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는 기자들이 부쩍 늘었다. 대부분은 취재기자에서 '디지털'을 맡게 되는 차장급 이상의 기자들이다. 며칠 전 한 종편방송사 A 기자를 만났다. 그는 10년 이상 방송기자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발생 이슈를 온라인 처리하는 게 주 역할이다. 현장에 나가지 않은지 1년이 훌쩍 넘었다. 아직 40대 초반인데 기사만 다듬는 것이다.
A 기자는 최근 자사 디지털 전략 회의에 참석하며 '생태계'와 '기술' 이슈에 관심이 생겼다. 방송사 기자더러 온라인 기사를 작성케 하는 방향이 올바른지, 과연 이 조직과 기자의 미래는 있는지 의문부호가 쌓였다. 뉴스룸의 자원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다. 사실 이 언론사처럼 디지털에 힘을 실어주는 곳일수록 구성원들의 동요가 크다.
기본적으로 (방송사) 기자의 '업'이 재정열된 탓이다. 개인 발제나 부서장 지시사항을 방송 뉴스로 제작하는 일이 원래 업무지만 온라인 뉴스도 점점 발등에 불처럼 떨어지고 있다. 일부 매체는 디지털 뉴스룸이나 속보팀이 떠맡지만 뉴스의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새로운 영상이나 관련 이미지를 풍부하게 추가하는 등은 언감생심이다. 경쟁력 없는 기사를 내놓는 것이다.
신문사 속보 뉴스보다 비주얼 포맷이 떨어지는 곳도 많다. 게다가 현장에 나가지도 않은 채 온라인 뉴스를 제작한다. 이런 방식으로 치열한 뉴스 경쟁 환경에서 우위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방송 뉴스 시청률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신속한 영상 클립 배포로 눈부신 매출을 거두는 곳도 있지만 유튜브 종속으로 챙기는 이득은 옆구리를 찌르는듯 불편하다.
OTT에 뉴스 소스를 기반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물 제작, 유통도 마찬가지다. 뉴스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에서 다양한 플랫폼과 채널로 오디언스 접점을 형성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접근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자의 고민을 희석할 수는 있지만 기자의 미래를 판가름짓는 것은 아니다. 물론 OTT가 저널리즘의 지속가능성을 연결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논쟁할 만하다.
질퍽거리는 문제는 따로 있다. 언론사 내부에 그 누구도 이러한 투자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여년 전 미국의 한 방송사를 들렀을 때다. 당시 통합뉴스룸 구축에 속도가 붙어 어지간한 방송사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던 시절이었다. 그곳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심리학 전공자들이 소속 기자들을 만나 진로 상담이나 자기계발 등 고충을 공유하는 부분이었다.1)
디지털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방송 기자들의 공통점은 '공허함', '답담함' 같은 정신적 공백이다. 취재현장으로 돌아가지만 일터의 눅눅함은 떨치기 어렵다. 조직은 변화를 촉구한다지만 관행의 무게는 그대로다. 조직과의 거리감은 더 느낀다고 했다. 마일스톤을 공유하는 일도 필요하나 구성원과 대화하는 프로그램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나는 이 기자에게 뉴스의 도달률을 높이고 미래를 담보하려면 콘텐츠가 중요하지만 결국 기자 스스로도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디지털의 본질에 다가서야 한다. 디지털은 커뮤니케이션 양식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소셜미디어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뉴스 독자와 기자는 항상 맞닥뜨린다. 또 하나의 출입처다.
그런데 기자들은 미동이 없다. 트위터는 서구 언론사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도구다.2) 국내서도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발췌한 정보로 뉴스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소셜미디어서 기자는 보이지 않는다.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는 것을 염려하거나 시간도 없다는 핑계만 댄다.
미디어기업서 콘텐츠 비즈니스를 이끌다가 인터넷 신문을 맡은 B 대표는 20개 넘는 뉴스레터를 운용하는 조선일보 사례를 들며 '스타 기자'에 공감했다. IP(자산) 때문이다. 자신은 뉴스를 구글 검색으로 주로 찾는다면서 생성형 AI 이후 결국 독자는 포털을 떠날 것이라고도 했다. 그때 기자 브랜드는 더 중요하다.
