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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전문채널 YTN의 혁신 승부수는?

뉴스미디어의 미래 2018.08.07 12:41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24시간 뉴스 보도 전문 채널 YTN. 조직을 정비하고 뉴스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열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YTN 홈페이지 캡쳐.


방송뉴스 시장의 경쟁환경은 몇 년 사이 크게 변모했다. 2016년 하반기부터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늘면서 뉴스 공급량이 증가하고 수용자의 뉴스 관심도도 높아졌다. 전통적 시청행태 외에 모바일에서 방송뉴스 경험이 늘고 있다. 이는 방송사의 세컨드 스크린 전략과 포털의 모바일 동영상 콘텐츠 강화가 시너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009년 YTN이 지금은 없어진 '야후코리아'에 24시간 생방송을 시작한 이후 2013년 JTBC 뉴스가 포털사이트 네이버, 다음으로 온라인 생중계로 인지도를 높였다. 2014년 KBS 뉴스9이 다음에서 생중계에 나섰고 현재는 종편, 보도전문채널 등 모두 9개 방송사가 포털에 둥지를 틀었다. 포털사업자는 뉴스 섹션 내 영상이 임베드된 뉴스, 동영상 섹션 내 비실시간 뉴스 클립 서비스 그리고 라이브 방송 뉴스 등으로 서비스 영역을 확대해왔다.

방송뉴스라 함은 TV 스크린의 방송뉴스와 함께 짧은 동영상 클립, 풀 동영상 뉴스, 스트립트형 텍스트+임베디드 영상 등 디지털 방송뉴스를 망라한다. 여기에는 토론 및 시사보도(그것이 알고 싶다, PD수첩 등), 정치예능 포맷(썰전, 강적들 등)도 포함한다. 

또 디지털에서 더 주목을 받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CBS <김현정의 뉴스쇼> 등 라디오 시사프로그램과 정치인 등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도 마찬가지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에서 소비되는 연성화된 전용 콘텐츠(스브스뉴스, 비디오 머그, 엠빅, 14F)나 온라인 전용 라이브(JTBC 소셜라이브 등)는 젊은 층에 관심을 받고 있다.

이렇게 많은 형식의 디지털 뉴스가 범람하는 한편으로 디지털에서 최적화한 방송 뉴스 형식도 점차 자리를 잡았다. 분량 측면에서는 대체로 5분 미만의 짧은 뉴스 동영상(66%)을 가장 즐겨 본다. 이같은 숏클립 뉴스 타입은 2년 사이 약 5배나 수용자 사이에 언급량이 늘었다. 

닐슨코리아 보고서 '레거시 미디어의 재발견:방송뉴스 가치의 증대'에 따르면 일주일간 동영상 뉴스 시청 경험에서 5분 이상 긴 뉴스 동영상(24%)보다 라이브 뉴스동영상(35%)이 오히려 많았다. 짧은 동영상 뉴스와 '라이브'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뉴스 형식은 '다시보기(VOD)'와 거리가 먼 장르였지만 포털사이트나 유튜브 등으로 다양한 뉴스 영상이 유통되면서 비실시간 뉴스시청도 증가하고 있다. 모바일에서 JTBC 뉴스룸 유튜브 계정의 비실시간 총 이용시간은 2,603시간으로 실시간 총 이용시간(1,700시간)을 크게 앞섰다. 유튜브 주 이용자층인 젊은 세대에게 채널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것이다. 

7월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가 '유튜브'에 특별한 관심을 표명한 것은 분명 선제적이고 전략적인 행보다. 2018년 5월 기준 동영상 플랫폼별 뉴스이용률은 유튜브(64%), 네이버(46.9%), 카카오(15.6%) 순이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뉴스 영상'은 아니지만 짜깁기 한 영상 이미지 캡쳐 구성으로 많은 구독자수를 보유한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기여(?)도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가짜 뉴스가 폭증하면서 팩트 체크를 원하는 사회적 기대도 넓어졌다. 생생한 영상과 음성이 뒷받침되는 방송 뉴스는 텍스트 뉴스보다 팩트 체크에 훨씬 더 효과적이다. JTBC 뉴스룸 '팩트 체크' 꼭지는 수용자 사이에 오래도록 바이럴되면서 영향력을 키웠다. 한국사회는 갈등적 이슈가 큰 만큼 팩트 체크의 수요는 예상보다 더 클 수 있다. 팩트 체크를 중심으로 데이터 분석보도 등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현재 방송 뉴스 소비는 KBS와 종편채널(특히 JTBC)이 견인하는 모양새다. 모바일의 경우는 포털 뉴스와 소셜네트워크가 주도하고 있다. 닐슨코리아 보고서는 "소셜네트워크의 경우 카카오톡 메신저가 페이스북보다 약 4배 가량 많다"고 밝혔다. 각 방송 채널을 TV 및 디지털에서 소비하는 수용자도 연령별, 목적별로 분화하고 있어 플랫폼에 맞는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정체됐던 YTN이 효과적인 디지털 전략을 세운다고 해도 단기간에 빛을 발할지는 미지수다. 우선 방송 뉴스를 디지털에서 찾아보는 '목적성 오디언스'가 누구인지, 어디인지, 왜 보는지 파악이 필요하다. 사실 이 수용자 규모는 많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나마 디지털에서 방송 뉴스를 즐겨 보는 수용자는 JTBC 채널 쏠림이 여전하다.

유도현 닐슨 코리아 미디어 부문 대표는 "이러한 상황에서 보도 전문 채널이 취할 수 있는 방법론은 전형적인 뉴스 장르를 넘어선 정치예능 장르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상파 뉴스 중심 시청자는 지상파 채널 내에서 뉴스를 중복적으로 이용하는 반면, 종편 뉴스 중심 시청자는 뉴스와 정치 예능을 넘나들며 장르를 이용하는 행태를 띠고 있어서다. 

이들 프로그램은 고정형 TV 뿐만 아니라 디지털에서도 화제성이 높다. 주제별 인물별 편집된 영상으로 가공돼 추가 뉴스 소비를 유도한다. KBS는 오는 9월 방송인 김제동씨가 진행하는 데일리 시사토크쇼를 신설한다. YTN도 가능하면 새로운 시사 프로그램 개발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유도현 대표는 "정치예능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은 해당 장르의 프로그램들을 부유하면서(floating) 시청하고 있다. 보도전문 채널도 썰전, 외부자들, 판도라, 강적들 같은 장르의 프로그램 기획 및 제작 역량을 갖추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채널 브랜드 인지도가 낮거나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어려울 때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카드다. 

YTN은 주요 역이나 음식점 등 공공시설, 상업시설의 시청률이 반영돼 있지 않는 억울함(?)을 항변해왔다. 또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채널 번호 24번으로 옮기면서 '채널 인접 효과'보다는 23번 이후 '시청 경험 단절'을 겪어왔다. 

그리고 YTN은 줄기차게 CNN을 '거울'로 삼아왔다. CNN이 보도하면 그것이 팩트가 되고 현실이 되는 시절의 방식이었다. 지금도 예전처럼 정공법에 기대는 것은 유효하다. 즉, 기존 뉴스 프로그램을 저널리즘 원칙에 따라 제대로 잘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채널 인지도와 신뢰도를 끌어올리려면 종합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첫째,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의 적극 활용 둘째, 정통 스트레이트 보도 프로그램을 벗어난 파생 장르 개발 셋째, 스타 기자 확보 등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나는 꼼수다`…골방 방송과 블루 오션 사이

뉴미디어 2011.08.05 18:29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골방 방송, 지하 방송이 일을 내고 있다. 나는 꼼수다는 기성 정치와 언론의 부정직성이 만든 계곡 깊숙이 들어와 청취자들을 껴안고 있다. 이 방송의 인기는 어딘지 모르게 허탈하다. 사회의 각 부문이 제 역할을 하며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방송에 열광하는 청취자들은 그래서 우리 사회의 분노의 질정이기도 하다. 나는 꼼수다의 꼼수에 빠지는 것이 불유쾌한 까닭이다.


<딴지일보> ‘딴지 라디오’의 <나는 꼼수다> 인터넷 방송은 애플 앱스토어 팟캐스트에서 청취가 가능한 일종의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이다. 안드로이드 폰도 다운로드해서 들을 수 있다. 전파로 도달하는 전통적인 라디오 방송과는 다르게 접근성이 낮을 법도 한데 인기가 대단하다.

지난 4월 28일 첫 회 방송을 시작한 이래 줄곧 다루는 아이템은 정치・사회 이슈다. 이런 무거운 주제는 콘텐츠 소비자들이 싫어한다는 데 한 시간이 넘는 방송을 듣느라 서버가 미어터지고 있다.

일단 <나는 꼼수다>는 스마트폰 2천만대 보급을 눈 앞에 둔 미디어 생태계, 얽히고 섥힌 정치현실을 감안한다면 시대가 만든 방송이다. 팟캐스트 오디오 부문에서 세계 5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에선 부동의 1위다.

그런데 이 방송의 순제작비는 녹음 후 식사값을 합해서 회당 대략 7만원 남짓. 반면 3인의 공동 진행자가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기준으로 3대 지상파 라디오 토크 방송은 회당 평균 150만원 정도의 진행비를 포함해 170만원의 제작비가 지출된다. 무려 24배나 저렴한 방송이다.

스마트폰 2천만대! 상상할 수 없었던 영향력

극동방송 라디오 PD를 시작으로 라디오계에 들어와 거의 20여년 일한 시사평론가인 김용민 전 교수는 한 마디로 <나는 꼼수다>가 라디오의 ‘블루 오션’을 개척했다고 평가한다. <시사IN> 주진우 기자는 몇 사람이 모여 사담을 나누는 ‘골방 방송’이라고 비틀어 버린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그 골방 콘셉트가 주효했다”고 되받는다. 출연자들의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

비록 인터넷 방송이지만 ‘방송의 기본 질서’를 지키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정해진 날 정확하게 방송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날은 60분짜리로 편성되고 어떤 날은 100분이 넘는다. 욕도 튀어 나온다. 편파적이다. ‘내 마음대로’다. <주간경향>은 ‘은밀한 지하 방송’ 쯤이라고 개념 잡았다.

이 포스트는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가 미디어 생태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짚어 본 글이다. 정치적 맥락보다는 되도록이면 라디오 방송이라는 미디어를 중심으로 <나는 꼼수다>를 설명하려는 시도다. 김 총수를 포함 주 기자, 김 전 교수가 각자의 시각에서 평가했다.

어쨌든 이 글을 읽게 될 독자들이 <나는 꼼수다>와 관련 조금의 실마리를 챙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정리했다. 세 사람의 진행자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글은 순서대로 기록했다.

