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첫 국정감사 초입부터 여야간 난타전으로 ‘구태’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책 제안이나 민생 챙기기보다는 ‘스파이’, ‘색깔론’ 공방, 각 당의 대선 후보 예상주자들에 대한 비난, 한건주의 폭로가 난무하고 있어, 초선 국회의원들이 대거 등장한 17대 의정에 대한 국민적 기대도 실종될 조짐이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대변인은 6일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 듯 “국방부 국감에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현실성 없는 남침 시나리오를 거론하며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저질 폭로, 교육위에서 권철현 의원의 좌파 교과서 의혹 등 이념 시비, 통일외교통상위에서의 보고형식 논란을 둘러싼 파행 운영” 등을 열거하며 한나라당을 성토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국정감사’가 아닌 ‘국정감싸기’를 하고 있다”면서, “정당한 문제제기를 색깔론 또는 기밀누설이라고 밀어붙이면서 본질과 핵심을 호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7일 “우리당이 야당 시장 윽박지르기, 정책대안 제시 전무, 자기당 정책 강요와 선전 등으로 일관한다”며 추태국감의 책임을 전가했다.
이처럼 여야가 이번 국감에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는 데에는 국감활동의 성패가 향후 정국 주도권의 분수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에는 각종 선거법 위반 고발 사건이 마무리되면,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가 있을 예정이고, 차기 대권 주자들의 행보와 맞물려 각 정당의 복잡한 내부 역학구도에 변화가 뒤따라 의원들의 줄서기도 가시화 할 것으로 보인다.
- 초선 의원들 홍보에 혈안
이에 따라 전체 의석의 60%를 넘는 187명 초선 의원들도 당 지도부에 낙점을 받기 위해 사생결단의 각오로 나서는 분위기다.
사실 정가에서는 국감을 앞두고 초선 의원들의 자질과 능력에 대해 기대반 우려반의 엇갈린 전망이 잇따랐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제사(국정감시)보다는 잿밥(홍보)에 관심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들게 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보도자료를 이메일로 보내며 자신의 활약상을 과시하는 초선 의원들이 수두룩하지만, 내용을 보면 피감기관의 자료를 분석한 것이 대부분으로 함량 미달이라는 지적이다.
수도권에 지역구가 있는 한나라당 모 의원 보좌관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보도자료를 챙기는 일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다”면서, “이번 국감이 초선 의원들에겐 향후 4년의 명운이 걸린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초선 의원들이 국감을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강한 만큼 해프닝도 적지 않다.
의원들간 발표할 국감 자료가 중복돼 같은 당 소속 의원들끼리도 헛물을 켜는 경우도 있고, 먼저 발표했어도 입체적으로 분석한 후속 의원 자료에 묻히는 일도 생겼다.
법사위 소속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부패방지위 출범 이후 비위사실로 물러난 사람들 중 재취업 사례를 발표했지만, 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사례를 전부 분석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한편 이번 국감에서도 국회의원들의 헛다리 짚기가 거듭돼 쓴 웃음을 짓게 하고 있다.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은 ‘인간 광우병 환자’의 혈액으로 만들어진 폐암 진단 시약 유통을 폭로했으나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 약은 “감염 위험이 없는 것으로 전문가들이 결론지은 것”이었다.
우리당 한명숙 의원은 한국의 우라늄 분리 및 플루토늄 추출 실험을 북한의 핵무기개발프로그램을 통칭하는 ‘북핵문제’와 비슷한 ‘남핵 문제’라고 표현해 논란을 빚었다.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은 4일 통일부 국감에서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 2급기밀로 분류된 ‘북한 급변 사태 대비 정부 비상계획’을 질의 형식으로 밝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또 같은 당 박진 의원은 ‘한국군 단독작전시 북한 남침 16일만에 서울 함락 시나리오’라는 국방연구원(KIDA)의 모의실험 자료를 공개했지만, ‘최악의 경우’만 가정한 시나리오를 공개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와 관련 우리당은 국감 초반 야당의 공세에 더 밀려선 안 된다는 기류가 형성되면서 국감 기간동안 이를 정치쟁점화 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우리당은 한나라당이 특정 보수언론을 업고 참여정부를 급진좌파 좌경세력이라고 매도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국경색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 차기 대권 주자 ‘손보기’ 특히 차기 대권 주자들에 대한 공개적인 ‘손보기’는 여야간 혈투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우리당 홍미영 의원은 6일 행자위 서울시 국감에서 “관제데모가 사실이라면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으로서의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이 서울시장을 대놓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노무현 대통령도 ‘공무원이 정말 말 안 듣는다’고 하지 않았느냐”면서 굽히지 않았다.
또 한나라당 의원들도 여권의 대권 후보주자로 손꼽히는 통일부 정동영 장관과 보건복지부 김근태 장관을 애를 먹였다.
대표적인 저격수인 정형근 의원은 4일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장관님은 경력이 일천하시니까" "장관님은 법을 잘 모르니까" 등 심리적으로 자극하는 발언으로 일관했고, 김 장관은 이에 마저 “사실 파악이 잘못된 것”이라고 맞받아치는 등 과거 민주화운동 때의 악연이 국감장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또 방송기자 출신인 정 장관은 초반부터 한나라당 의원들의 집단 퇴장 소동 등에 시달리며 호된 국감을 경험했다.
특히 5년간 9시 TV뉴스를 진행한 한나라당 박성범 의원은 4일 통일부 국감에서 자질을 문제삼는 등 시종 설전을 주고 받았다.
박 의원이 “살상용 무기 원료 유출을 파악하지 못한 내각은 총사퇴하라”고 주장하자, 정 장관은 “시안화나트륨은 북한이 대부분 산업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응수했다. 그러자 박 의원이 “북한 대변자처럼 말하면 국민이 실망한다”고 꼬집었다.
- “튀면 매스컴 탄다”
이런 가운데 의원들의 튀는 감사가 눈길을 끌고 있다.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은 4일 소방방재청 국감에서 방독면 재질실험을 한다면서 불을 붙이는 즉석실험을 했고, 뒤이어 같은 당 이명규 의원도 준비해온 방독면에 라이터에 불을 켜며 ‘불꽃’(?) 국감을 재연출했다.
또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사린 가스 원료 물질이 될 수 있는 이소프로필알코올과 불화소다 등을 "영등포 화공약품 상가에서 직접 구입했다"면서, "국방부가 위험 물질의 유통 현황 파악과 대비책 마련에 적극 대처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현송 열린우리당 의원은 6일 서울시 국감에서 비대한 수도 서울을 지적하기 위해 비만과 보통 체구의 사람이 서 있는 큰 그림을 들어 올리는 진풍경을 연출하며 “누가 건강해 보이는가?”라고 질문했다.
촌철살인보다는 치고 받는 정쟁의 포연이 자욱한 국감에도 불구하고 이번 국감은 각 정당의 향후 정국 운영에 필요한 인재 옥석을 가릴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도 우리당 의원들 중에서 일 잘하는 의원을 중용하겠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어 국감 열기는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현재 초선들 중 ‘쓸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의원들은 우리당에선 정청래, 우상호, 이인영, 이광재, 전병헌, 최재천, 이은영 의원 등이고, 한나라당에선 이주호, 박재완, 유승민, 윤건영 의원 등이 손꼽히고 있다.
국감을 거치면서 정치력을 인정받게 되는 초선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기대하는 것은 ‘실망 국감’ 이후의 관전 포인트라고 할만하다.
최진순 서울신문 기자 soon69@paran.com
출처 : 주간한국 10월14일자
http://weekly.hankooki.com/lpage/politic/200410/wk200410141555003705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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