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뉴스를 인용하는 시대,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 언론은 2000년대 초반 포털 중심의 뉴스 유통 환경이 자리 잡은 이후 오랫동안 구조적 종속 상태에 있었다. 트래픽은 포털사이트의 몫이었고, 언론사는 클릭을 위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하도급 구조에 포섭됐다.
이제 그 구조가 다시 변화를 겪고 있다. 포털 알고리즘이 아니라 생성형 AI가 정보 유통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이 전환에 대한 뚜렷한 전략을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에스코토스컨설팅(대표 강함수)·해일로엑스·메시지하우스(대표 이중대) 3사가 공동으로 발표한 <기업 브랜드에 대한 생성형 AI 언론 인용 연구>는 기업 커뮤니케이션 관점의 실험 연구이지만, 저널리즘 관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OO 기업 어때?"…AI는 한경 기사 인용해 답했다
"OO 기업 어때?"…AI는 한경 기사 인용해 답했다, 3대 AI 엔진 인용률 한국경제신문 1위 한경 '콘텐츠 파워' AI가 입증 AI 답변 속 3967건 언론 데이터 반도체 등 핵심 업종 '최다 인용' 한경 보도가 곧
www.hankyung.com
AI의 인용 공간...소수 언론에 할애된다
이 실험 연구는 챗GPT, 제미나이(Gemini), 퍼플렉시티(Perplexity) 등 3개 AI 엔진을 대상으로 9개 산업, 27개 기업 브랜드에 대한 총 7,866건의 인용 데이터를 분석했다. 언론 인용 3,967건을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AI는 소수의 주요 언론에 크게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검색 엔진은 총 45개 언론을 인용했지만, 상위 3개 매체(한국경제·조선일보·매일경제)가 전체 인용의 약 35.6%를, 상위 10개 언론이 약 75%를 차지했다. 나머지 35개 언론이 1/4을 나눠가졌다.
이 쏠림 현상은 AI가 '도메인 권위'를 기준으로 정보를 선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구조에서 소외된 언론은 AI 생태계에서 사실상 자리가 없음을 뜻한다.
AI가 지식정보 생태계에서 주도적인 설계자가 될수록, 언론은 지식 권위의 중심에서 정보 재료의 공급자로 위치가 바뀐다. 이 이동은 포털 시대의 변화보다 훨씬 근간을 흔든다.
포털 시대의 게이트키핑은 알고리즘이 담당했다. 어떤 기사를 메인 화면에 올릴지, 어떤 기사를 추천할지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결정했다. 언론은 그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기사를 썼다. 제목을 자극적으로 달고, 키워드를 심고, 클릭을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뉴스의 생산 문법 자체가 변했다.
AI는 다른 방식으로 게이트키핑을 한다. AI는 수집된 정보를 재료 삼아 스스로 답변을 생성한다. 독자가 AI에게 질문을 던질 때, AI는 언론 기사·위키피디어·유튜브·기업 블로그 등을 동시에 참조하여 자신의 언어로 답변을 구성한다. 이때 언론 기사는 AI 답변의 '원료'가 된다. 포털은 유통만 지배했지만, AI는 의미 생산까지 지배하는 모양새다.
언론은 더 이상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최종 창구가 아니라, AI가 재처리할 정보의 입력값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AI가 읽는 것은 기사 아닌 ‘데이터’
포털 시대에 언론은 검색에 잘 걸리는 키워드, 클릭을 유도하는 제목, 짧고 자극적인 서술로 대처했다. 그런데 AI 시대의 저널리즘은 다른 최적화를 요구한다. 한마디로 '인용 체계'에 적합한 구조다.
AI는 기사를 읽지 않는다. 기사에서 추출 가능한 정보를 가져간다. 실험 연구에서 대체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AI의 선호 패턴이다. 예를 들어 반복적 보도량, 구조화된 정보, 산업별 전문성 등이다. 같은 이슈를 지속적으로 다뤄온 축적, 수치와 팩트 중심의 정보 설계, 그리고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보도 이력을 가리킨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데이터 축적의 결과라는 점이다. 한 번의 좋은 기사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보도의 총합이 AI의 인용을 결정한다. AI는 편향적이지만 무작위적이지 않다. 어떤 매체가 어떤 산업에 대해 얼마나 깊이, 얼마나 오랫동안 보도해왔는 지를 학습한 결과로 인용 패턴이 형성된다.
이번 실험 연구에서 조선일보는 식품/음료 분야에서 107건 인용됐지만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31건에 그쳤다. 자동차 전문지 오토헤럴드는 자동차 분야에서만 핵심 소스가 되는 것은 이 학습의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같은 매체라도 어느 분야를 얼마나 깊이 다뤄왔는가에 따라 AI의 인용 비중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기회이다. 메이저 언론과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중소 언론사나 전문지들이 AI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지역 언론에게 새로운 경로를 제시할 수도 있다.