먼저 시사평론가 김용민 전 교수에게 물었다.

Q. 이 방송을 정의해달라.
A. 원래 방향은 정치적 갈증이 있는 청취층을 대상으로 하는 ‘협송(협소한 방송)’이었다. 뚜껑을 열어 보니 메인 스트림의 방송이 됐다.

공공재인 지상파 라디오 방송은 규제를 떠나서 호불호가 갈리는, 색깔 있는 방송을 할 수 없다. <나는 꼼수다>는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안 들으면 되는 방송이다. 기존 방송사들은 정치현실을 풍자할 담력도 투지도 없다. 청취자의 갈증을 풀어줄 재료도 없이 자기 검열에 매달린다.

그러나 <나는 꼼수다>는 자본과 권력에 얽매이지 않는다. 물론 콘텐츠의 질이 출중하거나 격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정치를 즐겁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런 방송이다.

Q. 기존 라디오 방송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A. 청취자를 계몽, 선도한다는 개념이 없다. 전통 매체는 의제 설정 강박증이 있다. 기존 방송은 우리가 보도하는 것이 ‘여론’이라고 되뇌인다.

<나는 꼼수다>는 판단의 몫을 청취자에게 온전히 돌린다. 팩트만 제대로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해석의 궁극까지 이르지 않는다. 사상을 주입하는 것도 아니다. 엿들을 수도 있고 판단의 여지도 넓다. 청취자는 똑똑하다. 안목이 있다고 판단하고 접근한다. 어찌 보면 기존 방송을 약 올리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거대한 상대와 싸운다. 청취자들이 그런 부분을 인정해주는 것 같다.

Q. 라디오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A. 개인적으로는 그 동안 라디오 매체에 대해 회의를 느껴왔다. 아무리 라디오에서 이야기해도 의제설정 능력이 떨어져서 반응이 없는 매체였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연예계 유명 스타들도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을 우습게 본다. 가령 라디오는 생방송이 원칙이다. 그런데 인기 스타는 스케쥴을 핑계로 일주일에 4~5회씩 녹음을 해도 지명도 때문에 제작진이 눈을 감아 준다. 십 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만큼 라디오의 위상이 추락한 거다.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도 대부분 연성화했다. 과거에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가 기획됐지만 지금은 단출해졌다. 시청자 사연 받고 음악 틀어주는 게 전부다. 획일화하고 있는 거다. 상대적으로 시사 프로그램은 퇴조하고 있다. 어찌 보면 그런 프로그램을 원치 않는 시대가 됐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방송사 제작진도 묵중한 주제를 다루는 프로그램 기획을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돼 있다. 청취자가 원하는 (시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지상파 라디오 방송 시장이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
<나는 꼼수다>가 뜨자 전문 작가가 있느냐고 방송사 관계자들이 질문한다. 없다. 처음에는 3시간 방송 분량으로 가정하고 구성을 해 원고를 썼다. 녹음에 들어 간 뒤엔 원고가 필요 없었다. 웃고 떠들고 하는 사이 방송이 만들어졌다. 그런 방송에 폭발적인 호응이 쏟아졌다.

라디오에 절망하던 차에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라디오 방송은 녹음하고 틀어주면 ‘죽은 방송’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구나, 청취자 기호를 제대로 파악하면 숨통이 트이는 구나 이런 판단을 하게 됐다.

또 스타가 필요하다는 방송가 불문율도 깼다. 어지간한 TV,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의 인기는 이들을 영입하면 해결된다지만 <나는 꼼수다>는 아니다. 내용이 충실하면, 스토리가 탄탄하면 기존 매체를 압도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 물론 그 ‘스토리’는 시대가 만들었다.

김용민 "시대가 만들어 준 스토리를 방송하니..."

Q. 그러나 요즘 미디어 생태계는 ‘양방향성’이 중요하다. <나는 꼼수다>는 진행자 마음대로 하는 방송이다. 이런 방송이 인기라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A. 사연 소개하고 경품 주는 게 양방향성이 아니다. <나는 꼼수다>는 진행자와 청취자간 정서적 공감대가 이미 확보됐다. 이게 <나는 꼼수다>가 보는 양방향성이다. 방송 진행자는 자기검열을 하지 않고 청취자가 원하는 것을 들려준다.

다만 생방송 필요성이나 가능성은 완전히 닫은 것은 아니다. 어쨌든 현재 방식대로 계속 제작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는 기자가 아닌 분야별 전문 평론가가 진행하는 분석 중심의 라디오 방송을 라이브로 만들고 싶다.

Q. 방송은 보통 일주일에 한번 한다. 어떤 준비가 필요하며 녹음 시간은 어느 정도 소요되는가? 방송 파일이 팟캐스트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소개해달라.
A. 매주 목요일 낮 12시부터 2시간 방송 녹음을 한다. 지역 공동체 라디오 방송인 마포FM 스튜디오를 빌린다. 비용은 5만원이다. 어쨌든 2시까지는 녹음실을 쓰고 비워줘야 한다.

방송 진행자(출연자, 게스트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자신은 진행자는 아니라고 했다. 어쨌든) 4명이 다 모이는 시간대가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자연히 방송 분량도 차이가 있다. 12시 30분에 모이면 한 시간 30분짜리 방송이 되고, 1시쯤 만나면 채 한 시간도 안되는 방송이 나온다.

매주 방송 녹음을 끝내고 회식을 할 때 진행자들끼리 다음 주 이야기거리를 대충 이야기하면 (예상되는) 주요 꼭지 별 인트로(intro, 도입부분)를 사전에 녹음하여 구성한다. 그것 외에 대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진행자들이 ‘알아서’ 각자 자료를 준비하는 것은 있다. 녹음을 마치면 <시사IN> 주진우 기자를 제외하고 모두 <한겨레신문>으로 이동한다. 매주 목요일 오후 ‘하니TV’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녹화가 있어서다.

눅화가 끝나면 <나는 꼼수다> 녹음 분량을 편집한다. 장소는 발길 닿는 대로다. 평균 3~4시간 정도 편집시간이 걸린다. 별도의 인트로 부분 편집도 있지만 특히 진행자별 음폭에 차이가 나 음향을 보정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웃음소리 줄이는 것도 문제다.

편집을 마치면 <딴지일보> 담당자에게 파일을 전송한다. 64K 기준으로 30~40MB 분량이다. 이 정도면 약 1시간 30분짜리다. 팟캐스트에 등록하면 약간의 시간이 걸려 올라간다. 대체로 등록되는 시각은 퇴근 시간대에서 자정 무렵까지다.

참고로 첫 회 방송을 등록할 때에는 애플사의 검증을 받아 시간이 더 걸렸다. 내용적 심의보다는 음원을 함부로 쓰는 등 저작권 위반 사항을 체크하는 것으로 보인다.

Q. 거침없는 방송이다. 진행자들끼리 발언 수위를 조절하거나 자기 검열은 없는가?
A. 의정 활동을 한 전직 국회의원도 있다. IT 미디어 업계에서 산전수전 겪은 사람도 있다. 기사를 쓸 때 소송을 각오하는 현역 기자도 있다.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 등 문제가 될 소지는 각별하게 유의한다. 심지어 이야기를 할 때 사법당국에서 쓴 ‘조서’를 들고 나와서 원용한다.

물론 마지막에는 이것은 소설이다,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농을 섞는다. 시비거는 사람이 생길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이 옹졸해질 뿐이다.

<나는 꼼수다>는 광고도 받지 않는다. 광고에 의존하면 할 얘기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비판 수준이나 강도가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 광고주 제의도 거절했다.

광고주들이 생긴다는 건 그만한 영향력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을 석권하는 MBC 라디오 주력 프로그램의 평균 청취율이 15%대인데 <나는 꼼수다>가 훨씬 앞섰다.
 
그 근거는 단순히 다운로드 숫자만이 아니다. 지상파 라디오 제작진이 그냥 격려성 발언이라고 해도 타영역의 방송에 대해 언급하는 건 관행을 깨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꼼수다>를 향한 평가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주진우 "아직도 이게 방송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현역 언론인 <시사IN> 주진우 기자는 이 방송의 정체에 대해 “한 마디로 모르겠다”, “(카페가 만들어지는 등 갑작스런 인기도) 당황스럽다”고 말한다. <나는 꼼수다> 방송의 인기는 ‘과잉’이라고도 말했다. 풍선처럼 커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골방에서 ‘자기들끼리’ 주고 받는 말이 퍼져서 ‘방송’이 됐다고까지 했다. 자신을 전통적인 취재 기자라고 생각한다는 주 기자는 “그래서 하루 빨리 이 골방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정치 현실, 저널리즘의 부재 같은 언론 환경이 '애매한' 방송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주 기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봤다.

Q. <나는 꼼수다>의 인기 비결은?
A. <나는 꼼수다>는 그저 청취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궁금증에 대해 전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전통 매체의 취재・보도는 그런 점이 많이 부족했다. <나는 꼼수다> 같은 방송이 생겨 보완해주고 있는 것 같다.

최근 국내 메이저 신문은 종편 채널 사업자 선정 과정 전후로 언론사로서의 정도를 벗어났다고 본다. 정치 환경 때문에 공영방송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더욱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즉, ‘골방 방송’ 등장을 자초한 것이다.

내년엔 선거도 있고 종편 방송도 본격 등장하는 등 언론계를 둘러싼 외적 환경이 바뀐다. 지금에 비하자면 전통매체가 ‘어느 정도’는 자기 자리 즉,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나는 꼼수다> 인기도 사그라들 수 있다고 본다.

Q. <나는 꼼수다> 인기가 현실정치나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반사 이익이라는 말인가?
A. <나는 꼼수다>는 청취자의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매체가 이런 부분을 흔쾌히 메꿔주지 못했다는 점이 언론인으로서는 슬프고 착잡하다. 녹음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늘 씁쓸해진다.

전통 매체가 할 일을 제대로 했다면 이런 방송을 듣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전통 매체의 작위적이고 편파적인 저널리즘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뒤틀리고 왜곡된 정치지형에 대해 언론이 제 모습을 찾고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전통 매체가 제대로 저널리즘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이런 방송은 계속 등장할 수도 있다.

Q. <나는 꼼수다>가 방송으로서, 매체로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은 없는가?
A. 국내 언론이 권력과 자본에 예속된다면 이런 골방에서나 들음직한 방송은 계속 나올 것이다. 다른 거라도 봇물처럼 터질 것이다.

이미 크고 작은 강연회가 열리지 않는가? 북 콘서트, 토크 콘서트가 전국 각지에서 연일 이어지고 있다.

소셜테이너의 등장도 마찬가지다.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한 정보 공유, 의견 개진도 비슷한 맥락이다. 전통 매체가 제 역할을 못하니까 이런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본다.

