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혁신보고서 이후 디지털 리더십 일관성
내부 반발에도 디지털 전환 계속 강조
장기간 인프라 투자와 디지털 인력 확보 지속
<중앙일보>는 10월 11일 프리미엄 구독모델인 '더 중앙 플러스'를 출시했다. 2021년 8월 로그인월을 시행한지 1년여 만이다. '더 중앙 플러스'는 디지털 전용 콘텐츠 30여종으로 구성했다. Leadeer&Reader, 세상과 함께, 돈 버는 재미, 마음 챙기기, 가족과 함께, 쉴 땐 뭐하지 등의 주제별로도 재배열하며 리뉴얼했다. 기존 구독 콘텐츠인 헬로 페어랜츠(양육), 팩플(IT), 앤츠랩(주식), 쿠킹(음식) 외에 편집국 각 부서 기자들이 가세한 결과다.
이들 콘텐츠는 이용권을 구입해야 열람이 가능하다. 이용권은 5개다. '더 중앙 플러스' 콘텐츠만 볼 수 있는 베이직 이용권(월 1만5000원)과 기존 신문독자 전용 베이직 이용권(월 5000원)이 , 월 2만5000원의 베이직&중앙일보 신문(신규구독) 이용권 그리고 베이직&뉴욕타임스(연 19만4000원), 베이직&폴인(연 18만9000원) 등이 있다. 뉴욕타임스와 자사 브랜드 '폴인'을 결합상품으로 배치한 것이 눈길을 끈다.
<중앙일보> 편집국 한 기자는 "유료화 평가는 시기 상조다. 다만 흐름이 중요한데 디지털 이슈가 내부 의제의 중심이 된 건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기존 업무가 완전히 정리된 것이 아닌 상태에서 팔리는 콘텐츠에 집중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디지털 부문에서 오래도록 일해온 한 관계자는 "일관된 방향을 리더가 끌고간 것이 오늘의 '더 중앙 플러스'가 나온 원동력이었다"고 짚었다.
<중앙일보> 뉴스 유료화 시행 과정에서 눈여겨볼 7가지 결정적 장면을 정리했다.
일관된 리더십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은 2022년 신년사에서 "<중앙일보>는 새해를 디지털 콘텐츠의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차별화된 킬러 콘텐츠, 일하는 방식 변화, 조직과 인프라 정비를 주문했다. 홍 부회장은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초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과 중앙일보·JTBC 공채 신입사원의 만남'에서도 디지털 전면화를 강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로그인 구독자', '독자 프로파일' 등 구체적인 키워드를 언급했다.
2018년 12월 콘텐츠 생산과 지면 제작 분리를 담은 정기인사는 신문을 넘어 디지털로 향하는 <중앙일보>의 결단이었다. 홍 부회장은 그해 사내 컨퍼런스에서 "일관된 브랜드를 가지고 유의미한 구독자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부회장은 자신이 주관하는 타운홀 미팅에서도 구성원들과 만나 자신의 디지털 관심사를 강조해 왔다.
<중앙일보> 디지털 부문 한 관계자는 "뉴스 유료화 흐름에서 가장 큰 동력은 의사결정권자의 일관성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바다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산으로 가자!'라고 외쳤다. "이 산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내부에서 끊임없이 나오는데도 아무튼 '산으로 가자!'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디지털 전환의 대장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렛대는 CEO였다.
외부 전문가 수혈
2015년 12월 이석우 카카오 전 대표가 <중앙일보> 디지털 전략의 책임자로 영입됐다. 직함은 조인스 공동대표 및 중앙일보 디지털전략본부장. 국내 대표적인 포털사이트를 맡았던 IT 전문가를 중용하자 업계 안팎에서 관심이 쏠렸다. 이후 디지털 총괄로 2년여 중앙일보 디지털 혁신을 주도했다.
