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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촛불` 安住와 `촛불` 以後

by 수레바퀴 2008.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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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08 오마이뉴스 세계시민기자포럼 '촛불 2008과 미디어 리더쉽' 마지막 세션 종합토론에 참석했다.

나는 이날 촛불 그 자체에 집착해서는 안되며 촛불 이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부조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소통단절과 왜곡의 체제에도 불구하고) 촛불에만 의지하고 안주(安住)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촛불 이후, 촛불의 사회화에 대해 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오늘 이 시각에도 서울과 전국에서는 '촛불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공권력과 마찰이 계속되면서 반민주 정권 심판으로 촛불의 방향이 바뀌는 점도 나타난다. 또 전통매체에 대한 반목과 거부는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 무슨 말을 하든 살아 있는 자들은 미안하다. 촛불이 한국사회의 위기를 상징하는 한.

아래는 이날 토론을 위해 사전에 준비한 메모를 재구성한 것이다.

[토론 요약]

촛불에 대한 의미 평가와 분석이 분분하다. 그런데 우리는 촛불 이면에 있는 그림자도 점검해야 한다고 본다.

2개월여 계속되고 있는 촛불에 대해서 사회 전체가 껴안는 노력이 부족하게 보인다.

정치와 전통매체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 전체에 과연 중재의 리더십이 존재하는지, 그런 콘텐츠가 있는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설득과 소통의 체계보다는 갈등과 대결의 기법이 정교해진 것은 아닌지 개탄스럽다.

지식인의 책임이 크다. 사회적 리더의 역할이 존재하지 않고 방치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촛불로 대변되는 시민과 소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정권의 능력과 성실성의 문제로 일시적인 이슈일 수 있다. 정치는 우여곡절이 있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촛불이 전하는 메시지를 사회화하는 노력이다. 매번 촛불을 드는 것이 대견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촛불 그 자체가 아니라 대화와 숙의, 제도화의 틀에서 완성된다.

촛불에 안주하는 것은 안돼

물론 촛불은 내부에서 스스로 소통하면서 힘을 축적하고 있어 보이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촛불은 도덕성과 비폭력성, 순수성이라는 가장 완결시키기 어려운 것들로 시작됐다. 촛불을 든 이유, 목적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경향이 훼손되면 언제든 촛불의 진정성이 무너질 수 있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이미지다. 최근에 촛불 모습들에서 평정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촛불의 사회화가 필요하다. 촛불 이후 시민운동의 전열이 정비돼야 한다. 그것이 소비자의 가치를 꺼내든, 환경주의의 호소가 되든, 반신자유주의의 노선이든 간에 촛불이 아닌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촛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표정과 징후들을 정리해서 사회적인 네트워크로 확대해야 한다. 그것이 정당이든 시민단체이든 말이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을 처리하는 촛불 안주를 경계해야 한다.

미디어 리더십 변화는?

이번 시민기자포럼에서 촛불이 미디어 리더십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들이 있다. 틀리지 않는 진단이다. 전통매체는 (한때) 촛불에 백기를 들었고 촛불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속적으로 정립될 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전통매체도 혁신이란 카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기자 스스로 변화를 절감하고 있다.

전통매체가 상처 입은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1인 미디어의 분발의 속도보다 빠르게 리더십을 만회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촛불의 과제는 영향력의 전환 그 자체가 아니라 한국 언론의 저널리즘에 깊이 다가서야 하는 부분이다.

뉴스 콘텐츠를 향한 지속적인 미디어 비평 운동이 제안돼야 한다. 이제 시작돼야 한다. 1인 미디어들이 해줄 수 있을 것인가?

전통매체는 어떻게?

그렇다면 전통매체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전통매체에 대한 뉴스 소비자의 거대한 거부감을 체험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일단 촛불의 요구를 마지못해 수용하는 등 수세적인 소통으로 전환한 것은 종전의 전통매체의 태도에 비해서는 놀라운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뉴스룸과 기자들의 업무 내용 즉, 보도 내용에 근본적인 변화의 재료가 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촛불의 본질보다는 폭력행사나, 건물훼손 등 일부의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 이것은 또다른 불화와 긴장을 낳고 있다.

촛불의 참여자들과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상당한 기간 동안 디지털 미디어 세계는 세 개의 전선이 형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통매체 뉴미디어(포털) 그리고 1인미디어들이다. 때로는 이들간에 협력도 유지되고 또한 갈등도 형성될 것이다.

누가 안전하고 훌륭한 공생의 모델을 만드느냐가 3자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일단은 전통매체가 뉴미디어와, 또 뉴미디어와 1인미디어간의 연합이 형성될 것이다.

뉴미디어는 전통매체를 압도하면서 성장할 것이고 1인 미디어도 나름의 영역을 지킬 것이지만 전통매체는 협력의 대상을 잃고 허둥댈 것이다.

한편으로는 1인 미디어와의 공존 패러다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혁신하는 전통매체 뉴스룸과 종사자들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장 문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풍경들 중 하나는 1인 미디어가 전통매체와 협업관계를 가지는 부분이다.

원대한 온라인 저널리즘의 길이 열릴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포털 '중립성' 이미 사라져

촛불이 켜진 2개월 동안 한국의 포털에 중요한 변화가 진행됐다. 시장 2위인 다음의 '아고라'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네이버는 주춤거렸다.

네이버는 해명글을 공지하는가 하면 뒤늦게 '촛불' 콘텐츠에 합류했다. 하지만 만연한 반네이버 정서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용자들은 이미 네이버에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는 평가까지 내리고 있다. 네이버는 현재 서비스 개편을 통해 촛불을 돌파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가기구의 규제가 확대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등에 따라 게시글에 대한 '임시조치'가 계속되고 있다.

다음도 스스로 검열을 확대하고 있다. 정보 유통자를 내세우며 중립적 정책을 내세우는 포털의 기만은 끝이 없다.

네이버가 중대 사안들에 대해 엄격하게 움직였다는 것은 스스로 중립성이 없는 것에 다름없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정치뉴스 댓글 일원화를 한 부분이나 촛불과 관련된 뉴스편집을 지나치게 신중하게 처리한 점은 '중립성'이 아니라 '친권력'형이었다.

다음이 더 이상 이용자들의 움직임이 아니라 정부의 입김에 따라 정책과 관리를 바꿔가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포털이 말하는 '중립성'은 철저한 상업적 이해에 다름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포털은 앞으로 더 강화된 규제조치들 앞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포털이 자의적인 편집의 패러다임을 벗고 완전한 이용자의 수중으로 작동된다면 국가의 규제가 발붙일 근거가 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포털이 앞으로는 중립성을 외치고 안으로는 교묘한 치우침을 지속할 경우 국가의 규제와 동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이용자의 표현자유 침해와 공론장의 위축으로 전개될 것이다.

촛불의 참가자들이 포털의 철저한 배신을 통해 더욱 거대한 공론장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결국 우리는 촛불에서 새로운 세계를 향한 첫 걸음을 뗀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향후 몇 년 동안 현재의 촛불이 감당하고 있는 산적한 과제들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묶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정치 무관심과 보수화의 거대한 물결이 촛불 이후를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칼라TV'에서부터 국회까지 전 부문에서 강력한 연대를 체결하지 못한다면 촛불의 경험과 교훈이 지금처럼 '격찬'과 '경외'의 대상이 되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판단한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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