김어준 "저널리즘이 갈 길을 잃으니 '꼼수'가 성공했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골방에서 하는 방송이니까 인기를 끈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빨리 인기를 모을지는 몰랐다는 김 총수는 “(언론이 혹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말하려면 골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 총수는 “주류 미디어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는 만큼 형식도 골방이고 실제도 골방”이라고 강조한다. 주 기자가 ‘골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과는 사뭇 다른 생각이다. 청취자들도 “골방이니까”라는 심리적 공감대에서 이 방송을 소비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 방송은 콘셉트를 잘 잡았다는 것이다.

<딴지일보> 창간 이후 산전수전 다 겪은 김 총수는 이제 해킹으로 웹 사이트가 붕괴 직전까지 간 상황까지 맛 봤다. 그에게 물었다.

Q. <나는 꼼수다> 이 방송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A. <나는 꼼수다>는 정치적 환경, 미디어 환경, 심리적 환경이 만들어 낸 그야말로 융합의 방송이다.

지난 역사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스며든 사회다. <나는 꼼수다>는 그것을 재차 확실히 강조하고 있다. 스마트폰, 인터넷, 소셜네트워크 모든 것이 이 스토리를 확장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꼼수다>가 쓰는 언어는 과거 (독재에 의해) 물리력으로 억압받아 저항하는 언어가 아니라 ‘밥줄’에 속박당하는 사회적 약자의 언어다.

팩트를 기초로 상상력을 펼친다. 풍자하는 것이다. 이런 풍자의 언어가 필요 없는 시대엔 다른 형식을 취해야겠지만 <나는 꼼수다>는 현재 시점에서 필요로 한 방송이다. 결국 풍자의 언어는 청취자인 ‘나’를 정서적으로 위로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전통 매체는 각 분야에서 약자를 ‘까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 월급쟁이는 늘 대기업이나 정부로부터 밀려 나고 있다. 불만이 팽배해다.

하지만 <나는 꼼수다> 이상으로 (기존) 방송 프로그램이 성역을 붕괴하기는 어렵다. 즉, 사회적 약자인 청취자들을 제대로 위로해주는 방송이 나올 수가 없다. <나는 꼼수다>는 그런 방송이다.

Q. <나는 꼼수다>를 오늘날 미디어 생태계와 연관시켜 설명해 달라.
A. 전통 매체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간 구분이 명확하다. 그러나 ‘골방’을 잡으면 “나만 듣는 방송”이라는 심리적 설정이 가능하다. 그 순간 소비자 스스로 ‘캐리어(carrier, 유포자)’가 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 도구로 전파할 수 있고 스마트폰 플랫폼도 가졌다. 익숙한 인터넷 미디어도 활용할 줄 안다. 전체가 한꺼번에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꼼수다>는 그 정점에 서 있다.

물론 전통 매체도 도구와 플랫폼을 가지고 있지만 소비자는 따로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꼼수다>는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을 플랫폼으로 한다. 스스로 증식하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는 거다.

Q. 인기를 예상했다는 건가?
A. 기본적으로는 잘 될 거라고 봤다.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주면 소비자가 스스로 '캐리어'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콘텐츠는 스스로 콘텐츠를 입증한다. 갈증을 정확히 꿰 주면 홍보 없이도 성공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딴지일보>에서 공지 한 번 안했다. 오히려 마케팅을 하면 한계가 발생하는 게 <나는 꼼수다>의 속성이라고 봤다. ‘나’만 듣는 방송이고 ‘내’가 프로그램을 찾아서 듣고 ‘내’가 퍼뜨리는 방송이라는 콘셉트를 잡았다. 6개월 정도 예상했는데 이 정도로 일찍 인기를 끌지는 몰랐다.

Q. 오늘날 미디어 트렌드인 ‘양방향성’이 부족하다.
A. 청취자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들어주고 ‘서비스’해줘야 한다는 건 적어도 <나는 꼼수다>에 관한 한 ‘일차원적’인 생각이다. 이 방송이 기본적으로 유지해야 할 태도가 아니다. <나는 꼼수다>는 (청취자에 대한 서비스가 필요로 한) 양방향 방송 프로그램이 아니다.

더욱이 (나는) 뭔가 터뜨려 주목받아야 할 목적이 없다. 이 방송을 하는 (나의) 태도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청취자들도 대체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는 삶을 지향할 것이다. 하지만 잘 안 되는 것은 타인이 나에게 주는 이익 혹은 불이익이 두려워서이다. 가령 공동체나 소속 조직이 주는 혜택을 잃을 지도 모르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나는 이 방송으로) 덕을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덕을 보지 않겠다는 태도가 있으면 <나는 꼼수다> 같은 방송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꼼수다>에 열광하는 청취자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꼼수다’ 방송을 들으려면 애플 아이폰 사용자는 아이튠즈에서 검색해 내려 받으면 된다. 무료다.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는 딴지일보 홈페이지에서 파일을 받을 수 있다. 그 뒤 자신의 스마트폰에 담으면 된다. 스마트폰이 없어도 MP3 파일을 다운로드 해 컴퓨터나 다른 기기에서 들을 수 있다.

덧글. 참고로 노원구 월계동, 공릉동이 지역구인 정봉주 전 의원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꼼수다>의 고정 진행자이지만 이 포스트의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건투를 빌 따름이다.

덧글. 이 포스트를 올린 5일 미국 아이튠즈 팟캐스트 '뉴스 및 정치 부문' 순위에서 BBC글로벌뉴스나 NBC심야뉴스를 따돌리고 <나는 꼼수다>가 1위에 올랐다. 놀라운 일이다.





 

6.2. 지방선거의 시사점-정치 콘텐츠의 관점에서

Politics 2010.06.03 11:15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집권여당이 실패한 것. 이 시대 유권자들은 훼방 없는 자유로운 광장을 원한다. 삶의 질을 위협하는 독주가 콘텐츠는 아니지 않는가.


지난 밤 6.2 지방선거 결과는 정치공학적으로 여야 모두의 셈법을 복잡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서울, 경기 광역단체장을 건졌기 때문에 실리는 챙겼지만 상처가 깊다. 민주당은 다른 야당과 공조로 충청권과 수도권, 강원권에서 이겼지만 서울, 경기 광역단체장은 끝내 오르지 못했다.

얽히고 섥힌 대권구도와 개헌 이슈, 4대강 사업과 세종시 문제는 경우에 따라선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비쳐진다. 수도권 밑바닥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중요한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면 필패의 서울 강남을 가졌다고 해도 불안해 보인다. 특히 한나라당이 내건 콘텐츠들로 계속 게임을 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할 가능성도 있다.

한나라당은 지방선거를 '북풍'이라는 콘텐츠에 집착했다. 경기 침체와 취업난을 호소하고 있는 민심과는 동떨어진 재료였다. 지역주의에 기댔고 개발욕망을 부풀렸고 저급한 비방에 골몰했다. 소통보다는 일방전달 뿐이었다. 서울광장은 봉쇄됐다. 주요 후보자들은 비겁하고 협애한 처신을 했다. 낡고 진부한 콘텐츠 뿐이었다.

민주당을 위시한 야당도 콘텐츠가 황량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새로운 콘텐츠는 없었고 집권당과 대통령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여론을 리드하지 못하고 수동적이었다. 전례없는 북풍의 파고를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다. 서울, 경기의 두 후보자가 내세운 콘텐츠도 매력이 없었다. 추억의 노풍을 기대했고 유권자 역시 딱 거기까지였다.

이번 선거결과는 그래서 누구의 승리도 아니고 누구의 패배도 아니다. 선거과정에서 드러났던 정치의 콘텐츠는 조금도 미래적이지 않았으며 창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를 가늠할 독창성이란 좀체 찾기 어려웠다. 민주당 한명숙 후보,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의 석패는 데이터 상으로는 사실이지만 콘텐츠의 부재에 시달려야 했다. 강남 3구때문에, 진보신당 때문에 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 것이다.

여야 모두 한 마디로 콘텐츠의 경쟁 없는 무모한 선거였다. 전통매체도 20세기 프레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권자는 변화하고 있었다. 턱 밑에서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여성 서울시장은 시간 문제로 인식하게끔 만들었다. 진보정당은 서울과 전국 곳곳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됐다.

다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전히 '도전'하는 야당이나 '방어'하는 여당 모두 이렇게 변화하는 현실정치를 고찰하며 정치의 콘텐츠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가령 강남 3구를 설득해야 하고 강북을 움직일 콘텐츠가 제각각 나와야 한다. 영남과 호남을, 그리고 충청과 강원에게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맞춤의 콘텐츠가 개발돼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이념 과잉과 지역기반 콘텐츠는 사회를 획일적으로 설계하는 것으로 21세기의 시대상황과 맞지 않다. 한국정치를 퇴행시키는 후진적 콘텐츠다. 미래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면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 콘텐츠로 대통령을 했고 디자인 서울은 오세훈 시장을 조각했다.

모든 정치인들이 자신을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다. 그것이 사회를 리뉴얼하리라는 확신은 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콘텐츠를 제시하는 식이다. 모든 정치인이 뉴타운이니 역세권 개발이니 하는 욕망을 부추기라는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유권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이야기다.

더 이상 20세기의 콘텐츠는 유권자들을 감동시키기 어렵다.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내기 어렵다. 감동의 콘텐츠를 내놔야 한다. 지금 유권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권자들이 앞으로 5년, 10년을 위해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 따뜻이 껴안아야 한다.

이를 위해 콘텐츠를 정당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와 협력해서 구현해내야 한다. 마치 전통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공동 파트너가 되는 식이다.

정치의 콘텐츠는 첫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에 집중해야 한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이제는 '삶의 질'이다. 미국과 유럽사회의 복지는 오늘날 재정난에 직면하고 있지만 혹독한 노동보다 여유와 느림의 선호는 이어지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숨가쁜 일상을 견디는 한국 유권자들에게 삶의 질은 가장 알.맞.은. 콘텐츠다.

민주당 혹은 야당이 실패한 것. 유권자들은 빠르게 변한다. 그리고 더 다양한 것으로 유대한다. 이들에게 내놓을 감동의 관계와 콘텐츠가 전무했다.

삶의 질을 노래하라. 삶의 질을 상정하라.

녹색 서비스, 교육 서비스, 문화 서비스, 의료 서비스 이 네 가지 정치 콘텐츠가 풍부히 담아야 할 의제들은 각각 생태, 후속세대, 자유, 미래의 '나'와 연결된다.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에서 체면을 유지한 서울과 경기는 아주 많은 자본을 기반으로 공간과 의식을 만들어갈 수 있는 보고다. 그래서 이 덕분에 한나라당은 실패하지 않고 살아 남았다.

