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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_journalism

신문의 UCC

by 수레바퀴 2006. 11. 14.

 

이 포스트는 14일밤 기자협회보 한 기자와 msn 메신저로 진행된 인터뷰 내용입니다. 일부 내용은 제가 추가 정리하면서 보완했습니다.


질문. 언론사들 UCC 사업 현황이 어떤가 살펴보려고 했는데요. 제가 보기엔 신문사들은 좀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답변. 그렇습니다. 조선일보가 씨디네트웍스와 함께 동영상 포털인 엠군을 운영하고, 조인스닷컴이 다양한 UCC 형태의 서비스를 진행하는 것 외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것이 없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이게 신문사들의 마인드나 경영 여건상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신문사 콘텐츠 자체가 갖는 한계인지요?


답변. UCC는 결국 독자와 소통하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인데, 여기에 참여하는 독자들의 수준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문사 내부의 창의적 패러다임이 절대적이라고 하겠는데, 알다시피 신문기업 내부는 독자와의 관계 모델을 설정하는 데 있어 취약합니다.


따라서 UCC가 신문사 온오프라인에 적용되기까지에는 많은 진통이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이를테면 독자들의 관심사안을 논의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과 이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바로 소개할 수 있는 설계를 해야 합니다. 당연히 뉴스조직의 인식전환이 수반돼야겠지요.


또 UCC 비즈니스는 결과적으로는 신문사가 지금까지 주로 취급해온 콘텐츠의 형태와 내용으로는 기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UCC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빠른 속도로 영상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플랫폼이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문사 내부의 재원도 충분히 확보돼야 하고요. 단순히 UCC를 수렴해서 서비스의 하나로 다루거나 콘텐츠 수급 창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질문. 그래서 신문사가 반드시 UCC 부문에 투자해야 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던데요. 해외 신문사에서도 UCC에 대한 특별한 전략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


답변. 신문사가 UCC를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지를 숙의해야 합니다. 지금의 여건에서 UCC를 통해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해낼 신문사는 많지 않습니다. UCC는 그야말로 미디어의 경쟁력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새로운 블루오션이긴 하지만, 신문에게는 기본적인 독자관계(CRM)가 구축돼야 하고 UCC 기반의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특히 뉴스조직을 거기에 상응한 수준으로 탈바꿈시켜야 하고 기자들을 능동적으로 개입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서비스를 하나 만들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작업입니다.


유력 해외매체의 경우는 UCC가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거대 담론을 보완하고, 참여지향적 독자들을 견인해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출구로 보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신문-독자 간 관계를 보다 고차원적으로 설정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배경에는 신문의 뉴미디어 비즈니스를 고려하는 부분도 있지만, 일반 개인 블로그를 수용하는데 많은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데서 보듯이 아직 UCC와 저널리즘(언론)의 접점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국내 신문사들의 UCC가 갖는 기본적 한계는 충성도 높은 독자를 확보하고, 그러한 독자군들이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활발한 상호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UCC가 신문기업 내부에 자리잡기가 원천적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또 UCC는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서 그 콘텐츠의 형식과 내용이 멀티미디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신문기업이 아무리 웹 사이트를 정교하게 설계한다고 하더라도 독자들이 그러한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얻는 실익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판도라TV나 아프리카 등 전문 동영상 포털은 물론이고 포털사이트 UCC채널에서 그러한 콘텐츠를 수용하고 있어 신문의 UCC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합니다.


UCC는 달라지는 미디어 환경을 표상합니다. 미디어를 소비하는 새로운 이용자들은 이제 미디어를 창조해가고 있습니다. 전통매체에게는 그러한 창조를 받아낼만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문기업의 내부 여건과 문화는 뉴미디어와 UCC의 철학과 가치를 수용할만한 태세가 부족합니다.


따라서 UCC가 신문에게 접목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신문이 추구해야 할 UCC는 유튜브에서 보여주는 그러한 UCC가 아니라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저널리즘의 깊이와 범위를 확대시켜주거나 (크로스미디어 전략하에서) 독자관계를 친화적으로 유지하는 근거로 개입되거나 뉴스조직 내부에 (시장내) 이용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UCC를 근접시킴으로써 창의적이고 긴장된 콘텐츠 문화를 만드는 모멘텀으로 활용하거나 하는 따위의 것으로 봐야겠지요. 결국 신문의 UCC에 대한 재전략이 중요합니다.


