공유하는 문화에 익숙해졌했다. 대체로 그런 스토리들은 다이내믹하고 비주얼한 포맷과 내용으로 채워졌다. 당연히 사람들은 콘텐츠를 소비할 때 더욱 더 높은 기대치를 갖게 됐다.

<나는 꼼수다>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사실 기존 미디어도 심지어 뉴스도 온라인을 통해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들을 제공해온 것이 사실-최근까지도 뉴스는 철저히 상업적 플랫폼에서 연성화를 통해 생존본능을 발휘해왔다-이다.

결국 <나는 꼼수다>의 인기는 현대 미디어 수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제시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즉, <나는 꼼수다>는 수용자가 일상에서 자주 노출되는 콘텐츠의 형식과 내용들을 '방송'이라는 형식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콘텐츠 소비의 개인화를 촉진하는 스마트 디바이스로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전통매체는 아직 규제적인 시스템에 갇혀 있다. 현실적으로 실험적인, 파격적인 방송을 하기는 어렵다. 시사 장르의 경우는 정치적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현실정치와 저널리즘의 인과성도 <나는 꼼수다>의 인기와 비례한다. 무엇보다 현실정치가 아주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고 이 과정의 여러 이슈들을 전통매체가 속시원히 풀어주지 못한다는 미디어 수용자의 불만도 커진 상태다.

앞서 언급된 미디어 수용자의 콘텐츠 소비 행태는 사실 대중문화, 기호라는 흐름 속에서 규정된다. <나는 꼼수다>는 수용자가 좀 더 신랄하고 통렬한 것을 바라는 지점을 잘 파고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심리는 시대가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일시적인 유행일 수 있다.


<나는 꼼수다>를 선호하는 분위기는 "세상 돌아가는 것이 답답하다"는 생각을 품는 사람들에게 더 어울린다.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는 서비스인 거다. 이는 또 마치 2000년대 초 시사 분야에서 패러디물이 인기를 끈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것을 종합할 때 <나는 꼼수다>의 인기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이 방송에 대한 사회적인 인지도는 최고조에 이르겠지만 언제고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 정치 및 시민사회 가령 정치, 제도와 법률, 언론을 포함한 지식사회 등등이 어느 정도 정상적인 흐름을 타게 된다면 <나는 꼼수다> 같은 위태하고 희극적인 '소신'이 설 자리는 당연히 축소된다.

그 점에서 전통매체가 상당히 분발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오죽하면 미디어 수용자가 <나는 꼼수다> 같은 방송에서 정치사회적 현안을 확인하고 공감을 표하겠는가. 자사 저널리즘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 성찰이 필요하다.

앞으로 종편과 보도채널 등 뉴스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겠지만 현대 미디어 수용자의 의식세계와 동화하기 어렵다면 그러한 매체의 사회적 정당성은 그만큼 엷어진다. <나는 꼼수다>에 열광하는 수용자는 왜 전통매체의 뉴스를 불신하는가 곰곰히 따져 봐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이 어떤 스토리를 나누고 있는가 좀 더 깊이 천착해야 한다.

<나는 꼼수다>는 정치현실을 조롱하고 있지만 정작은 전통매체가 짊어진 저널리즘을 대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 방송은 희희덕거리고 품격없다고 불편하게만 볼 것이 아니라 엄중하게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관련 포스트 : <나는 꼼수다> 골방방송과 블루오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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