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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표현의 자유와 소셜미디어 규제 논의

by 수레바퀴 2010. 5. 25.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일부 언론사는 지금까지도 국민-시민의 것이 아닌 언론사를 위한 표현의 자유로 그 의미를 축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사는 미디어 수용자를 발행부수나 시청률처럼 계량화하는 수치로만 표시되길 원하지 그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참여 행위의 주인공으로서 일상적-정기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아서이다.

가령 공익에 대한 논의 - 선거이슈에 대해 언론사는 더 많이 그리고 독점적으로 영향력을 유지하길 원한다. 하지만 선거를 포함해 공익에 대한 논의를 시민이 주도할수록 언론은 자신들의 영향력이 급감할 수 있음을 경계하게 된다.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상황은 미묘해진다. 웹2.0과 같은 미디어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언론은 미디어 수용자인 시민을 더 껴안아야 하지만 독점해온 공익에 대한 논의의 광장에 시민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것은 말리고 사양해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됐다고 할 수 있어서다.

테크놀러지는 공익 논의의 장을 확대한 동력

하지만 공익은 언론사만 대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상황이 되고 있다. 공익을 다룬다는 것은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논의의 광장 즉, 신문과 TV 같은 플랫폼이 필요했다.

과거에는 언론사가 폐쇄적인 뉴스룸 안에서 게이트 키핑으로 독자와 시청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언론사 임의의 방식으로 표출했고 그러한 콘텐츠를 제작, 배포했다.

그러나 오늘날 미디어 수용자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인터넷과 같은 열린 플랫폼에서 발언하고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그들은 언론사 콘텐츠에 비해 손색없는 제작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이 지식대중, 집단지성으로 공익의 논의에 주력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이다. 이미 블로그,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는 신천지가 되고 있다. 전통 매체가 그들의 발언을 제지할 명분도, 위상도 사라지는 것이다.

공익논의의 주 무대가 전통 매체를 확실히 벗어난 것은 산업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광고주들이 (공익이나 사익의 주제에 대해)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신문을 떠나면서 수익구조는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미국의 대형 신문기업 25개 중 24개의 신문은 기록적인 적자로 돌아섰다. 국내의 주요 신문사는 특별한 변수의 동원없이는 만성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적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와 전통매체는 불유쾌한 관계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이용자는 언론사가 공익 논의를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용자가 가진 자신감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소셜네트워크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돼 언론을 더 이상 필수적인 동료로 평가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 대체로 전통매체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언론의 뉴스는 이용하지만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지적능력과 자율성을 행사하는 식이다.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이용자가 언론에 대해 갖는 자신감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자신감의 원천은 이용자의 경험으로 축조된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이용자는 언론사에 대해 세 가지 경험을 갖게 된다. 첫째, 경쟁의 경험이다. 이것은 언론사 뉴스룸보다 빨리 사건(현장)에 대해 근접성을 확보하고 뉴스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비평의 경험이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연대(following)하면서 전통매체를 극복하고 있다. 뉴스를 선별하고 친구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거치면서 언론에 대한 불만족이 커지고 있다. IT기업에 종사하는 한 트위터리안은 말한다. "언론사들은 다양한 의견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계몽하려고 한다"

셋째, 관계의 경험이다. 일반적으로 소셜네트워크의 관계는 지연, 학연, 혈연과 같은 오프라인의 연고주의보다는 기호, 욕구, 직장, 라이프스타일 등의 개성적이고 문화적인 것들로 '관계'가 설정된다. 이 관계는 기존의 연고관계보다 각별하게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이 관계는 자신 그리고 타인에 대한 선호로-적어도 그러할 것이다-시작되기 때문이다. 우호적이며 선린적인 공존의 관계가 깊어질 때마다 언론-수용자의 전통적인 관계와 대비된다. 그리고 후자의 관계보다 소셜네트워크의 우월한 관계에 대해 강한 애착을 느낀다.

여기에 인터넷 이용자는 언론사가 다루는 공익이 '정파적', '편향적'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더 강해지고 있다. 경쟁-비평-관계의 경험을 통해 이용자는 언론이 행사하는 저널리즘에 대해 신뢰를 못하고 있다.

언론 보도물에 대한 이용자 평판이 광범위하게 공유되면서 신뢰의 '결여'를 낱낱이 알게 된다. 그 결과 언론에 대해 공격적이고 저항적인 형태를 띤다.

마침내 이용자는 언론사가 점유한 시장(market)에 진입한다. 전통매체의 비즈니스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다.

그것은 종종 저널리즘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미 IT, 스포츠, 연예, 라이프스타일 분야는 물론이고 교육 그리고 드디어 정치로까지 인터넷 이용자는 발언권을 행사한지 오래다.

전통매체의 비즈니스는 타격을 입고 있다. 더 많은 콘텐츠들이 그리고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언론이 파고들지 못하는 작은 부분까지 이용자는 다가서면서 광고주는 움직이고 시장질서는 요동친다.