질문. 신문사의 UCC 시장 진출은 들어가는 기회비용에 비해 실익은 적다고 볼 수 있을까요? 또 상대적으로 방송사는 UCC 전략을 세우기에 신문에 비해서는 좀더 용이한 것인가요?


답변 I. 우선 UCC는 앞서도 말했다시피 전통 매체에 있어서는 독자(시청자)와의 새로운 관계 모델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를 생산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내부 인프라가 있는지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중앙일보처럼 TV 플랫폼이 있고, 조인스닷컴이 비디오 서비스를 소화해낼 수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것이 비즈니스적으로 유효할 것인지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UCC는 아직 개척해야 할 부분이고 광고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지않는 한 신문의 UCC에게 돌아올 부분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신문의 UCC는 유형의 이익보다는 독자와의 접점을 늘려 나감으로써 브랜드를 제고하는 무형의 이익을 기대한다는 것이 솔직한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합니다.


답변 II. 또 방송사는 이제 이용자들이 풍부한 멀티미디어 기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언제든 다양한 플랫폼으로 유통시킬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제 콘텐츠를 소비하는 주축일 뿐만 아니라 콘텐츠에 부가가치를 불어넣을 사람이기도 하며, 아예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해주는 동업자이기도 합니다.


방송 서비스가 다양한 디바이스에서 소화되는 미디어 환경을 고려할 때 콘텐츠의 수요는 더욱 증대할 것이고 이에 비례한 역동적인 UCC 플랫폼은 비즈니스 모델 창구의 하나로 기능할 것입니다.


BBC가 콘텐츠를 공유하며 이용자들을 견인하기 위한 창조적 전략을 구사했듯, SBSi의 플랫폼 전략도 궤를 같이 합니다. 이제 방송사는 UCC를 통해, 그리고 그러한 UCC가 중심이 되는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어떤 미디어 기업보다 절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신문사의 UCC는 비즈니스 모델이기보다는 브랜드 전략으로 해석돼야 합니다. 반면 방송사의 UCC는 종전보다 차원이 다른 방송을 디자인-개국하는 개념으로 껴안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하면 포털사이트의 UCC나 판도라TV의 경우는 돈벌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플랫폼은 UCC가 소비되고 재창조되고 주목받는 공간으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문, 방송의 UCC는 거대한 플랫폼을 스스로 만들지도 못했고, 그것을 소화해낼 수 있는 여건들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또 신문에서 기대되는 것은 UCC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신문에서 UCC가 확대되려면 UCC 일반의 기대를 일치시켜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신문이 추구하는 방향을 UCC와 맞춰야 하는데, UCC는 다원적이고 입체적이며 개방적인 플랫폼을 지지합니다. 


신문의 고정된 시각-논조, 폐쇄적인 웹 사이트, 신문 내부와 외부를 잇는 쌍방향 채널들의 부재는 UCC를 안착하는 데 장애요소들입니다. 예를 들어 한겨레신문이 웹사이트에서 독자들의 영상물이나 기사를 제보받고 있지만, 그것이 정말 제대로 진행되고 있을까요?


채널을 신설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근본적인 철학과 실천이 전환돼야 합니다. 조선일보의 헤드라인을 독자가 직접 찍거나 퍼온, 또는 패러디한(재가공한)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싸이질 사진이 장식한다든지 하는 따위의 완전하고 철저한 개방-혁신이 선결과제입니다.


왜냐하면 UCC는 대등한 관계를 표상하는 미디어지형인데, 여전히 전통매체들은 UCC를 가두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논조를 뒷받침하는 소모품으로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조인스닷컴, 조선닷컴의 기사 댓글이나 만들어 놓은 사이버국회, 블로그들을 보세요. 어디 그것이 UCC입니까? 조선일보 중앙일보를 떠받치는 커뮤니티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래서 벌거벗은 여체의 사진이나 대통령을 비난하는 콘텐츠가 남발돼도 UCC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신문의 UCC에 대한 오해이고 일종의 기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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