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미디어 등장과 출판 산업의 위기는 신문기업들이 전유물처럼 다뤄온 뉴스 전반에 대해 다양한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이 중에서 뉴스 생산, 유통, 소비 등 전 공정(process)에서 독자의 참여는 가장 결정적이고 심중한 부분이다. 개방성과 양방향성을 내세운 온라인저널리즘이 활성화하고 있음에도 국내 언론사와 독자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기만 한다. 언론사는 독자를 진정으로 끌어안지 못하고 독자는 언론사를 불신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독자는 획기적으로 진화하는데 언론사는 조금만 변한다는 점이다.
인터넷은 뉴스에 대한 비평을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고 이것은 신문기업-뉴스 미디어 기업이 생산하는 뉴스의 관점(viewpoint, 논조)까지도 독자들의 ‘개입’을 허용할 것인지는 첨예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관점은 오래도록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비쳐져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문에서는 일반적으로 관점이 사설로 드러난다. 사설은 지면 위에 공개된 일반 기사(article)들을 떠받드는 반석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는 기사와는 다르게 저널리스트의 이니셜조차 표기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두터운 성벽처럼 “알려고 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된다. 사내 저널리스트가 작성하는 기명 칼럼도 묵중한 ‘금(line)'으로 보호한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은 뉴스에 대한 소비양식을 바꿔 버렸다. 때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때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뉴스에 대한 비평이 공개적이고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많은 온라인 독자들은 뉴스를 둘러싼 다양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10여년간 뉴스(story) 페이지 아래에는 독자들의 코멘터리(commentary, 댓글)가 이어졌다.
댓글은 뉴스룸과 기자들을 일순 곤혹스러움에 휩싸이게 했다. 독자 투고의 수렴과 공개조차 뉴스룸이 일방적으로 움켜 쥐었던 지난 시절은 더 이상 오지 않는 대신 뉴스에 대해 즉각적이고 거친, 그러나 폐부를 찌르는 비판들을 그것도 매일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상당한 오해가 있지만 해외 신문기업들이 뉴스 댓글을 바로 공개하지 않은 것은 뉴스룸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사 저널리즘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기자와 뉴스룸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논리적인 글들은 시간을 두고 대부분 공개됐다.
독자들의 뉴스댓글을 제공하는 것은 온라인저널리즘이 원하는 방향이기 때문이었다. 국내에서도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독자들의 댓글은 가급적 공개됐다. 포털사이트로 뉴스 댓글의 전량을 몰수당할 때에도, 제한적 본인 확인제 이후에도 남겨진 독자들의 댓글은 뉴스의 가치를 완성하는 일종의 마감재 같은 단계였다.
언제부터인가 독자가 남긴 댓글은 더 이상 기자, 뉴스룸과는 무관한 메시지가 됐다. 참담한 일이지만 국내 신문사 뉴스룸의 대부분이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독자 댓글을 전담하는 인력조차 배치하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는 독자의 의견을 ‘관리’하는 차원이 아니라 전향적으로 수렴하는 움직임들이 늘고 있다. 이와 관련 가장 쉬운 접근은 취재물 즉, 뉴스와 독자의 비평-댓글 사이에서 기자들이 직접 소통할 수 있도록 기회와 책임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해당 뉴스를 생상한 기자는 물론이거니와 해당 부서 (온라인) 에디터나 뉴스룸의 간부, 심지어는 칼럼니스트 - 우리로 말하자면 논설위원이 정례적으로 정해진 공간(web page)에 등장한다. 그들은 ‘관점’에 대해 스스럼없이 의견을 교환한다.
아직 한국 언론에서는 기자가 온라인 독자와 소통하는 것 그 자체를 기피하고 있다. 기자는 온라인 독자와 이야기하는 것이 서툴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보다는 왜 ‘쓸데 없는 일’에 말려 드느냐는 부정적 기류가 우세하다. 기자들은 일반적으로 뉴스와 관련된 온라인 독자의 비평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한다.
