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문사들의 '구독모델' 관심이 커졌다. 첫 신호는 최근 수 년간 디지털 혁신투자에 공들여온 <중앙일보>다. <중앙일보>는 현재 디지털 편집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다. 또 독자 로그인을 유도하는 콘텐츠 디자인에 골몰하고 있다. 과금, 결제 등 지불 시스템 구축의 사전 단계에 해당한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워싱턴포스트>의 퍼블리싱 시스템 '아크'(ArcXP)를 도입하고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아크 구성요소에는 구독상품을 지정하고 결제, 정산이 가능한 '구독관리시스템'도 있다. <중앙일보>보다 속도는 더디지만 디지털 오리지널 콘텐츠를 고민하는 '에버그린 콘텐츠' 부서를 신설했다.
두 신문사가 구독 인프라와 콘텐츠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이 <한겨레>, 경제지 등 주요 신문사들은 '뉴스레터'를 앞다퉈 도입했다. <한국경제>가 WSJ처럼 CEO 등을 대상으로 하는 타깃형 뉴스레터로 차별화 방식을 택했고 나머지 매체들은 전문 기자를 투입해 다양한 주제로 구성했다. 뉴스레터 구독으로 '습관'을 형성하려는 시도다.
시장 외부의 변화조짐도 심상찮다. 네이버는 5월초 주요 언론사의 홈메뉴에서 '프리미엄' 메뉴를 통해 본격적인 유료 구독모델을 시험한다. 신문사와 그 계열 매거진을 포함 약 20곳의 CP가 합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품성 있는 콘텐츠와 이용자 지불의사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일단 충분한 '테스트 베드'는 갖춰진 셈이다.
카카오도 이르면 상반기 중 카카오톡에 '콘텐츠 구독탭'(가칭)을 개설한다. 다양한 콘텐츠 채널을 유무료로 구독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언론사 안팎으로 '구독 생태계'에 집중하는 조건이 펼쳐지는 가운데 <더피알>에서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아래는 기자 질문에 간략하게 답변한 내용이다. 기자와 이 내용을 구글독스에 공유했다. 블로그에는 조금 첨삭한 것으로 게시한다. (이 내용은 <더피알> 4월호에 게재됐다.)
Q. 현 시점에서 뉴스구독 시스템 정착의 당위성이 있다면 말씀부탁드립니다.
포털사업자들은 커머스와 콘텐츠 전반에 '구독'이 자리잡는 흐름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디어 스타트업의 구독멤버십과 일부 전통매체의 뉴스레터 구독사례 등 지식정보 콘텐츠 시장에도 긍정적인 사례도 있다는 것이죠.
포털사업자들은 이 패러다임 변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서비스는 크게 보면 이용자제작콘텐츠(UGC)에 이어 (준)전문가들의 콘텐츠(PGC)로 흘러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장이 만들어졌고요. 광고를 넘어 지불구조(PPGC, Payed Proffesional Generated Contents)를 만드는 게 중요해졌습니다. 유튜브도 각 채널의 '멤버십'을 띄우고 있지 않습니까. 포털의 '지식정보 구독 생태계' 상상력은 원초적일 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네이버는 언론사 브랜드 단위의 구독모델을 확장해왔습니다. 구독설정자 수가 400~500만 명이 되는 언론사들도 생겼습니다. 네이버 이용자의 구독형 뉴스 소비습관이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구독방식으로 매체별 뉴스소비를 하는 이용자가 있는 만큼 유료 콘텐츠의 수준에 따라서는 지불의사를 가진 이용자층의 확보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Q.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의 온라인 구독이 잘 자리잡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포털이 뉴스 유통의 대부분을 자지한다는 점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 마디로 국내 언론사의 '디지털 전환'이 구체적이지도, 전면적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조선, 중앙 등 일부 매체가 인프라에 투자도 하고 전담인력도 확보하면서 새로운 실험을 늘려왔지만 여전히 온라인은 가욋일과 오프라인의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투자도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조직문화나 역량도 뒷받침되고 있지 않습니다.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디지털 전문가의 영향력은 극히 낮습니다. 대부분의 결정이 종이신문의 관점에서 처리되고 있습니다.