반면, 야당은 그러한 기회와 여건이 상대적으로 빈곤하다. 콘텐츠 경쟁에서 한발 뒤진 셈이다. 인물난도 마찬가지다. 여당이나 야당 비슷한 처지이지만 유권자들의 다양한 기호를 수렴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일 정치인이 전무하다.

야당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사실상 노풍으로 승리한 후보자들의 미래를 낙관하기 이르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입지에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건 여당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에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이 있는 4대강과 중앙집중적 행정 비전으로는 전국 유권자들의 손을 잡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함께 만들라, 유권자와 춤을 춰라

좋은 콘텐츠를 스토리텔링하는 정치인이 부족하다. 앞으로의 한국 정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예에서 보듯 소수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업무의 합리성, 철저성은 물론이고 변화무쌍한 유권자와의 소통과 어울림으로 눈부신 성공을 거두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유권자들의 인터페이스에 맞춰야 한다. 그것만이 벽을 넘는다. 정치의 콘텐츠도 기획하고 스토리텔링해야 한다. 그것이 오래도록 웃음짓게 하는 비결이 될 것이다. 과거의 관행과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콘텐츠적 관점에서 현실 정치를 그려내야 유권자는 바짝 다가온다. 이를 위해 즐거운 열린 실험과 다양한 기술을 껴안아야 한다.

여당과 야당 모두에게 이런 심오한 과제를 제기한 것이 6.2 지방선거의 메시지라고 한다면 정녕 지나친가?




표현의 자유와 소셜미디어 규제 논의

Politics 2010.05.25 10:36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일부 언론사는 지금까지도 국민-시민의 것이 아닌 언론사를 위한 표현의 자유로 그 의미를 축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사는 미디어 수용자를 발행부수나 시청률처럼 계량화하는 수치로만 표시되길 원하지 그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참여 행위의 주인공으로서 일상적-정기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아서이다.

가령 공익에 대한 논의 - 선거이슈에 대해 언론사는 더 많이 그리고 독점적으로 영향력을 유지하길 원한다. 하지만 선거를 포함해 공익에 대한 논의를 시민이 주도할수록 언론은 자신들의 영향력이 급감할 수 있음을 경계하게 된다.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상황은 미묘해진다. 웹2.0과 같은 미디어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언론은 미디어 수용자인 시민을 더 껴안아야 하지만 독점해온 공익에 대한 논의의 광장에 시민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것은 말리고 사양해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됐다고 할 수 있어서다.

테크놀러지는 공익 논의의 장을 확대한 동력

하지만 공익은 언론사만 대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상황이 되고 있다. 공익을 다룬다는 것은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논의의 광장 즉, 신문과 TV 같은 플랫폼이 필요했다.

과거에는 언론사가 폐쇄적인 뉴스룸 안에서 게이트 키핑으로 독자와 시청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언론사 임의의 방식으로 표출했고 그러한 콘텐츠를 제작, 배포했다.

그러나 오늘날 미디어 수용자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인터넷과 같은 열린 플랫폼에서 발언하고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그들은 언론사 콘텐츠에 비해 손색없는 제작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이 지식대중, 집단지성으로 공익의 논의에 주력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이다. 이미 블로그,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는 신천지가 되고 있다. 전통 매체가 그들의 발언을 제지할 명분도, 위상도 사라지는 것이다.

공익논의의 주 무대가 전통 매체를 확실히 벗어난 것은 산업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광고주들이 (공익이나 사익의 주제에 대해)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신문을 떠나면서 수익구조는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미국의 대형 신문기업 25개 중 24개의 신문은 기록적인 적자로 돌아섰다. 국내의 주요 신문사는 특별한 변수의 동원없이는 만성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적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와 전통매체는 불유쾌한 관계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이용자는 언론사가 공익 논의를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용자가 가진 자신감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소셜네트워크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돼 언론을 더 이상 필수적인 동료로 평가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 대체로 전통매체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언론의 뉴스는 이용하지만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지적능력과 자율성을 행사하는 식이다.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이용자가 언론에 대해 갖는 자신감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자신감의 원천은 이용자의 경험으로 축조된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이용자는 언론사에 대해 세 가지 경험을 갖게 된다. 첫째, 경쟁의 경험이다. 이것은 언론사 뉴스룸보다 빨리 사건(현장)에 대해 근접성을 확보하고 뉴스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비평의 경험이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연대(following)하면서 전통매체를 극복하고 있다. 뉴스를 선별하고 친구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거치면서 언론에 대한 불만족이 커지고 있다. IT기업에 종사하는 한 트위터리안은 말한다. "언론사들은 다양한 의견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계몽하려고 한다"

셋째, 관계의 경험이다. 일반적으로 소셜네트워크의 관계는 지연, 학연, 혈연과 같은 오프라인의 연고주의보다는 기호, 욕구, 직장, 라이프스타일 등의 개성적이고 문화적인 것들로 '관계'가 설정된다. 이 관계는 기존의 연고관계보다 각별하게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이 관계는 자신 그리고 타인에 대한 선호로-적어도 그러할 것이다-시작되기 때문이다. 우호적이며 선린적인 공존의 관계가 깊어질 때마다 언론-수용자의 전통적인 관계와 대비된다. 그리고 후자의 관계보다 소셜네트워크의 우월한 관계에 대해 강한 애착을 느낀다.

여기에 인터넷 이용자는 언론사가 다루는 공익이 '정파적', '편향적'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더 강해지고 있다. 경쟁-비평-관계의 경험을 통해 이용자는 언론이 행사하는 저널리즘에 대해 신뢰를 못하고 있다.

언론 보도물에 대한 이용자 평판이 광범위하게 공유되면서 신뢰의 '결여'를 낱낱이 알게 된다. 그 결과 언론에 대해 공격적이고 저항적인 형태를 띤다.

마침내 이용자는 언론사가 점유한 시장(market)에 진입한다. 전통매체의 비즈니스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다.

그것은 종종 저널리즘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미 IT, 스포츠, 연예, 라이프스타일 분야는 물론이고 교육 그리고 드디어 정치로까지 인터넷 이용자는 발언권을 행사한지 오래다.

전통매체의 비즈니스는 타격을 입고 있다. 더 많은 콘텐츠들이 그리고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언론이 파고들지 못하는 작은 부분까지 이용자는 다가서면서 광고주는 움직이고 시장질서는 요동친다.

다국적 기업의 국내 홍보를 맡고 있는 한 홍보대행사 간부는 "3~4년 전부터 기업들이 신문, TV 등 전통매체를 거치지 않는 그러니까 소비자를 직접 상대로 하는 온라인 홍보방안을 제시해야 홍보대행계약에 사인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것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언론과 소셜미디어는 격렬한 경쟁자가 돼

이렇게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언론 영향력은 감퇴한다. 바이럴 마케팅 즉, 구전 효과는 기업의 주요한 마케팅 수단이 되고 있다. 불과 2~3년만에 언론을 통하지 않고 바로 고객과 접점을 맺으려는 실험은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하나의 테마가 된 것은 분명하다.

언론의 독점적이고 배타적 영향력-그것은 일반적으로 광고효과, 사회적 영향력이라고 묘사된다-을 인터넷 이용자가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으로서는 조바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때로는 그것이 뉴스에서도 나타난다.

인터넷 이용자를 유희적이고 사회일탈적인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이용자의 발언은 신중하지 못하며 과학적, 객관적이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끝내는 그들의 표현을 위축시킬만한 조치들-제한적본인확인제, 사어비모욕죄-을 취하라고 요구한다.

전통매체가 이용자 콘텐츠의 수준을 끌어 올리고 공익의 문제에 더 많이 가담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와 협업, 선택과 집중은 온데 간데 없는 것이다.

그 대신 더 많은 이용자가 자사 사이트에 올 수 있도록 옐로우 저널리즘을 멈추지 않는다. 이용자의 뼈아픈 비판과 지적이 담긴 댓글은 그것이 자사의 명예를 실추하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억측이라는 것을 내세워 과감히 삭제한다.

언론사가 소셜미디어에 대한 체계적 접근이 취약한 것은 전담자나 전문가도 없기 때문이다. 즉자적이고 상업적인 검토만 존재한다. 함께 협력하는 파트너로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대상으로만 설정해 둔 것이다.

결국 소셜네트워크 이용자와 언론은 심각한 거리감이 생기고 있다. 심지어 소셜미디어 이용자 콘텐츠를 임의로 사용한다거나 이용자의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묘사하면서 적대적 관계까지 형성되기도 한다. 이렇게 손잡을 수 없는 관계가 되면서 언론은 이미 시장에서 좋은 협력자를 잃은 것이다.

언론의 정파주의는 결국 설득력 잃을 것

산업의 물결도 그럴진대 정치도 마찬가지다. 사실 지난 시절에는 전통매체가 현실정치에 독점적으로 참견해 비평했다. 유권자는 전통매체를 유일한 정보창구로 의존해왔다.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은 그런 언론과 불가분의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오늘날 언론이 현실정치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급감하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는 정치인의 '지명도'를 높이는 원천이 되고 있다. 대통령 후보감으로 오르내리는 한 여당 지도자는 가장 많은 네티즌 팬들을 갖고 있다. 그는 그것이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 됐다. 유력한 광역단체장 후보는 인터넷에 의존해 후원금을 '성공적으로' 유치했다.

물론 언론이 현실정치에 갖는 지분은 결정적인 측면이 있다. 정치는 낡아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지만 속성상, 관행상 전통매체에 더 미련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스스로 소셜미디어화하면서 인터넷 이용자와 직접 만나고 있다. 가장 먼저 '정견'을 남기는 곳이 인터넷이 되고 있다. 전통매체에서 정치인의 뉴스를 보는 것보다 인터넷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언론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은 비단 정보의 유통만이 아니다. 정치인과 정책 비판, 정치현장 스케치, 정치분석과 전망같은 전통매체 고유의 현실정치 지분이 상당수 블로거의 것이 돼 버렸다.

인터넷이 정치 콘텐츠에 대한 이용자의 선택권을 강화시킴으로써 특정 언론사의 정파주의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저널리즘의 신뢰도가 끊임없이 까발려지는 공간에서 전통매체가 추구하는 고집스런 논조는 철퇴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소셜네트워크의 이용자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언론사 뉴스룸의 상황에선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선거와 소셜미디어는 좋은 궁합

다양한 의견이 교차하고 좋은 관점이 더 많이 공유되는 인터넷 콘텐츠의 유통 양식은 다양한 후보자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선거와 좋은 짝을 이룬다. 소수파의 정책도 다수파의 그것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그만한 지분과 경로를 통해 인터넷 이용자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오프라인과 온라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첨예한 이념대결이 인터넷에도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다. 선거때 폭주하는 정치 콘텐츠는 정당 등 현실정치세력에 의해 양산되고 있어 효율적이고 정상적인 온라인 소통을 가로막는 주범이 되고 있다.