더 근원적으로는 단발성 특종보다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보도가 AI 인용에 유리할 수 있다.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단독 보도 한 개보다, 같은 이슈를 꾸준히 파고든 연속 보도가 AI에게 '확립된 데이터'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특종도 이제는 연속적 문맥 속에서 의미를 얻어야 AI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병풍이 되는 언론...인터페이스 권력의 부상
저널리즘 이론에서 의제 설정(agenda-setting)은 언론의 핵심 기능 중 하나였다. 언론이 무엇을 중요하게 다루느냐가 공중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를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포털 시대에 이 기능은 이미 약화됐다. 알고리즘이 노출량을 결정하고, 클릭이 화제를 만들고, 언론은 그 흐름에 따라 기사를 생산하는 반응적 구조가 됐다.
AI 시대에는 이 이동이 더 가파르다. AI가 독자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할 때, AI는 그 답변의 구조와 내러티브를 스스로 결정한다. 언론이 생산한 기사는 그 답변을 구성하는 재료가 될 뿐이다. 독자는 AI와 대화하고, 언론은 그 대화의 배경 데이터로 물러선다.
언론은 무엇이 중요한 이슈인지를 결정하는 힘을 잃고, AI가 설정하는 의제의 재료를 공급하는 위치로 후퇴한다. 어떤 이슈가 AI 답변에 자주 등장하느냐는 그 이슈에 대한 언론 보도의 양과 구조에 의해 결정되지만, 그 보도가 독자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되는지는 AI가 결정한다.
이것은 저널리즘의 사회적 기능 자체가 재편되는 문제다. 언론이 공론장의 중심에서 정보 소스를 제공하는 위치로 재설정되는 과정에서,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에서 수행해온 역할—권력 감시, 공론 형성, 다양한 관점의 제공—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인용 최적화의 압력...비판 저널리즘의 대책은
AI가 정보를 채택하는 기준은 반복성과 교차 검증 가능성이다. 여러 매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정보, 공식 발표와 제3자 평가가 교차 검증된 정보가 AI 답변에 인용된다.
그렇다면 권력의 공식 발표를 뒤집는 단독 비판 보도, 불편한 진실을 처음 드러내는 탐사 보도는 어떻게 되는가? AI 검색 결과에서 이러한 보도는 일단 '예외 정보'로 처리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기존의 공신력 있는-공식 정보와 충돌하고, 다른 매체에서 즉각 확인되지 않는다면-다루지 않는다면 AI는 이를 신뢰도가 낮은 정보로 처리할 수 있어서다.
이것은 저널리즘의 핵심 기능이 AI 검색 환경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해지는 사안이다. 언론이 가장 중요하게 수행하는 기능—권력을 감시하고,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고, 다수가 외면하는 문제를 의제화하는 것 — 이 AI 인용 구조에서는 페널티를 받을 수 있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이 딜레마는 포털 시대의 어뷰징 문제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포털 알고리즘이 클릭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으면서 자극적·선정적 기사가 유리해졌듯이, AI의 반복성·교차검증 기준이 공식 정보의 반복 확인에 유리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언론이 AI 인용을 높이기 위해 구조화된 팩트 중심의 기사를 생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식 발표를 재정리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압력을 받는다.
비판적 저널리즘이 AI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는가는 이 전환기에서 가장 중요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다. 단발성 특종을 연속 기획으로 이어가고, 비판 보도의 핵심 팩트를 공공 지식 플랫폼에 연계하는 방식이 부분적 해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AI 인용이 곧 영향력은 아니다
다만 이 실험 연구의 AI 인용 비중 결과를 바로 언론의 영향력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이 연구는 AI가 무엇을 인용하는지를 측정했지만, 그 인용이 실제로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측정하지 않았다. 실제 영향력은 AI 답변 내 노출 위치, 사용자의 해당 매체에 대한 신뢰도, 클릭·구매 등 후속 행동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AI가 어떤 언론을 인용한다고 해서 그 언론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인지, 그 인용이 독자에게 어떤 가치로 전환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언론사가 AI 인용 점유율(Share of Model)을 새로운 KPI로 삼기 전에, 이 지표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더 깊은 검토가 필요하다.
결과는 구조적이기보다 일시적 상황일 수 있다. 이 연구는 특정 시점, 특정 프롬프트 유형, 특정 AI 모델 버전을 대상으로 한 1차 실험이다. 질문의 유형·반복 횟수·질문 시점에 따라 인용 패턴은 달라질 수 있다. AI 모델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며, 오늘의 인용 구조가 6개월 뒤에도 동일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실험 연구가 드러낸 경향성은 주목해야 할 신호이지만, 이를 불변의 구조로 받아들이는 것은 과잉 해석이다.
엔진 간 직접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제미나이가 전체 언론 인용의 69.8%를 차지한다는 수치는 제미나이가 실제로 언론을 더 많이 인용해서이기도 하지만, 각 엔진의 응답 길이·인용 방식·설계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차이를 무시하고 엔진별 수치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 한계들은 언론사가 AI 인용 대응 전략을 수립할 때 신중함을 요구한다. 단기적인 전술적 최적화보다는, 중장기적인 구조 변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판단이 더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