이는 레거시 미디어의 비즈니스모델에 큰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오프라인 기반의 매출비중이 압도적입니다. 광고, 협찬 등의 규모에 의미있는 감소세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내부에 시장이 바뀌고 있다는 자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환경입니다. 기업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언론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매출규모나 외형은 커졌습니다. 광고주가 인식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물론 앞으로 점점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언론매출에서 대형광고주인 기업의 역할이나 규모가 변화가 없기 때문에 굳이 구독환경, 디지털 매출에 전념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이용자 관점의 '구독모델' 전환이 어려운 이유는 포털 주도의 디지털 뉴스 생태계가 걸림돌이지만, 최대 장벽은 언론산업을 떠받드는 매출구조 그 자체가 아닌가 합니다.
Q. 개별 뉴스 플랫폼에서의 뉴스구독이 자리잡게 되면 언론사와 뉴스 소비자 각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언론사의 주요 매출원은 기업의 광고, 협찬입니다. 언론은 독자보다 기업과 더 우호적입니다. 뉴스 구독이 정착하면 생산과저에서 이용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것입니다. 사실 한국언론은 디지털 뉴스 이용자에 대한 '서베이'가 전혀 없습니다. 최소한 자신의 독자들이 누구인지, 무슨 뉴스를 어떻게, 어디에서 읽는지조차 데터가 없습니다.
뉴스조직이 개별 독자 시장에 집중하게 되면 콘텐츠의 질과 범위, 형식이 달라집니다. 뉴스소비자가 가지는 여러 기호와 관심사를 수렴합니다. 뉴스 소비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습니다. 뉴스소비자와 소통을 합니다. 즉, 뉴스소비자가 뉴스생산의 기준이 됩니다.
반면 뉴스소비자는 자신에게 주목하는 뉴스매체를 찾게 됩니다. 단골고객이 됩니다. 이 매체가 사회적으로 평판도 좋고 가치가 있다면 자부심도 갖게 됩니다. 마니아 팬심, 충성도, 덕질이 언론관계에서 자리잡습니다. 비로소 언론을 돕는 것이, 구독하는 것이 나를 즐겁게 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론의 책임성 구현에 주목하는 뉴스소비자는 언론을 구독하고 후원하는 것을 넘어 더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직접 참여자가 됩니다.
뉴스소비자가 언론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면 역설적으로 언론은 뉴스소비자를 방치할 수 없습니다, 언론이 독자를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면 독자는 언론을 지금처럼 떨어져서 볼 수 없습니다. 새로운 지평이 열립니다. 언론과 독자는 '구독'을 매개로 파트너 협력자 친구 동반자로 마주보게 됩니다. 뉴스조직에는 독자개발부서와 소통과 데이터분석, 콘텐츠 전략부서가 부상합니다.
Q. 구독시스템이 성공을 하려면 궁극적으로 차별화된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어떤 측면들을 감안해야 할까요?
콘텐츠의 질-전문성, 개인화(타깃성), 다양성(형식이나 주제)도 중요한 변수겠지만 이번에는 다른 지점을 거론하고 싶습니다.
첫째, '독자' 관계입니다. 구독자를 유치하는 과정입니다. 뉴스 소비자가 구독자로 전환할 수 있도록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콘텐츠 전략 수립 같은 뉴스생산과정의 개선도 있을 것이고요. 뉴스유통 전략을 효율적으로 바꾸는 일도 필요합니다. 또 최종 뉴스 소비자인 독자에게 우리 브랜드와 상품을 어필하는 마케팅 측면도 살펴봐야 합니다. 뉴스조직(기자)와 독자 간 커뮤니티도 하나의 터닝 포인트입니다. 지금은 조직은 지국을 관리하거나 정산을 처리하거나 배달지연 등을 처리하는 오프라인 환경에서 부합하는 측면이 더 크다고 할 것입니다. 멤버십의 업그레이드가 중요합니다.
둘째, 저널리즘의 원칙입니다. 특히 한국에선 저신뢰 언론의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뉴스는 질만 우수하면 잘 팔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정확성, 공정성, 객관성 같은 언론의 책임과 소명을 다해서 매체에 대한 사회적 평판과 결부돼 있습니다. 저널리즘 혁신은 구독모델의 핵심 변수 중 하나입니다. 뉴스조직 내부에 '성찰'의 태도와 환경을 확립하고 자사 저널리즘을 진단하는 '혁신'이 함께 필요합니다.
셋째, 상품 전략과 이를 위한 조직입니다. 제품으로서의 뉴스를 고민해야 합니다. 기존의 콘텐츠를 넘어서는 상품이 필요합니다.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시장조사가 정기적으로 진행돼야 합니다. 독자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지식정보 시장의 경쟁환경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콘텐츠를 개발하는 전문조직이 필요합니다. 구독모델이 성공하려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일, 과정 등에 수술이 불가피합니다.