또 언론과 지식인의 침묵 속에서 정부의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규제 방침도 불변한 상황이다. 되레 언론과 지식인은 자신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통제가 불가능한 인터넷 공간과 이용자의 문화를 이단적으로 배척하는데 골몰한다.

그럼에도 서로의 기호와 니즈를 파악하고 관계를 맺는 소셜네트워크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이 관계는 오프라인의 연결고리들-학연, 지연, 혈연 따위를 무참하게 하는 대신 라이프스타일, 예를 들면 행동 반경과 거주 위치에 따라 교집함을 형성한다. 위계적이고 일방적인 접점들이 아니라 선택적이고 능동적인 조건들로 관계가 알뜰히 채워진다.

소셜네트워크에서는 그래서 지나친 정치는 오히려 추방된다. 문화적, 일상적인 동질감은 권장된다. 소셜네트워크에서의 선거는 이데올로기라는 특정하고 거대한 서사보다는 인물의 호감도, 정책이 삶에 미치는 영향, 주변환경에 대한 더 나은 채색들 같은 보다 개인적인 스토리를 요구받는다.

한 정당의 대표를 지내고 이번 지방선거에 광역단체장에 출마한 한 후보자는 자신의 일정을 트위터로 자주 공개한다. 다른 곳으로 이동한 뒤에도 흔적을 남긴다. 그곳에 실제로 거주하는 트위터리안들이 응답한다.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친밀감을 증진하는 사적인 활동인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이 된다.

이러한 소셜네트워크는 거대담론과 보이지 않는 힘들에 의해 유지되는 정치를 조각조각 나뉜다. 좀더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들, 그리고 인간적인 느낌들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창조적 혜안들이 담긴 콘텐츠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 공급자 중심의 선거정치과정 모델이 수용자 중심의 선거정치과정 모델로 바뀌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지원하라

그러나 아직 소셜네트워크에선 이용자 참여의 과잉이 이뤄지는데 반해 조정, 중재의 과부족이 일어나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정부의 규제, 심의가 메꿔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전통매체가 인터넷 이용자에 대해 갖고 있는 경계심을 기초로 경솔한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의 다수는 공손하지 않으며 반체제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정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언비어, 명예훼손 같은 수준 낮은 콘텐츠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한다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이용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평판이란 점을 고려할 때 그러한 주장은 터무니없다.
이용자는 더 좋은 콘텐츠를 전달하고 주장함으로써 획득되는 평판 그리고 더 나아가 시장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명도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이용자에게 정치와 이념은 실제로는 부차적인 것이다. 이용자는 표현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해가는데 마치 그것은 예술가가 조각상을 만드는 것과 같다. 누가 오점을 남기려 하겠는가 - 굳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당의 이해관계자 또는 매수된 자들일 것이다.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공직선거법 93조에 대해서는 지난 2002년 6월27일 헌법재판소의 인터넷에 대한 정의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은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이다. …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헌재의 결정문이 이야기하는 것은 인터넷 이용자가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것이 소셜네트워크의 건강성을 돕는 일이라는 점이다. 또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오랜 논쟁은 기득권과 연관돼 있다. 자유가 확대될수록 기득권의 허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제도가 기득권을 보호하고 싶어도 그 기득권이 점유했던 공론장-시장은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쓸쓸해지고 있다.
인터넷이 표현의 장을 걷잡을 수 없이 확장시켜 놓은 나머지 이제는 규제논의가 허황돼 보이기까지 한다.

중요한 것은 좋은 공론장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이다. 언론이 
거기에 성의를 보인다면 생존은 한결 쉬워지지 않을까? 언론이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지원하는 순간 언론과 소셜네트워크는 비로소 굳건한 동맹이 맺어질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전통매체는 이 협력을 기초로 그들의 저널리즘에 영예를 얻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발언하고 공유하며 손잡는 많은 사람들은 언론과 소셜네트워크간의 협업과 공생의 관계야말로 오늘날 빛을 발해야 할 진정한 저널리즘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글. 이 포스트는 18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새언론인 포럼, 언론광장 등이 공동 주최한 <소셜미디어 규제와 참여민주주의;공직선거법 상의 규제를 중심으로>에 토론자로 참여해 발언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관련 발제자료는 파일로 등록했다.

지난 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가 주최한 <인터넷선거보도의 활성화와 공정성 확보방안> 세미나에 이어 비슷한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내가 발언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은 그와 관련된 시장을 수성하려는 전통매체와 소셜네트워크간의 갈등에서 점화됐다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이다. 또 법제도와 언론이 인터넷 미디어의 속성을 잘 헤아리지 못한 데서 근본 원인이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과 이용자가 화해한다면 그것이 저널리즘을 꽃피우는 기회가 될 것이라 본다.

소셜네트워크의 이용자도 언론운동의 새로운 좌표를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종전의 정치지향적 비평운동이 아니라 산업적인 기반-집단적인 소액결제-을 지원해주는 일이다. 

이제 표현의 자유는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중대한 기로에 섰다. 서로 도와서 사느냐 아니면 서로 경쟁해서 피를 보느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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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후 플러스>에 대해

TV 2010.03.19 14:05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Q. <후 플러스>의 특징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TV뉴스로 제공된 현안에 대한 후속보도를 합니다. 그 이후의 변화나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에 대해 다룹니다. 뉴스의 중심이 되는 인물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조명해봅니다.

뉴스의 심층성을 꾀하는 것이지요.

이런 시사 프로그램들의 중요성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사안에 대해 이면에 대해서,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죠.

Q. 시청자들은 <후 플러스>에 대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취재·보도에 최선을 다 하는 것 같다는 평을 전해 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일부 소재의 경우, 한쪽에 비중을 많이 다룬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서 아쉽다는 의견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A. 시사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균형성, 공정성입니다. 편향적이지 않은 객관적인 취재, 편집이 이뤄져야 하는데요.

하지만 사안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는 과정에서 한쪽으로 치우칠 가능성 또한 있습니다. 시청자들의 불만이나 비판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인데요.

제작진들은 공정성, 균형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중에 있어 기계적으로 찬반의 배치를 기하기도 하는데요. 이것 또한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안에 대해 정확한 근거와 내용을 갖고 접근해 현안 이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취재, 보도과정에서 과학적이고 상호 검증할 수 있는 섬세함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Q. 사회 현상의 이면이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영역까지 살피고 알려줘서 유익했다는 시청자 소감이 있는데요, 이 중에서 인상적인 방송 내용들은 후속 취재해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A. TV 뉴스는 정규프로그램이 끝나면 대체로 다시 다루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뉴스의 경우에는 꼭 이후의 진행 과정이나 결과가 궁금하기도 하고, 꼭 다시 짚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비단 뉴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소개됐던 인물이나 정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시청자들은 이러한 내용에 대해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시청자들의 바람을 적절하게 수렴하고 이를 차분하게 다뤄가는 내부의 역량을 갖추는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인터넷 게시판 모니터링도 정기적으로 하고 다뤘던 뉴스들에 대한 시청자 반응도 제때 점검해야 할 것같습니다. 그게 미디어 2.0 시대에 TV 시사프로그램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Q. 간혹 특정 상품이 제작진의 의도와 달리 홍보성으로 비춰지는 경우( '애플의 공습', '소문난 강남 인강')도 있는 것 같다는 평이 있는데요, 이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A. 최근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다루다 보면 특정 상품이나 특정 기관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요. 의도하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 그 상품이나 그곳을 알지 못하면 시대에 뒤처지거나 무능하다는 인상을 주는 등 시청자들을 자극, 현혹할 수 있습니다.

가급적 적정선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령 애플의 공습이나 강남구청 인터넷 강의를 다룬 부분도 센세이션하게 다룬 부분은 없었는지 방송 이후에라도 내부 검증이 요청됩니다.

Q.‘내수용 vs 수출용’편 등 일부 방송 내용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신선함이 부족해 보였고, 좀 더 새롭고 깊이 있는 내용을 취재하면 좋았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소비자들의 불만을 다루는 고발성 프로그램들이 시사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형태로 자리잡으면서 아이템이 비슷비슷하다는 지적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수용 vs 수출용의 경우도 이미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에서 많이 소개됐던 아이템이고 차별적인 내용도 없었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제작진들이 소비자 친화적 프로그램을 다룰 때 유의해야 할 것은 비슷한 아이템이라도 다른 시각을 제공하거나 근본적인 대안을 제기하는 등 좀더 새로운 접근이 요청된다고 할 것입니다.

Q. 이외에 <후 플러스>의 부족한 점, 아쉬운 점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내용면이나 형식(구성), 편성 면에 있어서 어떻게 보시나요?)

A. <PD수첩>과 비슷해 보이는 구성인데요. 기자가 등장한다는 것 외에는 말이죠. 식상함과 단조로움을 줄 수 있는 것이지요.

기존 시사 프로그램들이 지속적으로 점검하지 못하는 아이템이나 과학적인 취재기법이 반영됐으면 합니다.

자동차 사고나 스포츠경기, 범죄사건을 다룰 때 컴퓨터 시뮬레이션처럼 기술적인 방법도 많이 동원됐으면 합니다.

Q. <후 플러스>에 대한 제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시사프로그램은 정치 등 무거운 주제, 다루기 힘들고 어려운 주제는 피하고 성, 폭로와 고발 등 연성 아이템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민의 알권리나 공익성을 감안할 때 제작진들의 분투가 절실하다고 할 것입니다.

덧글. 이 포스트는 19일 오전 방송된 MBC <TV속의TV> 'TV돋보기' 코너 인터뷰를 위해 미리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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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不在와 과제

Politics 2009.05.25 19:20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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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한때 봉하마을에 퍼부은 소나기를 맞으면서 조문하고 있는 인파. 그들은 노무현 부재를 어떻게 부활시킬 것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거하고 국민들의 추모 열기가 고조되면서 노무현 부재 시대의 한국정치를 예상하는 목소리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과 관련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책임소재는 앞으로 당분간 한국정치를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봉하마을 등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감지되는 차가운 기류는 정치갈등의 정점을 향하고 있는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사회적 타살, 정치적 살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전 정권과 정쟁의 서막이 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한 집권세력의 역사인식 한 자락이 그러한 평가의 뿌리이다.

그것은
진보정치의 씨를 말리는 격돌을 초래한 출발지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이 선출한 두 명의 대통령이 집권한 기간을 정통성 없는 것으로 단정한 비정함, 오만함 때문이다.

