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더 아파하고 더 그리워해야

by 수레바퀴 2011. 3. 25.

피렌체 두오모가 흐릿하게 보인다. 너무 많은 경험을 한 것일까? 하루가 지나면 모든 것은 낡아버린다. 길을 잃어야 새로워질까? 이런 의문들을 기꺼이 받아들이자. 그리하여 맑은 눈을 갖자.



스위스의 관광 도시 루체른에는 빈사의 사자상이 있다. 이 사자상은 1792년 프랑스 대혁명 때 루이 16세 일가를 최후까지 지키다 모두 죽게 되는 스위스 용병 786명의 넋을 기리는 조각상이다. 스위스인들은 왜 프랑스 왕실을 경호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됐을까?

당시 스위스는 경제난이 심해 외국에 나가 몸을 파는 용병제가 일반화돼 있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많은 스위스인들이 다른 나라의 전쟁터까지 가게 된 것이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인접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스위스는 19세기 초까지도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다.

하지만 격변의 세계사 중심에서 중립을 표방하고 국가전략을 잘 짜면서 2010년 현재 1인당 GDP가 6만 7천 달러로 세계 5대 부국이 됐다. 200여년만에 스위스의 이미지는 힘없는 나라가 아니라 아름답고 풍요한 복지국가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역사가 비탄과 절망에서 희망과 번영으로 바뀌듯 인생도 침체와 절정을 오간다.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에 등장하는 이태리 피렌체 두오모(대성당)에는 가파르고 좁은 463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을 20여분 정도 힘들게 오르면 쿠폴라(둥근 지붕, 돔)의 전망대가 나온다.

예쁜 붉은 색 지붕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피렌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무대지만 여행자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과 객창감을 선물한다. 이윽고 구불구불한 계단을 내려 올때 즈음 삶에 대한 적지 않은 소회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오로지 걸어야만 만날 수 있는 피렌체의 고풍스런 길 어딘가에 서서 다시 두오모 쿠폴라를 보고 있을 때 드는 물음이다. 대체 "나의 꿈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나의 에너지는 제대로 소진되고 있는가?"

사람들이 살면서 겪게 되는 큰 패배와 실의는 진로와 연애에 관한 것들이다. 시험에서 낙방하거나 원하는 직장을 들어가지 못하면서 겪는 침체는 이루 말할 길 없다. 누군가는 좌절하고 아예 새로운 길을 찾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다시 도전하여 마침내 성공하기도 한다.

실연도 그러하다. 생을 포기할 정도로 불쾌하고 고통스런 일에는 틀림없다. 소설가 김형경의 <좋은 이별>에는 사람은 결국 만나고 이별하는 것을 되풀이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 경우 최대한 아파하라고 한다. 그래야 극복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힘들어 몸과 마음을 망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여행자처럼 스스로를 진단하는 기회를 가졌느냐에서 온다. 도대체 스스로를 알지 않고서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스스로를 온전히 알아내는 일은 대부분 실패와 절망에서 온다. 성공과 상승의 국면에서는 우월감과 자만심에 '나'를 들여다볼 기회가 좀처럼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러다보면 시간의 쾌속선을 타고 '나'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때를 초심을 잃었다고도 한다.

반면 하강과 침체의 지점에서 '나'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삶을 멋지게 리디자인하는 지름길이다. 탄탄대로에서는 더 아름답고 훌륭한 길을 알 수 없다. 울퉁붕퉁하거나 후미진 길, 꽉 막힌 지점에서 새로고 창의적인 길은 비로소 시작된다.

더 많은 도전, 더 많은 실망, 더 많은 후퇴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더 많은 안정, 더 많은 행복, 더 많은 진전만을 기대한다. 도무지 자신에게는 완전한 위기, 불행 따위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버린다. 살아가면서 비행기 타는 일만 있지는 않듯이 늪에 빠지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 때에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받은 교육도 실제로는 지식을 전수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알아내는 일이다. 나의 적성과 소질을 이해하면서 진로의 길이 만들어진다.

연애가 어그러질 때도 '나'를 만나게 된다. 나는 왜 그때 그랬을까? 그 사람과 오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나에게 어떤 부족한 점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다음에 오게 되는 연애에는 알게 모르게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런 방법을 택하는 것이 옳다", "나는 지난 번에도 이렇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이렇게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충분히 스스로를 알게 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학습장'이 생기고 만성적인 하강은 되풀이되지 않는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위험이 다가왔을 때 도망치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도리어 위험이 배가된다. 그러나 결연하게 맞선다면 위험은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무슨 일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을 나중에 잘 설명할 수 있기 위해서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울 때 하강과 상승이 가장 어려운 과정이라고 한다. 부력 때문이다. 몸의 균형을 해치는 힘으로 물 속에 들어간 사람들이 힘들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중요한 것이 평상심이라고 한다. 하강과 상승시 원칙은 “천천히 임하는 일”이다.

경제도 불황과 호황의 경계가 있다. 불황이 반전돼 호황국면을 맞거나 그 반대의 경우 모두 경제주체의 침착하고 여유로운 대응이 요구된다. 금리, 환율 등 거시지표들을 함부로 운용하면 좋은 때를 놓치거나 그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호황이 되려다가 자칫하면 다시 불황의 늪으로 잠기기도 한다.

낙담, 자조, 불운의 영역에는 사람들을 가둬버리는 힘이 있다. 그 힘을 이겨내고 환희, 의지, 행운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평소에 ‘나’를 단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개인은 물론이고 한 사회에서 ‘꿈’이란 아주 소중한 가치이다. 상승과 하강, 그 기저에는 꿈의 무게가 흐름을 좌우한다. 침착히 꿈을 갖고 거대하게 만들어야 한다. 희망의 나래짓은 오래도록, 절망의 고통은 점점 무딜 수 있도록.
 
덧글. 이 포스트는 지난 2월 말 작성된 글입니다. 후배가 편집하는 한 무크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래 제목은 '절망 혹은 희망을 위해'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