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과 그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발효됨에 따라 인터넷 게시판, 뉴스 댓글 등에 대한 ‘제한적 본인확인제(이하 본인 확인제)’가 지난 7월27일부터 시행됐다.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제한적 본인확인제, 정보접근 임시차단조치제도, 명예훼손분쟁조정부, 개인정보보호강화, 불법정보에 대한 장관명령권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게시판이나 댓글에 글을 올리기 위해서 사전에 본인 여부를 거치도록 하는 것으로 1,150개 공공기관, 35개 인터넷서비스사업자(포털, 인터넷언론, UCC사업자)가 우선 적용대상이 됐다. 인터넷서비스사업자의 경우 일 평균 이용자수 기준 20만~30만 이상의 사이트만 포함됐다. 이들 사이트에서는 이용자가 주민등록번호로 본인 확인을 반드시 받아야만 글을 게재할 수 있다.
글 게시자보다는 악성 댓글로 피해를 입은 사람의 권리는 대폭 확대됐다. 정보접근 임시차단조치제도에 의하면 악성 댓글 때문에 명예훼손 등 사생활의 침해를 받은 피해자의 청구가 있는 경우,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해당 정보에 대한 접근을 30일 이내 기간동안 임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특히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피해자 신고가 없어도 자율적으로 임시조치를 실행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갖는다.
또 지난 7월26일 업무를 시작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내 명예훼손분쟁조정부는 사이버상의 사생활 침해 및 명예훼손 등 권리침해 발생시 신속한 피해구제를 전담한다. 즉, 이용자 사이에 분쟁이 일 경우 명예훼손분쟁조정부는 가해자의 신원을 파악해 피해자에게 알려줘 피해자가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토대로 민형사상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매개 역할을 한다.
특히 정통부는 친북게시물 등 불법정보가 게시된 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장관명령권 대상을 전기통신사업자 뿐만 아니라 모든 게시판 관리ㆍ운영자로 확대했다. 그동안 사각지대였던 비영리단체의 홈페이지에 실린 게재물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감독의 근거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관계 중앙행정기관장의 요청이 있는 경우, 7일 이내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신속심의 및 시정요구를 거친 후, 이에 불응시 해당 사이트의 차단 차단ㆍ폐쇄 또는 접근제한 등의 장관명령권 발동을 의무화했다.
또 개인정보의 수집ㆍ이용ㆍ제공에 대한 고지 및 동의 제도를 개선, 사업자는 개인정보 수집시 수집 및 이용 목적, 수집항목, 보유 및 이용기간, 제3자 제공에 관한 사항을 이용자에게 명확히 알리고 동의를 받도록 했다. 개인정보취급에 대한 제반 방침은 이용자가 언제든 확인할 수 있도록 취급방침을 공개해야 한다. 사업자가 개인정보를 취급할 수 있도록 업무를 위탁하는 경우에는 이용자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정보통신부 서병조 정보보호기획단장은 “인터넷 이용자의 권리 및 개인정보 침해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을 정도로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전제하면서 “인터넷사업자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고 이용자의 자기책임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은 시대적 요청사항”이라고 제도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악플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된 본인확인제에 대한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개똥녀 사건'과 '연예인 X파일 사건' 등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주체는 악플러였고, 그 배경은 익명성 때문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공인은 물론이고 불특정 개인에 대해 명예훼손, 인격모독, 인권침해, 간접 살인 등을 초래하는 악플(러)문제를 발본색원하기 위해선 본인확인제가 불가피하다는 관점이다.
정통부는 물론 본인확인제가 모든 사이버 공간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ID, 별명 등의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제약만 두는 제한적 실명제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와 이용자들의 반응은 다소 부정적이다. 급변하고 있는 인터넷 환경을 반영하지 못해 악플 감소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본인확인제 본격시행에 앞서 6월 말부터 1개월간 시범실시한 네이버, 다음의 경우만 보더라도 악플이 현저하게 줄어 들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네이버의 경우 뉴스 악성댓글 삭제건수가 30만5천건으로 전체 뉴스댓글 636만3천 건의 4.8%를 기록해 6월의 악성댓글 비중 4.8%와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7월중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관련 뉴스댓글에 ‘악플’이 쏟아지면서 실효성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네이버는 개정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300여명의 모니터링 요원들이 아프간 관련 악플삭제에 나서고 있다고 밝힐 정도로 넘치는 악플에 대한 근본적 개선은 되지 않는 실정이다.
특히 본인확인제를 도입한 포털과 언론사 사이트가 사실상 예전부터 실명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인 만큼 익명성과 악플은 무관하다는 견해가 많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익명성과 악성 댓글의 관련성 등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더구나 명예훼손 시비를 우려해 사업자가 이용자 게시물을 삭제하는 등 임시조치를 남발할 수 있어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예를 들면 이해 관계자가 불분명한 이유로 정당한 댓글마저 피해구제를 요청할 경우 객관적이고 충분한 논의없이 신속한 접근금지와 정보공개가 가능하다.
실명 확인을 거치기 위해 일정한 개인정보가 노출됨에 따라 악플이 일정하게 감소할 수 있는 여지는 갖게 되지만 이에 비례해서 개인정보 유출과 사이버테러, 스토킹, 사이버 감시체제 일상화 등의 또다른 사회적 문제가 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7월23일 SK커뮤니케이션즈는 회원 11명의 미니홈피를 일시 정지 조치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사람들의 홈피에 비방댓글들이 올라와 가족들이 사용정지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시물의 성격과 수준을 막론하고 무조건 차단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공방이 잇따랐다.