□ 노 전 대통령 부재(不在)는 사회적 손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초반부터 전 정부와 날카롭게 각을 세운데 이어 검찰이 과잉 수사를 이어가며 전직 대통령을 향한 집단 린치룰 가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면에 시한폭탄처럼 재깍거리는 정치적 공방은 사법체계의 투명성, 독립성, 도덕성 같은 시스템의 결함을 항구적으로 제기할 뿐만 아니라 한 사람에게 많은 권능을 갖도록 하는 대통령제를 채택한 헌법에 대한 근본적 처방을 요구한다.

더구나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한국정치에서 '노무현'이란 키워드의 부재는 더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국민 대중에게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가 없는 현실에서 서민적이고 소박한 이미지가 있었던 노 전 대통령의 부재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한국사회 비주류에게 큰 좌절과 고통을 안겨주면서 사회적 실존으로서 향유할 꿈과 희망의 표현을 멎게 할 정도로 충격파가 깊다.

또 역사적, 정치적으로 손실이 크다. 지난 헌정사에서 한국정치의 한쪽 부분을 지키고 있던 개혁세력의 존재감을 일시에 정신적, 물리적으로 무너뜨렸기-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 몸의 반이 무너지는 심경이라고 표현했다- 때문이다. 정치적 균형이 사실상의 타의에 의해 훼손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 자신이 제의한 미래 민주주의의 역동성-쌍방향 소통의 지표를 잃게 해 그를 따르는 지지자를 비롯 전체 사회의 버거운 숙제로 남게 됐다. 이미 일부에서는 인터넷 대통령을 잃었다며 애석해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정치권, 언론과 지식인, 시민사회의 자기성찰과 분발이 없다면 노무현 부재는 좀더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전개될 여지가 농후하다.

□ 이 대통령은 성공하는 대통령을 원하는가

지난해 5월 이후 수개월간 촛불시위를 컨테이너로 막는 ‘명박산성’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소통’을 어느때보다 강조했다. 1년 후 덕수궁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 주변에는 경찰 버스로 만든 거대한 차단벽이 생겼다. 이러한 바리케이드 정치가 이 대통령이 원하는 소통양식인지 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은 헌정사 초유의 전직 대통령 자살에 최소한 도의적인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공개 사과’까지는 아니더라도-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은 25일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전화 인터뷰에 나와 이 대통령의 공개사과를 제기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진심어린 표현이 뒤따라야 한다. 물론 이 대통령이 직접 조문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민이 원하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또 이 사안에 대응하는 이 대통령의 처신도 중요하지만 퇴임까지를 고려한다면 유의할 부분이 있다. 바로 그가 보수 정파의 지도자로 자족할 것인지 아니면 광범위한 국민 대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될지에 대한 부분이다. 신선하고 합리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인사, 정책 등 열린 정치를 펼쳐야 한다.

앞으로 남은 정치일정을 고려한다면 이 대통령은 쇠고기 광우병 파동으로 허비한 집권 초반을 포함할 경우 남은 시간이 2~3년여 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까지 이 대통령의 통치는 대체로 철권적이었다.

지난 대선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업고 대통령이 됐으면서도 협량한 리더십을 견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이는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정치 스타일에 불과할뿐 국정을 운영하며 국민을 감동시키고 생산적인 결과물을 제시하는 동력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 대통령을 향해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나오는 것을 결코 소수 반대파의 목소리라고 무시해선 안된다. 이 대통령이 절치부심해 노무현 전 대통령 부재 이후 예상되는 대갈등-사회적 공동화(空洞化)를 메꾸는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4년여 뒤를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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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임시 분향소 주변의 거대한 버스 차단벽. 소통을 막는 식의 국정운영은 결국 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의문케 할 뿐이다.

□ 대결정치로는 국정 혼란밖에 없어  

세계적 금융위기로 국내 경제가 침체일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예측에 대한 엇갈린 분석에도 불구하고 상당기간 많은 국민들이 고통받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내우외환에 처한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정치권이 사생결단식 대결정치를 지속해서는 안될 것이다. 

과반수를 넘는 국회의석을 갖고 지방의회도 사실상 싹쓸이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권력을 누리고 쓰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권력을 분배하고 생산적으로 이용하는데 이바지해야 한다. 대화정치 복원을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구체적으로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일단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라 미디어 관련 법안 처리 진통이 예상되던 6월 임시국회는 2주 이상 순연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지켜본 국민의 마음을 다독여야 하는 만큼 날치기 통과나 일방적 처리는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정치일정과 역학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집권여당으로서는 조바심이 있을 수밖에 없어 확신하기 어렵다. 만약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고 정해진 절차만 강조하고 강행 처리하게 된다면 집권당의 지도력에도 심중한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당장에 10월 재보선을 비롯 지자체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매년 줄줄이 선거가 예정돼 있다. 지역개발 슬로건으로 프리미엄 선거를 능히 치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집권당이 국민의 바람을 져버렸다는 따가운 시선으로 선거결과는 물론 국정 전반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전후 과정에서 반한나라당 정서가 결집할 경우 이명박 대통령 집권기 내내 대결정치로 ‘식물정치’가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역시 정치력을 새롭게 조명받고 재집권의 기회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서거정치’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감동을 줄 키워드와 대중 정치인 즉, 콘텐츠를 제시해 이른바 개혁세력의 집결을 주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 극단적 저널리즘으로는 뉴스 소비자 흡인 못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일부 기자들이 성난 지지자들의 ‘색출’을 피해 숨어서 취재를 하고 있다. 발행부수 상위에 속한 일부 신문 기자는 소속을 숨긴 채 인터뷰하는 도둑 취재를 감행, 물의를 빚고 있다. 한 방송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조가 바뀐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봉하마을 진입과정에서 수치를 당하고 있다.  

참여와 공유, 개방이라는 웹 2.0의 미디어 가치가 인터넷 시장을 지배하고 향후 미디어 패러다임에 온전히 이식되고 있는 데도 일부 신문사들은 사주(社主) 또는 정파적 이해에 기초한 보도행태를 견지하는데 따른 비판이 커지면서 생긴 부담감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개설한 노 전 대통령 추모 게시판은 개설 48시간이 흐른 25일 오후 여섯시 현재 6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애도의 글을 남겼다. 반면 이 나라 최고 신문임을 자임하는 한 신문 웹 사이트 게시판은 230건에 불과하다. 포털사이트가 주도하는 국내 인터넷 여론문화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명백한 오디언스의 ‘선택’이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아우르는 저널리즘이 아니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폭력적 저널리즘으로는 컨버전스 시대의 1,000만 오디언스 확보는 무망하다.

봉하마을 주민들조차 기성언론에 반감을 갖고 버린지 오래다.
순박한 시골 주민들에게마저도 버림받는 기성언론과 그 기자들이 컨버전스 미디어 산업을 리딩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을 최고의 경쟁력 원천으로 삼는 미디어 산업이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천문학적인 재원으로도 결코 국민대중을 감동시키기 어렵지 않을까?

통합과 미래적인 저널리즘으로 오디언스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뉴스룸 내부에 엄숙한 성찰과 숙의의 과정이 필요하다. 승부처는 퀄리티 저널리즘을 생산하는 일이다. 지난해 촛불시위 이후 봉하마을에서, 전국의 분향소에 나타난 국민의 분노를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 시민사회, 격분보다 연대의 네트워크 구축해야 

노 전 대통령 서거는 국민들에게 한국 정치의 현 주소를 확인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비록 퇴임 이후 비리 혐의 등으로-검찰은 서거직전까지도 법률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긴 했어도 그는 성숙한 민주주의에 대한 아이콘으로 자리잡아왔다.  

노 전 대통령이 보여준 대중정치는 국민들에게 광범위한 평가를 얻으면서 정치사 한 켠을 차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리워 질 정도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이력이 남다른 점,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상고에 진학한 환경까지 적지 않은 차별성이 거들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지난한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벌여왔지만 집권 당시 DJP연합 등 '지역'을 얼개로 한 권력기반으로 386 운동권 중심의 노무현 정부와는 비교되는 측면이 있다.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지역주의 연고와는 다른 지금의 30, 40대 세대의 문화적 동질감을 (인터넷으로) 공유하는 흔치 않은 '관통'의 서사도 있다.  

이런 대통령의 부재는 그 어떤 다른 지도자들의 부재보다 상실감이 클 것이다. 자신이 ‘실패’한 것처럼 안타까움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감정적 증오는 승화할 필요가 있다. 분향소에서도, 그리고 향후 정국에서도 책임있는 태도와 안목을 보여줄 책무가 있다.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주역은 한낱 정치인이 아니라 이들에게 힘을 위임하는 국민대중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참여적이고 합리적인 국민대중의 존재감을 아무리 무력화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웹 기반은 여전히 거대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지이기도 했던 인터넷으로 새로운 대안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큰 연대의 네트워크 형성이 필요하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지역통합과 남북화해라는 소신을 강조해온 지도자다. 이러한 가치를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서도 지지자들을 비롯 국민대중은 분노는 재우고 열망은 키우는 냉철함이 중요하다.

노 전 대통령 부재 이후 한국정치가 해결해야 할 각별한 과제를 맡는 역량있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간의 큰 그림의 통합과 제휴가 형성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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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와 검색민주주의

Politics 2009.01.29 13:43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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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저서 '대중의 반역'을 통해 대중은 집단 속에 자신을 숨겨 군중심리 속에 안정을 얻는 등 현실에 안주하는 이들로 묘사한다. 대중은 언론의 확성기를 맹목적으로 좇으며 소수의 엘리트를 과신한다는 것이다.

대중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을 더 살펴 보면 대체로 불성실하고 감정적이며, 무지하고 폭력적인 집단이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중에 대한 더 혹독한 평가는 망각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일말의 교훈을 얻고서도 곧 잊어버리는 대중의 습성은 종종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오늘날 열린 민주주의를 곤경에 빠지게 하는 것도 바로 대중의 무기력이다.

특히 정의와 진리를 탐색하고 토의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일정한 수준의 교양이 '전통적으로'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는 사회적 야만이 그런 대중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

이 야만은 거의 지식계에 의해 주도된다. 전통 미디어는 대중을 현혹하는 정보들을 내보내 사안의 본질로 연결된 통로로 다가서지 못하게 한다. 지식인들은 여기에 동참한다.

이에 대해 미디어 운동가들은 (전통 미디어가) 체제의 모순이 드러나지 않도록 원하는 정보만 생산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이것은 종종 언론이 대중의 망각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2001년 이태리 총리에 오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는 대표적인 사례다.

