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한국민주주의와 함께 한 한신대 70년

by 수레바퀴 2010. 4. 16.


춘설(春雪)이 내렸고 바람도 세차다. 봄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도 오갔다. 오늘처럼 안온한 봄이 기다려지던 시절이 있었다.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새날을 열려는 간곡한 나날들이 있었다.

그런 순간에 한신대가 있었다. 70~80년대의 시대상황에서 결코 주변인으로, 방관자로 배회하지 않은 버팀목이었다. 그만큼 그 시대를 함께 견딘 이들은 한신대의 ‘나이 듦’이 각별하고 애틋할 수밖에 없다.

좀체 한국 사회에 지속하기 어려웠던 진보적 콘텐츠를 일으키고 대항과 대안의 구심점으로 성장했던 한신대의 과거를 떠올릴수록 그 소중함은 필설로 다하기에 부족해 보인다.

상아탑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실천과 모색을 공유한 한신대 지식인들의 오롯한 면면은 한국사회를 지지하는 초석이나 다름없어서다. 어쩌면 한신대의 넉넉한 품으로 아우른 학자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는 덧없이 부류(浮流)했을 것이다.

한신대를 거쳐 간 수많은 학자들은 민중신학,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물론이고 지식인의 사회참여 논쟁 등 한국사회의 주류와는 한때 격하게 대립하고 또 한때는 열정적인 찬사를 받는 주인공들로 기억된다.

특히 1980년대 한신대 경상학부는 그들이 활동하는 대표적인 무대였다. 김수행·이영훈(현 서울대)·윤소영·강남훈(한신대)·고 정운영 교수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모여 한신경제과학연구소를 구성했다.

이들 중 얼마 전 서울대에서 퇴임한 김수행 교수는 국내 학자로는 처음으로 마르크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다. 김 교수와 함께 고 정운영 교수, 끝까지 마르크스 경제학을 버리지 않은 박영호 교수는 ‘레전드(legend)’로 추앙된다. 한신대의 대표적 트로이카 체제로 한국사회의 진보적 대안이론의 아성을 축조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기점으로 민주화운동의 거대한 줄기를 한신대가 붙잡았다. 사실 1949년 한신대를 졸업한 고 장준하 선생이 관여했던 ‘사상계’가 그랬듯이 진보적 시선을 모으고 설득하며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의 담론을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콘텐츠의 산실을 자처했다. 이 산실을 가꾼 학자들의 스토리텔링은 엄혹한 시기를 버티고 봄을 기다릴 수 있게 한 장본인들이었다.

한 두 명의 지식인이 아니라 너무 많은 이들이 가담했다. 경제학자이면서도 다양한 진보적 식견을 제시하며 치열한 이론논쟁을 촉박했던 국제경제학과 윤소영 교수, 한국 사관의 재탐색을 일궈낸 국사학과 이세영 교수, 경제시장의 개혁을 제기하는 국제경제학과 김윤자·김성구 교수, 성찰의 메시지를 내놓는 사회복지학과 남구현 교수 등은 대표적인 이론가들이다.

최근 한신대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넓히고 있는 신진 소장학자들은 90년대 초·중반 이후 교수로 임용됐다. 이들에 의해 정치, 통일, 노동의 스펙트럼에 그쳤던 진보담론의 시야도 국제외교, 문학, 페미니즘 등으로 그 지평이 뻗어갔다.

문화평론가인 사회학과 김종엽 교수. 문예창작학과 서영채 교수 그리고 실업문제의 근본적 함의를 짚는 사회학과 노중기 교수, 중국에 대한 재해석을 제기하는 중국지역학과 이희옥 교수, 소설 ‘봄날’을 발표한 문예창작학과 임철우 교수, 페미니즘을 고찰하는 영문학과 고갑희 교수, 장애인 관련 사회이론을 제공하는 재활학과 오길승 교수, 학생운동 이론가로 정평이 났던 일본지역학과 송주명 교수 등이 진보학풍을 전수받은 90년대 대표적 후예들이다.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황지우 교수는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은 문사(文士)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시집을 통해 새로운 시세계를 펼쳐 보였다. 그는 70~80년대 학생운동으로 구속, 제적을 당하는 파란을 겪었으며 한신대와는 1985년 강사로 인연을 맺었다가 10년 뒤 94년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단지 이론 시장을 키운 것만이 아니다. 상당수 한신대 교수들은 지난한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옥고도 치루는 등 자기 희생을 감수했다. 경영학과 교수 출신의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은 과거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의장을 지내며 5.18 특별법 제정,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철회, 방송노조 파업 등 90년대를 관통한 실천하는 대표적 지식인이었다.

참여연대, 새교육공동체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신학과 김성재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다. 국제관계학부 이해영 교수는 '사회진보를 위한 민주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건학 때부터 시작된 한신대의 진보주의적 학풍은 민중신학이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 김재준 목사, 문익환 목사, 안병무 박사, 이우정 박사 등은 대표적 인물들이다. 그들은 통일운동과 재야 민주화 운동의 중심으로 한신대를 올려 놓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할 것이다.

한신대의 건립이념은 이소성대(以小成大)이다.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이룬다’는 뜻이다. 한신대 출신의 많은 학자들이 시대와 학문의 흐름을 점검하면서 한국 사회에 씨앗을 뿌렸고 그 결과 오늘날 한국 사회는 어느 일방의 주장을 담은 콘텐츠를 무조건 수용하는 태도보다는 다른 시선을 아낌없이 허용하는 열린 광장을 갖게 됐다.

공동체와 인간에 대한 한신대 학자들의 일관되며 따뜻한 소통, 그 작은 출발 덕분이다. 지금도 한신대로부터 출발하는 콘텐츠는 유효하고 호소력 있는 가치를 발한다. 한신대라는 브랜드 안에서 움직이는 지식인의 말과 글, 보폭이 끝없이 오늘날의 시대정신과 대중의 마음을 헤아리는 한 불멸의 기록을 써내려 갈 것이다.

축복한다. 한신대의 탄생을. 찬란한 자유를 위해 아낌없이 헌실할 앞으로의 날들을! 그리고 한신대 지식인들의 명예를!

덧글. 이 포스트는 한신대 건학 70주년을 맞아 특별 발행된 관련 책자에 실린 글입니다. 청탁자와의 인연으로 아무런 연고가 없던 한신대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그러나 지난 70년의 한신대 역사가 한국민주주의와 함께 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모쪼록 한신대 재학생은 물론이고 선배들에게 깊은 추억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반응형

'자유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로그 잘 하면 직업門 열 수 있다  (10) 2010.12.17
불멸의 라디오를 향한 실험  (6) 2010.01.28
밤의 여왕  (0) 2009.05.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