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과 재계, 언론계 일각에서 기존 신문방송 겸영 제한조항을 수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잇따르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쪽에서 '펌프질'을 하고 있는 데다가 방송통신 융합 가속화 등 미디어 환경의 급변도 이같은 움직임을 거들고 있다.
우선 현행 신문법 15조 2항에 따르면 일간신문은 방송법에 의한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을 겸영할 수 없고, 15조 3항에 의해 일간신문, 뉴스통신 또는 방송사의 지분 2분의 1 이상을 소유한 자(동일계열의 기업이 소유하는 경우 포함)는 다른 신문의 지분 2분의 1 이상을 소유할 수 없다.
방송법은 8조 3항에서 ‘종합일간지 및 뉴스통신사(특수관계자 포함)가 지상파 방송, 보도 및 종합채널사업(PP)을 겸영하거나 그 주식,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양법은 방송사의 일간지 지분 소유를 일정 부분(2분의 1) 허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신문법과 특수 관계자를 포함해 신문의 지상파방송 진출을 금지한 방송법과는 차이를 갖는다.
문화부에서 올해 초 지상파 방송사의 신문사 소유지분 제한을 현행 50%에서 30%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점도 방송의 신문산업 진출에 대한 규제강화로 형평을 맞추려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산업적 관점에서는 이같은 규제 일변도의 장치들이 뉴미디어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규제완화책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현재대로라면 신문, 지싱파 방송 등 미디어들의 사업다각화와 컨버전스, 크로스미디어 전략수행에 한계가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다.
이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법안이 제출된 바 있다. 이들 안에 따르면 뉴스통신과 지상파 방송이 일간신문의 주식이나 지분을 30%까지, 시장점유율 20% 미만인 일간신문은 지상파 방송사업 지분을 20%까지 허용하고 있다.
또 최근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 미디어 산업 안팎의 광범위한 규제완화를 담은 보고서를 내며 겸영규제 완화에 힘을 싣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미디어간 교차소유를 허용하는 외국 사례를 들어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성장환경을 위해서는 미디어 전반에 대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데 모아진다. 또 여론 집중을 막기 위해 신문업계에 적용된 신문방송 겸영 규제는 지나치게 일률적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따라 신문, 방송 겸영규제에 명분을 실어줬던 20세기적 정치논리가 퇴장하고 새로운 다양성과 비즈니스를 꿈꾸는 산업논리가 설득력을 확보해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신문, 방송 겸영규제 완화를 시기상조로 보는 견해도 만만찮다.
첫째, 여론의 다양성을 위협하는 경우에 한해 겸영을 제한한다고 하지만 신문, 방송 등에 국내외 대자본의 유입을 막을 수 없고 그것은 언론의 공영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둘째, 겸영규제를 완화하자는 쪽에서는 지뷴율을 제한하는 쪽에서 풀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일단 겸영규제가 대폭 완화되면 그 지분율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 그 파장이 흘러갈지 속단하기 어렵다.
셋째, 특히 동일지역에서만 겸영을 불허하는 등 여론독과점 예방장치로 겸영규제의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는 경영효율성과 수익기반 확대를 도모하는 겸영규제 완화의 원래의 취지와는 거리가 먼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내 신문, 방송 시장을 고려할 때 동일지역을 불허하는 겸영에 무슨 산업적 가능성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역설적으로는 이후에 지역제한은 붕괴될 수밖에 없는 또다른 산업논리의 정당성을 만들어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나온 법안들 즉, 뉴스통신과 지상파 방송이 일간신문의 주식이나 지분을 일정 부분 점유할 수 있고, 시장 점유을 20% 미만인 일간신문이 지상파 방송사업 지분을 20%까지 허용하는 것도 현실성이 없긴 매한가지다.
특정 신문에 대한 투자 붐이 가속화할 수 있고 특정 신문이 외면받을 수도 있는 등 머니 게임이 전반적으로 양상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언론산업 종사자들이 최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시장 점유율 20% 미만인 일간신문업자가 지상파 방송사업 지분을 유의미하게 차지할 여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지상파 방송 지분을 차지하기 위해 점유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도 있는 등 다른 문제를 파생할 수 있다.
결국 숫자상의 제한으로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겸영규제를 풀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한번 봇물이 터지면 자본 주도의 미디어 시장 재편은 불가피하다. 이 경우 언론산업 전체적으로 서열화, 양극화가 심화해 여론시장 독과점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 수도 있다.
현재 국내 미디어업계는 다양한 문제들을 갖고 있다. 뉴미디어의 경우 위성DMB 사업자들의 총 누적적자 2,700억원에서 보듯 유료 서비스 시장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이 뒷받침되고 있지 못하다. 지상파 재전송 문제도 시일을 끌면서 IPTV의 전면적 도입은 벽에 부딪힌지 오래다.
이런 가운데 통신, 방송사업자간, SO 및 케이블TV와 지상파사업자간 공방도 치열하다. 수신료 현실화, 지상파 멀티모드서비스(MMS) 도입, 위성방송의 공시청안테나(SMATV) 도입 등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암초 투성이다.
정부와 업계가 규제논의를 성숙하게 진행하고 있지 못한 가운데 또다른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방송위원회가 전문편성을 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중 보도전문채널을 일방적으로 승인, 불허하고 있는 것은 대표적이다.
현행 방송법과 시행령은 유료방송 전문편성 PP는 전체 방송시간의 20% 이내에서 교양 및 오락프로그램에 한정해 부수적인 편성을 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다양한 PP에서 ‘뉴스’를 편성하는 것은 모두 위법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사문화된 조항에 불과하다. 보도가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개념정의도 부재한 상황에서 이미 대부분의 PP가 보도기능을 하고 있어 지나친 제약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때문에 신문사가 직접 지상파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보다는 PP(채널사업자)로서 보도 및 종합편성 채널사업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신문방송 겸영규제 논의는 단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내 미디어 업계의 규제와 진흥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다. 방송시장을 유료와 무료로 확실하게 구분해 공정한 경쟁의 틀을 갖추는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겸영의 효과는 물론이고 부작용을 차단하기 어렵다.
특히 개별 플랫폼 사업자가 스스로 혁신의 노력을 경주하고 선택과 집중의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문업계는 인터넷 포털과 경쟁을 통해 자멸한 바 있다. 제대로 된 혁신도 미흡한 상황이다.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시장내 지위를 갖지 않으면 신문방송 겸영은 또다른 미디어 난개발에 불과하고 그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다.
신문방송 겸영 이전에 미디어 기업의 뼈저린 자성과 분발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지금의 겸영규제 완화 논의는 당위성은 인정되지만 현실적으로 무르익지 않았다. 그 시간을 당기는 것은 언론산업 전체의 혁신 속도와 수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가 여론의 다양성을 위하여 이종매체 간 겸영제한은 헌법정신에 부합한다는 결정은 올드미디어 혁신의 결말까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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