다국적 기업의 국내 홍보를 맡고 있는 한 홍보대행사 간부는 "3~4년 전부터 기업들이 신문, TV 등 전통매체를 거치지 않는 그러니까 소비자를 직접 상대로 하는 온라인 홍보방안을 제시해야 홍보대행계약에 사인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것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언론과 소셜미디어는 격렬한 경쟁자가 돼

이렇게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언론 영향력은 감퇴한다. 바이럴 마케팅 즉, 구전 효과는 기업의 주요한 마케팅 수단이 되고 있다. 불과 2~3년만에 언론을 통하지 않고 바로 고객과 접점을 맺으려는 실험은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하나의 테마가 된 것은 분명하다.

언론의 독점적이고 배타적 영향력-그것은 일반적으로 광고효과, 사회적 영향력이라고 묘사된다-을 인터넷 이용자가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으로서는 조바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때로는 그것이 뉴스에서도 나타난다.

인터넷 이용자를 유희적이고 사회일탈적인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이용자의 발언은 신중하지 못하며 과학적, 객관적이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끝내는 그들의 표현을 위축시킬만한 조치들-제한적본인확인제, 사어비모욕죄-을 취하라고 요구한다.

전통매체가 이용자 콘텐츠의 수준을 끌어 올리고 공익의 문제에 더 많이 가담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와 협업, 선택과 집중은 온데 간데 없는 것이다.

그 대신 더 많은 이용자가 자사 사이트에 올 수 있도록 옐로우 저널리즘을 멈추지 않는다. 이용자의 뼈아픈 비판과 지적이 담긴 댓글은 그것이 자사의 명예를 실추하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억측이라는 것을 내세워 과감히 삭제한다.

언론사가 소셜미디어에 대한 체계적 접근이 취약한 것은 전담자나 전문가도 없기 때문이다. 즉자적이고 상업적인 검토만 존재한다. 함께 협력하는 파트너로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대상으로만 설정해 둔 것이다.

결국 소셜네트워크 이용자와 언론은 심각한 거리감이 생기고 있다. 심지어 소셜미디어 이용자 콘텐츠를 임의로 사용한다거나 이용자의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묘사하면서 적대적 관계까지 형성되기도 한다. 이렇게 손잡을 수 없는 관계가 되면서 언론은 이미 시장에서 좋은 협력자를 잃은 것이다.

언론의 정파주의는 결국 설득력 잃을 것

산업의 물결도 그럴진대 정치도 마찬가지다. 사실 지난 시절에는 전통매체가 현실정치에 독점적으로 참견해 비평했다. 유권자는 전통매체를 유일한 정보창구로 의존해왔다.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은 그런 언론과 불가분의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오늘날 언론이 현실정치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급감하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는 정치인의 '지명도'를 높이는 원천이 되고 있다. 대통령 후보감으로 오르내리는 한 여당 지도자는 가장 많은 네티즌 팬들을 갖고 있다. 그는 그것이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 됐다. 유력한 광역단체장 후보는 인터넷에 의존해 후원금을 '성공적으로' 유치했다.

물론 언론이 현실정치에 갖는 지분은 결정적인 측면이 있다. 정치는 낡아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지만 속성상, 관행상 전통매체에 더 미련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스스로 소셜미디어화하면서 인터넷 이용자와 직접 만나고 있다. 가장 먼저 '정견'을 남기는 곳이 인터넷이 되고 있다. 전통매체에서 정치인의 뉴스를 보는 것보다 인터넷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언론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은 비단 정보의 유통만이 아니다. 정치인과 정책 비판, 정치현장 스케치, 정치분석과 전망같은 전통매체 고유의 현실정치 지분이 상당수 블로거의 것이 돼 버렸다.

인터넷이 정치 콘텐츠에 대한 이용자의 선택권을 강화시킴으로써 특정 언론사의 정파주의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저널리즘의 신뢰도가 끊임없이 까발려지는 공간에서 전통매체가 추구하는 고집스런 논조는 철퇴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소셜네트워크의 이용자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언론사 뉴스룸의 상황에선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선거와 소셜미디어는 좋은 궁합

다양한 의견이 교차하고 좋은 관점이 더 많이 공유되는 인터넷 콘텐츠의 유통 양식은 다양한 후보자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선거와 좋은 짝을 이룬다. 소수파의 정책도 다수파의 그것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그만한 지분과 경로를 통해 인터넷 이용자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오프라인과 온라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첨예한 이념대결이 인터넷에도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다. 선거때 폭주하는 정치 콘텐츠는 정당 등 현실정치세력에 의해 양산되고 있어 효율적이고 정상적인 온라인 소통을 가로막는 주범이 되고 있다.

또 언론과 지식인의 침묵 속에서 정부의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규제 방침도 불변한 상황이다. 되레 언론과 지식인은 자신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통제가 불가능한 인터넷 공간과 이용자의 문화를 이단적으로 배척하는데 골몰한다.