Q. 뉴스구독의 궁극적 목적은 결국 뉴스 유료화와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뉴스 구독이 유료화로 연착륙 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콘텐츠의 질입니다. 일단 질이 낮은 콘텐츠 생산은 줄여야 합니다. 현재 한국언론의 여건을 고려하면 속보양산이나 트래픽 경쟁에 지나치게 몰입합니다. 포털사업자 등 거대플랫폼으로 이동한 광고물량을 되찾아오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더 차별화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조직구조와 문화를 갖추는 게 필요합니다.
상품 디자인입니다. 지불장벽을 설계할 때 이용자의 반응, 소비행태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뉴스 생태계의 경쟁환경이나 유통구조도 잘 수렴해서 가격 등에 반영해야 합니다. 지불편의성을 위한 설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통정책의 변경입니다. 현재 포털에 뉴스가 전재되고 있습니다. 지면기사, 온라인 뉴스 등 대부분의 콘텐츠가 포털에 제공되는 환경에서는 개별 언론사의 구독모델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포털사업자의 뉴스정책 변화도 중요하지만 언론사들이 유통구조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기자역할입니다. 기자들이 뉴스구독을 한 이용자와 소통을 늘리고 커뮤니티 활동으로 관계개선을 높여야 합니다. 자사 콘텐츠에 대한 마케터로서, 소통자로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유료화 성공가능성에서 대중성 성실성 저명성 갖춘 스티기자의 지분이 적지 않습니다.
뉴스조직 전반적으로 인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뉴스 유료화는 기존 뉴스생산 과정보다는 더 치밀해야 합니다. 체계화하고 대상화하고 과학화하는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Q, 해외에서의 뉴스구독 모델 중 잘된 사례가 있다면 말씀부탁드립니다. 구독을 통한 뉴스유료화 모델도 좋습니다.
단연 <뉴욕타임스>입니다. 글로별 경제지의 경우 '돈'과 직결되는 데이터를 다룬다는 점에서 정보가치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합지는 많은 선택지에 직면합니다. 무엇에 더 집중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뉴욕타임스>는 퍼즐, 쿠킹 같은 디지털 상품과 섹션을 특별하게 운용합니다. 종량제도 잘 설계했습니다. 여기까지 10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품질향상, 독보적 저널리즘 등의 그림을 갖고 움직였다는 것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Q. 향후 뉴스구독 모델이 정착되면 뉴스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예측부탁드립니다.
포털 중심 뉴스소비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최종 뉴스소비지가 언론사 채널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뉴스레터 구독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나 매체(기자)와 직접 연결됩니다. 기존 유통질서에서 언론사 채널의 비중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뉴스조직 내에도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 개발부서가 주목받을 것입니다. 또 지불방식을 비롯 구독자 편의를 고려한 인프라 구축과 설계가 증가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과 마케터들은 기술인식이 높아집니다. 개발자 확보 등 기술인프라 투자와 그 활용성이 증가합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뉴스 유통방식이 완전히 재설계됩니다. 속보만 포털에 유통하거나 언론사가 선택한 뉴스만 포털에 노출할 수 있습니다. 포털사이트도 구글방식 등으로 아웃링크를 확대 도입할 수도 있고 통신사 등 몇몇 매체만 인링크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프리미엄 상품만 인링크 형태로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뉴스유료화가 경쟁의 축이 되다보면 언론사 경쟁문화도 바뀝니다. 더 나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상품으로 만들고 독자와 소통하는 것에 힘을 싣게 됩니다. 충성고객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합니다.
뉴스생태계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뭐니뭐니해도 '저널리즘'의 측면입니다. 한국언론은 정파성이 짙고 진영 프레임이 강합니다. 언론지형도 보수매체가 다수입니다. 당연히 편향논란이 나오고 언론불신이 큽니다. 언론의 일방주의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나 시장의 반응에 주목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는 저널리즘에 문제가 있어도 개선은 더딥니다.
하지만 '구독모델'은 독자와 상호작용을 전제로 합니다. 뉴스레터는 독자의 반응이 직접적입니다. 기자들이 가입자들의 의견을 바로 보게 됩니다. 이탈률, 오픈율 등을 봅니다. 원인도 찾아보게 됩니다. 단순히 매체의 색깔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그래서 구독모델은 정보의 심층성 과학성 윤리성 같은 가치를 검토하도록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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