한국 언론에서 외부 전문가를 CTO급으로 채용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이석우 총괄은 2016년 디지털 기술부문, 기획, 제작 등을 아우르는 조직체계를 꾸렸다. 소셜미디어, 데이터저널리즘, 데이터분석 등 데이터와 독자 대응 분야를 세분화했다. 그해 7월1일 중앙일보식 통합뉴스룸이 출범하는 등 조직과 업무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내부에서는 "디지털 조직의 전문화 체계화를 갖추는데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었다. 이석우 총괄이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를 두루 살피고 매체 전략을 가다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반면 <중앙일보> 디지털 부문의 한 관계자는 "디지털 업무를 정리하고 안팎에 인식과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한 것은 있지만 거대한 디지털 혁신 흐름에서 조율하는 정도였다"는 반응도 나왔다.[1]
디지털 조직 정비
<중앙일보>는 지난해 12월 잦은 조직 개편과 인사의 마침표를 찍었다.[2]특징적인 것은 디지털을 맡는 모바일서비스국 아래 전략 담당, 프로덕트 담당, 서비스 담당을 두고 전략 담당에 상품전략팀-마케팅팀-데이터팀을 함께 묶은 점이다. '상품전략' 부서는 한국언론 최초의 네이밍이었다. 이번 뉴스 유료화 과정에서 제한적이나마 콘텐츠 리서치와 의견을 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2021년 상반기 기준 신문(A)과 디지털(M)로 이원화한 조직 정비는 기본 골격이 됐다. 편집국이 디지털 콘텐츠를 먼저 생산하면, 신문제작총괄(A)에서 지면용으로 재가공하는 프로세스도 정립했다. 당시 디지털 부문(M)은 편집국(구 뉴스룸)+뉴스제작국+비즈솔루션본부(구 마케팅솔루션본부)+뉴스플랫폼담당으로 구성했다. 뉴스플랫폼담당은 서비스기획과 개발부서를 합친 R&D조직으로 핵심 부서인 디지털뉴스서비스실만 약 70명 규모였다.
뉴스제작국은 기획운영팀(전략기획, 데이터분석, 마케팅 등), 프로덕트팀(오리지널 디지털 콘텐츠 제작), 제작팀(1-2-3, 중앙-JTBC-헤이뉴스 등), 서비스팀(1-2-3, 폴인-듣똑라) 등 각 콘텐츠 채널별로 구분했다. <중앙일보> 디지털 부문에서 일하는 한 기자는 "편집국이 콘텐츠를 주도하는 흐름은 여전하지만 비교적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이 기자는 "과거에는 지면 중심의 마케팅 활동이 있었다면 이제는 디지털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인프라 투자
<중앙일보>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시스템, 서비스 환경 개선에 들인 IT 인프라 투자 규모는 인건비를 포함하면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전했다. 2020년 하반기부터 1년여 추진한 'IT 인프라 리빌딩'은 중앙일보 디지털 서비스에 인프라를 새로 구축하는 프로젝트였다. '진성 독자' 중심의 넥스트 비즈니스-뉴스 유료화 등 디지털 구독 모델 도입 기반 조성이 목표였다.
기존 디지털 비즈니스는 트래픽 기반 광고였고, 불특정 다수를 위한 서비스였다는 성찰에서 출발했다. 도메인과 회원 체계를 'joongang.co.kr'로 일원화해 중앙일보 회원 기반을 원점에서 재구축하고, 서비스 환경을 개선하는 관리자 도구를 개편하는 등 뒷단의 구조 변화를 일궜다. 로그인 기반 서비스를 선별, 관리할 수 있는 도구를 완성해 뉴스 유로화에 대비했다. 올해까지 이어진 빌링 솔루션 개발은 6개월 이상이 소요됐다.
기사 건별 유입 경로, 조회수 등 기존 기사 콘텐츠 분석 중심 데이터 분석 툴(JA)을 업그레이드했다. '데이터통합분석시스템'은 독자 분석 중심 데이터로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 시스템은 고객 데이터, 서비스 데이터, 콘텐츠 데이터 등 세 가지 유형의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는 대시 보드를 구성했다. 2020년 당시 <중앙일보> 서비스 기획 파트 담당자는 "뉴스 유료화를 당장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하려면 환경이 필요하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기자 인식 변화
2017년 초 JAM(Joongang Asset Managr)이 <중앙일보> 편집국에 등장했다. JAM은 콘텐츠 제작 관리 시스템으로 기자 스스로 디지털 뉴스에 각종 멀티미디어 자료를 첨부할 수 있게 하는 등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 한 도구다. 이로써 신문을 발행한 후에 디지털 서비스를 하는 종전의 <중앙일보> 업무 프로세스를 '디지털 퍼스트'로 전환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중앙일보> 편집국의 기자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제 우리는 디지털로 가는구나. 디지털에서 일하는 방식에 빨리 적응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시행착오가 있었다. 장기간 시스템 교육이 있었지만 콘텐츠 제작 프로세스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구성원들마다 적응하는 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JAM은 종이신문을 최우선순위로 두지 않는다는 불가역적 (不可逆的)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JAM 이후 <중앙일보>는 시장과 독자의 반응에 민감해졌다. 포털사이트의 반응에 숨죽였고 브랜드의 평판을 고려했다. JAM 구축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돌이켜보면 기자들의 저항이 있었고, 지금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도구의 변화는 기자들에게 디지털과 콘텐츠를 알아가는 전기가 됐다"고 말했다.