경찰청 사이버대응센터가 7월말부터 8월10일까지 2,545명의 사어비 명예경찰 ‘누리캅스’를 상대로 신고대회를 연 것도 신감시체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누리캅스’는 대회 기간 동안 타인에 대한 비방행위, 협박, 공갈, 성폭력, 스토킹 등의 게시글을 신고해 실적에 따라 포상금을 받았다. 일반 네티즌들이 타인의 글을 명확한 근거나 기준도 없이 국가기구에 신고해 이를 적발하는 행사가 적정한지 의문스럽다는 비난이 쏟아진 것도 그때문이다.
특히 블로그, 홈페이지, 까페, UCC채널 등은 개인공간으로 인정해 주민등록번호 등을 통한 본인확인 절차 없이 ID기반 로그인을 하도록 했기 때문에 본인확인제의 예외지역이 되고 있다. 정통부는 사적인 영역은 업체가 관리할 대상이 아니고 개별 운영자의 선택사항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블로그가 주류인 인터넷 트렌드와 펌질 중심의 게시문화를 감안할 때 실명제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대부분의 댓글을 게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성년자에 대한 처벌기준이 없는 점도 보완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와 진보네트워크센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23개 시민단체들은 “인터넷 실명제와 게시물 격리조치 등을 통해 인터넷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행위”라면서 정보통신망법 불복종운동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이들은 2004년부터 시행된 공직선거법상 선거시기 실명제에 이어 최근 행정자치부의 주민등록번호 클린 캠페인, 문화관광부 및 정보통신부의 UCC(저작권) 가이드라인 도입,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UCC 지침(e-Clean 선거협약),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등 일련의 법제도 도입이 사이버 공간의 표현자유 위축으로 흐를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본인확인제 시행을 전후로 블로고스피어의 ‘검열’이 구체화된 것은 대표적인 표현자유 침해 사례로 꼽히고 있다. 포털사이트와 블로그커뮤니티에서 저작권 침해, 명예훼손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블로그에 대한 이용제한과 접속제한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관련 게시물의 경우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정확한 사실 유.무가 드러나지 않은 시점에서 불명확한 정보들은 사전에 차단해줄 것을 요청함에 따라 이용자 블로그의 포스트가 제한당하거나 삭제압력을 받는 일이 속출했다. 블로고스피어는 이것이 사실상 블로그 검열이라며 경계하고 나섰다. 사실관계를 인용한 일반적인 게시물도 차단하는 데 대한 개탄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인터넷상의 표현자유 화두가 재점화된 것이다.
인권운동단체에서는 본인확인제 도입의 핵심은 ‘악플방지’가 아니라 국가권력이 사이버공간의 개인정보를 낱낱이 확인이 가능해졌다는 데 있다고 보고, 이것 자체만 해도 국민을 ‘위축(chilling effect)’시킨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사이버경찰청이나 검찰 등 기존 사법기구나 절차를 통해 해당 글을 삭제하고 손해배상이나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이용자 및 정보에 대한 추적을 용이하게 하는 전방위적 기구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기능을 확대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본인확인제를 정점으로 구축되고 있는 전방위적인 국가 시스템이 악플 방지는 물론이고 이용자의 표현행위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현실에 익숙하게 유도하면서 광범위한 자발적 복종을 형성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이러한 복종이 거대한 ‘원형감옥(Panopticon)’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악플에서 비롯된 사이버공간에 대한 정화 이슈는 국가의 통제기구와 법제도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이용자와 기업 등 이해관계자들의 사이버 윤리 회복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요청되는 분위기다. 현재 시민단체 일각에서 ‘선(善)플 달기운동’ 등 악플 추방 운동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고, 사업자들도 ‘댓글 숨기기 기능’ 등 부분적인 서비스 개선에 앞장서고 있어 기대감도 적지 않다. 본인확인제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서 보듯 악플은 법제도로서만 해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확인제 시행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적지 않은 현실을 감안할 때 사이버 폭력에 대처하는 국가, 인터넷서비스사업자는 물론이고 이용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보완책을 조속히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중복되고 엄정한 통제체계는 극소수의 악플러 극복이라는 과제에 비해서 과도하다는 비판을 수렴해야 할 것이다.
표현자유를 지탱하는 공간으로서 인터넷은 무한한 성장가치를 지닌 우리의 미래 자산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의 책임과 자유를 적절히 조화하는 묘약을 기대해본다.
참고
악플 사건 사례
2004.1. 연예인 X파일 둘러싼 악플 확대
2006.2. 가수 비 ‘라디오 괴담’ 유포 악플러 4명 70만원 벌금
2006.3. 임수경씨 아들 사망 기사 악플 단 1명 70~100만원 벌금
2006.8.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에 대한 사이버 테러
2006.9. 김태희, 고현정씨 악플 올린 네티즌 11명 불구속 입건
2007.1. 사망한 개그우먼 김형은, 가수 유니씨 홈피에 악플 테러
2007.2. 탤런트 정다빈 씨 자살 이후 악플러 양산
2007.7.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악플 속출
덧글. 이 글은 미디어퓨처 9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고 작성 시점이 8월 초임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이 포스트는 무단으로 퍼가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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