나는 기자가 콘텐츠로만 말하는 시대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독자와 공존하고 협업하며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국내 언론사는 비교적 엄격한 가이드가 있지만-실제 관리가 되지 않는 점도 문제지만 자신의 뉴스조차 링크하지 않는 기자들이 대다수다. 독자와 대화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안 쓴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조직 측면에서는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온 중앙일보를 꼽았다. 독자 데이터 분석 노력도, 기자가 디지털을 주플랫폼으로 생각하는 문화도 분명 앞선 경쟁력이다. B 대표는 디지털 전략 책임자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게 어떤지 질문했다. 기술과 생태계를 이해하는 내부 구성원이 안정성은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자기부정이나 파괴같은 대전환은 불가능할 수도 있어서다.
구독 모델의 가능성도 짚었다. 국내 언론사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뉴욕타임스의 구독 모델도 10년 넘은 대장정이었다. 결코 단기간에 결실을 맺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구독 모델은 페이월을 넘은 독자를 누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를 관계 비즈니스의 연장선상으로 키워야 한다. 구독자를 영향력으로 발판삼는 일이다.
관계 비즈니스는 월스트리트저널 등 글로벌 경제지서도 확인할 수 있다. 콘텐츠 비즈니스를 B2P(business-to-professional publishing)에 초점을 두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커머스, 컨퍼런스로 연결하는 식이다.3) 여기에는 단연코 퀄리티 저널리즘이 필요하다. 진짜 저널리즘이 디지털 전환이다. 제품의 수준이며 신뢰의 교환이다. 가치와 경험을 제시하는 일이다.
홈페이지와 뉴스 앱은 그 전초 기지다. 디지털 전환의 성패는 지식 정보 생산자와 독자 간의 어김없는 소통이며 공유이고 그 밀도다. 모든 사전 준비는 최고의 저널리즘이다. 뉴스 페이지의 디테일을 고려하고 독자의 바람을 파악하는 창구를 가동해야 하다. 그렇게 쌓는 데이터가 없으면 영향력은 없다. 트래픽은 일순의 바람과 같다. 소통과 커뮤니티는 깊은 뿌리다.
한 대형일간지 C 임원은 "포털 뉴스 서비스가 바뀌면 어떻게 되느냐?"고 했다. 그 질문 안에는 소속 매체는 생태계의 양지에 여전히 있을 것이라는 자부심도 들어있었다. 콘텐츠 비즈니스 기대감도 내비쳤다. 한데 디지털에서 독자와 뉴스조직의 관계 증진, 기자의 역할 변화는 정작 우선 순위에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C 임원은 웹3.0과 AI는 어떠냐고 했다. 기술 접목은 필수지만 '데이터'가 관건이라고 했다. 참여자(독자 활동성)가 핵심이라고도 했다. 적어도 언론사에서 참여자를 불러들이는 것은 기술(보상) 그 자체가 아니라 관계성이다. 세계에서 독자에 대해 정기적, 구체적, 전면적으로 데이터를 다루지 않는 곳은 한국의 전통 매체다. 지속적인 독자 관계를 기약할 수 없는 구조다.
한 신문사 출신 기자가 퇴사 후 창업한 스타트업은 지금도 창창하다. 확실한 타깃을 대상으로 콘텐츠(IP)를 내놓고 게임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언론사가 그의 DNA를 수렴하지 못했던 장면은 아쉽다. 실패를 두려워했다기보다는 손쉬운 관계 비즈니스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모습은 여전히 반복되지만 전통매체 내부에는 디지털 전환을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혁신은 판을 바꿀 수 없다. "독자를 만나라. 데이터로 실행하라. 저널리즘을 지켜라. 커뮤니티는 뉴스룸의 목표여야 한다. 이것이 진짜 디지털 전환이다." 다음주 광화문서 한 대형 신문사 디지털 책임자와 약속이 잡혔다.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1) 한국 언론에 조직과 인력 관리는 낙제에 가깝다. 조직이 구성원에 혜택을 준다는 인식에서 다뤄진다. 인사정책, 인재확보 등 HR 전반에 인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담론과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이 전통매체를 집어삼킨 상황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것이나 다름없어서다. 참고로 해외 미디어기업에서 '심리학'은 인물 인터뷰, 배경 연구 등 콘텐츠 제작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2) 퓨리서치연구센터에 따르면 미국 언론인 10명 중 7명 정도는 업무상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로 트위터를 꼽았다.
3) 언론사 뉴스룸은 콘텐츠 스튜디오로 포섭되고 있다. 뉴스 영상, 영화, 다큐멘터리를 넘어 보고서, 출판 등의 영역으로 넘어서는 미래형 조직이다. 여기서 나오는 콘텐츠는 더 높고 전문적인 계층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하는 밀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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