AC밀란의 구단주이기도 한 베를루스코니는 최근 자신이 소유한 TV채널 등을 통해 세계적 축구선수 미드필더 카카(Ricardo Izecson Santos Leite)가 AC밀란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치를 말초적인 '쇼'로 전락시키고 선정적인 콘텐츠가 뒤덮여진 미디어가 총리의 실정(失政)을 엄호하는 형국이다. 이는 이태리의 부패한 사회상으로부터 대중의 망각곡선을 최고조로 앞당기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 20일 용산참사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촛불로 번질 것을 두려워하는 집권세력과 이 문제가 한국사회의 모순을 응축한 것으로 보는 시민사회세력간의 공방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야당 등에서는 첫째, 이명박 정부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인명참사가 일어났을까 둘째, 용역직원들을 포함, 공권력 진압은 정당하고 적절했는가로 좁혀져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간 정부와 전통적 미디어 그리고 일부 지식인들은 점거농성을 벌인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이하 전철연) 회원들의 불법 폭력시위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론조작'과 같은 새로운 딜레마가 등장했다. 지난 22일 MBC <100분 토론> 인터넷 여론조사엔 경찰의 조직적 개입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청와대는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인터넷에선 과격시위 책임이 있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유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졌다"고 논평했다.

과거 전통적 미디어가 주도한 여론시장에서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짐작케할만한 사건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 이면에는 더욱 더 가공한 시사점이 있다. 단
순한 여론조작의 가능성 못지 않게 정보가 유통되는 인터넷을 통한 민주주의에 대한 고찰이다.

인터넷이 왜 사람들에게 주목할만한 것들이 됐는지 그 배경을 검토하다보면 공통적으로 만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검색이다. 검색은 원하는 정보를 찾도록 해주는 엔진(engine)에 의해 최적화된다. 이 최적화한 검색은 사람들이 판단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인터넷은 하나의 채널이 아니라 수많은 채널을 모아서 한꺼번에 검색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인터넷이 번창하면 할수록 검색은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용산참사에 대한 시시비비, 정권의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자료, 그밖의 수많은 지표와 데이터들이 그것이다.

아무리 여론희석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위해 동원된 많은 인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인터넷은 좋은 정보를 중심으로 더 나은 토론을 이끈다. 그리고 그것은 결정적으로 엉성한 자료의 더미가 아니라 진실에 기초한 담론들이다.

검색은 이렇게 진실을 찾는 이용자들에 의해 더욱 향상된 기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검색과 검색이 적용된 경로로 이동하면서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의 다원성, 다양성에 대해 안심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안심은 아직 이르다. 인터넷과 같은 열린 플랫폼을 통제하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해서라도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단 인터넷을 감독하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가를 깨우치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등장했다. 또 (정부에 대해) 비우호적인 콘텐츠에 대응하기 위해 우호적인 콘텐츠를 양산하는 시스템을 축조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를 판단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진단도 있다.

이러한 견해들이 존재하는 것은 검색 때문이다. 검색은 콘텐츠에 대한 양적인 접근만큼은 정중히 사양한다. 또한 검색은 어떤 일방향적인 흐름을 사전에 차단한다. 검색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지식(정보)에 대한 갈망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검색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객관성을 잃은 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신뢰도가 높은,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이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체계-하이퍼링크, RSS, 트랙백 같은 것들-로 탄탄하게 구조화된다.

이점에서 한국의 일부 보수매체가 네이버나 다음, 인터넷신문에 비해 신뢰도를 잃었고 지금도 '그러한 경향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은 유의할만하다.

여기서 정부의 태도도 검증돼야 한다. 뒤늦게 인터넷 '정책홍보'에 나선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진정성이 결여된 '타율적 동원'의 흔적이 농후하다면 전통매체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를 펼쳐 보인 뒤 이중에서 선택하도록 하고 그 정보가 다시 여러가지 길을 열어두어 다른 정보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검색과 그 검색의 경로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미 인터넷 검색은 용산참사에 대해, 그리고 집권세력의 용산참사 접근방법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이 정의이며 진리인지를, 그리고 무엇이 대안이며 교훈인지를 말이다.

예컨대 메타블로그 사이트에서 여전히 '용산참사'는 중요한 키워드가 돼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물망처럼 서로 다른 견해들과 연결돼 있다.

이렇게 검색 민주주의(Searching Democracy)란 현재 대중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대중이 원하는 공정한 결과물들을 제시하고 그 결과물들을 토대로 논의하는 과정을 담보한다. 이 과정은 결국 참여적이며 쌍방향적인 통로를 통해 민의라는 것으로 발산된다.

이 검색에 최후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망각을 촉진하는 부산물들이 채워질 여지도 거의 없다. 지식대중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끝없이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에 의해 검색은 끊임없이 민의를 반영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사회적 산물로 자리매김한다.

발전하는 민주주의에서 검색은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의 지평으로 승화한다. 검색시장을 장악한 포털권력이 이제 서서히 저무는 것도 그런 맥락 때문이다. 포털이 상업적으로 흘러가는 한 그것은 예상된 일이다. 비즈니스를 제패해왔지만 그 이상의 영역은 바꾸지 못할 것이다.

정치현실 속에서 다음 아고라도 변질됐고 네이버의 검색도 불량한 정보나 광고물들을 우선 제시하면서 시장의 우군들을 잃은지 오래다. 그대신 이제 검색은 지식대중에 의해 완연히 재창조되고 있다. 수많은 블로거들이 검색을 주도할 수 있는 창조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실제 이들은 이 아이디어를 적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중앙집중화된 포털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여전한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검색과 검색의 경로들이 봄의 대지에 피어나는 생명들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검색 민주주의를 향한 축복으로 여겨진다.

물론 투명하고 합목적적인 검색기술에 대한 요구, 그러한 요구를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제도적 장치들의 필요성처럼 검색에 대한 공공성 확보라는 주제는 이 시대의 엄숙한 화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디지털, 네트워크 같은 초유의 용어들이 회자된지 10여년이 흘렀다. 세계의 변화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어지고 있다. 그 덕분인지 검색 민주주의를 다루는 솜씨를 통해, 그것들이 구체화되는 인터넷을 통해 다시한번 한국사회의 대립과 갈등의 대치선을 볼 수 있게 됐다.

낙관적으로 들여다 보자면 그 대치선은 더 이상 나쁘지만은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용산참사는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인터넷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고, 검색에 의해 수많은 교훈의 콘텐츠들을 남길 것이고, 그것을 유용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의해 더욱 더 번져갈 것이고, 민주주의 그리고 철학 있는 정치적 리더에 대한 갈망을 대중에게 각인시킬 것이다.

그래서 (대중으로 하여금) 오늘날 향유하는 검색과 그것이 지향하는 그 어느때보다 명확하고 지혜로운 민주주의를 지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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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가 남긴 것

Politics 2008.12.02 11:10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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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이명박 대통령이 어려운 길에 놓여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에 흔들리는 한국경제를 원상회복하는 데만 최소 1~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집권 기간 절반을 경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경제 리더십 이미지 하나로 집권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의 처지에서는 경제를 놓치면 모든 것을 실패하는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이 상황을 역으로 해석하면 경제 이외의 것에는 대중의 관심이 없어져 다른 부문에서는 자유로운 처신이 가능해진다. 

즉, 이명박 정부는 경제영역을 뺀 나머지 국정과제는 초반부터 얼마든지 밀어부치기 할 여지가 많은 것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는 IMF 체제를 넘어서는데 전력하다가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개혁입법을 실기했고, 노무현 정부는 권위주의 해체에는 일정하게 성공했으나 이른바 조중동 패러다임에 갇혀 개혁입법을 역시 마무리하지 못했다. 5년의 집권이 결코 많은 시간이 아니라는 교훈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서두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집권 초부터 준비한 미디어 관계법 개정의 경우 방송, 인터넷, 신문 '장악의지'를 드러냈다는 야당, 언론단체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으나 정부측의 관철 의지가 워낙 완강하다.

또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논의, 과거사위원회 정비추진방안, 4대강 정비사업 추진도 사회단체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지만 주요 의제로 실행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대화와 소통이 부족해 시민사회가 '촛불'을 다시 들고 나올 시한폭탄들이 계속 장착되고 있다는 비유까지 나온다.

하지만 경제침체가 장기화하면 대중적 관심은 정치와 더욱 멀어지기 마련이다. 인터넷 여론은 이명박 정부에게 상당히 부정적이지만 그의 집권 이후 이뤄진 각급 선거의 결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났다. 민주당의 지지율도 10%대에서 고착화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경제침체가 질서의 안정을 강조하는 정부와 자본의 의지를 부상시키는 쪽으로 흐르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같은 경향은 대중으로 하여금 본질보다는 표면적인 분위기에 휩쓸리는 경향을 이끌어 간다.

재임기간 수개월에 불과한데 비판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그러한 맥락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정과제 중 일부는 진정성이 있다는 여론도 나온다. 수질개선이 시급한 4대강 정비사업의 경우 꼭 대운하와 연관지어 반대해야 하느냐며 지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은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다는 보수진영의 개혁세력 비판론도 탄력을 얻을 조짐이다. 이에 따라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야3당 '민주연합' 제언도 정치권에서 현실화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지만 신통치 않은 반응이 터져 나왔다.

'김대중+김정일(DJI)' 연대라는 주홍글씨를 매긴 해묵은 헌사가 빗발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고스란히 경제위기에 주눅든 대중에게 밀려 들어간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정권교체 이후 대중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 담화자가 진중권 교수 이외에는 없다는 점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한국정치의 역설은 정당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지식대중의 산실 블로고스피어(다음 아고라의 미네르바 등)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 있다.

이 네트워크의 미래도 도마 위에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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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노무현의 콘텐츠

Politics 2008.07.14 20:02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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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과 청와대 사이에 자료 유출 논란의 진위와 자료열람권 보장 문제 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논란은 전직과 현직 사이의 갈등이기 이전에 '노무현'이란 정치 지도자의 '봉하마을 이후'를 가늠케 한다는 대목에서 유의할만하다.

사실 봉하마을의 노 전 대통령은 친노 지지층에겐 지리적으로, 정치적으로 서울과 떨어진 터라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부 지지자들은 좀더 공세적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해주기를 내심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직접적인 현실정치 개입보다는 현재의 방식에 매료되는 형국이다. 즉, 봉하로 내려간 노 전 대통령이 유쾌하고 서민적인 행보를 펼쳐 보이면서 대중적 호감도가 재임중보다 오히려 높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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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2.0 프로젝트가 본격화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영남의 지역민 속에 뿌리를 내리면서 구현되는 생활정치야말로 진정한 미래 정치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삶과 집권기의 행적은 현직 대통령과 곧잘 대비되면서 회자되고 있다. 밀어 부치기식 정치행태가 닮았다는 지적도 있고, 또다른 측면에서는 소통의 유무에 따라 상반된다는 평도 나온다.