오늘날 온라인 독자는 뉴스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다른 이용자에게 전하는 일까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뉴스에 대한 평판을 일상화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자와 소통하는 것을 대단히 반기기까지 한다. 때로는 기자와의 소통으로 예기치 않은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가령 좋아하지 않던 매체를 선호하게 됐다며 발언할 수 있고 SNS에서 기자를 따르기도(following) 한다. 뉴스를 매개로 한 대화의 긍정적 결과다.
그럼에도 정작 신문사는 기자의 역할과 비중만 커진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다. 뉴스 생산보다 ‘소통’에 주력할 경우 정작 뉴스의 질을 담보하기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애틀랜타 저널(Atlanta Journal-Constitution)의 경우에는 온라인저널리즘 환경을 고려해 뉴스룸 구성원들이 전향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자사 뉴스의 관점에 대한 반대 의견과 함께 모든 의견의 균형을 잡는 것을 중요하게 간주하는 것이다.
즉, 좀 더 개방적인 뉴스룸 문화를 형성하려는 것이다. 애틀랜타 저널 에디터인 줄리아 월리스(Julia Wallace)는 “만약 우리의 시각이 오른쪽이라면 우리 독자들은 왼쪽의 시각도 보여주는 것을 원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온라인 뉴스 독자들은 언론사 뉴스룸이 지향하는 이념보다는 투명하고 상호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더 기대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네트워크 저널리즘 환경에서는 언론사가 논조를 유지하기 위해 냉정하고 견고하게 대응하기보다는 독자들에게 사실을 균형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신뢰’가 획득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선거에 나선 일부 정당 후보자들의 문제점만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공약과 성향을 알만한 소스나 데이터를 이용자들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또 정부의 공식적인 주장과 함께 다양한 (온라인 독자가 제시하는) ‘의문점’들을 쉽고 편하게 제시한다.
어느 한 쪽을 고집스럽게 부각시키는 것만으로는 다양한 기호와 성향을 가진 온라인 독자들과는 호응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대부분의 신문사 뉴스룸은 자신의 관점만 강조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 궁극적으로 볼 때 더 많은, 새로운 오디언스를 유입하기 위한 전략과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게다가 뉴스룸과 기자가 소신을 터무니없이 밀어 부칠 때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소셜 미디어 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경험을 중요하게 다루는 온라인 독자들은 유독 ‘그 언론사 및 그 기자’의 뉴스를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 배척하고 야유할 수 있다.
마이애미 헤럴드(Miami Herald) 옴부즈만 에드워드 슈마허(Edward Schumacher-Matos)는 “(자기 확신이 강한 뉴스룸의) 기자들은 (온라인 미디어 환경 이전에는)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상당수 기자들이 아직 온라인 독자들의 불만을 자신의 무능 혹은 저널리즘의 결함으로 수용할 태세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는 오래도록 인터넷 이용자들이 기성사회에 부정적이며 일탈적이라는 ‘적대적인’ 시각이 팽배했다. 되레 온라인 독자들에게 책임을 씌우려 하는 손쉬운 유혹에 빠져 있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온라인 독자들은 보도와 논평을 오해할 수 있다. 기자들의 현장 보도에서 많은 것을 기대한 나머지 불충분한 부분을 의도된 왜곡으로 간주할 수 있다. 또 논평을 그 자체로 해석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음모로 추정하는 습성도 있다.
그럼에도 기자와 뉴스룸이 혁신해야 한다는 명제를 부숴버릴 정도는 아니다. 온라인 독자들과 기자 사이에 더 많은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명제도 아니다.
특히 언론사가 견지해온 관점을 더 이상 일방적인 공급자의 몫으로 둬서는 안된다. 온라인 독자들이 비평하고 기자와 대화하는 전 과정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뉴스 생산과 서비스 전반에 반영되게 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언론사 뉴스룸의 관점이 독자들에게 굴복당했다고 보는 해석보다는 유연하고 합리적인 전략이란 평가가 가능하다. 독자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 짜릿한 ‘경험’을 전파할 것이고 해당 언론사는 새로운 ‘이미지’를 순식간에 획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뉴스가 독자들의 수중에서 더 많이 회자되며 가치를 부여받듯 뉴스의 관점 역시 독자들과 나눠 가질수록 탄탄해진다는 점을 뉴스룸과 기자들이 인식하게 된다면 온라인저널리즘의 수준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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