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의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출렁이고 있다. 노 대통령은 탄핵이라는 초유의 위기 국면을 정면 돌파하고 열린우리당을 이끌었지만, 지지도가 말해주듯 걷잡을 수 없는 정치력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구시대를 떠나 보내는 막차”가 되기를 희망했던 노 대통령의 콘텐츠가 지지자들에게조차 외면당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반대파들로부터 정중하지 않은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노 대통령(의 콘텐츠)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재평가 또는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콘텐츠는 과거 정부에 비해 분명히 다른 점이 있고, 그것이 새로운 방향이라는 점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시대의 한국사회에서 군부는 가장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이들의 콘텐츠는 우리 사회를 장악해왔다. 또 이들과 함께 콘텐츠를 재생산, 점유한 지식집단 대부분은 특권과 특혜에 기반하면서 경제, 사회, 문화, 미디어 등 전반에서 기득권 그룹을 형성했다.
그런데 이때 기득권층의 콘텐츠는 보편성과 다원성에 기반한 경쟁력 때문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콘텐츠 형식과 내용, 그 성격을 담고 평가하는 출구(window)가 부족, 불가피한 독과점이 유지된 것으로 본다.
한때 한국사회의 화두가 ‘권위주의 종식’이었던 것도 그러한 부분들을 일정하게 해소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후 20세기말 지역연합을 통해 집권한 호남의 정치리더 김대중 대통령은 IMF라는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고 ‘신자유주의’를 확정한다.
이 결과 첨예화하는 자본-노동 갈등을 타협하는 중재기구들이 등장했고, ‘분단질서 해소-평화’라는 콘텐츠가 부상한다. 또 이때 한국사회는 노동집약적 경제구조에서 기술집약적 경제구조로 본격적인 변화를 거듭한다.
특히 IT 인프라와 관련된 범국가적인 투자가 보장되고 새로운 시장의 동력을 찾게 된다. 이에 따라 한국사회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 신흥 자본-벤처 기업이 쏟아지고 지식대중의 참여 무대-인터넷이 활성화하기 시작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배경에 힘입어 극적인 집권에 성공한다. 새로운 콘텐츠의 출구가 되는 인프라가 노 대통령의 탈권위적인 측면들과 접점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에 있어서 이해세력과의 갈등관계를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들은 은밀히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소통’으로 풀어가는 등 차별성을 보였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의견을 격식과 절차에 의거 포장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고 주관적인 가치 판단을 좇는다. 집권과 함께 당시 거대 야당이 제기한 대북송금 특검법을 수용했고, 민주당을 쪼갠 뒤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이다. 이후 호남 지지층을 중심으로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게 됐고, 대통령 탄핵까지 자초한다.
이렇게 숨가쁜 노무현 시대의 콘텐츠는 지지자들조차 혼란에 휩싸이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을 선택했으며, FTA를 수용했으며, 대북송금 특검도 받아들였다. 많은 지지자들이 반대하는 것이었다.
반면 의회에서 개혁입법을 끈기있게 추구하고, 북핵 갈등을 대화로 풀며, 전시작전권 환수, 최근 평화의 바다’ 등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고자세 외교는 지지자들의 갈채를 받았다.
노무현의 콘텐츠가 이슈별로 다양하게 제공되면서 지지자들은 분열을 거듭했으나 여전히 노무현 정부 이후의 한국사회에 기대감을 갖고 있다. 한국사회의 콘텐츠의 형식과 내용이 더이상 퇴보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이제 창의적인 콘텐츠의 활발한 흐름을 제어하는 어떤 통제적 장치도 거부될 것이란 데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정치력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지만, 산업적-문명적-사회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거는 기대가 고조된 것이다.
물론 노무현의 콘텐츠를 통해 한국사회가 성장했는지 의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해답은 다가오는 대선에서 확인될 것이다.
덧글. 공정하고 객관적인 저널리즘이야말로 기성언론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스스로 신뢰도에 먹칠을 하는 정파적인 콘텐츠가 넘실댄다. 저널리스트의 한 사람으로서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들에게 대단히 미안하다.
덧글. 시사저널이 파행을 맞고 있다.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빼버린 데 대해 기자들의 반발이 계속되면서 지난해부터 계속된 노사간의 갈등은 결국 올해초 기자들이 빠진채 '짝퉁' 시사저널을 발행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최근 시사저널로부터 원고를 청탁받았지만 개인사정을 들어 사양했다. 선후배 기자들의 정의로운 저널리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으로 위안을 삼고자 한다.
언론이 제 갈 길을 가는데 바로 여러분(You)의 질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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