한데 이제는 전·현직 대통령을 비교할 때 한 가지 더 우열을 가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최근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옛 친구를 만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은 한 마디로 노무현 콘텐츠의 강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당시 '눈물'을 흘렸던 영상이나 봉하마을에서 친구와 포옹하는 사진 역시 일관성을 갖는다. 한없이 인간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던지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메시지 그 이상의 '감동'을 준다고 주장한다.

노 전 대통령이 인간적이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갖는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권위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다. 여기에는 이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박정희식' 모방과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는 진단이 곁들여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인공섬 팜아일랜드 건설 현장 방문 때나 2006년 10월 독일 방문 모습은 대표적인 이미지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이명박'과 밀짚 모자를 쓴 '노무현'은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표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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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러한 컨셉트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혹은 아직 극복이나 완화의 기미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일방적이며 지시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것은 이명박 브랜드의 심각한 정체(停滯)라고 할만하다.

특히 2개월여 이상 진행되는 촛불시위 과정에서도 이 대통령은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처신을 고수했다. 상호소통적이며 공감각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노 전 대통령에 비하면 콘텐츠 연출력이 크게 뒤쳐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의 콘텐츠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말만 앞선다거나 형식적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또 인터넷을 잘 아는 전직 대통령과 인터넷을 잘 모르는 현직 대통령 모두 아주 불명예스런 '별칭'이 따라붙는다는 약점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두 대통령 사이의 가치 지향이 아주 대조적이라는 점이다. DJ-노무현 콘텐츠에 유사성이 발견되는 반면 노무현-이명박은 극단적으로 벌어져 있다.

이때문에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대치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표출되기도 한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한국사회에 무엇을 기여했는가라는 냉정한 평가가 있기도 전에 추억에만 동조하는 사회는 결코 생산적이라고 볼 수 없다.

비록 노 전 대통령이 끊임없이 대중과 만나면서 감동을 주고 있지만 그것 이상으로 진화하기는 한계가 명백하다. 나머지 많은 부분은 이 대통령의 몫이다.

설사 이 대통령이 새로운 가치를 담는 콘텐츠를 제시할 능력과 태세가 돼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현실정치에서 그 해답을 찾는 노력이 요구된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역량과 위상을 사회화하기 이전에는, 그리고 그것을 일정하게 합법공간으로 견인해내기 이전에는 (부인하고 싶겠지만) 그는 역사의 전면에서 퇴임한 한 정치 지도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분발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노 전 대통령의 장점도 수용해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의 프레임에 이 대통령이 동승해서는 절대 성공하는 대통령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21세기에 부합하는 가치와 철학을 제시할 역사적 책무가 있어서이다. 그가 단지 어떤 정당의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의 지도자임을 지향하는 한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감동'을 주고 있다면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감동의 콘텐츠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난 수개월여의 집권기간에 대한 통절한 성찰의 기초 위에 설 때 가능하다. 그래야 국민은 이 대통령과 현 정부에 감동할 준비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덧글.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은 각각 2007년 4월 아랍에미레이트(UAE) 두바이에 들러 인공섬인 팜아일랜드 건설 현장을 방문했을 때와 2006년 10월
독일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 사진 출처는 각각 뉴시스와 중앙포토의 것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은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의 것임.

`촛불` 安住와 `촛불` 以後

Politics 2008.06.28 21:03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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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08 오마이뉴스 세계시민기자포럼 '촛불 2008과 미디어 리더쉽' 마지막 세션 종합토론에 참석했다.

나는 이날 촛불 그 자체에 집착해서는 안되며 촛불 이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부조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소통단절과 왜곡의 체제에도 불구하고) 촛불에만 의지하고 안주(安住)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촛불 이후, 촛불의 사회화에 대해 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오늘 이 시각에도 서울과 전국에서는 '촛불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공권력과 마찰이 계속되면서 반민주 정권 심판으로 촛불의 방향이 바뀌는 점도 나타난다. 또 전통매체에 대한 반목과 거부는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 무슨 말을 하든 살아 있는 자들은 미안하다. 촛불이 한국사회의 위기를 상징하는 한.

아래는 이날 토론을 위해 사전에 준비한 메모를 재구성한 것이다.

[토론 요약]

촛불에 대한 의미 평가와 분석이 분분하다. 그런데 우리는 촛불 이면에 있는 그림자도 점검해야 한다고 본다.

2개월여 계속되고 있는 촛불에 대해서 사회 전체가 껴안는 노력이 부족하게 보인다.

정치와 전통매체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 전체에 과연 중재의 리더십이 존재하는지, 그런 콘텐츠가 있는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설득과 소통의 체계보다는 갈등과 대결의 기법이 정교해진 것은 아닌지 개탄스럽다.

지식인의 책임이 크다. 사회적 리더의 역할이 존재하지 않고 방치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촛불로 대변되는 시민과 소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정권의 능력과 성실성의 문제로 일시적인 이슈일 수 있다. 정치는 우여곡절이 있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촛불이 전하는 메시지를 사회화하는 노력이다. 매번 촛불을 드는 것이 대견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촛불 그 자체가 아니라 대화와 숙의, 제도화의 틀에서 완성된다.

촛불에 안주하는 것은 안돼

물론 촛불은 내부에서 스스로 소통하면서 힘을 축적하고 있어 보이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촛불은 도덕성과 비폭력성, 순수성이라는 가장 완결시키기 어려운 것들로 시작됐다. 촛불을 든 이유, 목적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경향이 훼손되면 언제든 촛불의 진정성이 무너질 수 있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이미지다. 최근에 촛불 모습들에서 평정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촛불의 사회화가 필요하다. 촛불 이후 시민운동의 전열이 정비돼야 한다. 그것이 소비자의 가치를 꺼내든, 환경주의의 호소가 되든, 반신자유주의의 노선이든 간에 촛불이 아닌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촛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표정과 징후들을 정리해서 사회적인 네트워크로 확대해야 한다. 그것이 정당이든 시민단체이든 말이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을 처리하는 촛불 안주를 경계해야 한다.

미디어 리더십 변화는?

이번 시민기자포럼에서 촛불이 미디어 리더십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들이 있다. 틀리지 않는 진단이다. 전통매체는 (한때) 촛불에 백기를 들었고 촛불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속적으로 정립될 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전통매체도 혁신이란 카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기자 스스로 변화를 절감하고 있다.

전통매체가 상처 입은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1인 미디어의 분발의 속도보다 빠르게 리더십을 만회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촛불의 과제는 영향력의 전환 그 자체가 아니라 한국 언론의 저널리즘에 깊이 다가서야 하는 부분이다.

뉴스 콘텐츠를 향한 지속적인 미디어 비평 운동이 제안돼야 한다. 이제 시작돼야 한다. 1인 미디어들이 해줄 수 있을 것인가?

전통매체는 어떻게?

그렇다면 전통매체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전통매체에 대한 뉴스 소비자의 거대한 거부감을 체험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일단 촛불의 요구를 마지못해 수용하는 등 수세적인 소통으로 전환한 것은 종전의 전통매체의 태도에 비해서는 놀라운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뉴스룸과 기자들의 업무 내용 즉, 보도 내용에 근본적인 변화의 재료가 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촛불의 본질보다는 폭력행사나, 건물훼손 등 일부의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 이것은 또다른 불화와 긴장을 낳고 있다.

촛불의 참여자들과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상당한 기간 동안 디지털 미디어 세계는 세 개의 전선이 형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통매체 뉴미디어(포털) 그리고 1인미디어들이다. 때로는 이들간에 협력도 유지되고 또한 갈등도 형성될 것이다.

누가 안전하고 훌륭한 공생의 모델을 만드느냐가 3자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일단은 전통매체가 뉴미디어와, 또 뉴미디어와 1인미디어간의 연합이 형성될 것이다.

뉴미디어는 전통매체를 압도하면서 성장할 것이고 1인 미디어도 나름의 영역을 지킬 것이지만 전통매체는 협력의 대상을 잃고 허둥댈 것이다.

한편으로는 1인 미디어와의 공존 패러다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혁신하는 전통매체 뉴스룸과 종사자들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장 문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풍경들 중 하나는 1인 미디어가 전통매체와 협업관계를 가지는 부분이다.

원대한 온라인 저널리즘의 길이 열릴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포털 '중립성' 이미 사라져

촛불이 켜진 2개월 동안 한국의 포털에 중요한 변화가 진행됐다. 시장 2위인 다음의 '아고라'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네이버는 주춤거렸다.

네이버는 해명글을 공지하는가 하면 뒤늦게 '촛불' 콘텐츠에 합류했다. 하지만 만연한 반네이버 정서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용자들은 이미 네이버에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는 평가까지 내리고 있다. 네이버는 현재 서비스 개편을 통해 촛불을 돌파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가기구의 규제가 확대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등에 따라 게시글에 대한 '임시조치'가 계속되고 있다.

다음도 스스로 검열을 확대하고 있다. 정보 유통자를 내세우며 중립적 정책을 내세우는 포털의 기만은 끝이 없다.

네이버가 중대 사안들에 대해 엄격하게 움직였다는 것은 스스로 중립성이 없는 것에 다름없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정치뉴스 댓글 일원화를 한 부분이나 촛불과 관련된 뉴스편집을 지나치게 신중하게 처리한 점은 '중립성'이 아니라 '친권력'형이었다.

다음이 더 이상 이용자들의 움직임이 아니라 정부의 입김에 따라 정책과 관리를 바꿔가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포털이 말하는 '중립성'은 철저한 상업적 이해에 다름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포털은 앞으로 더 강화된 규제조치들 앞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포털이 자의적인 편집의 패러다임을 벗고 완전한 이용자의 수중으로 작동된다면 국가의 규제가 발붙일 근거가 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포털이 앞으로는 중립성을 외치고 안으로는 교묘한 치우침을 지속할 경우 국가의 규제와 동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이용자의 표현자유 침해와 공론장의 위축으로 전개될 것이다.

촛불의 참가자들이 포털의 철저한 배신을 통해 더욱 거대한 공론장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결국 우리는 촛불에서 새로운 세계를 향한 첫 걸음을 뗀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향후 몇 년 동안 현재의 촛불이 감당하고 있는 산적한 과제들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묶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정치 무관심과 보수화의 거대한 물결이 촛불 이후를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칼라TV'에서부터 국회까지 전 부문에서 강력한 연대를 체결하지 못한다면 촛불의 경험과 교훈이 지금처럼 '격찬'과 '경외'의 대상이 되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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