최고의 디지털 종사자들
'더 중앙 플러스'가 출시되자 언론계에서는 콘텐츠와 이용권 가격에 초점을 맞췄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편집국 기자들과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경영진의 판단도 중요하다. 그라나 이 서비스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고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한 역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나오고 이듬해 <중앙일보> 혁신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는 <중앙일보>가 종이신문에 리소스를 집중하고 있는 것을 성찰하는 내용이었다. 2016년에는 실행 과제를 도출하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문을 담았다. 미디어 혁신가로 저명성이 있는 후안 세뇨르의 컨설팅이 보태졌다. 이 보고서는 1~2년 간 <중앙일보> 구성원들을 성숙시키는 재료가 됐다.
위축되고 있던 언론계 디지털 부문에는 빛과 같았다. 현재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국 서비스 담당에는 기획, 개발, 디자인 인력 50여명이 모여 있다. 이들은 한국 전통매체가 보유한 디지털 부문 종사자들로는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고 있다. 외부 기술기업과 대형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소화했고, 그 결과와 특성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토론하는 값진 경험을 보유했다. 이 자산은 기술 내재화를 넘어 <중앙일보> 전체의 혁신과 전환을 뒷받침하는 에너지가 됐다.[3]
제품 사고
<중앙일보> 편집국서 '상품' 개념이 등장한 것은 최근 1~2년 사이지만 그 출발점은 2017년 무렵이었다. 당시 스타기자 10여명을 중심으로 연재물을 기획하고 '구독' 환경을 이끌었다. 2021년 구독패키지, 연재패키지, 이슈패키지, 토픽패키지 등의 콘텐츠 꾸러미를 다잡는 출발선이었다. 현재는 뉴스레터 개수보다 더 많은 정기적인 콘텐츠가 나왔다. <중앙일보> 디지털 부문 관계자는 "제품의 형태, 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고 회고했다.
주제를 세부적으로 나누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크고 작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중요한 것은 기자들의 제품 이해도가 높아진 부분이다. 열독률, 완독률 등 <중앙일보>의 내부 지표를 살펴보고, 그동안 만들어온 일반적인 뉴스는 안 된다는 결론 아닌 결론도 냈다. 이 모든 과정은 올해 '더 중앙 플러스' 출시를 내놓을 때 기자들이 효과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근거가 됐다.
'더 중앙 플러스'는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콘텐츠 형식의 다변화를 추구해야 하고, 독자의 콘텐츠 반응을 토대로 새로운 제품 라인업을 구성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중앙일보>는 일단 현실과 한계를 직시하자는 분위기다. 시장과 독자를 알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중앙일보>는 데이터 기반의 분석과 의사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중앙일보> 뉴스 유료화의 성패로 이어질 전망이다.
'더 중앙 플러스'의 향후 성과를 예상하기는 이르다.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이용권 요금을 책정할 때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세워야 한다고 봤다.[4] 포털사이트 뉴스 유통을 둘러싼 정책 결정은 논의 대상에 넣지 않았다. 단기적으로는 로그인하는 독자의 비중을 넘어 월간 활성 이용자(MAU), 콘텐츠 유료 구독의 배경을 분석하는 심화 단계를 추진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전면 유료화를 그리고 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중앙일보의 실험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처절한 실패를 경험해야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 인정하든 하지 않든 중앙일보가 앞서 걸어간 길이 다른 언론사들의 롤 모델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의 장면들에서 원칙과 기준을 다시 정렬한다면 예고되는 난관을 뚫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 <중앙일보>의 IT 기업가 영입은 내부에 미친 영향보다는 외부 이해관계자에 긍정적 신호를 줬다. 한 사람의 전문가가 편집국 기자들의 저항 등 전통매체의 높은 벽을 넘기에는 무리였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2010년 10월 언론사닷컴인 조인스닷컴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뉴스 포털 MSN이 결합한 '조인스MSN닷컴'을 론칭했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파트너십의 선례가 된 이 도전은 3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각자의 길로 돌아갔다. 하지만 향후 <중앙일보> 브랜드를 앞세운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에 소중한 경험이 됐다.
2. 일부 부서 명칭과 구성은 다를 수 있다.
3. <중앙일보>는 상시적으로 디지털 부문 전문가를 채용하고 있다. 전통매체 디지털 종사자의 업무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기술 부문 투자를 이어가는 신문사로 손꼽힌다.
4. <중앙일보> 디지털 부문 한 담당자는 "이 세대에 유료 기준은 '넷플릭스'다. 이용권 가격이 비싸면 (콘텐츠가) 넷플릭스보다 좋은가?"가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비평을 냈다. 어쩌면 독자의 의견을 더 많이, 긴급히 들어야 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덧글. 이 글은 퍼블리시뉴스와기술연구소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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