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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제3의 정치세력 '팬클럽'

by 수레바퀴 2005. 4. 21.
대권? 우리한테 물어봐!
준사조직화하며 여론몰이 주도, 현실정치 개입으로 영향력 확대


2002년 12월19일 광화문에서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을 지켜보며 환호하는 노사모 회원들. 김재현 기자

정치인 팬 클럽이 단순히 ‘사랑하는’ 모임을 넘어서 정치세력화 하고 있다. 한 팬 클럽 관계자는 스스로 외곽 ‘사조직’이란 말로 ‘위상’을 정의했다.

 

2000년 6월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 클럽인 노사모는 300명 남짓의 동호회였지만, ‘노풍’을 일으키며 대통령을 배출하고, 탄핵정국 때는 회원수 10만명으로 여론을 좌우하는 ‘무적의 부대’였다.

 

노사모가 써내려간 이 기적 같은 팬 클럽의 역사는 이제 한꺼번에 당비를 내는 당원으로 가입해 세력을 형성하는 등 현실정치에 적극 개입하는가 하면, 라이벌 정치인이나 정당을 향해 집단적인 여론 몰이를 주도하는 ‘준(準)사조직’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 선거가 2년여 이상 남은 시점에서 잠재적인 대권 주자들이 팬 클럽 강화에 너도 나도 나서 제2의 ‘노사모’를 꿈꾸는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007년 대선에도 노사모와 같은 조직이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노사모' 주춤, '박사모' 외연 확대

 

여당의 경우 지난 대선 직후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다양한 방식으로 분화하며 주춤거린데 반해, 한나라당 예비 대권 주자들을 중심으로 사이버 팬 클럽 조직 열기가 고조되고 있어 덩치가 커지는 양상이다.

 

우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가장 의욕적이다. 박 대표는 지난 3일 온라인상에서 18개의 크고 작은 모임을 아우른 ‘애국애족 실천연대’와 함께 남산 걷기 대회를 시작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세를 안팎으로 과시했다.

 

‘박사모’는 1년 전인 지난해 3월 한 포털사이트 카페에서 시작해 현재 회원수 3만7,000여명에 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이들은 최근 박대표가 뜻을 이룰 때까지 회원들의 재능을 살려 봉사하자는 취지로 ‘예술단’을 추가로 모집하고 나섰다.

 

지난해 10월 사무실을 마련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지지모임인 ‘창사랑’도 부산한 움직임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조직된 ‘창사랑’은 전국 270여개 시·군·구에 산재한 초기 지지자들을 재규합하는 것은 물론이고 4월말 대구에서 전국대표자대회를 개최하는 등 조직강화에 발벗고 나섰다.

4월3일 남산에서 열린 '박근혜 미니홈피 1주년 기념 한마음 걷기대회'에서 박사모 회원들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환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전 총재는 자발적인 조직확대에 대해 ‘불가근불가원’의 거리를 두면서도, “유력한 야권의 대권 후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 아니냐”는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애써 물리치지 않는 분위기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지난 2월25일 출범한 ‘MBLove-이명박 서울시장님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비롯, 2002년 서울시장 선거 직전에 만들어진 ‘MB 가족’ 등이 지난 2월26일 다시 확대 개편된 ‘신화를 창조하는 사람들(Mbshinwha)’이 대표적인 팬 클럽이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2004년 7월7일 만들어져 현재 630여명의 회원이 가입한 ‘Power손’이 있다.

 

대통령 후보군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도를 자랑하는 고건 전 국무총리의 경우, 인터넷 팬 클럽인 ‘고사모(고건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우민회’가 지난 3일 발대식을 가졌다. 고 전 총리는 참석 대신 정치적인 자제를 주문하는 신중함을 기했다.

 

2004년 6월 개설된 소규모 카페가 모태가 된 이 모임의 한 관계자는 “고건 전 총리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라면서도, “정치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규정에 의해 홈페이지는 폐쇄하게 된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열린우리당 대권 후보들의 경우 ‘팬 클럽’의 위풍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홈페이지를 통한 ‘서신정치’를 선보이고 있는 보건복지부 김근태 장관의 경우는 공식 팬클럽인 ‘GT클럽’과 네티즌 자원봉사단인 ‘김근태 친구들’의 통합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차기대권서 '바람'으로 작용할 수도

 

최근 참모들에게 공보팀 구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통일부 정동영 장관은 ‘정동영과 함께’ 카페에 약 3,000여명의 팬들이 모였다. 원래 방송 앵커 출신인 정 장관을 사랑했던 팬들이 자연스럽게 정치인 정동영 지지자가 된 셈이다.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온라인 지명도 면에서 단연 앞서나가는 정치인이다. 1만2,000여명이 넘는 열성 지지자들을 확보한 유 의원은 우리당 전당대회 기간 중 ‘유빠’ 논란을 불러 모았다.

 

또 지난 총선 때 유권자 운동을 전개하며 구성된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 힘’은 정치인 팬 클럽 추진 운동을 벌여 현재 송영길, 신계륜, 천정배, 이종걸 등 주로 우리당 소속 의원들의 지지자 모임이 형성돼 있다.

 

현재 인터넷에는 포털사이트 팬카페를 비롯, 블로그, 홈페이지 등을 합하면 줄잡아 약 300여개의 정치인 팬 클럽이 활동하는 등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한 정치인을 두고 여러 팬 클럽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자발적으로 조직되는 정치인 팬 클럽은 비판과 대안의 정치 실험장이 된다”면서도, “맹목적 지지나 정치적 목적에 의해 동원된 장식에 불과한 경우도 혼재한다”면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명한다.

특히 현행 선거법상 ‘사조직 설립금지 조항’과 ‘사전선거운동 금지 조항’ 등에 따라 불법 논란을 야기시킬 수 있는 정치인 서포트 조직의 활성화 문제가 당내 민주화와 대권 경쟁을 둘러싼 치열한 각축전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주목되고 있다.

 

최진순 서울신문 기자 soon69@paran.com

 

출처 : 주간한국 4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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