그럼에도 서로의 기호와 니즈를 파악하고 관계를 맺는 소셜네트워크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이 관계는 오프라인의 연결고리들-학연, 지연, 혈연 따위를 무참하게 하는 대신 라이프스타일, 예를 들면 행동 반경과 거주 위치에 따라 교집함을 형성한다. 위계적이고 일방적인 접점들이 아니라 선택적이고 능동적인 조건들로 관계가 알뜰히 채워진다.

소셜네트워크에서는 그래서 지나친 정치는 오히려 추방된다. 문화적, 일상적인 동질감은 권장된다. 소셜네트워크에서의 선거는 이데올로기라는 특정하고 거대한 서사보다는 인물의 호감도, 정책이 삶에 미치는 영향, 주변환경에 대한 더 나은 채색들 같은 보다 개인적인 스토리를 요구받는다.

한 정당의 대표를 지내고 이번 지방선거에 광역단체장에 출마한 한 후보자는 자신의 일정을 트위터로 자주 공개한다. 다른 곳으로 이동한 뒤에도 흔적을 남긴다. 그곳에 실제로 거주하는 트위터리안들이 응답한다.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친밀감을 증진하는 사적인 활동인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이 된다.

이러한 소셜네트워크는 거대담론과 보이지 않는 힘들에 의해 유지되는 정치를 조각조각 나뉜다. 좀더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들, 그리고 인간적인 느낌들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창조적 혜안들이 담긴 콘텐츠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 공급자 중심의 선거정치과정 모델이 수용자 중심의 선거정치과정 모델로 바뀌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지원하라

그러나 아직 소셜네트워크에선 이용자 참여의 과잉이 이뤄지는데 반해 조정, 중재의 과부족이 일어나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정부의 규제, 심의가 메꿔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전통매체가 인터넷 이용자에 대해 갖고 있는 경계심을 기초로 경솔한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의 다수는 공손하지 않으며 반체제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정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언비어, 명예훼손 같은 수준 낮은 콘텐츠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한다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이용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평판이란 점을 고려할 때 그러한 주장은 터무니없다.
이용자는 더 좋은 콘텐츠를 전달하고 주장함으로써 획득되는 평판 그리고 더 나아가 시장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명도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이용자에게 정치와 이념은 실제로는 부차적인 것이다. 이용자는 표현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해가는데 마치 그것은 예술가가 조각상을 만드는 것과 같다. 누가 오점을 남기려 하겠는가 - 굳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당의 이해관계자 또는 매수된 자들일 것이다.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공직선거법 93조에 대해서는 지난 2002년 6월27일 헌법재판소의 인터넷에 대한 정의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은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이다. …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헌재의 결정문이 이야기하는 것은 인터넷 이용자가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것이 소셜네트워크의 건강성을 돕는 일이라는 점이다. 또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오랜 논쟁은 기득권과 연관돼 있다. 자유가 확대될수록 기득권의 허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제도가 기득권을 보호하고 싶어도 그 기득권이 점유했던 공론장-시장은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쓸쓸해지고 있다.
인터넷이 표현의 장을 걷잡을 수 없이 확장시켜 놓은 나머지 이제는 규제논의가 허황돼 보이기까지 한다.

중요한 것은 좋은 공론장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이다. 언론이 
거기에 성의를 보인다면 생존은 한결 쉬워지지 않을까? 언론이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지원하는 순간 언론과 소셜네트워크는 비로소 굳건한 동맹이 맺어질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전통매체는 이 협력을 기초로 그들의 저널리즘에 영예를 얻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발언하고 공유하며 손잡는 많은 사람들은 언론과 소셜네트워크간의 협업과 공생의 관계야말로 오늘날 빛을 발해야 할 진정한 저널리즘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글. 이 포스트는 18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새언론인 포럼, 언론광장 등이 공동 주최한 <소셜미디어 규제와 참여민주주의;공직선거법 상의 규제를 중심으로>에 토론자로 참여해 발언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관련 발제자료는 파일로 등록했다.

지난 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가 주최한 <인터넷선거보도의 활성화와 공정성 확보방안> 세미나에 이어 비슷한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내가 발언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은 그와 관련된 시장을 수성하려는 전통매체와 소셜네트워크간의 갈등에서 점화됐다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이다. 또 법제도와 언론이 인터넷 미디어의 속성을 잘 헤아리지 못한 데서 근본 원인이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과 이용자가 화해한다면 그것이 저널리즘을 꽃피우는 기회가 될 것이라 본다.

소셜네트워크의 이용자도 언론운동의 새로운 좌표를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종전의 정치지향적 비평운동이 아니라 산업적인 기반-집단적인 소액결제-을 지원해주는 일이다. 

이제 표현의 자유는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중대한 기로에 섰다. 서로 도와서 사느냐 아니면 서로 경쟁해서 피를 보느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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